그러나 이같은 공안당국적 시각(視角)은 지극히 명백한 한 가지 사실. 즉 이 젊은이들은 바로 우리 사회에서 태어나서 우리 사회에서 자라난 우리의 아들딸이요 형제자매라는 사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운동권‘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들이 ‘운동권‘에 뛰어들고 ‘위장취업자가 되게 된 것은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병폐 이 젊은이들의 순결한 양심으로 하여금도저히 소리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온갖 불의와 비리, 억눌린 사람들의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도덕적 결단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고의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래의 경제성장과정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하고서도 그 성과로부터는 철저히 소외되어온 대다수 노동계층의 현실, ‘선진조국‘을 운위하게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기본급 10만원 미만짜리가 허다한 살인적 저임금과 세계적으로 가장 혹심한 장시간 중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에 시달리면서 멸시와 천대 속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아픔, 남들이라면 한창 부모 품에서 재롱을 부릴 나이인 열세살의 어린 소녀시절부터 소음과 먼지로 뒤덮인 숨막히는 작업장 원단더미 속에 파묻혀 십년여일하게 눈이 오나 비가오나 변소 갈 틈도 없이 잔업에 철야에 뼈빠지게 노동을 하였으나 남은 것은 병든 육신과 지칠 대로 지친 영혼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스물세살 미싱사의 눈물,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해고를 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구로공단의 뒷골목을 힘없이 배회하는 해고노동자들의 탄식, 기본급 10만원을 요구하였다는 이유로 회사폭력배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각목과 발길질로 집단폭행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구속된 구속노동자의 분노, 그리고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인간다운 삶의 꿈 때문에,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꽃다운 젊은 목숨을 스스로 불길 속에 던져넣는 분신노동자들의 잇따른 참혹한 죽음 - 바로 이런 것들이 보다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이 젊은이들, 어쨌거나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던 행운을 타고난 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더이상 그 행운에 안주하고 있을 수 없도록, 더이상 그 부모들이 기대하는 대학졸업의 경력에 걸맞는 안일하고 안전한 삶의 길을 갈 수 없도록 만들고 그 대신에 ‘운동권‘과 ‘위장취업‘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이라는 사실, 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젊은이들은 우리사회에서 오랜 동안 기성세대가 보여주지 못했던 놀라운 도덕적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제 36년의 이민족지배와 외세에 의한 분단의 쓰라린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도덕적 건강성은 심대하게 훼손되었고 사회적 양심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하였습니다. 우리의 최근세사는 불행하게도 권선징악의 교훈에 친하지 못합니다. 반민족적 • 반민주적 · 반사회적 행위에 대하여 응당한 응징이 가해진 일이 없었고 한편 수많은 항일투사와 그 자손들의 불우한 생애가 웅변적으로 보여주듯이 민족과 사회에 대한 애정과 헌신에 대하여 그 어떤 정신적 보상조차도 주어진 일이 없었습니다. 이같은 왜곡된 역사 속에서우리들 대다수의 기성세대는 일찍부터 부모들과 선배들과 사회로부터 힘 앞에 순종하고 체제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자기만의 안일을 추구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 비겁하며 왜소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받으면서 자라났습니다. - P113
이같은 기성세대의 눈으로 볼 때, 오늘의 젊은이들이 대학출신자에게 보장되어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노동자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하여 일생을 걸고노동현장에 취업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로 비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 기성세대는 우리들의 척도로 이 젊은이들을 판단하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은, 이제 우리사회에 하나의 새로운 세대, 기성세대와는 다른 세대, 그들의 양심을 스스로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젊은 세대가 자라났다는 사실입니다. 이새로운 세대는 민주화의 국민적 갈망을 불러일으킨 4.19의 감격으로부터 시작된 60년대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깨운 전태일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70년대, 그리고 광주사태라는 엄청난 민족적 참화로부터 시작된 80년대의 시련을 거치면서 서서히 회복되어온 우리 민족의 도덕적 원기와 사회적 양심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젊은이들 중 일부가 일시적으로나마 현실의 벽 앞에 부딪쳐 절망한 나머지 파괴적 충동에 휩싸일 위험이 있을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부작용은 우리 사회가 이 젊은이들의 항의와 비판을 경청하고 거기에 대하여 성실하게 대응할 자세를 갖추게 될 때, 그리하여 민주적 기본질서가 확립되고 사회정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이 기울여지며 사회의 도덕적 건강성이 회복되게 될 때에, 자연히 치유되고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고, 또 반드시 그같은 과정을 통하여서만 치유되고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고 우리는 확신하는 바이며, 그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우려가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젊은이들이 노동현실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탓하거나 억압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말해두고자 합니다. - P115
권양은 우리에게 ‘진실에의 비밀은 용기뿐‘이라는 교훈을 온몸으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미 혼탁하고 타락한 세대의 신화가 되어버린 권양의투쟁에서, 일찍이 김수영 시인이 노래하였듯이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흐르는가"를 배웠습니다. 권양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는 슬픔과 절망으로 왔으나, 이제 우리는 가슴 가득한 기쁨과 희망으로 권양의 승리에 대하여 증언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권양이 이미 도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 바 있으나, 이제 머지않은 장래에 현실적으로도 완벽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의 진실은 만천하에 낱낱이 공개될 것이며, 그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 들었던 모든 어리석고 비겁한 책동은 하나도 남김없이 타파될 것입니다. 이 진실의 최종적인 승리를 위하여, 지금 이 자리에 선 우리 모두는 권양이우리에게 바친 헌신에 만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각자의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제 저 잔혹하였던 여름과 가을을 지나, 권양은 이 법정에 섰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눈물로써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이 빛나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순결무구한 처녀는 이 시대의 모든 죄악과 타락과 불의를 속죄하는 제물로서 역사의 제단 앞에 스스로를 바쳤으며, 우리들 중 누구도 이 시대에서 가장 죄가 없는 이 처녀를 더이상 단 한시라도 차디찬 감옥 속에 갇혀 있게 하는 죄악의 공범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권양, 온 국민의 가슴속 깊은 곳에 은밀하고 고귀한 희망으로 자리잡은 우리의 권양은, 즉각 석방되어야 합니다. 1986.11.21. - P133
‘김근태씨 고문사건‘에 관해서 재작년 연말에 대한변협 인권위원•들이 관련경찰관들을 검찰에 고발한 일이 있는데, 만 1년이 지나 검찰이 "증거가 없다"고 하는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우리를 새삼스레 막막한 절망감 속으로 몰아넣는다. 고문이란 성질상 밀실범죄이다. 고문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증인 같은 것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가 없는 노릇이고, 피해자 본인의 진술과 경우에 따라서는 고문 직후 신체에 남아 있는 상처 등 고문흔적 정도가 고문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만한 것의 전부이게 마련이다. 김근태씨의 경우 본인은 1, 2심 공판과정을 통하여 시종일관 자신에게 가해진 고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상하게 진술하였고, 그 내용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이에 대하여 그의 주장이 날조라고 하는 적극적인 반론은 제기된 것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김근태씨는 검찰에 송치된 직후 신체에 남아있는 고문흔적에 관한 증거보전신청을 제기하였는데, 법원은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 신청을 기각하여 결국 증거보전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후 1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검찰은 "고문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무혐의 결정이 타당한 것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항고나 재정신청 등 법절차내에서 따져야 할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 정도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또 그런대로 증거자료가 풍부했던 고문사건에 있어서조차 고문경찰관에 대해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 이상, 우리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고문경찰관이 처벌되는 일을 좀처럼 보기 어렵게 될 것이고 따라서 고문이 근절되는 것을 희망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화를 입에 올릴 수 있기 위해서는 다른 백 가지를 다 못하는 일이있을지언정 최소한 고문을 근절시키는 일 하나는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점에서 김근태씨 고문경관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결정은 우리로 하여금 정부·여당의 민주화 의지를 좀체로 신뢰하기 어렵도록 만들고 있다. •••••• 붓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서울대학생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망하였다는 참혹한 소식을 들었다. 아아, 무엇을 더 말하랴. 눈앞이 캄캄하고 손발이 떨려 더이상 붓을 옮길 수가 없다. 슬프다. 이 나라는 어디로 가는가? 천도(天道)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신동아, 1987.2)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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