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의 맹위猛威가 여기에 이르매, 부득불 녗마디 말로써 그 공덕을 기리고 그 성미를 달래지 않을 수 없다. 크도다! 최루탄이여. 바람을 타고 사람의 무리를 뒤쫓으며, 사람들은 네가동으로 몰면 동으로 밀려가고 서로 몰면 서로 밀려가며 눈 깜짝할 사이에 사면팔방으로 흩어지니 그 황급함이 이루 말할 수 없구나. 예부터 이르기를 인중승천(人衆勝天)이라 사람의 무리는 하늘보다도 승하다고 하였으되, 그 사람의 무리란 것도 네 앞에서는 한낱 짚단과 같고 검불과 같으니 너는 필시 하늘보다도 높은 것이 분명하다. 크도다! 최루탄이여. 너는 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 아무도 차별함이 없으니, 갓난아이를 안은 주부가 탄 시내버스 속으로도 파고들고 제1야당 총재의 승용차도 넘보며 학교와 병원, 주택, 상가, 교회, 성당을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구나. 너는 실로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자‘로다. 크도다! 최루탄이여, 전국 각지에서 네 무용담이 우레와 같이 들려온다. 광주 원각사의 법당 안으로 성큼 뛰어들어 영겁의 미소 속에 잠든 부처님의 단꿈을 깨웠으니, 아마도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부처님께 ‘매운맛‘을 보여드린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네가 처음이 아닐는지. 마산에서는 네가 한번 공설운동장의 높은 담을 넘어들어가매 이역만리 이집트에서 언감생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한국 축구에 도전하려고 찾아왔던 나일과 피라미드의 후예들이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만 흘리다가 돌아서는구나. 이제 너의 명성이 사해(四海)에 전파되면 앞으로는 어리석은 이방인들이 함부로 스포츠 한국에 덤벼들기를 삼가하게 될 것이로다. 크도다! 최루탄이여. 네가 없었더라면 이 세상의 질서가 어찌될 뻔하였는지, 실로 모골이 송연하다. 이제 네가 단순히 냄새로 사람들을 쫓을 뿐만 아니라 70미터를 직선으로 나는 탄환의 위력으로써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온 천하가 너의 위엄 앞에 전율하고 있다. 그러나 최루탄이여! 사물의 이치가 항용 그렇듯이 너의 영광이 절정에 다다른 이 순간에 나는 너의 몰락이 준비되고 있음을 본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자고로 공명을 이루고 나면 조용히 몸을 떼어 물러나는것이 우리 선현들의 처신이었건만 너는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을 모르니 내 너를 위하여 이것을 슬퍼하노라. - P151
그렇다. 민의의 물결이 갈수록 더 큰 파도로 끊임없이 밀어닥칠 때, 최루탄이 세면얼마나 세겠는가? 내 가슴을 온통 뒤흔들어놓았던 그 경적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서라면 나는 또다시 최루탄 가스 속을 이리저리 뛰는 졸경을 치르기를 마다하지 않으리라.... 그후 6.26대행진 때 나는 정말로 6. 10 때보다 더 지독한 최루탄 가스 속을헤매며 6.10 때보다 훨씬 더 크고 장엄한 경적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경적소리와 함께 우리의 민주화는 마침내 분수령을 넘어섰다. 이제 최루탄이 모든 것위에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던 저 기이한 시대는 다시는 우리의 삶 속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누가 나에게 이 세상에서 최루탄보다 더 센 것이없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경적이 최루탄보다 세지!" 하고 대답할것이다. (가정조선, 1987.7) - P152
원래 이번 개헌논의의 주안점이 ‘유산‘ 이래 15년간 박탈당해왔던 국민의 정•부선택권을 회복하자는 데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대통령 직선제‘라는 표현으로집약되었던 것에 대하여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줄 안다. 그러나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그 지위틀 격하시키는 일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첫번째 계율은 모든 권력자를 의심하고 불신하라는 것, 어느 누구에게도 결단코 절대권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1972년의 ‘유신헌법‘은 대통령에게사실상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집중시키고 더욱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일말고는 무엇이든지" 뜻대로 할 수 있는 ‘긴급조치권‘까지 부여함으로써 대통령을 거의 초헌법적인 절대권력자로 만들었다. 현행 헌법 또한 긴급조치권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비상조치권‘을 대통령의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헌법환경이 대통령직에 대한 우상숭배를 낳는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의 의식 속에 ‘대통령‘이란 과연 어떤 존재였던가를 냉철하게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통령을 직접 지칭하는 것이어쩐지 ‘불경(不敬) ‘스러운 일이 되는 것 같아 ‘고위층‘이니 무어니 하는 야릇한 대명사를 쓰는 버릇이라든지, 나라의 ‘통치권‘은 엄연히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통치권자‘라고 지칭한다든지, 박대통령 ‘시해(弑害) ‘사건이라는 봉건왕조적 표현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든지, 형법전 어디에도 ‘국가원수모독죄‘라는 죄명이 없는데도 많은 국민들이 마치 그런 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대통령을 결코 ‘동료시민‘으로서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 신비스러운 후광에 싸인 우리와 다른 특수한 존재, 신성 불가침의 존재, 요컨대 ‘나랏님‘이요. ‘왕‘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같은 대통령 숭배를 타파하지 않고는 참된 민주사회의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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