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 - 교사라는 이유로 참지 않겠습니다
가넷 지음 / 얼룩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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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페이스북에서 깊이있는 글을 쓰시는 선생님 한분이 이 책을 읽고 남기신 글을 읽었다. 마음이 힘들 것이라 예상되어 망설여졌지만 그것보다 궁금증이 더 앞섰다. 집근처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더니 취소문자가 왔다. 사유는 ‘품절도서’였다. 앗, 그러네. 나온지 1년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절판되었다. 다행히 인근 도서관에 한 권 있어서 상호대차로 대출해 읽었다.

겪으신 일은 모두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다. 선생님은 특히 2023 교사집회 중 가장 컸던 9월 2일 집회에서 발언하신 분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 여의도광장 끄트머리에 겨우 자리를 잡아서 발언 내용을 정확하게 듣진 못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의 대화 중에 언급되었고 언론보도를 통해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7년차 젊은 여교사가 익명의 교원평가를 통한 남학생의 성희롱을 무기력하게 묵과하지 않고 끝까지 파헤쳐 공론화한 일은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또한 이 사회에 무지막지하게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위는 너무 크고 단단하며, 계란 한 개로 깨질 리가 없었다. 선생님은 무수한 2차 가해를 받았고 결국 교직을 내려놓고 나왔다.

내가 선생님의 주변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부끄럽고, 알지도 못하는 그분께 미안하다. 왜냐하면 나는 만류했을 것 같으니까.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자고 했을 테니까. 나는 교원평가 열람 안한 지 10년도 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지도 모르니까.ㅠㅠ

하지만 교사들이 이처럼 분노를 안으로만 삼키고 체념했기 때문에 전국민의 교사 때리기 스포츠는 더욱 중흥되었다. 끝없는 가스라이팅으로 나는 내가 죄인인 줄로 착각하며 살게 되었다. 교사라는 원죄. 씻을 수도 없으며 항변할 수도 없는 원죄에 뒤덮여 모든 처분에 따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선생님이 작은 파열음을 냈다. 너무 당연한 일에 우리는 놀라고 있었다.
- 교원평가는 익명인데 가해자를 밝힐 수 있나?
- 학생을 고소할 수 있나?
- 용서 안해줘도 되나?

교사도 시민이고 노동자이며 국민들과 똑같은 인권을 가진 직업인일 뿐이다. 왜 교사라는 이유로 금기되는 것이(참으라고 요구되는 것이) 그리 많았을까? 평소에 내가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하던 일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렇게 해도 당장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당장 경찰에 연행되거나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생각이 교사 또는 누군가를 향한 폭언, 폭력, 협박, 악성 민원, 인권 침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92쪽)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학생에 대하여 교사는 ‘사랑으로 감화시키라’는 강요를 받는다. 나이가 꽤 되었는데, 나는 살면서 쉽게 말하는 사랑처럼 부질없는 단어를 보지 못했다. 대체 사랑이 뭐냐. 어떤 직업군에게 ‘사랑’을 요구한다는 게 말이 되냐. 물론 인간을 상대하는 직업은 마음도 교류하게 되니 사랑이 생겨날 수 있다. 상당히 깊은 사랑을 오래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요구해서는 안되는 ‘감정’이다. 나의 직업윤리는 나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그게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책임있게 주고자 하는 것. 그게 교사로서의 사랑이란 말이다. 거기에는 훈육이나 처벌도 포함된다. 필요하다면 말이다. 그런데 무슨~~ 선생님 흑흑, 철수야 흑흑 하는 신파를 찍으라고 난리야. 옛날같이 어수룩한 시대라면 가끔 신파가 찍혔을 수도 있겠지. 지금 세상에 날 잡아 잡수 하고 자신을 내놨다가 얼씨구 하고 달려드는 메뚜기떼한테 뜯어 먹히고 나면 남는 것은 회의와 자괴감 뿐이겠지. 사랑으로 감화, 나는 후배들에게 절대로 권유하지 않겠다.

두 번째 얼핏 그럴듯하지만 매우 잘못된 요구는 ‘교사가 먼저 존중하면 학생도 따라서 존중하게 될 것’ 이라는 말이다. “존중 받아본 이가 남을 존중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이 말의 잘못된 점은 이것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대체로 그런 것과 반드시 그런 것은 구분하여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인권을 부르짖는 많은 이들이 ‘반드시’ 그렇다며 교사를 옥죄었다. 심지어 교사들 중에도 그런 강사들이 있었다. 학생이 존중을 배울 때까지 그를 끝없이 존중하라는.... 학생에게 사사건건 선택권을 주고, 그의 권리를 일깨우라는.... 그런 분들에게 내가 “본인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그가 지켜줘야 할 남의 권리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권리와 같은 비중으로 책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라고 댓글을 달았을 때 비웃음의 대댓글이 달렸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하긴 한데 그중에는 “당신 수업을 앉아서 들어주는 사실 만으로도 고맙지 않냐?” 였던가.... 아니? 나는 그게 고맙진 않은데? 나는 자격을 획득하여 국가에 고용된 직업인이고 그 임무인 수업을 내가 실행하며 그것은 그 대상에게 도움이 되는 건데 내가 왜 고마워해야 되지? 피차 마땅한 태도를 가지고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거 아닌가? 심지어 “숙제를 안할 권리도 있다.”는 주장에는 아연실색.... 이렇게 ‘교사가 먼저 존중’ 주의자들이 놓친 것들이 있다. 존중이 반드시 존중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존중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교사의 덕목으로만 몰고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호의를 이용하여 악행을 하는 인간들이 꽤 많은 비율로 있다. 이것을 모른 척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는 법이 있지 않나? 사회는 법이 필요한데, 학교에는 도덕만 있으면 된다는 거냐?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에 대한 멸시적 표현으로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것들’이 있다. 이런 무식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자신이 ‘고용주’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그토록 화를 내며 악성민원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반론도 나와 있다.
『공무원들은 국가행정을 위한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다시말해 시민이 세금을 개인에게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을 하고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93쪽)
그러므로 공무원이 근무시간에 일하지 않거나 잘못된 일을 한다면 비난받을 수 있어도 특정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풀이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특히 교사는 자신의 교육관대로 학생을 지도한다. 학부모 개개인의 생각을 다 수용할 순 없다. 배가 산으로 갈 일이다.

저자는 학교가 사회화 기관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기 전에 잘못된 행동을 지적받고 교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과정에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적극적 제재와 교정 없이 자라난 아이들이 사회에 쏟아져 나온다면 이 사회의 안녕과 안전 또한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중략) 지금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바로잡지 않으면 이 디스토피아는 곧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교사를 지금처럼 무력하게 만들고, 보호자는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거나 사회화를 돕기는 커녕 '우리 애를 학대한다'고 교사를 몰아가고, 학교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교사에게 안전한 환경이 된다면, 그 대가는 모두가 함께 치르게 될 것이다.』 (106~107쪽)

그렇다고 저자가 체벌을 찬성하거나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만큼 교권에 대해서도 상호존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거의 야만 상태로 회귀하고 싶은 교육주체는 아무도 없다. 한쪽의 인권을 후려쳐서 다른 한쪽의 인권을 높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야만적인 발상이다. 야만으로의 회귀는 말 그대로 퇴보하는 것일 뿐 아무것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131~132쪽)
저자가 원하고 주장하는 것은 재작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가 외쳤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
가르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바라는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을 방해하는 악한 행위로부터 교사와 학생들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힘든가? 그렇게 죽음으로만 호소해야 듣는 시늉이라도 할까말까한 일이었나? 저자는 본인을 '생존자'라고 표현했다. 거기엔 많은 의미가 담겼다.ㅠ

저자가 겪은 일은 특히 젠더 권력이 작동한 일이라는 점에서 더 서글픈 면이 있다. 여교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정글에 던져졌다.
『교사-학생 관계가 젠더 위계에 의해 전복되고 교사로서의 권위를 잃는 경험은 피해 교사들에게 매우 큰 무력감과 트라우마를 심는다. 교사이지만 동시에 여성이므로 교사를 성적 대상화하고 성적으로 모욕한 경험이 있는 가해자들은, 여성 교사가 더이상 지도하거나 교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113~114쪽)
남학생이 여교사를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흔한 경우다. 선택적 분조장이란 말이 있다. 저자도 표현하셨듯이 '그 아이의 분노는 오로지 자신보다 물리적 힘이 약한 사람 앞에서만 터져나왔다.' 언젠가 내가 자조적으로 "이제 학교에 필요한 인력은 마동석 같은 분이야." 라고 한 적이 있는데 (배우님 함부로 일컬어서 죄송해요ㅠ) 물리적 위계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학생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유능해지기 위해 갈고닦아온 그간의 노력들이 허탈해지는 순간이다.

막다른 곳까지 몰린 저자는 교직을 내려놓는 길을 택했다. 그게 살아남는 길이었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그래도 저자는 드물게 강한 분이다. 날마다 자신을 일으켜 우울과 불안을 필사적으로 이겨냈고 연대의 따뜻함과 희망도 체험했다.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딪쳐보니 문이었다는 저자의 표현에 소름이 돋았다. 그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온 힘을 다했을까 생각하니 안쓰러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이 리뷰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이렇게라도 응원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퇴직을 고려 중인 늙은 교사가 주절거린 말이 가져올 변화는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후배들과 마음을 함께하고 싶다.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보탬이 못 되어 미안하다. 저자가 표현한 ‘작은 틈새로 보이는 희망의 빛’을 부디 붙잡으시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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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을 헤맬 때
송미경 지음, 서수연 그림 / 봄볕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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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2.7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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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에 히어로는 무리지만
구로노 신이치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이미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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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동화가 재밌게 느껴졌다. 다시 동화를 열심히 읽어볼 시기가 된 걸까, 아님 이 책이 좋았던 걸까.^^ 소재와 주제는 가볍다 할 수 없는데 경쾌하게 잘 읽히는 문체여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다. 청소년 소설을 많이 쓰신 것 같고 특히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라는 책의 제목이 아주 익숙하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도쿄에서 살던 주인공 유즈하는 부모님과 같이 시골로 이사했다. 일본의 소설이나 동화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문제를 자주 보게 된다. (지역간 인구 불균형 심화, 촌락인구 감소, 저출산, 고령화 등) 여기도 고령화된 마을이고 전학온 학교에는 6학년이 한 반뿐이며 학생은 유즈하까지 9명 뿐이다. 그나마 6학년은 낫다. 1,2학년은 복식학급이다. 아래로 갈수록 저출산 현상이 심화된 모습이다. 우리랑 똑같네.

아빠는 도쿄대를 나와 은행에 다녔지만 이 마을에서 슈퍼를 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유언을 남기자 기다렸다는 듯 은행을 관두고 시골로 내려왔다. 아마도 한계에 다다른 시점이었다는 것을 유즈하도 짐작했기에 군소리없이 따라왔다. 가족은 마을에 나름 잘 적응한다. 유즈하도 자전거로 배달을 돕는 등 열심이다.

문제는 여름방학을 지내고 2학기에 전입을 하면서 시작됐다. 도쿄 학교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던 유스하가 수학시험을 잘보고 달리기에서도 1등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게 되어 졸지에 '히어로' 비스름한 위치가 되어버렸다. 어느날 반장 미키 외 두 여학생이 다가와 학급의 문제를 상의하며 해결사 역할을 요청한다. 난 유스하가 두각을 나타낼 때 시기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건가 짐작했는데 의외였다. 생각해보니 박힌 돌들 사이에서 해묵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을 때, 굴러들어온 돌이 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마음 같다. 그 문제란 역시 괴롭힘의 문제였다. 겐타라는 남학생이 졸개들을 거느리고 가오리라는 여학생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소그룹에서도 이게 가능하다니, 참 인간의 악한 본성은 집요하다.

그런데 인간의 악한 모습은 본성과 상황의 융합물인 것 같다. 각자마다 그 비율이 다르다.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결핍이나 상처를 찾아볼 수 없는데도 놀라운 악함을 보여주는 순도 높은 악인도 있고, 상황이 만들어낸 안쓰러운 악인도 있다. 다들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할 것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그렇다. 물론 순도가 높든 낮든 그걸로 합리화할 순 없다. 인간은 그저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할 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어른들의 관계가 밀접하게 얽혀있고 자녀들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겐타의 아버지는 지역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고토 개발'의 사장이었다. 겐타가 함부로 나대는 이유를 알 만하다.

결과적으로 유스하는 히어로 역할을 보란듯이 해내진 못했다. 제목처럼 말이다. 하지만 악한 모습에 분노했고 친구들과 함께 해결해보려 애썼다. 그러는 중에 자신의 부족함도 알게 되고, 함께 성장했다고 할까. 학급의 문제도 극적으로는 아니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 과정의 이야기다.

읽으며 가장 미개(?)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는데 체육복을 갈아입는 상황이었다.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상황이 펼쳐져서 엥?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초등에서는 보통 '간편복'으로 알림장에 써주고 설령 잘못 입고 왔더라도 그냥 수업하기 때문에 탈의 상황은 없는데, 생각해보니 중등에서는 어떤가? 확실히 모르겠다. 요즘은 대부분이 남녀공학이니 탈의 장소는 확보되어 있겠지? 이 대목이 옥의 티. (치고는 매우 컸다) 물론 문제장면으로 설정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외였던 점은 마을의 개발에 대한 작품의 관점이다. 보통 작품에서는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개발'을 막아내고 마을을 고수하는 결말로 가지 않던가? 탐욕과 수호의 맞대결로 설정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개발에 찬성했다. 특히 노인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산골마을을 떠나 새로 지어진 '콤팩트 시티' 라는 노인 맞춤 거주지에 들어가게 됐다. 그곳이 매우 복지적이고 노인 편의를 배려한 곳으로 그려졌다. 이런 곳이라면.... 이라는 관심이 생긴다. 노인 문제는 바로 당면한 문제이자 미래이기도 해서 말이다. 이렇듯 개발 문제는 흑백논리로 풀기에는 매우 복합적이고 어렵다. 이런 문제야말로 순수하고 전문적이며 실용적인 시각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그런 눈이 우리에게 있기를.

마을에서 유즈하가 친하게 지낸 미즈하라 할머니의 말씀 중에 고개를 끄덕일 말씀이 많았다. 유즈하가 분노에 못이겨 꽃병을 지켜들고 자칫 대참사를 벌일 뻔했던 그날,
"그건 증오의 연쇄작용이라는 거야."
라는 할머니의 설명을 나도 기억해놔야겠다.
"이쯤되면 더이상 어느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가 없어."
살면서 많이 본 상황이다.

또 하나는 어떤 행진곡을 부르시고 하신 말씀.
"행복은 우리에게 걸어오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걸어서 가는 거야.
하루 한 발짝 사흘이면 세 발짝
세 발짝 내딛고 두발짝 물러나.
인생은 원투 펀치"
- 그래,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때로는 조금 후퇴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야.

인간세상 끔찍해 보일 때가 많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과거는 더 야만적이었기 때문에. 일부 추억을 빼고는. 그러니 세 보 전진 이 보 후퇴(결과적으로 일 보 전진)의 사이클을 믿고 희망적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그런 시각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지만. 그게 맞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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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5 - 편의점을 환하게 밝혀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5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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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 시리즈를 4권까지 읽고 멈췄었다. 1,2권이 나왔을 때 교실 아이들에게 읽어주자 아이들이 집에 가서 사달라고 졸라 “그 읽어주신 책 제목이 뭔가요?” 라고 학부모님에게 문의가 오기도 했었다. 이후로는 이 책이 엄청 유명해지고 도서관에도 빠짐없이 들어오고 하니 읽은 아이들이 많아 굳이 내가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다 얼마전 7권이 학교도서관에 들어온 것을 보고 다시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내가 어디까지 읽었더라? 아, 5권 읽을 차례구나. 5,6,7권을 한꺼번에 대출했다. 1권은 아파트 경비실, 2권은 피자집, 3권은 태권도장, 4권은 눈썰매장이더니 이번은 ‘편의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우리반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고 살짝 마음이 찔리기도 했다. 지난 한달 남짓 우리반 2학년 어린이들은 <마을>이라는 교과서를 공부했다. 참 진행하기 어려운 단원이었다. 특히 우리 학구처럼 대도시 변두리의, 녹지도 거의 없고 다가구 주택들이 밀집된 동네는 딱히 이렇다할 특징이 없었다. 기본조사를 위한 질문에 아이들의 답변은 거의 ‘편의점’ 일색이었다. 예를 들면
- 우리 마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써 보세요 (우리 마을에 편의점은 몇 개인가요?)
- 우리 마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써 보세요. (편의점)
- 우리 마을의 자랑거리를 하나 써 봅시다. (우리 마을에는 편의점이 많아요)
이런 식이었다. 나는 이 상황이 좀 안타깝고 답답해서 집에 가서 딸한테 푸념을 했다.
“2학년 아이들이 젤 좋아하는 장소가 편의점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 어휴.”
그러자 딸이 말했다.
“엄마, 엄마 학교 다닐 때 추억의 장소는 학교 앞 분식집이잖아. 요즘 애들한테는 그게 편의점인가부지.”

이 책을 읽고 보니 딸 말이 딱 맞았다. 편의점을 찾는 아이들의 상황과 마음을 작가님은 나보다 훨씬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셨던 것이다. 간편식이나 인스턴트를 주로 사먹는 편의점에 어린이들이 몰리는 것은 다소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또 요즘 아이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님은 다섯 번째 장소로 편의점을 선정하신 게 아닐까.

밥값하는 츤데레 우리의 깜냥이 한 편의점 탁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탁자에 앉은 깜냥의 등장에 주인아주머니는 난감해 했지만 매정하게 내치지는 못했다. 그때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깜냥 특유의 그 제안,
“혹시 조수가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원래 일 같은 건 안 하지만 친절하신 분 같아서요.”
결국 주인에게는 급한 일이 생겼고, 깜냥은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이야기.

5권에서 독특한 만남은 깜냥보다 훨씬 먼저 그 동네에 터를 잡았던 하얀 고양이 ‘하품이’다. 늘 숨어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지만 깜냥 덕분에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동네를 잘 알고 개개인의 특성까지 잘 알고 있어서 깜냥에게도 도움을 많이 주는 캐릭터.

그리고 깜냥이 만난 편의점 손님들. 전편들에서도 그랬듯이 처음 만나는 인물은 어른이지만 결국 깜냥은 어린이들의 친구다. 풍족하지 않지만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그래서 그 손님들에게는 원 플러스 원 같은 행사 상품들이 아주 중요했다. 하긴 돈 버는 나도 편의점 가면 그것부터 살펴보니까. 동생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주고 행복해하는 아이. 그 오누이의 모습은 참 애틋했다. 부모님이 아주 바쁘시고 생활도 넉넉하지 않아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빈 곳을 메우는 가족일 것 같다.

킥보드를 타고 등장한 두 소녀 이야기는 재밌다. 편의점 풍속도를 제대로 그려냈다고 할까. 매콤볶음면과 참치마요 삼각김밥의 환상 짝꿍을 포기할 수 없던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 조합을 무사히 먹게 될까? 덕분에 깜냥도 킥보드를 신나게 타봄.^^

생일파티 에피소드도 흐뭇했다. 그렇구나. 장소도 없고, 돈도 얼마 없는 아이들은 친구를 위해 이렇게 편의점을 이용하기도 하는구나. 우리반 아이들의 편의점 타령에 한숨을 쉬던 나는 이 대목에서 살짝 찡해짐.

손녀가 좋아하는 과자를 냥이들 덕분에 사간 할머니는 손녀딸 떠주고 남은 실로 냥이들 목도리를 떠 오시고.... 이렇게 마음을 주고받는 이야기가 펼쳐져 따뜻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깜냥은 갈 때가 되면 미련없이 떠난다. 깨끗이 정리하고, 바퀴달린 여행가방을 끌고.

요즘 책이 통 눈에 안들어오던 참인데 이번주에는 깜냥을 완독하며 보내야겠다. 다음 장소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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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문경민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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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문학을 할 수 없어서 신변잡기나 감상평 등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문학이란 뭐랄까, 남이 1을 느낄 때 10을 느끼는 사람이 쓰는 것이랄까. 해본 적이 없는 나의 짐작은 그렇다. 다른 작가님들도 다 그렇겠지만 문경민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을 때 이분은 참 남다르게 느끼시는구나, 이렇게 느껴서 좋으실까 힘드실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힘드실 것도 같다. 주인공들도 대체로 아프고 힘들다. 하지만 결말이 늘 풍파가 휩쓸고 간 뒤에 남아있는 것들을 붙들고 한발 내딛는 식이어서 위로받는다. 참혹한 결말을 싫어하는 나는 이래서 이 작가님의 작품들을 좋아하나보다. 살펴보니 작가님의 책들을 반은 넘게 읽었네. 어제도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잠깐 들렀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집어나왔다.

주인공들이 고교생들이니 청소년 소설로 봐도 좋겠다. 특별한 점은 첼로를 하는 예고생들이라는 점. 음악적 내용에 귀가 솔깃해지는 나는 이 소재 때문에라도 단번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잡으셨지? 혹시 자녀분이 예고생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맨 뒤에 작가의 말에 보니 제자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제자의 경험을 토대로 열심히 알아보신 게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때 첼로를 잡고 사랑하게 된 인혜는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집중적인 연습과 레슨으로 예중에 들어갔고 일반적인 코스대로 예고까지 왔다. 얼핏 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스펙을 쌓고 있는 중이지만 어디나 들여다보면 고통과 애환이 있다. 특히 예술이라는 진로에 들어선 경우에 천재가 아님 다음에는 (혹은 천재일지라도) 엄청난 내적 고통을 겪는 것 같다. 사랑하는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경우다. 나는 예술에 근접해보지도 못했지만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다른 진로를 가면서 취미로 예술을 한다면 예술이 때로 위안이나 즐거움이 될 수 있겠지만 오직 그길을 가기로 작정했다면 예술인이 되기 위한 담금질을 견뎌야 한다. 하는 만큼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 세계가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슬럼프도 찾아오고, 특히 천재의 벽을 느낄 때의 좌절감.... 내가 평범한 능력치로 살아와서 그런지 이런 마음에는 특히 공감을 할 것 같다.

게다가 인혜는 레슨비와 악기비 등의 걱정 없이 마음껏 꿈을 펼칠 형편도 아니다. 부모님은 걱정 말라고 하지만 빠듯한 집안 형편을 인혜가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첫장부터 실기시험장에서 나온 인혜의 모습을 비춘다. 연주는 형편없었고 자괴감은 어깨를 짓누른다. 인혜의 마음이 지금 복잡하고 괴로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인혜를 이해하고 함께 해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중학교 시절 내내 인혜의 레슨 동행을 해주신 분이다. 고마운 할머니께 인혜는 마음 표현을 잘 못했고 그래서 지금은 죄책감에 빠져있다. 둘째는 그당시 레슨 선생님이자 악연이라 생각하는 엄정현 선생님이 실기시험장에 오셨다. 과거 그분의 레슨은 혹독했고 인연은 안좋게 끝났다. 다시 등장한 그분의 존재는 그러잖아도 너덜너덜해진 인혜의 마음을 더욱 짓누른다.

이런 내용 뿐이면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에 작가는 눈을 떼기 어려운 여러 가지 요소들을 넣었다. 인혜와 악연인 엄정현 선생님의 심사 부정에 대한 소문, 같은 학교 첼로 동기들간의 이야기, 그중 대호와 연수가 인혜도 모르게 인혜 할머니와 알고 지낸 사연, 거기에 덧붙여 엄정현 선생님까지 관련이 있는 사연들이 흡인력 있게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작가님의 작품에 의미있게 나오곤 하는 장애인의 존재도 있다. 할머니는 말년에 그 장애인의 활동지원사로 일하셨다. 예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을 올해는 복도에서 자주 만나뵙게 된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이다. 이 직업을 아름답게 그려주셔서 감사하고, 그런 분들이 많아지길 빌게 된다.

많은 오해와 미스테리가 풀리고, 인혜는 인혜대로, 친구들(연수와 대호)은 친구들대로 자기 앞의 삶을 씩씩하게 걸어나가려 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리고 작품의 첫머리와 마무리에 등장하는 소재,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브릿지’의 의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네 줄의 현을 떠받치고 굳건히 서 있는 작은 브릿지가 어쩐지 자신의 모습 같다. 곧 시작될 연주를 기다리다 인혜는 깨닫는다. 슬픔은 건너가는 것이라는 걸.
고요가 흐르듯 허물어지며
인혜가 예감한 정확한 그 순간에

첫 음이 시작되었다.』

이 책이 나에게 준 소득이 하나 있다. 첼로곡들을 찾아서 들어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재클린의 눈물」. 들어보니 익숙한 선율이고 제목도 처음 듣지는 않는데, 이곡의 사연은 검색해보다 알게 되었다. 오펜바흐의 미발표곡이었다가 오랜 시간 후에 이 제목이 붙어 연주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목의 재클린은 당대를 휩쓴 첼로 연주자였으나 온몸이 굳는 불치병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첼로도 떠나보내야 했다. 그 고통과 슬픔이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 곡과 함께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냐”고 그녀가 물었다는 글을 읽자니 그동안 전혀 몰랐던 사람의 삶의 고통의 끝자락이라도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지휘자인 그녀의 남편과 제작했던 음반을 듣는 것으로 남은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 (남편은 다른 사랑을 찾아 그녀의 곁을 떠남) 인생사 남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고, 하여간 나는 뒤늦게 알게된 「재클린의 눈물」에 젖어서 이 저녁을 보낸다.ㅠㅠ

또 한가지는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찾아보게 된 점인데, 이 악기도 유튜브에서 본 적은 있으나 제대로 찾아서 곡을 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이 책에서 연수가 반도네온으로 연주한 ‘리베르탱고’를 찾아서 들어봄) 이런 식으로 뭔가 더 찾아보게 되는 책이 나는 좋다.

이렇게 하여 이 책을 읽고 내 마음에 가장 남은 사람은 비운의 첼리스트 재클린?(이 책에서는 곡목만 나올 뿐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데^^) 그렇기도 하지만 인혜와 친구들, 할머니, 레슨 선생님들,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든 등장인물들에 이렇게 저렇게 마음이 간다. 그냥, 사는 거 다들 어렵구나. 서로 응원합시다, 이런 마음이다. 휘어진 브릿지처럼 애써 지탱하고 버티는 모든 인생들에 대한 격려. 이 책이 주고자 하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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