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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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0년대 말의 이른바 ‘반란의 시대‘를 뚫고 나온 세대의 사람이라서 ‘체제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의식은 나름대로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라고 할까, 그보다는 우선, 그래도 명생이 표현자의 말단으로서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내게 맞는 스케줄에 따라 내가 원하는 대로 쓰고 시팓. 그것이 작가인 내가 가져야 할 최저한의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그 개략은 처음부터 상당히 확실했습니다. ‘아직은 잘 쓰지 못하지만 나중에 실력이 붙기 시작하면 사실은 이러저러한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합당한 내모습이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항상 하늘 한복판에 북극성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지금 서 있는 위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잘 보였습니다. 만일 그런 정점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곳곳에서 상당히 헤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P105

세게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채집 무제한 입니다.이런 멋진직업, 이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 P140

어떻게 그렇게 매일매일 달리느냐, 의지가 참 강하다, 라고 감탄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내가 보기에는 날마다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퇴근하는 일반샐러리맨이 체력적으로 훨씬 대단합니다. 러시아워에 지하철을 한 시간씩 타는 것에 비하면 나 좋을 때 한 시간 남짓 달리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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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쏜살 문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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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나는 집에서는 일본인 부모님들과 전혀 다른 생활을 했습니다. 집에는 다른 규칙, 다른 기대감, 다른 언어가 있었습니다. 내 부모님의 원래 계획은 한두 해 후에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영국에 온 후로 십일년 동안 우리는 줄곧 ‘다음 해‘에 돌아간다는 생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 부모님은 이민자로서가 아니라 방문자로서의 관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부모님은 영국인들의 신기한 관습을 자신들에게 적용시켜야 한다는 이ㅡ무감 같은 것 없이 그에 대한 견해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일본으로 돌아가 성인으로서의 삶을 그곳에서 살기로 오랬동안 예상했던 만큼 교육에서도 일본 현지의 수준을 유지하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매달 일본에서 오는 소포에는 그 전 달의 만화 잡지, 일반 잡지, 교육 자료의 요약본이 들어 있었고, 나는 그 모든 것을 허겁지겁 읽어 치웠습니다. 그 소포는 내 10대 어디쯤부터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 P21

하지만 옛 친구들과 친척들에 대한 부모님의대화, 일본에서 보낸 삶의 이런저런 일화들은 나에게 일본에 대한 이미지와 인상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언제나 놀랍도록 크고 잘 정돈된 나만의 추억 창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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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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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감탄으로 시작했다. 내용이 명료하고 문장도 시원시원해서 읽는 재미와 맛이 있다. 뒤로 갈수록 웃음이 나왔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말로 치면 뼈를 때리고 듣는 사람을 순살로 만들어 버리는 문장들이 웃겼다. 그리고 책의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가면서는 작가가 좀 안타깝고 감히, 내가 그를 얕보고 비웃게 되는 지점도 생겨났는데 이는 작가가 너무 자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감상적 문장으로 명성을 얻은 소설가를 욕하고 젊어서 죽어 과한 후광을 얻게된 소설가를 욕하고 소설에 집중하지 않고 에세이를 쓰거나 방송을 하며 셀럽으로 사는 소설가를 욕하고... 


한 마디로 자기 빼고는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모든 작가들을 모두까기 하고 있는데, 문예지나 출판업계에 대한 비판은 고개가 끄덕여이는 지점이 있었지만(작가의 실력이 아니라 연차에 따라 원고료를 지급하는 관행, 작품의 수준이 미달하여도 문예지 분량에 맞추어 끼워넣기 식으로 출판하는 안일함 등) 그의 그런 과한 비장함이 결과론적으론 좀 우습게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쓴 소설이 그가 욕하는 소설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나의 감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출판된 그의 책의 권수나 판매량을 봐도, 그 역시 그가 그리 욕하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잘 팔리는 작가이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에세이보다 소설이 더 뛰어나고, 단지 그걸 알아보는 독자가 적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높은 소설가의 기준을 세우듯이 이 세상엔 뛰어나고 좋은 독자들도 많고 그것이 드러나는 건 결국 판매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재능이 있음에도 뜨지 못하는 작가들도 많을 것이나, 마루야마 겐지 정도로 유명한데도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잘 팔린다는 건 결국 그의 소설이 에세이보다 별로란 뜻 아닌지. 그리고 그의 소설이 (그 스스로의 믿음보다 독자들의 눈에) 구린 건 바로 저런 비대한 에고와 비장함 때문이다. 별 것도 아닌 문장을 비장하게 적어놓아서 몇 문장만 읽어도 느끼하고 느끼하다... 원고를 컴퓨터로 쓰지 말고 원고지에 쓰고 그걸 또 종이에 손으로 7-8번씩 옮기며 퇴고를 하고 등등 요즘 시대에 도대체 이게 무슨 기행인가 싶은 방법들을 권유하는데 그래서 나온게 그런 문장들이라면 그는 차라리 글을 쓰는 데 들어가는 과도한 정신적 에너지를 좀 줄이는게 낫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럼에도 소설가가 되고 싶은 누군가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독자들이 한 번은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은 한다. 냉소적이면서도 정확한 작가의 시각은 과하지 않은 수준까지는 꽤 괜찮기 때문이다. 제발, 진짜 소설가가 너무 되고 싶은 어린 사람들은 좀 읽지 않았으면 싶기는 하다. 읽고 진짜 이렇게 할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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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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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다 보면 1,2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당신 은 사람은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쓸데없는 일에, 하나마나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 P57

하루아침에 멋진 소설을 쓰겠다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못한다고 재능이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당신은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먼 길을, 평생에 걸쳐도 도달하지 못할 만큼 먼 길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흥미로운 길을 지금 막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로 품이 깊은 일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뭘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수시로 직업을 바꾸면서 불만 가득한 삶을 살아갈 겁니다. - P58

영화나 TV는 많은 사람과 같이볼 수 있고, 음악과 미술도 사람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책 한 권을 동시에 보는 일은 없지요. 문학만큼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즉 자신의 영혼과 마주할 수 있는 예술은 없습니다. 책을 읽는 이들은 삶의 의미를 따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심각한 의문을 품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혼과 마주한 나머지 책을 집어 듭니다. 그런 심정으로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고독합니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고독을 구원할 수 없다면, 최소한 질서 정도는 세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문학의 사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보다 몇 배는 깊은 고독을 경험해야 합니다. 고독의 숙련공이 아니면 소설가일 수 없습니다. - P74

일반적으로 조금 더 쓰고 싶다 하는 시점에 그만두는 것이 선배들의 경험에서 나온 교훈입니다. 그리고 이는 진실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쓰고 싶다, 조금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쓰면 결국 이제 더는 쓰고 싶지 않다, 이제 못 쓰겠다 하는 시점에 펜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면 자신감을 잃고 스트레스를 받아 다음 날 집필에 지장을 줍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계속되면 작품의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건강도 해칠 수 있습니다. 매일 여유를 남겨 두고, 자신감이 고조되었을 때 펜을 내려놓으십시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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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가지이 모토지로 단편선 북노마드 일본단편선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안민희 옮김 / 북노마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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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와 내용이 거미줄처럼 가느다랗고 섬세하다. 아주 짧은 분량으로도 선명한 이미지와 여운을 남기는 좋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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