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다 언니는 남자와 연애를 한다. 죽음의 손짓에 답하는 언니만의 방식이다. 마그다 언니는 파리에서 온 프랑스인 남자를 만나는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무슨 무슨 거리에 살았다고 한다. 나는 이 주소를 절대 잊어버리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러한 끔찍한 상황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학반응이 있다. 눈부시게찬란하고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들은 화창한 여름날에 쨍그랑거리는•작은 접시를 사이에 두고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듯이 대화를 한다. 이것이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성스러운 맥박을 공포와 부딪히는 부싯돌로 사용해 불꽃을 만들어낸다. 영혼을 망가뜨려서는 안 돼. 횃불을 들 듯 영혼을 높이 들어야 해. 프랑스인 남자에게 언니의 이름을 말하고 그의 주소를 챙겨. 그리고 빵을 먹듯 그것을 음미하고 천천히 씹어먹어. - P127

예전에 이러한 순간-강제수용 생활의 끝, 전쟁의 끝을 상상할 때나는 환희가 가슴에서 넘쳐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목청껏 외치리라고 상상했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목소리가 없다. 우리는 침묵의 강물이다. 군슈키르헨의 묘지로부터 근처의 마을을 향해 흐르는 해방자들의 물결이다. 나는 임시로 만든 수레에 타고 있다. 바퀴가 끼익 소리를 내며 삐거덕거린다. 의식이 왔다 갔다 한다. 이 자유에는 어떠한 환희도 안도도 없다. 우리는 숲에서 느리게 걸어 나온다. 멍한 얼굴을 하고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든다. 자유는 잘못된 종류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게 하는 위험이다. 자유는 상처, 이, 발진티푸스, 잘린 배, 힘없는 눈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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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처럼 조용하게 또 고통이 덜한 방식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그사람에 대하여 과연 얼마나 ‘인도적‘인 일이 될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만일에 그것이 억울한 죽음이라고 한다면, 칼날 아래 목이 잘려 죽거나 총알에 맞아죽는 대신에 밧줄에 목매달려 죽는다고 하여 더 ‘인도적‘이며 덜 ‘야만적‘인 처우를 받은 것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만일에 우리가 끔찍한 공개처형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그 죽음에 대하여 갖게 되었던 깊은 관심을, 이제 더는 우리 눈앞에는 그같은 끔찍한 장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여 포기하여버리게 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인도주의의 탈 아래 은폐된 국가의 야만은 오히려 더욱더 조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범죄자들, 특히 사형수들은 흔히 사회의 쓰레기처럼 여겨진다. 보통사람들은 대개 사형수와는 어떤 관계도 없다. 사형수를 본 일도 없기 쉬우며, 이웃이나 친척, 친지 중에도 사형수가 있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자. 사형수들에 대한 문제는 경찰, 검찰, 법원 또는 교도소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아닌가, ‘억울한 사형수‘의 문제에 대하여는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있지않은가, 병은 의사에게 맡기고 교육은 학교에 맡기듯이 재판은 판사에게 맡겨두면 되지 않는가, 검사, 판사가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인가라는 식으로 제도에대한 거의 맹목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있다. - P91

우리나라 헌법의 이념에 입각하여 판결을 내린다면 지극히 간단하다. 이개는 무적이다. 죄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이 개를 걷어찬 신사에게 있다. 걷어차인 개는 "저 신사가 날 걷어찬 것은 부당한 일이고 걷어차인 나는 아프고억울하다"고 생각할 권리즉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다. 나아가 그 신사를 향하여 "당신이 날 걷어찬 것은 부당한 일이고 나는 지금 몹시 아프다"라고 짖어댈 권리즉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 신사의 ‘불안‘은 그가 개를 까닭 없이 걷어참으로써 자초한 것이지 아프기 때문에 짖어댄 개에게 책임이있는 것은 아니다. 개를 침묵시킴으로써 유지되는 ‘질서‘ 그것은 민주주의가 원하는 질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부당하게 걷어차인 개는 마땅히 시끄럽게 짖어대야 하고 그같은 소란을 통하여 신사와 개 사이의 올바른관계가 회복되어가는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가 바라는 역동적인 질서 즉 ‘민주적 기본질서‘이다. 강자의 횡포와 약자의 침묵 위에 자리잡아 유지되는 평온 그것은 죽음의 질서이며 사이비 질서이며 반(反) 질서이다. 그같은 불의의 질서를 위하여 약한 자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다. 이 개는 명백히 무죄이다. 너무나 쉽다. 대체 무슨문제가 있는가? - P95

 그 대표적인 예로서는 ‘집시법‘ 제3조 제2항 제4호의 ‘현저히 사회적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또는 시위‘에 관한 처벌규정과 경범죄처벌법제1조 제44호의 ‘유언비어 날조 · 유포‘에 관한 처벌규정을 들 수 있다. 위처벌규정들은 어느 것이나 ‘사회적 불안의 야기‘ 또는 ‘사회의 안녕 질서 저해‘ 등을 그 구성요건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 불확정개념들을 구체적 사안에 관하여 어떻게 해석,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법령에 더이상 참고할 만한 세부규정이나 정의규정 (定義規定)이 마련되어 있지 아니할 뿐더러 판례 · 학설상으로도 아직 이렇다 할 만한 뚜렷한 원칙이나 기준이 확립된 바 없다. 이같은 상태 아래서는 법집행자의 의도 여하에 따라 이 불확정개념들이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만능의 도구로서 남용될 위험이 존재하며, 작금의 상황이 그러한 위험의 존재를 실증하고 있다.  - P101

‘표현의 자유‘는 그토록 무력한 것인가? ‘사회질서‘란 그토록 고요한 것,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것, 죽음에 가까운 것인가? 그같은 침묵의 ‘질서‘가옹호됨으로써 민주주의는 옹호되는 것인가, 아니면 파괴되는 것인가? - P111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변론 요지

변호인들은 먼저 이 법정의 피고인석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있는 이름없는 유명인사, 얼굴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였으며 지금까지 당하고 있는가? …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눈물 없이는 상기할 수 없는 ‘권양의 투쟁‘ 저 처참하고 쓰라린, 그러면서도 더없이 숭고하고 위대한 인간성에의 투쟁에 대하여, 그리하여 마침내 다가올 ‘권양의 승리‘, 우리 모두의 승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해맑은 연꽃처럼 오늘 이 법정을 가득히 비추고 있는 눈부신 아름다움, 그 백설 같은 순결, 어떤 오욕과 탄압으로도 끝내 꺾을 수 없었던그 불굴의 용기와 진실을 위한 눈물겨운 헌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 법정에서 이룩되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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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그렇지 않다. 진화에는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없다. 먼 미래의 목표, 선택의 기준이 될 궁극적인완벽함 따위는 없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 인간이라는 믿음은터무니없는 인간 허영심의 산물에 불과하다. 실제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항상 단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체의 생존이거나 아니면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성공적인 번식이다. 수백만 년이 흐른 뒤에 뒤돌아보았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머나먼 목표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단기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대에 걸친 우연적인 결과이다. ‘시계‘, 즉 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장기적인 목표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 P96

 유전자의 성질은 그들이 자리 잡은 신체의 발생 과정에 참여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신체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다음 세대로 전해질 가능성이 영향을 받는다. 컴퓨터모델에서 발생과 번식이라는 2개의 과정을 2개의 독립된 프로그램으로작성하는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번식이 발생을 통해서 유전자의 값을 다음 세대로 전하며 또한 발생 과정 동안 성장 규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과정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발생은 절대로 유전자값을 번식에 되돌려 주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라마르크주의에 해당할 것이다. - P105

2개의 프로그램에 각각의 기준들을 정리하고, 거기에 발생과 번식이라고 표시를 하자. 번식은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과 함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발생은 번식을 통해 주어진 유전자들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동작으로 번역한 다음 컴퓨터 화면상에 신체의 그림을 나타낸다. 이제 2개의 프로그램을 진화라는 더 큰 프로그램에 합칠 때가되었다.
진화는 기본적으로 번식의 끝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세대에서 번식은 앞 세대로부터 유전자들을 받아 무작위적이며 조그만 실수인 돌연변이와 함께 다음 세대로 물려준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유전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값에 단순히 +1 또는 -1을 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한 번에 하나씩 작은 변화들이 쌓이게 되고 결국 유전적 변이의 총량이 원래 조상과 비교하여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비록 돌연변이가 무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축적되는 변화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한 세대의 자손은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부모와 달라진다. 그러나 그 자손들 중 어느 것이 선택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인지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다원의 자연선택 이론이 도입될 부분이 바로 이곳이다. 선택의 기준은 유전자들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들이 발생을 통해 영향을 미친 신체의 형태다.
각각의 세대에서 유전자들은 재생산될 뿐만 아니라 발생으로 넘겨진다. 발생은 고유의 엄격한 규칙에 따라 화면 위에 적절한 신체의 모양을그린다. 매 세대의 ‘자손들‘ (즉 다음 세대의 개체들) 전체가 화면에 나타난다. 자손들 모두는 같은 부모에서 나온 돌연변이들로 부모와 유전자하나가 다르다. 이러한 매우 높은 돌연변이율은 컴퓨터 모델에서나 볼수 있는 것으로 명백히 비생물적인 양상이다. 실제 세계에서 하나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확률은 대개 100만분의 1보다 작다. - P106

컴퓨터를 가지고 재미있게 자연선택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로코코 양식 따위나 시각적으로 정의된 다른 모든 성질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대신 선택적인 죽음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바이오모프들은 컴퓨터 속에 조성된 혹독한 환경 조건과상호 작용을 해야 한다. 그것들이 가진 형태의 어떤 특징이 그 환경 조건에서 그것들의 생과 사를 결정할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그 혹독한 환경 조건에는 다른 바이오모프, 즉 ‘포식자‘, ‘먹이‘, ‘기생체‘, ‘경쟁자‘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먹이가 되는 바이오모프의특정한 모양은 특정한 형태의 포식자 바이오모프에 붙잡힐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한 판단 기준은 프로그래머가 설정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형태의 바이오모프들이 저절로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판단 기준들도 저절로 생겨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에서 일어나는 진화는 진정으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진화를 닮아 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서 생겨나는 조건들은 결국 먹이와 포식자 모두가 스스로를 강화하는 ‘군비 확장 경쟁에 접근할 것이기 때문이다. - P113

이것이 바이오모프의 나라를 빌려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독자들이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9개의 유전자를 가진 바이오모프가 아닌, 각각 수만 개의 유전자를 가진 세포 수십억 개로 이루어진, 살과 피를 가진 동물들로 가득 찬 수학적인 공간이 있다. 이것은 바이오모프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의 유전자공간이다. 지구에서 과거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동물들은 이론적으로 존재가 가능한 수많은 동물들 중 작은 소집단에 불과하다. 이 실제동물들은 유전자 공간을 통과하는 아주 적은 수의 진화 경로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그 공간에 있는 다른 많은 이론적인 경로를 통하면 상상을초월한 괴물들이 나오게 된다. 실제 동물들은 그 가상의 괴물들 주위 여기저기에 점으로 표시되며, 각각은 이 유전자 초공간에서 고유의 위치를 차지한다. 각각의 실제 동물들은 이웃들이라는 작은 집단으로 둘러싸인다. 그 이웃들의 대부분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지만 몇몇은 그들의조상이거나 자손이거나 사촌이다.
이 거대한 수학적인 공간의 어느 곳에 인간과 하이에나, 아메바와 개미핥기, 편형동물과 오징어, 도도새(인도양 모리셔스 섬에서 살았던 날지못하는 새로 지금은 멸종되었다. 옮긴이)와 공룡이 자리 잡고 있다. 만약 유전공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우리가 생물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있다면, 이론적으로는 동물 공간의 한 점에서 다른 어떤 점으로든 자유롭게 옮겨 갈 수 있다. 시작하는 점이 어디든 우리는 미로를 찾아 헤매어 도도새, 티라노사우루스, 삼엽충 등을 다시 만들 수 있다. 단지 어떤 유전자를 수선해야 하는지, 그리고 염색체의 어떤 부분을 복제하고 뒤집고 삭제해야 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말이다. 인류가 그 정도로 충분히유전공학에 능통하게 될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친애하는 멸종된 동물들은 그 거대한 유전자 초공간 속에 있는 그들만의 고유한 장소에 언제까지나 잠복해 있으면서 (우리가 미로 속에 있는 정확한 경로를 찾아항해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었을 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비둘기를 선택적으로 번식시킴으로써 도도새를 정확하게 재창조하는진화를 이루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우리 인간이 100만 년 동안 살아남아야 하지만...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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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를 측정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 떠올릴 수있는 두 번째 기발한 아이디어는 물리학자들이 도플러 효과라고 부르는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급차 효과‘ 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우리가 그 효과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친숙한 예가 바로 구급차가 스쳐지나갈 때이기 때문이다. 구급차가 다가오고 있을 때에는 사이렌 소리가 높은 음조로 들리지만 옆을 스치고 지나 멀어져 가면 갑자기 그 사이렌 소리의 음조가 떨어진다. 도플러 효과는 소리 (또는 빛 그리고 다른 종류의 파동)의 발생원과 청취자가 상대적인 운동을 하고 있을 때에 언제든지 발생한다. 음원은 정지되어 있고 청취자가 움직이는 경우가 가장이해하기 쉽다. 어떤 공장 지붕 위에 줄곧 한 음으로 울리는 사이렌이있다고 가정하자. 그 소리는 일련의 파장으로 외부로 퍼져 나간다. 소리의 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기의 압력 변화에 따라 소리의 파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파장이 우리 눈에 보인다면 잔잔한 연못 한가운데 돌을 던졌을 때 퍼져 나가는 동심원과 비슷할 것이다. 물결이 계속해서 퍼져 나가도록 돌을 연달아서 던진다고 상상해 보자. 연못의 어떤 고정된 지점에 작은 장난감 배가 떠 있다고 하면, 그 배는 물결이 지나감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다. 배가 오르내리는 진동수는 소리의 음조와 같다. 이제 그 배가 떠 있는 대신 물결이 시작되는 중심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배는 정지해 있을 때보다 더 자주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즉 진동수가 커지는 것이다. 반면 그 배가 물결의 중심을 지나 연못의 반대편을 향하게 될 때에는 배가 오르내리는 진동수는 확실히 작아진다. - P63

도플러 효과는 교통경찰의 과속 차량 단속에 이용된다. 정지된 과속단속기에서 레이더 신호가 도로에 퍼져 나간다. 레이더 신호는 접근해오는 차량에 부딪혀 되돌아와서 수신 장치에 기록된다. 움직이는 차의속도가 빠를수록 도플러 효과를 통해 변동된 진동수가 더 커진다. 밖으로 퍼져 나가는 진동수와 되돌아오는 메아리의 진동수를 비교함으로써경찰, 또는 단속기는 차량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경찰이 그 기술을이용하여 도로의 무법자들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박쥐들이 먹이가되는 곤충의 속도를 계산하는 데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란 법이 있을까?
그렇다. 박쥐라고 도플러 효과를 이용하지 말란 법은 없다. 관박쥐라고 알려진 작은 박쥐들은 오래전부터 스타카토의 짹짹거리는 소리나 늑대 울음처럼 음조가 내려가는 소리 대신, ‘경적 소리‘ 같은, 고정된 음조의 소리를 길게 낸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길다는 말은 박쥐의 기준에서 길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 소리는 10분의 1초보다 짧다.  - P65

만약 소리를 반사하는 물체가 나무와 같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곤충이라면 도플러 효과에 따른 계산 과정은 더 복잡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박쥐는 자신과 목표물의 상대적인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확실히 그것은 먹이를 사냥하는 박쥐와 같은 정교한 유도 미사일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 중 한 가지이다. 실제 어떤 박쥐들은 경적 소리같은 일정한 음조의 소리를 낸 후 돌아오는 메아리의 음조를 측정하는것보다 더 재미있는 기술을 구사한다. 그들은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도플러 효과를 통해 다른 음조로 변형된 후, 그 변형된 음조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내보내는 소리의 음조를 조심스럽게 조정한다. 즉 움직이는 곤충을 향해 속도를 낼 때, 그 곤충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메아리의 음조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박쥐는 내보내는 울음소리의 음조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이 기발한 기술 때문에 박쥐는 가장 민감하게 들리는 음조로 메아리를 유지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메아리는 매우 희미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중요한 기술이다. 박쥐는 일정한 음조의 메아리를 얻기 위해 내보내는 울음소리의 음조를 관찰하고 도플러 효과를 계산함으로써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P66

따라서 나는 비록 ‘저기 있는 세계가 신경 자극으로 번역될 때의 물리적인 매개체는 다르지만(빛이 아니라 초음파) 박쥐는 귀를 통해 사람과마찬가지로 ‘본다‘고 추측한다. 심지어 박쥐들은 파장의 물리학과는 상관이 없는 외부 세계의 어떤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 사람이 느끼는 색깔과 유사한 기능을 갖는,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색깔을 감지할 수 있다. 아마 박쥐 수컷 몸의 표면은 정교하게 직조되어 거기에 반사되는 메아리가 암컷에게는 화려한 색깔로 인식될 것이다. 극락조가 번식기에 갖는 화려한 깃털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는 이것이 그럴듯한 비유라고생각한다. 박쥐 암컷이 수컷을 인식할 때 경험하는 주관적인 감각은 실제로 사람이 플라밍고를 볼 때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각, 즉 연분홍색과같은 것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플라밍고를 볼 때 느끼는 감각이 플라밍고가 플라밍고를 볼 때 느끼는 감각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최소한 박쥐가 자기의 배우자를 느끼는 감각이 사람이 플라밍고를 볼때 느끼는 감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 P72

눈은 화석으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무(無)에서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복잡성과 완벽함을 갖춘 눈으로 진화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 그러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수억 년이다. 선택 교배로 늑대를 개로 변화시키는 데 들인 훨씬 짧은 시간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비교해 보라. 수백 년 혹은 기껏해야 수천 년 동안에우리는 늑대로부터 발바리, 불도그, 치와와, 세인트 버나드를 만들어 왔다. 아!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갯과(科)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들이 다른 ‘종류‘의 동물로 변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편하다면 그것들을 전부 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에 걸린 시간을 생각해 보라. 한 종(種)의 늑대로부터 이 모든 혈통의 개들이 진화하는 데 걸린 전체 시간을 보통 사람의 보폭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같은 보폭으로 현생 인류에서 확실한 직립 인간으로서 가장 오래된 화석인 루시와 그녀의 동료들에게로 되돌아가기위해서는 얼마나 걸어야 할까? 답은 약 3킬로미터이다. 그리고 지구에서 최초로 진화가 시작된 지점으로 가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런던에서 바그다드까지 꼬박 걸어야 한다. 늑대가 치와와로 변화하는 데 들어간 총 변화량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을 런던에서 바그다드까지 가는데 들어간 걸음 수만큼 제곱해 보라. 그러면 실제의 자연선택 과정에서 기대할 수 있는 변화의 총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금방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 P80

 어떠한 주장이 들어맞을 통계적인 확률을 계산하는 것은 그 주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정당한 방법이다. 실제 그것은 이 책에서 여러 번 써먹은 방법이다. 문제는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레이븐의 주장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 그 주장에는 나를 다소 짜증나게 하는 자연선택과 무작위성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무작위성의 정반대편에 있다. 둘째, ‘각 부분은 그것만으로는 쓸모가 없다.‘라는 말도 ‘진실‘이 아니다. 전체로서의 완벽함이 동시에 달성되어야 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모든 부분이 전체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단순하고 덜 발달되었으며 반만 완성된 눈이나귀, 음향 탐지 체계, 뻐꾸기의 기생 생활 방식 등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낫다. 눈이 없다면 전혀 볼 수 없다. 눈이 절반만이라도 있으면 비록 초점이 맞는 정확한 영상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천적이 움직이는 대강의 방향이나마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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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살면서 느끼는 황홀함은 모두 내면에서 나올 거란다." 발레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 오기 전까지는. 마그다 언니는 엄마가 들어간 건물 꼭대기에 있는 굴뚝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영혼은 절대 죽지 않는다." 마그다 언니가 말한다. 마그다 언니는 위로의 말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무 감각이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이미 벌어진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가 없다. 엄마가 화염 속에서 불타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유를 물을 수도 없다. 심지어 슬퍼할 수도 없다. 지금은 아직 안 된다. 다음 순간, 다음 호흡을 위해 온 신경을기울여야 한다. 나는 언니가 여기에 있는 한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그림자처럼 언니 옆에 찰싹 붙어서 기필코 살아남을 것이다. - P77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을 언니에게 말한다.
"언니의 눈, 눈이 매우 아름다워. 머리카락이 가리고 있을 땐 미처알지 못했어." 내가 언니에게 말한다. 이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잃은 것에 관심을 기울일지 아니면 아직 가지고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지. - P80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첫 몇 주 동안 나는 생존의 규칙들을 배운다. 만약 당신이 보초병으로부터 빵 한 조각을 훔칠 수 있다면 당신은 영웅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수감자로부터 빵을 훔친다면 당신은 망신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서는 경쟁과 지배가 아무 소용이 없다.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욕구를 초월한 후 자신의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헌신해야한다. 내게 그 어떤 사람은 마그다 언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은 미래에 자유롭게 됐을 때 에릭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살아남기위해서 우리는 내면의 세계, 즉 안식처를 구축해야 한다. 잠을 자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말이다. 나는 강제수용되기 전의 자기 사진을 어렵게 숨겨서 들여온 한 동료 수감자를 기억한다. 사진 속에서 그녀는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그녀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사람이 여전히 죽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을스스로 상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식적 사고는 그녀에게 삶의 의지를 지킬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 P85

나는 갑자기 ‘치명적인 Deadly‘과 ‘죽이고 있는Deadening, 두 표현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 생각해본다. 아우슈비츠는 둘 모두에 해당한다. 굴뚝들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또 피어오른다. 어떠한 순간도 마지막 순간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경 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만약에 이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 지구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 마지막 순간을 체념과 패배에낭비해야만 할까? 이미 죽은 사람처럼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 할까?
"이 줄이 무슨 줄인지는 절대 알 수 없어." 내가 앞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말한다. 미지의 상황이 우리의 내면을 공포로 파괴하는 대신 우리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고나서 나는 마그다 언니를 쳐다본다. 언니는 다른 줄에 서도록 선별되었다. 죽으러 보내지더라도, 일을 하러 보내지더라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하기 시작한 것처럼 나를 다른 수용소로 보낸다 하더라도.. 내가 마그다 언니와 함께 계속 있고, 마그다 언니가 나와 함께 계속 있는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일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원래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운이 좋은 몇 안 되는 수감자들이다. 내가마다 언니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마그다 언니가 나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수용소의 운동장은 온통 혼란에 휩싸여 있다. 나는 이 줄들이 무엇을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거라곤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놓여있든, 반드시 ‘마그다 언니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우리 앞ㅔ 놓인 것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P96

"가스실에서 탈출했더니, 감자껍질 먹다가 죽게 생겼네." 누군가가툭 내뱉고 우리 모두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깔깔깔 뱉는다. 우리는 내면의 그곳이 아직 존재하는지 미처 몰랐다. 우리는 크게 웃는다. 부상을 입은 독일 군인들에게 수혈하기 위해 강제로 헌혈해야 했을 때 내가 크게 웃었던 것처럼. 나는 팔에 바늘을 꽂고 앉아서 속으로 농담을 던지곤 했다. ‘평화주의자 댄서의 피를 받아서 전쟁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나는 생각했다. 나는 팔을 홱 잡아당길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총살을 당할 것이다. 나는 총이나 주먹을 들고 압제자들에게 반항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나만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웃음안에 그 힘이 있다. 우리의 동지애, 우리의 명랑함은 아우슈비츠에서 열었던 가슴 대회에서 우승했던 밤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의 수다는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 P100

이제 4월이다. 언덕이 풀로 온통 초록빛이다. 하루하루 해가 길어•진다. 우리가 마을의 외곽을 통과할 때마다 어린아이들이 우리에게 침을 뱉는다.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이 우리를 증오하도록 세뇌를 당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내가 어떻게 복수할 건지 알아? 나는 독일인 아이 엄마를 죽일거야. 독일인은 우리 엄마를 죽였어. 그러니까 나는 독일인 아이 엄마를죽일 거야." 마그다 언니가 말한다.
나는 다른 소망이 있다. 나는 우리에게 침을 뱉는 남자아이가 언젠가 자신이 타인을 증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더러운 유대인들! 벌레들!"이라고 외치는 남자아이•가 나의 복수 판타지 안에서는 장미 꽃다발을 내민다. 남자아이가 말한다. "이제 알아요. 당신을 증오할 이유가 없다는 걸요. 단 하나도요."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며 껴안는다. 하지만 나는 마그다 언니에게 나의 판타지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는다.
- P108

"너" 그가 말한다. 역겨워하는 듯한 목소리다. 나는 두 눈을 감는다. 그가 나를 발로 걷어차기를 기다린다. 나는 그가 나를 총으로 쏘기를 기다린다.
무거운 무언가가 내 발 근처에 떨어진다. 돌인가? 설마 돌로 쳐서죽일 생각인가? 총보다 느린 방식으로?
아니다. 그것은 빵이다. 작은 덩어리의 호밀 흑빵.
"그렇게까지 한걸 보니 배가 몹시 고팠나 보군." 그가 말한다. 나는7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는히틀러가 지배한 12년이라는 시간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선의를 송두리째 없앨 만큼 증오를 충분히 심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의 눈을 쳐다보니 아빠의 눈을 닮았다. 녹색이다. 위안을 주는 눈빛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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