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학교의 최우수 선생님 어린이책봄 8
윤미경 지음, 윤유리 그림 / 봄개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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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라는 직업이 상당히 획일적일 것 같지만 의외로 다양성이 충만하다. 경력 33년째에 이제 퇴직을 꿈꾸는 나도 어떤 상황에 던져지면 “이 일이 내가 일하던 직업이 맞나?” 마치 새로운 직장에 취직한 것 같은 낯선 상황에 당황할 수 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큰 움직임없이 근처로만 이동하며 근무해온 나는 다양한 지역, 다양한 상황에서 근무하신 선생님들의 경험을 들으며 내 경험이 오래되기만 했지 얼마나 미천한지 깨닫는다.

이 책은 민통선 지역의 학교, 이제는 폐교되고 없는 마현초등학교에 신규 발령을 받았던 최우수 선생님의 경험을 동화로 엮은 것이다. 읽어보니 거의 실화 수준인 것 같다. 아무 정보 없이 읽었는데, 마지막 작가의 말에 보니까 모델이 된 선생님이 내가 아는 선생님이잖아!! 만나뵌 적은 없지만 헌신적인 활동으로 유명한 분이고 페친이기도 해서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주인공 이름 ‘최우수’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끝까지 읽고서야 알게 됐네.ㅎㅎ

마현초등학교는 검색해보니 강원도 철원군 마현리에 실제로 있었던 학교이고 2007년에 학생수 감소로 폐교했다고 한다. 민통선 마을에 있던 학교니 원래부터 학생수가 많지는 않았겠다. 최우수 선생님도 발령받자마자 5,6학년 복식학급을 맡게 되었다.

마을 자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어서 검문을 받고 들어가는 장면, 가로등 하나 없는 동네라 밤이면 암흑천지가 되는 장면, 관사에서 거주하는 상황 등이 정말 낯설었다. 불편한 걸 질색하는 나에게 학교 관사란.... 어우,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곳이다. 집이면 집이고 직장이면 직장이지, 직장이 집이라니 너무 싫다.ㅎㅎ 게다가 오래된 관사는 허술하고 고장도 잘 나고 심지어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까지 났다. 게다가 벌레는 아주 기본이고 동네에 뱀이 우글우글.... 나는 절대 못해. 지금은 이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외따로 있는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은 지금은 중견 교사인 한 선생님의 젊은시절 좌충우돌 성장기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 겹의 의미로 엮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민통선 마을이란 일종의 전쟁의 잔재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휴전의 잔재. 휴전선이 있기에 비무장지대가 있고, 거기에 딸린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 있는 것이니까. 수십년이 지났고, 그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부모들도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지만 (당시 기준 조부모님 정도가 전쟁을 겪은 세대) 전쟁의 상흔은 아직까지도 아이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러한데 하물며 지금 전쟁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의 어린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상처를 안고 외딴 마을에서 살아가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의 밝음은 어떻게든 어둠을 뚫고 나온다. 그 어린이들의 삶에 함께 하신 최우수 선생님의 그 시절은 비록 서툴고 실수도 많았을지언정 아름답고 빛났다. 노련함과 노하우로도 덮지 못하는 눈부심이 있던 시절. 다시 돌아가라면 싫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긴 있었네....

최우수 선생님 외 조연 선생님들의 캐릭터도 아주 매력적이다. 가장 압권은 병설유치원의 강하리 선생님. 나같은 사람은 나가떨어질 그 환경에서 최강의 생존력을 보여준 씩씩한 선생님. 너무 멋졌다. 그리고 나무득 교장선생님. 일꾼인지 교장인지 못알아볼 정도로 몸소 일하시는, 무뚝뚝하지만 자상한 어른. 그 외 다른 복식 담임 선생님들도 다들 좋은 분이셨다.

나는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교사모임에도 거의 나가지 않지만, 이렇게 다양한 환경의 교사들이 경험을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요즘같이 소진된 시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지 않는다는 게 슬픈 점이지만.... 중견의 교사들 마음속에 다들 한자락씩 갖고 있는 그때 그시절 이야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며 더불어 교사도 성장하던 그때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다시 되살아났으면 한다.

160쪽 정도의 분량에 두께가 꽤 있어서 대출할 책으로 뽑아들었는데, 도서관에 앉아있던 짧은 시간에 다 읽어버려 대출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림도 좀 있고 줄간격도 넉넉한 편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가독성이 유난히 좋은 책이었다. 내가 같은 직종이어서 그런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쭉쭉 잘 읽히는 책이라 권해주기에도 부담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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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자모 변신 감자 다산어린이문학
김태호 지음, 보람 그림 / 다산어린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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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작가님에게는 참 여러 가지 느낌이 있구나. 아주 서늘하거나 무거운 작품도 많은데 이렇게 귀엽고 가벼운 작품도 내시고.

이 책은 1학년에게 아주 딱이겠다. 물론 다른 학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한글을 습득하는 시기에 어른과 함께 읽으면 가장 효과가 좋을 것 같다. 1학년 교실에서 사용하는 자모음자 교구, 그거 조작해보면서 읽으면 아주 탄력이 팍팍! 붙을 것 같다. 교실에서 읽어도 즐거운 독서가 될 수 있고 가정에서 양육자와 함께 읽기에도 재미있을 책이다. 양육자가 읽어준다면 취학 전 7살 아이들에게도 괜찮겠다. 이상은 한글 면에서 그렇다는 거고, 그 면을 제외하고 스토리로만 봐도 재미있는 책이다.

자모자모는 감자다. 엄마는 변신 능력이 있는 감자다. 자모자모도 그 능력을 갖고 싶었다. 그러다 자신만의 변신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대상을 굴리면 글자로 바뀌는 능력이었다. 그리고나서 글자를 재조립하면 바로 그 글자로 변신이 되는 것. 예를 들면 돌을 굴려서 나온 자모음을 가지고 ‘달’로 변신시키는 식. 아주 재미있는 설정이다.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된 자모자모는 엄마 감자를 변신시켰다. ‘감자’의 자모로 ‘모자’를 만들고 ‘ㄱ’을 남겼는데, 그걸 까마귀가 물어가 버렸다. 모자가 된 엄마를 쓰고 자모자모는 ‘ㄱ’를 찾는 모험을 떠난다.

그 모험길에 곰도 만나고, 늑대도 만나고, 뱀도 만나니 정말 아슬아슬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까마귀를 다시 만났지만 까마귀도 ‘ㄱ’을 말캉숲 대마왕에게 빼앗겼다는 것 아닌가. 자모자모의 모험 2부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험악한 적들이 가득하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고, 아슬아슬하지만 가슴 조이지는 않는 귀엽고 재미난 이야기에 한글 요소가 추가된 특색있는 동화였다. 그림도 귀여움과 유쾌함에 한몫을 한다. 김태호 작가님 신작이 나오면 찾아보는 편인데 오호, 이런 영역도? 할만큼 새로운 느낌이었다. 난 귀여움이 최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매우 만족. 7,8세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 선물용으로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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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졌으면 좋겠어 이야기나무 14
최도영 지음, 슷카이 그림 / 반달서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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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재를 담은 소품 같은 작품이라는 느낌으로 읽었는데, 읽을수록 단순히 소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고도 교훈적인 결말로 읽힐 수도 있지만 가장 환상적인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 그게 가져다주는 행복한 결말과 성장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매일매일이 이것과의 씨름인 나로서는 ‘덥썩!’ 잡을 수밖에 없는 주제인거다.

도서관에서 이 책이 눈에 띈 건 가로로 인쇄된 표지가 독특해서였다. 그림도 친근하고 색감도 깔끔해서 뭔가 읽는 맛이 산뜻할 것 같기도 했다. 의미가 궁금해지는 제목도 인상적이었다. 뭔가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을 거라 짐작이 되었다.

그 짐작은 맞았네.... 동음이의어인 ‘빠지다’의 두 가지 뜻 ①박힌 물건이 제자리에서 나오다, ②물이나 구덩이 따위 속으로 떨어져 잠기거나 잠겨 들어가다 두 가지 뜻이 함께 어우러져 돌아가는 이야기다. 2번 뜻이 먼저 나온다. 화자인 반디는 요즘 방과후 댄스반 때문에 춤에 ‘빠졌다’. 그리고 좋아하는 걸그룹 아르니스의 요즘 유행곡 제목은 ‘나에게 빠졌으면 좋겠어’ 이다.

반디네 반에서는 추첨으로 4인 1조를 구성해서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 반디를 포함 3명까지 모두 방과후 댄스반 소속이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뽑힌 아이가 송이. 작고 조용한 아이라 쉽게 넘어올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자기주장이 제법 있는 아이였다. 셋만 할 수 있는 춤 말고 넷 다 할 수 있는 노래와 악기연주를 하자고 한다. 달리 반박할 수 없고 나머지 둘도 동조하자 어쩔 수 없어진 반디는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고 투정 끝에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다음날 송이가 통 크게 양보했다.
“어제 반디가 한 말을 듣고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새로운 일에도 도전해보고 그러면 더 재밌게 살 수 있대.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이번 기회에 춤을 한 번 배워 보려고.”
반디는 반색을 하며 백번이고 천번이고 틀려도 친절하게 알려주겠다고 다짐을 한다. 물론 진짜로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서 말이다.

송이가 처음에 춤을 꺼려했던 건 괜히 그랬던게 아니었다. 진짜로 송이는 몸치 중의 몸치였고 아무리 연습시켜도 늘지 않았다. 여기 나 같은 아이가 또 있었네... 여기서부터 내가 송이에 감정이입하며 읽었을 수도 있다.ㅎㅎ 반디는 지치기 시작했고, 자부심을 느끼는 그들의 춤에 송이가 오점이 될까봐 초조해진다. 멋짐이 되어야 될 그들의 무대가 송이 때문에 개그가 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빠지다’의 첫 번째 뜻이 등장한다. 빠졌으면 좋겠어.... 바로 송이가 팀에서 빠졌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이다. 결국 반디는 이 말을 송이에게 하기로 결심한다! 마침 한 명 충원을 원하는 팀도 있었기에, 반디는 속마음을 말하고 모둠을 조정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말할 기회를 노린다.

그런데 일은 공교롭게 흘러갔다. 송이는 반디가 그런 마음을 품은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반디에게 더더욱 고마워한다. 도저히 팀을 조정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일은 흘러갔다. 그리고....

약간의 위기 끝에 행복한 결말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크게 작위적인 느낌 없이 따뜻하고 흐뭇한 느낌으로 잘 끝맺었다고 생각한다. 공교로운 상황이 오히려 운 좋은 일이었다는 다행스러운 면이 있긴 해도, 각 아이들이 극단까지 가기 전에 자신의 마음들을 잘 돌아보고 조절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여러분, 선생님을 비롯,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많은 죄를 지어요. 하지만 그래도 아주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은 그걸 잘 넣어놓기 때문이죠. 마구 꺼내지 않고, 망설이다가 웬만하면 집어넣는 거예요. 사람 마음 거기서 거기인데 큰 차이가 있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차이예요. 남에게 보이려고 그러는 거라구요? 남을 의식한다구요? 맞아요. 그게 어때서요? 남을 당연히 의식해야지 그럼 안해요? 나의 이 행동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그 결과가 나에 대한 어떤 평가로 돌아올지 생각해야지 그럼 안해요? 가식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걱정 넣어두고 남의 평판에 신경 써요. 나를 조절하면서요. 그게 쌓이면 인격의 일부가 된답니다. 인격에 선천적인 면만 있지는 않거든요. 노력하면서 만들어 가는 거예요.

나의 개인적 관찰과 경험, 생각이 많이 들어간 편중된 소감일 수도 있다. 감동적인 우정 쪽으로 감상해도 충분히 괜찮을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데도 어떤 행동이 더 아름다운 것인지 계산이 필요하다는 게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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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씨의 다정한 책방
이시원 지음 / 파이디온키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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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도서관에서 읽고 이시원 작가님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성함을 기억하고 있지 않아서 그렇지 전작을 읽은 적이 있다. <숲 속 사진관>이라는 그림책이다. 5년도 더 전에 2학년 '가족' 주제를 배울 때 읽어줬던 그림책이었다. 그때 아이들도 나도 참 좋아했던 그림책이었는데.... 이책 참 괜찮네? 하고 작가소개를 보니 잊고있던 그 책의 작가님이어서 반가웠다.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안읽어봤지만 <나는 회색 거미야!>라는 책도 그럴 것 같다.

그 느낌은 밝음과 따뜻함, 그리고 괜찮다는 격려, 기꺼이 함께 해주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 나에게 충분하지 않은 것들. 정확히 말하면 매우 부족한 것들. 그래서인가. 내 자녀가 아직 아기라면 이분의 책들은 빌리지 않고 사주고 싶다. 내가 보여주기 어려운 것들을 책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 거겠지.

그런데! 바로 그게 안되는 거라고! 이 책이 말하고 있네. 책으로만 안되는 것이 있다고. (많다고)
"코끼리 씨는 숲속에서 책을 가장 많이 가졌는데도
끊임없이 책을 모았어요.
친구들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책을 더 많이 갖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어요."
다정한 코끼리가 되기 전, 코끼리의 초반모습은 속표지 이전에 나오는데, 그렇게 나오는 것 치고는 다소 길게 나온다. 나와 공통점이 있다. 나는 코끼리만큼 책을 많이 갖지도 모으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좀 애착이 있고, 그에 비해 사람에게는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모여서 뭘 하는 걸 피곤해하고 혼자가 편하다.책도 혼자 읽고 혼자 끄적거리고 끝이다. 책은 책으로 끝이다. 책이 내 마음을 조금 움직일지언정 내 발을 움직이기는 무지하게 어렵다.

속표지를 넘어가면서부터 코끼리의 달라진 삶이 시작된다. 자신이 모은 책들을 나누는 책방을 연 것이다. 나눔의 마음을 연 결단이다. 하지만 동물들이 찾는 책이 딱딱 있지가 않다는 거.
"엄마 없이 아이들끼리 잘 지내는 법에 대한 책이 있나요?"
"하늘의 색을 마음에 담는 법에 대한 책이 있나요?"
이런 주문에 맞는 책을 찾아줄 수 없어서 고슴도치는 속상했다. 하지만, 책이 아닌 방법으로 코끼리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코끼리는 행복했다고 작가님은 적어놓았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고 싶은 나의 마음은 이런 것 같다. 나는 잘 못하겠지만 세상은 이랬으면 좋겠는 것. 세상이 이렇다면 나도 어쩌다 슬쩍 해볼수도 있으니. 일단 기본적으로 세상이 다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나도 거기 묻어가고 싶은 마음?

직장에서는 '독서교육'으로 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지나치게 독서, 독서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물론 이 문해력 위기의 시대에 최대한 책과의 연결을 시켜주려고 노력은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전부가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다. 역대 우리반의 독서가들이 모두 행복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 그들의 인성이 모두 보기좋고 따뜻했던 것도 아니라는 점. 이런 관찰 경험을 갖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독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도 아직 닿지 못한 그 지점. 함께하는 세상, 서로 돌아보아주는 세상을 위해 나도 뭔가를 하는 지점.

이 작가님의 그림체도 색감도 모두 마음에 든다.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셨으면 좋겠다. 성함을 기억했으니 또 나오면 반갑게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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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양말이 사라졌어 스콜라 어린이문고 41
황지영 지음, 이주희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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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작년에 읽었는데 반납이 급했었던가 리뷰를 남기지 않았다. 영락없이 기억이 희미해졌네... 내가 리뷰를 쓰는 첫번째 이유가 이거다. 기억을 저장해놓기. 연휴를 맞아 도서관에 갔다가 다시 대출해왔다.

슬픔을 다루면서도 아주 사랑스럽고 귀엽고 기발한 상상이 가득한 동화다. '와 역시 작가는 작가구나 나라면 이런 생각 못할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 내맘속의 점수는 쭉쭉 올라간다. 요즘은 작가지망자들도 작품들도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확신할 순 없지만 내가 동화를 읽을 날도 많이 남지 않았다. 나는 순도 높은 독자가 아니라서.... 하지만 그때가 와도 이런 작품들은 가끔씩 읽어줘야 할 것 같다. 순도 높은 작품이라서? 순도 높은 작품은 순도 낮은 독자의 마음에도 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른이 된 후 동화를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이유는 직업적 이유보다도 '어린 시절 독서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였으니까.

이 책에는 도깨비가 나오고, 도깨비 나라도 나온다. 도깨비 세상은 우리 세상과 겹쳐 있다고 한다. 흔한 설정이다. 하지만 느낌이 아주 새로웠다. 주 느낌은 귀여움? 위기도 있고 모험도 있지만 귀여움을 넘어설 순 없기에 그닥 무섭거나 가슴 졸이지 않았다. (이건 장점이 아닌가?^^;;;)

규리에게 나타난 도깨비는 '눈물 도깨비' 마을에서 온 루이였다. 인간 세상처럼 도깨비 세상도 여러 마을이 있다. 웃음 도깨비 마을도, 불꽃 도깨비 마을도 있다고. 그중 루이네 마을은 인간의 눈물과 연결된 세상이었다. 루이는 규리네 식구가 잠든 밤에 눈물을 닦아 가려고 왔고, 닦는 도구는 바로 '양말'이었다. 이렇게 양말은 이 동화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규리는 요즘 늘 발이 시렸다. (초여름인데) 마음이 시릴 때 나타나는 규리의 유난한 신체현상이다. 할머니가 떠주신 귤양말만이 발을 녹여주어서, 날마다 그 양말을 신는데, 한짝이 없어져서 너무 슬프다. 나는 내 아이가 이럴 때 짜증내지 않고 발을 감싸 녹여줄 수 있는 부모였나 생각해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뭐든 유난한 걸 싫어했다. 솔직히 지금도 그렇다. 타인을 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ㅠ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양말짝을 찾아 서랍에 넣을 때, 한짝이 없는 경험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꽤 자주 그런다. 분명 같이 벗었을 텐데 왜...? '양말 귀신이라도 있나' 라고 규리 아빠도 말했는데, 이 동화는 바로 그 발상에서 시작했다. 루이는 양말 도깨비였다. 눈물 주인공의 양말을 신고 눈물을 닦아가는 도깨비. 한밤중에 루이가 규리 눈에 띄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눈물을 닦았던 양말은 반드시 도깨비 마을에 가져가야 하건만, 규리의 간청으로 루이는 그걸 조건부로 주고 갔다. 하지만 금기는 반드시 깨지는 법. 두 세상은 뒤죽박죽이 됐고 그걸 풀기 위한 인간 아이들 셋과 도깨비 아이들 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우정, 의리, 이타심 등이 자연스럽게 부각되어 따뜻한 감동을 준다. 그것 뿐이면 조금 단순했을 이야기에 눈물의 의미까지 버무려져 아주 풍성한 이야기가 되었다.

눈물이 많은 사람도 있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는 모르게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그 눈물을 정성스레 닦아가는 존재들이 있다면 양말 한짝이 어찌 아깝겠나.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 서로 알아봐줘야 하는 눈물이 있다. 마음껏 흘려도 괜찮다고 옆에 있어주는 존재. 세 아이는 눈물 끝에 웃음꽃을 피우게 되었다. 파란색 캐릭터 '슬픔이'의 역할을 보는 듯도 했고, 결국 연결 속에서 살 수 있는 인간의 속성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책은 저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내가 보기엔 3학년 정도에 딱인 것 같고 4학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제 조금은 더 글밥이 있는 책을 읽고 싶다는 2학년에게도 좋겠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이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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