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으로 작은 곰자리 86
브라이언 플로카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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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보자면 위험천만한 내용이다. 이 책을 어린이들에게 읽어주고 어린이들이 “저렇게 해도 돼요?” 하고 물으면 “아니 그래서는 절대 안 돼.” 하고 안전교육을 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ㅎㅎ 현실에서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위험의 요소가 있는 일은 사전에 방지하라고 가르치니까.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책이다.^^

섬에 사는 어떤 남매가 있다.
“자, 내 손을 잡아.
폭풍우가 치기 전에
바다를 보러 갈 거야.”
이미 화면은 어두운데, 신을 신고 있는 동생에게 오빠가 손을 내민다. 무겁게 내려앉은 날씨의 느낌을 불투명한 채색의 그림이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남매는 점점 거세어지는 바람에 맞서며 걸어가, 바닷가 바위 위에 선다. 그 장면은 장관이면서 동시에 두렵다. 자연의 속성은 그렇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너는 내 손을 꼭 잡고, 나는 네 손을 꼭 잡고, 우리는 계속 가 보기로 해.”
아이들은 섬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만나는 모든 풍경이 어둡게 내려앉아 있고, 습기와 바람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폭풍 전야’의 위기감이 감돈다.

등대가 위험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계속 걸어간다.
“온 마을이 텅 비어서 으스스해. 공연이 없는 날의 무대 같아.”
이런 표현들이 매우 실감난다.

화면이 더욱 어두워졌다. 급기야!!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폭풍우가 시작되었다. 남매는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난 지름길을 달려간다.
“우리는 낮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컴컴한 어둠 속을 달려가. 어둠과 바람과 빗속에서는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져.”
이런 식의 문장들이 참 좋다.

가까스로 (다행히도) 불 켜진 집을 향한 아이들의 뒷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손전등을 든 엄마와 끌어안는 장면. 집 안에서 바라보면 창밖의 풍경은 방금 그들이 지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납고 무섭다. 폭풍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밤이 지나가듯 폭풍도 지나가.”
“천둥도 잦아들다 저 멀리로 사라지고, 밤은 새벽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반가운 산들바람이 마지막 남은 구름 한 조각까지 멀리멀리 밀어 보내.”
남매의 위험천만한 모험은 독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작가의 설정이었겠다. 남매의 모험은 선택이었으나 우리는 선택하지 않아도 폭풍우 아래 있게될 때가 있다. 그러나 찾아올 집이 있고(집안은 따뜻하고 비바람 속에서도 안전하게 잠들 수 있고), 내 손을 잡고 함께 걷거나 뛰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폭풍우는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너와 나는 계속 가 보기로 해.”
여러번 반복되었던 이 문장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인생은 없다. 하지만 나아가려는 인생은 안주하지 않는다. 폭풍우가 예상될지라도 ‘계속 가 보기로’ 한다.

비오는 날 아침이 휴일이면 “비오는데 안 나가도 된다” 면서 기뻐하는 나. 실내에서 보는 비만 좋아하는 나. (비멍은 뷰 좋은 까페에서)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나, 이런 큰일날 일을!”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는 이제 인생에서 도전을 졸업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어둠을 뚫고 나가는 용기를 갖길, 그러다 눈앞에 따스한 집의 불빛을 발견하는 환희도 경험하길 응원한다.

이 책은 저명한 두 작가의 협업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글작가 브라이언 플로카는 늘 그림작업을 함께 해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다른 작가에게 그림을 맡겼다고 한다. 그림작가 시드니 스미스는 읽은 그림책이 그리 많지 않은 나도 알아볼 만큼 인상적인 책을 많이 남긴 작가다. 두 분의 협업은 매우 성공적인 것 같다. 문장도 그림도 다 느낌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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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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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주말에 집에 들어앉아 이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구입신청해서 대출한 책이다. 다른 읽을 책들도 쌓여있지만 이 책이 가장 먼저 손에 잡혔다.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의 디아스포라 3부작'을 완료한 작품이다. 첫번째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나다보니 내용이 희미하고, 두번째 작품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읽지 못했다. 이번 작품을 읽고보니 두번째도 읽어서 완성하고픈 생각이 든다. 내용이 가물가물한 첫번째 작품도 다시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나라가 고난을 겪을 때 백성들의 삶은 고달프다 못해 처참하다. 제목도 잊어버린 과거의 독서에서 어쩌면 이토록 최악의 길로만 가는 인생이 있나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난다. 이 책도 그럴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제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은 결이 좀 달랐다. 물론 고난은 심했지만 불쌍한 마음보다는 장하다라는 마음이 컸고, 단단한 기둥들이 서있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표지그림 때문인가. 눈밭에 곧게 뻗은 자작나무들이 단단하게 서 있다. 그 가운데 서있는 여성이 주인공 단옥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 등으로 끌려간 곳은 한군데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강제이주 당한 중앙아시아가 있고, 하와이도 있고, 이 책에서 다룬 사할린도 있다. 사할린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다가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님이 여러번의 답사, 면담, 문헌 연구로 완성한 책이다. 덕분에 내가 생각 못하고 살았던 장소와 시대,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이 문학의 힘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를 새삼 느낀다. 우리는 지금도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래도 가족의 생사도 모른채 수십년을 마음에 한이 되도록 그리워하다 죽지는 않고, 만날 기약도 없이 생이별을 하지도 않고, 살 길인줄 알고 갔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었던 것도 아니니까.

사할린 또한 그런 곳이었다. 단옥의 아버지가 먼저 탄광노동자로 가서 일하고 있었고 그후 단옥이가 어머니, 오빠, 남동생과 함께 찾아가 합류했다. 조부모와 여동생 한명은 추후 오려고 고향에 남았지만 결국 오지 못했고, 여정 중에 일본 본토로 가겠다고 이탈한 오빠도 평생 만나지 못했다. 그뿐인가, 잠시의 화목한 생활도 불안한 평화일 뿐이었다. 일본이 패전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고국에 돌아갈 길이 그렇게 열리지 않을 줄 누가 알았을까. 사할린의 탄광이 문을 닫고 일본 탄광으로 옮길 때도 아버지만 가게 됐다. 나머지 가족들은 속절없이 아무 연관도 없는 사할린에 남아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 사이 아버지 계실 때 여동생, 떠나신 후 남동생 이렇게 식구는 늘어났다.

삶이 이어진다는 건 또다른 관계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간 아버지와 장남의 생사를 몰라도, 고국에 있는 딸의 생사를 몰라도 사할린의 가족은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또 자식을 낳으며 삶을 이어갔다. 무국적자로 살기에는 삶의 손해가 너무 막심했기에 울며겨자먹기로 소련이나 북한 국적을 신청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렇게 사할린에는 한인, 일본인, 소련인, 고려인, 북한인, 또 이 여러 조합의 2세들까지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얽혀 살게 되었다.

전작들이 모두 이 디아스포라 과정에서 여성의 연대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의 단옥과 유키에도 마찬가지다. 유키에는 탄광에서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정남 아저씨의 의붓딸이다. (복잡하지) 아저씨는 고국에서 가족들이 오지 않자 사할린에서 일본 과부와 재혼을 했다. 두 가족은 평생을 혈연보다도 더 끈끈한 관계로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일본 때문에 낯선 땅에서 억지로 살아야 했고, 그와중에 일본 가족과 형제같은 사이가 되었다니 참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거악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개인이 그 틈바구니에서 당한 고난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시간의 선을 넘기면 그곳이 또 제2의 고향이 되는 법이다. 위에 썼듯이 그렇게 2,3세들이 태어나면... 그들에게 한국은 돌아가고픈 조국일수 없으니까... 한시대의 아픔은 그 세대의 가슴에 커다란 한이 되어 그렇게 묻힌다. 그렇다고 후대가 그걸 함께 묻어버리면 안될 것이다. 아픈 역사이니까.... 그들에 대한 존중과 위로의 마음, 그들의 그리움에 비해 너무 소홀했던 고국의 대응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역할도 하고 있다.

제목을 지은 과정이 작가의 말에 나와있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인상적이었는데 아주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의 틈새'를 채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절망 속에서 이들을 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만 해도 한참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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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의 세계 마루비 어린이 문학 24
은정 지음, 최경식 그림 / 마루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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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을 잇는 SF 감정 동화’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SF 감정 동화라고? 이런 조합은 처음 본다. 새로운 느낌을 예감하며 읽어보았다.

‘SF’와 ‘감정’을 붙여놓은 조합은 처음 보지만 내용은 처음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의 행동 방식과 감정을 학습한 휴머노이드.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로봇. 이런 주인공이 나오는 어떤 작품은 섬뜩하며 무서웠고, 어떤 작품은 절절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 감정에 함께 젖어든 적도 있지만 이제는 거의 그러지 않을 것 같다. 기술의 발전이 워낙 눈부시다보니 그런 세상이 금방 올 것처럼 느껴지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아는 것이 부족해서 논리적으로 이유를 대진 못하겠다.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넓게 얘기하자면 생명이 그렇게 쉽게 대체되지는 않을 거라는 느낌적인 확신? 아니면 너무나 원치 않는 세상에 대한 거부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에는 4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첫 번째 [감정사전]에 인공지능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등장한다. 새로 개발된 ‘희망이’는 어린이들의 행동과 감정을 세밀하게 배우기 위해 정우네 교실에 전학생처럼 들어오게 되었다. 학급 아이들 집에서 돌아가며 하루씩 묵기도 한다. 그런데 정우네 반은 잘 드러나지 않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반이었다. 힘이 센 영민이는 어른들이 보지 않는 데서만 친구들을 괴롭혔다. 특히 정우가 그 대상이었다. 그걸 관찰한 희망이가 영민이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거울치료를 해주는 장면은 통쾌하긴 했지만 어딘가 씁쓸함도 남았다. 희망이가 정우네 집에 묵게 된 날, 희망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이 감정사전을 만드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정우의 상태가 ‘외로움’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정우는 희망이와 한 침대에 누워 따뜻함을 느낀다. 물리적 온도와 상관없이 말이다. 오죽하면 그렇게 느낄까 라는 생각도, 희망이 모니터에 뜬 ‘우정’이라는 감정도 슬프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게 우정이면 뭐가 달라져? 정우는 희망이에게서 희망을 보았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지만 난 더욱 큰 슬픔을 본 느낌이었다.

[내 남친은 내가 지킬 거야]에 나오는 로봇은 위의 희망이와는 완전 딴판이다. ‘리오’라고 하는 이 로봇은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범준이가 ‘하리’라는 여친을 사귀면서부터였다. 즉, 리오는 질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질투가 왜그리 섬뜩한지, 섬뜩하면서도 어디서 많이 본 심리와 행동이다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리오의 뇌 원본은 불법으로 내려받은 것이었고 원본 주인은 사고로 죽은 여학생이었다. 시기와 암투, 이간질에 젖어있던. 질투심과 분노에 가득찬.

그 감정이 축적되고 확대되어가는 리오는 잘못하면 살상무기나 다름없었다. 다행히도 범준과 하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리오의 작동을 멈출 수 있었지만.... (이 부분이 그동안의 곤란함에 비해 좀 싱겁게 느껴지긴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
“미안하지만 리오, 우리 인간을 지키는 건 우리가 할게.”
이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로봇이 감정의 영역까지 대신하는 건 난 솔직히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지만 가능하다고 해도 거기까지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이 섬뜩하고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나와 같은 생각을 말하는 것일까.

세 번째 작품 [또나의 응원]에는 로봇이 나오지 않지만 SF적 상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평행우주’가 잠시 교차하여 또다른 나의 존재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시공간이라는 것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러니 아주 멀리, 동시에 아주 가까이에 다른 존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상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둘은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헤어졌는데.... 이 작품에 작가님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들어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 [도망가지 마]는 그냥 현실동화처럼 보인다. 선생님의 무관심과 간악한 무리들이 만들어낸 지옥 교실에서 시들어가는 선우의 이야기다. ‘뇌 인터페이스 가상 현실 프로그램’이라는 말에서 ‘아 여기 살짝 미래 기술에 대한 상상이 들어갔구나’ 생각될 뿐이다. 어쨌든 지옥같은 현실에 돌아오고 싶지 않아 의식이 깨어나길 거부했던 선우는 지금 돌아와 몸과 마음을 회복 중이다. 그리고 도망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SF의 느낌은 첫 작품이 가장 강하고 뒤로 갈수록 옅어진다. 대신 현실의 아이들이 겪는 복잡한 감정과 아픔은 더욱 진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르면 첫 작품을 읽으며 뜨악하게 생각했던 내 마음과 작가님의 마음이 딱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게 된다.

그래서 학교를 비롯한 어린이의 세계는 자기 손으로 쓰고 만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읽고, 직접 부딪치며 겪어내고 느끼고 생각하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AI 교육을 저학년때부터 어쩌구 하며 허울 좋은 말만 하시는 분들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좀 돌아봤으면 한다. 이런 책도 좀 읽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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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동물도감
최형선 지음, 차야다 그림 / 북스그라운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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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고민을 내가 알 리가 없지만 조금 짐작 가는 바는 있다. 이미 너무 많은 책이 세상에 나와서? 웬만한 책은 이미 다 있어서? 웬만해서는 독자들이 눈도 꿈쩍 안해서? 특히 아동출판계의 호황은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고 이제 독자 인구 자체도 절벽이니.........

‘그래서 혹시 아이디어 싸움이 된 것인가?’ 이런 책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셨으면 이런 컨셉이 나왔을까? 물론 나야 감탄스럽고 좋다. 재미있고 내용도 좋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다만 저자님들과 편집자님들이 참 고충이 많으시겠다는 생각에 몸둘 바를 모를 뿐.... 어쨌든 그리하여 오늘도 새로운 기획의 책 한 권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제목은 동물도감. 위에서도 말했듯이 동물도감이야 뭐 이미 나온 것만 해도 차고 넘치지. 이 책의 특징은 그 앞에 붙어있는 ‘진실한’에 있다. ‘진실한’ 동물도감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

이 책에는 25종의 동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의 입에 잘 오르내리는 동물들이다. 특히 우리나라 말에는 동물에 빗댄 관용표현들이 많이 있다. 그 비유에 활용된 동물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진실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말만 들어도 벌써 흥미롭겠지? 동물을 좋아하는 어린이, 호기심이 많은 어린이, 남들이 모르는 걸 알고 설명해주기를 즐기는 어린이 등등 다양한 어린이들이 고루 좋아할 수 있는 책일 것 같다.

또 한가지 장점은 유머가 넘친다는 점인데, 첫 장에 나오는 ‘선서’부터가 그러하다.
“우리는
숨김과 보탬 없이
인간에게 진실만을
전할 것을 맹세합니다.
진실한 동물 일동”
그림작가님도 동물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동작과 표정 등으로 유머를 잘 살리고 있다.

구성 또한 흥미롭다. 각 동물별로 6쪽 정도의 지면을 할애했고, 그중 첫 쪽은 도입 만화, 2~4쪽의 본문, 마지막 한쪽은 ‘○○능력 테스트’라고 하여 그 동물에 대한 특징을 재미있는 테스트 질문으로 구성해 놓았다. 4컷 만화 형식이라 부담 없고, 쉬어가는 페이지라고 해도 될 만하다. 대신 가운데 들어가는 본문 내용은 매우 충실하다. 내가 무식한 탓도 있겠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다 아는 내용은 아니다. 이와 같이 완급을 조절하며 독서를 지속할 수 있게 되어있는 구성이 매우 탁월하다.

이 책의 키워드는 동물을 빼면 ‘진실’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조금 더 첨언한다면 ‘속설에 담겨있는 진실’이라고 할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심코 쓰는 말에 동물을 빗댄 표현이 많고, 그 표현은 속설을 반영한다. 예를 들면 ‘금붕어는 기억력이 짧다’ 거나 ‘캥거루는 자식을 품고 산다’ 같은 것이다. 그것들을 과학적으로 파헤친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속설은 상당히 사실에 가까운 것도 있었고,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도 있었다.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이런 것을 구분하며 보는 재미가 클 것 같다. 먼저 사실과 다른 것들을 예로 들자면,
- 악어의 눈물 : 악어의 눈물은 감정과는 상관없다. 그니까 속이는 눈물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 금붕어 기억력 : 금붕어 머리는 그렇게 나쁘지 않단다. 난 진짜 나쁜 줄 알았는데.^^
- 까치집 : 까치집은 엉망이 아니래. 매우 공들여 정교하게 짓는다고 함.
- 기러기 아빠 : 기러기는 일부일처에다 가족에 매우 충실한 동물이다. 그러니까 홀로 있다는 이미지보다는 가족을 지킨다는 이미지로 쓰이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점차 용례가 변환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가 하면 동물의 생태에 딱 맞게 매우 잘 사용되고 있는 비유도 있다. 예를 들면 개미지옥이라든지, ‘게눈 감추듯’이라는 표현, 야행성인 ‘올빼미처럼 생활한다’는 표현 등등, 이렇게 사실과 찰떡인 비유부터 약간의 오해가 들어간 표현, 해당 동물이 들으면 펄쩍 뛸 표현까지 다양한 동물 비유들의 진실을 말하는 책이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컨셉이 많이 들어간 책은 그것에 몰두하다가 내용이 쪼그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재미있으면서도 내용에 최대한 충실한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학급문고로도 좋고, 특히 가정 소장용으로 많이 권하고 싶다. 심심할 때마다 한 꼭지씩 읽으면서 자녀와 신기함을 나누거나, 최소한 자녀가 읽고 “이렇더래~~~!!” 하면서 떠드는 수다를 호응하며 들어줄 수 있는 부모라면, 본전은 충분히 뽑는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내용수준 면에서는 중학년에 적당해 보이지만 고학년에도 시시한 내용은 아니고, 저학년도 흥미만 있다면 도전해볼 만한 책이라 전학년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어른이 봐도 안될건 없고^^) 만약 내가 수업에 활용한다면 동물도감이지만 국어시간에 관용표현 수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워워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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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렌디 이야기 2 : 호텔 발자르 노렌디 이야기 2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줄리아 사르다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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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도서관 방문에서 가장 큰 수확은 이 책이었다. 완전 심봤다 수준이었다. 케이트 디카밀로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책 출간은 바로바로 알지 못했다가 이렇게 도서관에서 발견하곤 한다. 나온지 석달 쯤 되었구나. 더구나 한꺼번에 두 권이 꽂혀있어서 이게 웬 떡인가 했더니 [노렌디 이야기]라는 3부작 시리즈라고 한다. 세 권 중 두 권이 먼저 나온 거다. 1권도 무척 좋았는데 2권인 이 책을 읽고 무척 흥분되어서 이 책 먼저 쓴다.^^

케이트 디카밀로의 책 중 국내에 출간된 책은 다 읽었다.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두 권을 연달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는 아니어서 기다리다 잊을 때 쯤 (몇 년에 한 권씩 정도) 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읽어보면 변하지 않는 특유의 느낌이 큰 기둥처럼 자리하고 있고, 그러나 식상하거나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을 인물과 서사가 새롭게 등장한다. 이야기는 아주 정교한 무늬로 단단하게 짜 나간 카펫의 조직 같기도 하고 잠자리 날개처럼 잡아당기면 찢어질까 두려운 연약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크스카프 같은 유려한 부드러움도 느껴진다. 한 작품 안에 이 모든 조직을 함께 짜 넣을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1권도 그렇고 이 책도 키워드를 뽑으라면 [이야기]라고 하겠다. 아마도 3부작 전체가 그럴 듯하다.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 세상에 이야기가 왜 존재하고 존재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가치를 알고 지켜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훌륭한 창작을 하는 대작가가 아니라 연약하고 평범하고 때론 버려지고 잊혀진 존재들이 소중하게 지키고 기다려온 이야기. 결국 외면하지 않는 모든 존재에게 찾아올, 이어질 그 이야기.

이 시리즈는 그림도 훌륭하다. 흑백이지만 매우 다채롭고 이야기의 느낌과 잘 어울린다. 1권도 흑백인데 4B연필로 명암을 정밀하게 나타낸 느낌이라면 이 책은 가는 펜 드로잉이다. 멋진 젠탱글 작품처럼 정교한 느낌이 나는 삽화들이다. 3권도 흑백이면서 뭔가 질감이 다른 그림이라면 쭉 연결성이 있으면서 감탄스럽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인 '호텔 발자르'는 이 책의 배경이다. 이 호텔의 좁은 다락방에 마르타와 엄마가 산다. 엄마는 이 호텔 청소부이고 마르타를 데리고 호텔에 취직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한다. 그래서겠지. 엄마는 호텔의 그 어떤 것도 만져서는 안되고 누구와 말해서도 안되며 '조그만 쥐처럼 소리없이' 지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마르타는 엄마 말에 잘 따른다. 호텔 로비에서 무엇이라도 손에 닿을까 뒷짐을 지고 벽난로 위의 그림과 괘종시계를 바라보는 소녀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한마디라도 나눠본 사람은 벨맨인 노먼 씨과 프런트의 알폰스 씨뿐이었다. 그렇게 호텔의 뒷계단을 혼자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동안 아이의 마음 속에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을까. 어릴적 언니가 학교 가고 엄마는 빨래를 하고 유치원에도 다니지 않던 내가 골목에 혼자 나와 놀던 기억. 그건 아주 짧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강렬한 심심함의 기억은 외로움이었나. 그리 나쁘지 않았던 기억 같기도 하고.

마리타의 그 일상에 파문을 일으킬 손님이 호텔에 왔다. 많은 짐과 블리츠코프라는 앵무새를 데리고 온 이 늙은 여인은 스스로를 백작부인이라고 했고 숨어서 지켜보던 마르타를 바로 알아보고 자기 방에 찾아오라고 했다. 네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며.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인은 날마다 하나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딱 하나씩만이었고 질문도 받지 않았다.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이기도 했지만 어떤 부분은 신기하게 나와 연결되기도 했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인가 했지만 또 그럴 수는 없기도 했다. 알 것도 같다가 절대 알 수 없을 것도 같다가 풀리는 것 같다가 다시 엉켜버리는 이야기들이 계속되었다. 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호텔에는 왜 왔으며 왜 마르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첫날 부인은 마르타를 '나의 작은 빛줄기'라고 불렀다. (디카밀로의 이런 아름다운 표현들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데 그 표현은 바로 아빠의 편지에 나왔던 표현이 아닌가! 1년 전부터 연락이 끊긴, 전쟁터에 나간 아빠. 다락방의 서랍장 위에 엄마가 소중히 올려놓은 아빠의 편지. 그 편지의 문체는 너무 아름답지만 전쟁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 들어있기도 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 대목을 모두가 읽는다면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물론 이 책의 극히 일부 내용이지만.

"마르타, 전쟁은 항상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걸 알아두렴. 그것만이 전쟁의 목적이야. 단 하나의 목적이지. 누군가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그럴 듯하고 가치있게 전쟁을 설명하려고 하면, 절대 믿지 마." (36쪽)

시신과 쥐가 들끓는 전쟁터에서 아빠는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소식이 없다. 아빠의 편지는 그곳에서 썼다기엔 너무 아름답지만 또 그곳이니까 쓸 수 있었기도 하다.
"이 끔찍한 세상에서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빛나. 나는 별을 올려다보며 너와 엄마를 떠올려. 오직 그제서야 별들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별자리를 이룬단다. '마르타, 엘레나.' 하고 속삭이면, 아주 작은 빛이 더 밝게 빛나고 세상이 그나마 이해가 돼." (36쪽)

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마르타가 모르는 아빠의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엔 장군도 나오고 마녀도, 서커스단, 앵무새, 수녀, 농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소년, 왕, 여우, 줄 타는 곡예사가 나왔다. 이렇게 여섯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번째 이야기를 남겨놓은 날 아침, 부인은 떠나고 없었다. 작은 마리타가 얼마나 절망했을까?
"그렇게 텅 빈 곳은 처음 보았어요." (138쪽)

그러나 여기서 끝일 리가 없다. 작가는 백작부인을 잠시 뒤로 빼고 마지막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건 지금까지의 고통과 외로움을 덮어줄 만큼 기쁘고 행복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도 끝이 아님을 알려준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일곱 번째 이야기는 지금 네가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말을 믿어줄래? 그건 최고의 이야기야. 온갖 역경 속에서도 다시 서로를 찾아가는 이야기. 그것은 사랑이 지속되는 이야기란다." (155쪽)

초등학생을 30년 가르쳐온 나는 언제부터인가 '자기 서사' 라는 말에 주목하게 되었다. 최대한 학생들이 배운 내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교육. 그게 어떤 첨단 기능보다도 윗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아서 매우 기뻤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그걸 추악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시시한 건 괜찮아. 그 어떤 것도 시시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추악한 건 안돼. 아름답게 쓰자. 너의 이야기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난 올해 저학년으로 내려왔는데, 작년처럼 4학년에 있었다면 이 책으로 온작품읽기를 하고 싶다. 어쩌면 이 책은 요즘 아이들처럼 말초적인 (미안한 표현인데 그런 경향이 강해짐) 독자들에겐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정서는 요즘 아이들과는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어른들이 가슴을 감싸안을 동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함께 읽으면 감상 수준이 올라간다는 것. 이 책으로 아이들과 이야기의 가치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리고 자기서사의 귀함도. 그리고 그 서사에 대한 도전도. 하지만 이건 꿈으로 남겨두겠다. 나는 이제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또한 인생이다. 누구나 아쉬움을 남기며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새로운 풍경 앞에서 잠시 눈이 부셔 손을 올린다. 또다른 이야기는 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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