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되찾기 프로젝트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랑 놀래 10
송선혜 지음, 박현주 그림 / 마루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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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속셈(?)이 뻔한(?) 동화는 작품성이 없게 보이고 재미도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묘하게도 재미가 꽤 있었다. 다만 결말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다. 사이다를 기대한 어린이라면 엥 하고 실망할 수도 있겠다.ㅎㅎ 하지만 내가 어른이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꽤 만족스런 결말이었다. 그 과정도 아이들 사이의 관계와 심리가 잘 들어가 있었다.

지민이와 유나는 단짝이었지만 말도 안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유나의 물건 자랑 성향 때문이었다. 보다못해 지민이가 "너는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어?" 라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고 유나가 "너는 헌 물건만 가지고 다니잖아!" 라고 응수함으로써 둘 사이는 완전히 깨졌다.

유나 같은 성향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꽤 보인다. 경력이 많아 이런 경험이 많은 나는 아예 원천봉쇄를 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 대한 회의가 한때는 있었다. 모든걸 아이들과 상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주의가 가스라이팅처럼 교직을 뒤덮었을 때.... 나는 인권을 무시하는 교사인가 하는 자괴감이 운신을 힘들게 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상의할 것이 따로 있으며 선포할 것도 지도할 것도 있다. 결말이 뻔히 정해진 행동은 못하게 한다. 꼭 똥을 찍어먹게 놔두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잖아?

유나같은 성향의 아이들은 '선심쓰기'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 한다. 가장 대표적인 행동이 학교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져와 펼쳐놓는 것이다. 그때 뭐야? 뭐야? 하면서 다가오는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것과 자신의 위력을 즐긴다. 이 책의 대화 중에도 그런 게 있다.
"세뱃돈으로 산 비싼 거야. 내 말 잘 들어야 줄 거야."
심지어 급식으로 선심을 쓰는 아이들도 있다. 요구르트 등 1인 1개씩 배부되는 특별메뉴가 있을 때 꼭 "이거 먹을 사~~람?" 하면서 손님들을 모으는 아이. "나! 나! 나 주라 응?" 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만족감을 맛보려 한다. 심지어 자기가 먹고싶으면서도 그러는 아이도 있다는 사실. 심굴궂은 내가 그 꼴을 봐줄 리가 없다.
"순이는 자기 급식으로 선심쓰지 마세요. 그리고 그거 달라는 친구들은 무슨 생각이에요? 그걸 받아 먹으면 순이는 오늘 영양에서 그게 빠지는 거잖아요? 급식선생님들이 주시는 건 더 받아올 수 있어요. 하지만 친구거 받아서 더 먹는 건 안됨!"
교실에 가져오는 물건도 마찬가지다. 3월 초부터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분명하게 선포한다. 수업과 관련없는 물건 가져오지 않기. 슬슬 가져오기 시작하는 아이가 보이면 "순이, 그거 안가져오는 물건인데? 꺼내지 마요. 그리고 오늘 잊지 말고 집에 꼭 놓고와요. 알겠죠?"
이런 식이다. 쪼잔해져야 가능한 담임의 일상. 에휴^^;;;;

이 책에도 그런 아이들의 심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배경은 겨울방학이 끝나고 종업식까지 2월 기간 중 2학년 교실. 설날 지나고 온 아이들은 세뱃돈으로 산 비싼 물건들로 자신의 위력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민이는 여기에 낄 수 없다. 세뱃돈을 전액 엄마한테 '맡겼기' 때문이다. 이대목을 읽어주면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예상된다.

지민이는 당연하다 생각하던 일들에 배신감을 느꼈다. 부모님께 그동안 맡긴 세뱃돈을 모두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부모님은 당황한다. 단식투쟁까지 감행하는 지민이에게 꺾인 엄마는 허락한다. 엄마한테 말하고 사용하기로. 지민이가 수소문해서 정리한 가격은 무려 500만원! 냉장고에 가계부 형식의 메모지가 붙었다. 500만원부터 시작해 쓴돈과 잔액을 적어나가는 메모지다. 지민이는 드디어 부러워하던 2만원짜리 슬라임을 샀다. 그런데! 그 아래 적힌 항목에 깜짝 놀란다. 엄마가 저녁으로 맛있게 해주신 오리고기의 가격을 적어놓은 것이다.
"너도 이제 돈이 생겼잖아.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잖아. 그러면 너도 돈을 내야겠지?"

이렇게 이야기는 흥미롭게 흘러간다. 지민이는 이제 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즐기던 위력을 즐겨볼 수 있었고, 친구들한테 한 턱 쏠 수도 있었고, 피자를 시켜먹을 수도 있었지만.....

무난하고 상식적인 결말이 내 마음엔 훈훈했지만, '맡겨진' 세뱃돈에 한맺힌 어린이가 읽었다면 사이다 결말이 아니라서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결말이 좋다. '맡겨진' 세뱃돈은 각 가정에서 평화적으로 합의하시길..... 꿀꺽만 안하시면 되쥬. 근데 지금 든 생각인데, 어느정도 공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왜냐면 세뱃돈 그게 상부상조라서 그만큼 부모님 주머니에서 나간 거그덩. 그건 뭐 각 가정의 지혜로운 합의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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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멍을 뚫어라 상상문고 22
문은아 지음, 불곰 그림 / 노란상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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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되는 색상의 선명한 표지그림이 눈길을 끌고 좋았는데 본문 삽화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취향 문제인 것 같다. 난 만화체의 삽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강한 것보다는 작고 귀엽고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 취향. 취향이 다른 분들은 충분히 좋게 느끼실 것 같다.

작가님의 작품 중 읽었던 게 있나 훑어보니 <오늘의 10번 타자>를 몇 년 전에 읽었었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다. 이 책에도 몇가지 흥미로운 소재와 감상 포인트가 있었다.

화자가 세 명이다. 첫번째 화자 승찬이는 아파트 밖 주택 구역에 사는 아이이고 부모님은 배 과수원을 하신다. 승찬이네 학교는 인근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데 개구멍을 통과하면 가깝지만 정문으로 돌아가면 오래 걸린다. 이 '개구멍'이 중요한 소재다. 제목에도 나오듯이. 이 개구멍을 둘러싸고 아파트 밖 아이들과 아파트 주민과의 격차와 갈등이 드러난다.

승찬이네는 고모할머니의 수술 때문에 객식구가 들어왔다. 고모할머니가 홀로 키우시는 형과 뭉치라는 이름의 강아지. 형은 승찬이보다 훨씬 크지만 어딘지 어눌하고 좀 다르다. 자폐로 추정되는 장애를 갖고 있는 듯하다. 뭉치는 넉살 좋게 승찬이를 쫓아다니는데, 어느날 등교길에 따라온 녀석을 쫓아버린 이후로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집 개도 아닌데 이 일을 어쩌지!

두번째 화자가 바로 이 강아지 뭉치다. 뭉치 시점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인물 한 명이 더 나온다. 아파트 주민인 할머니지만 커다란 여행가방을 풀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시골 사시다 도시의 아들 집으로 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이 할머니가 다친 뭉치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그러니 승찬이가 못찾을 수밖에.

할머니가 드디어 여행가방을 펼쳐놓는 일이 생긴다. 아파트 바깥의 공터를 텃밭으로 일구셨기 때문이다. 흙을 손에 묻히자 드디어 할머니는 되살아나셨다. 하지만 여기서도 '개구멍' 이슈가 부각된다. 돌아서 밭에 가는 건 노인들에게 너무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아파트에는 개구멍 '뚫어파'와 '막아파'가 의견대립을 하게 된다. 할머니는 며느리를 자기쪽 편으로 만들고 싶지만 말 붙이기도 쉽지 않다. 이런 모든 과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며 뭉치는 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다.

세번째 화자는 승찬이네 반 유빈이다. 유빈이 엄마는 동대표이자 개구멍 막아파의 선두주자이며 아파트 진입 문제로 승찬이에게 자괴감을 안긴 인물이다. 유빈이는 마마보이이고 싶지 않고 승찬이와도 잘 지내고 싶지만 엄마 때문에 번번이 어긋나고 만다. 세번째 장은 유빈이의 둥이, 마마보이 탈출기라 하겠다. 아주 극적이거나 완벽하진 않지만 꽤 변화가 있다. 그 변화는 개구멍이 열리는 사건과도 연결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세 개의 퍼즐이 조화롭게 들어맞는 이야기가 되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 주변 아파트 재건축 중에 전근을 왔는데, 요즘 들어보니 재건축이 끝나고 입주가 시작되며 그동네에도 이런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새로 지은 크고 비싼 아파트의 텃세? 온갖 곳 다 걸어잠그기 등등. 동화 속 이야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배척을 가르치는 어른들의 모습, 사랑을 베풀어주는 장애인 형의 모습, 도시살이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 과보호에 매몰되는 부모의 모습 등 주목할만한 다양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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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베어
해나 골드 지음, 레비 핀폴드 그림, 이민희 옮김 / 창비교육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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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잠시 내가 동화를 재미로 읽는지 습관으로 읽는지 왜 읽는지 모르겠던 참에, 오랜만에 진짜 재밌어서 책장이 넘어가는 책을 만났다. 대자연에서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 나는 이런 건 꿈도 못꾸는 사람인데도, 아니 그래서인지 유독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모험이 너무 위험해서, 마지막에는 ‘아무리 픽션이라도 너무 말이 안된다’ 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만 살짝 눈감으면 이야기는 너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엄마를 사고로 잃은 에이프릴은 아빠와 단 두 식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에이프릴은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다.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기에 에이프릴은 너무 특이하고, 아빠는 아직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빠와 6개월간 단둘이 멀리 떠나있을 기회가 생긴다. 기후 과학자인 아빠가 북극권의 베어 아일랜드의 기상대에서 관측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어 아일랜드는 작은 섬이고, 기상대 외에 인간이 거주하는 구역은 없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단둘이 있는 셈이었다.

그런 곳에 어린 딸을 데리고 간다는 것, 게다가 관측에 몰두하느라 딸을 거의 신경쓰지 않는 것 등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특이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에이프릴은 내가 평생 본 어떤 아이들과도 다르다.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에이프릴의 감각은 굳이 인간 관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감각이 닫힌 요즘 아이들이 에이프릴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생각되는 나도 사실은 에이프릴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소통할 사람도 없고 오락도 없는 (TV도 휴대폰도 없는!) 그곳에서 무슨 낙으로 지낸담! 그러고보니 나는 중간 위치가 아니라 그냥 요즘 애들하고 거의 같다고 봐야겠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지루하지 않았다. 아빠가 바쁜 것이 오히려 에이프릴에게는 좋았다. 혼자서 마음껏 섬을 탐사하며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에이프릴은 만나게 되었다. 곰을. 이 책의 제목인 ‘라스트 베어’를 말이다!

섬에 오기 전 아빠는 섬에 곰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고 단언했었다. 그런데 이 곰은 어떻게 혼자서 이 섬에 존재하고 있는 걸까? 사실 북극곰은 우리가 아는 북실북실 침대인형 같은 귀요미가 아니다. 위험하고 무서운 야생동물이다. 에이프릴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곰은 거대했지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말랐고 어딘가 몹시 아프고 불편해 보였다. 앞발 하나가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에 묶여 거의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 에이프릴은 비상식량을 곰에게 나누어 주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 발을 옥죄는 것들을 풀어주었다. 이제 곰은 에이프릴의 기척을 느끼면 기쁨으로 달려오는 존재가 되었다.

종이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존재가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에이프릴은 결국 곰이 혼자 이 섬에 생존하게 된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지구온난화와 관련 있었다. 몇 년 전 이 일대의 만년설이 급속히 녹아버렸던 것이다. 곰은 동료와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유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지구온난화의 상징동물이 된 북극곰. 그들이 공익광고에 나와서 말하는 이유와 같다.

내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던 점은, 이 당돌한 꼬마가 저 커다란 곰을 원래 터전으로 데려다주려 한 점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말이야. 결국 그들은 죽음의 위험에 처하지만, 뒤따라 온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다. 북극권의 끔찍하게 차가운 바다에서 아무리 조력자가 따라왔다 하더라도 난파된 상황에서 살아났다는 건 좀 만화적인 설정인 것 같다. 어쨌든 다행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사랑하는 둘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그들다운 방식으로 이별한다. 그것이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곰의 모든 사정을 훅 직감했던 날, 에이프릴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뭐라도 할게. 약속해.“
그런 에이프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한테 따진다. 그렇게 관측을 해서, 그래서 뭘 하냐고. 아무것도 안할 바엔 관측은 왜 하는 거냐고. 아빠는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한다. 그게 우리의 상황인 것이다.

이 책은 가장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급박한 변화가 우리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그동안 인간이 쌓아왔다는, 그 자랑스러운 문명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화는 또 어떤가. 그 모든 것들은 자연과 인간을 철저히 단절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땅의 숨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존재는 에이프릴처럼 정말 별나고 특별한 사람 외에는 없지 않을까.

이 작가를 잘 모르지만 간단한 소개를 보니 에이프릴과 비슷한 점이 있는 분이 아닌가 싶다. 국내 출간된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그것도 읽어보고 싶다. 그 메시지들이 단단하게 닫힌 문을 강력하게 두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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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극장 - 2023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그림책이 참 좋아 86
김규아 지음 / 책읽는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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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이라는 이 책을 뒤늦게 발견하고 읽어봤다. 이 작가님의 <밤의 교실>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겐 밤의 교실이 더 좋긴 하지만 이 책도 좋았다. 밤의 교실은 고학년에, 이 책은 저중학년에 권해주면 좋을 듯하다.

그림자 극장이라는 판타지 공간을 만들어 현실에서 걸려있는 빗장을 풀고 해소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가님의 장치가 마음에 든다. 그림자는 다양한 은유로 작품에 즐겨 사용되는데, 여기서의 역할도 흥미롭고 적절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자매간의 다툼은 아주 흔한 이야기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순식간에 들끓게 만드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형제 갈등과 억울함이다. 이 자매에게는 이런 사건이 있었다. 학교숙제로 언니가 정성껏 만든 토끼 인형을 동생이 깨뜨린다. 언니는 울상이 되고 동생은 허겁지겁 본드로 수습을 해보려 하지만 더 망쳐질 뿐이다. 보다못한 언니는 하지말라며 동생을 밀쳤고 동생은 침대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가 난다. 그렇게 최악인 상태로 둘은 등교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멀찍이 떨어져 걷는 자매를 유심히 지켜보는 어른이 있었으니.... 바로 아파트 경비원 할아버지다.

자매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서로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지만 결국 전하지 못한다. 동생은 인형뽑기기계에서 토끼인형을 뽑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언니는 편지지를 사지만 결국 전하진 못하고 하루가 간다.

이정도만으로도 드물게 착한 아이들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점점 실종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 입장만 있고 남의 입장은 없다. 자기 입장만 보면 약간의 억울함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더 넓게 보면 그 억울함을 부각시킬 상황이 전혀 아님을 깨닫게 될 텐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도리도리하면서 자신의 억울함만 고래고래 주장한다. 여기에 어떤 해결이 있겠는가?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고, 그걸 표현하려고 머뭇거린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자매는 참 착한 아이들이다. 우리가 자녀들을 이만큼이라도 키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자매는 화해를 못하고 2층 침대에서 각각 잠이 들었다. 여기서 또다른 주인공, 이름이 막둥이인 이 집의 귀여운 강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대에 펄쩍 올라가 동생 옆에 웅크려 눕는 모습은 우리집 강아지의 포근함을 바로 연상시키는데.... 이때 막둥이의 그림자가 빠져나와 동생의 그림자를 깨운다. 둘은 창문으로 나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다 마지막에 어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 '그림자 극장'에 도착한다. 거기에 계신 극장 주인은......!!

곧이어 언니도 극장에 도착하고 둘은 극장 주인이 추천해준 '어떤 하루' 라는 영화를 본다. 그 하루는 자매의 하루였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객관적 시점으로 상황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선이 내 안에 갇히지 않는 것. 가끔 나는 어떤 아이에게 "너한테서 이렇~~게 빠져나와서 여기쯤에서 너를 봐. 어떤 모습인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너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은 거니?" 라고 속이터져서 말하곤 했는데, 그걸 '객관적 직면' 이라고 할까? 여기선 그림자가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매와 막둥이, 토끼인형까지 네 그림자는 신나게 놀다 동트기 직전에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가족의 아침은 평화롭고 자매의 등굣길은 다정하다. 그걸 지켜보는 경비 할아버지. 과연 그림자 극장은, 누군가에게 또 펼쳐질 수 있겠지?

한 번 마음이 어긋나면 끝장으로 치닫고 그걸 부모가 조장하며 절대 먼저 사과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시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어떨까 싶다. 마음이 조금만 더 말랑해진다면, 그림자의 눈을 한번 가져본다면 이 세상의 무가치한 아귀다툼이 좀 그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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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왜 동아리 창비아동문고 339
진형민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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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온 진형민 작가님의 동화에 이윤희 작가님의 그림. 만족도 최상이다. 게다가 매우 크고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담았다. 섣불리 담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인.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하여 계속 말해야하는 주제. 기후위기와 환경, 개발의 딜레마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남녀 친구들의 우정과 살짝 설레는 마음도 담겨있지만 자연스럽고 적절하다. 연애사에 초점을 맞춘 최근 동화를 하나 읽어봤는데 실망을 많이 했다. 너무 말초적이어서. 연애사도 인생사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 '사귀는 것' '커플' '고백' 이런 거 자체가 목적은 아니잖아? 자연스럽게 생기고 쌓인 감정을 곱게 키워나가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다른 주된 서사와 함께 적절히 어우러져 있으면 난 그 작품을 매우 좋게 본다. 하지만 마치 커플이 생의 전부인 것처럼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함께 몰두하는 작품을 만나면 짜증이 난다. 그러잖아도 이성적 사고보다 감각추구가 앞서는 아이들이 많은데 동화까지 그걸 부추길 필요는 없잖아?

이 작품에 해당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이 길었다. 이 작품은 '용해시' 라는 산과 바닷가에 접한 지방도시가 배경인 것 같다. 거기에 젊은 시장 후보가 예상 외의 선전으로 표를 얻어 당선이 됐다. 그의 딸 록희가 주인공이다. 록희는 눈에 뜨일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아이다. 시장 딸로 알아보는 것도 싫어서 같은 생각인 할머니와 둘이 아빠랑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도입의 소재는 동아리다. 제목도 그거잖아. 왜 그런 동아리가 탄생했는지 배경설명이 필요하지. 록희네 학교는 자율동아리를 운영한다. 학생들이 계획과 실행을 스스로 하는 동아리인데, 나는 못해봤지만 주변학교에서 이렇게 진행하시는 걸 종종 보았다. 문제는 이게 수업시간이만큼 내용을 채워갈 수 있는 아이들의 책임감과 의지가 필요하다. 록희만 봐도 그시간에 어떻게 대충 혼자 놀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는걸. 그러다 도저히 마땅한 게 없자 동네친구 수찬이와 함께 새 동아리를 창설한다. 최소 인원이 3인이라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반의 과묵한 남학생 조진모와 전학온 여학생 한기주가 포스터에 이름을 썼다. 이리하여 '왜왜왜 동아리'가 창설됐다.

'궁금한 걸 파헤치는 동아리'라고 설정했기 때문에 멤버들은 각자 궁금한 걸 밝혀야 했다. 한기주가 가장 먼저 "다정이를 찾아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해서 동아리의 첫 과제가 되었다. 다정이는 기주네가 키우던 강아지였다. 여기에서 이 마을의 중대 사건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산불이었다. 불씨에서 시작된 산불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번졌고 사람 피한 것만도 다행인 상황. 집과 터전이 다 불탔고 강아지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독자들은 이 현장을 상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두번째는 조진모가 "우리 누나 머릿속이 궁금하다."고 했다. "자기가 무슨 잔 다르크인 줄 아나 봐." 라는 말에 힌트가 들어있다. 진모 누나 진경이는 금요일마다 학교를 안가고 교복 차림으로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마을의 두번째 문제가 공개된다. 이 문제는 시장인 록희 아빠와도 직결되어 있었다. 석탄 발전소와 항구를 신축하는 문제였다. 많은 주민들이 반대했지만 사업은 강행되었고 바닷가를 터전으로 살던 주민들의 대다수가 떠났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진모네는 겨우 버티고 있지만 계속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석탄 발전소-온실가스-지구온난화-산불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악한 진경의 1인시위는 잔다르크보다도 크레타 툰베리를 연상시킨다. 점점 번져나가는 어린이들의 연대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록희는 불가피하게 아빠랑 맞서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큰 갈등이나 감정소모는 없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입장의 차이가 관계까지 갈라놓는 건 슬프니까.

현실적으로 내가 부모라면 자식을 말렸을 것 같다. 나도 알고는 있다. 이런 현실에의 순응, 귀찮고 어려운 것에 대한 외면, 이런 것들이 세상을 점점 나빠지게 했다는 것을. 나빠지는 속도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것을. 지구인들은 이제 일상에서 작게, 제도적으로 크게, 전 지구적인 합의로 더욱 크게 동시다발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이 책은 모두가 방관하는 브레이크를 온힘으로 밟으려는 어린이들의 힘찬 발걸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다정이... "운동장을 바람처럼 가로지른 개가 한기주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마지막 문장에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졌다. 이런 장면은 언제봐도 감동이야.... 이 마지막 씬은 희망을 보여주며 끝을 맺으려는 작가님의 선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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