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12
존 파울즈 지음, 정영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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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 하나를 버리는 데서 얻는 안도감을 자유에 대한 사랑이라고 오해했다.

나는 다시 말을 붙였다. "이 책 읽어 봤어요?"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죠. 문학 따위는 집어치우고요. 당신은 똑똑하고, 나는 아름다워요. 이제 자신이 정말로 누구인지에 대해 얘기해요."

적어도 그는 위선자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서 으레 느껴지는 매력이, 균형 잡힌 사람의 매력이 있었다.

(소설에 대해)"왜 몇 가지 않되는 진실에 이르려고 수백 페이지나 되는 거짓과 씨름해야 하는 거요?"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 같은 시간이 찾아오는 법이오. 그런 순간이 오면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하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늘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오. 당신은 이것을 알기에는 너무 젊소. 여전히 뭔가가 되어 가고 있으니까. 어떤 존재인 것이 아니라."
"만일 그 전환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되는 거요. 그 순간을 인식하고, 그 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소."

열아홉 살에는 단순히 뭔가를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소. 정당화하기도 해야 하는 거요.

어떤 의미에서 그는, 어쩌면 언제나 부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극도로 순진한 사람이었소. 자기 부정이라는 것은 어떤 미적 섭생의 일부를 이루지 않는 한 그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소. 한번은 그와 함께 서서 순무 밭에서 일을 하는 소작인들을 바라본 적이 있소. 밀레의 그림에 나오는 것 같은 광경이었소. 그때 그가 한 말은 "저들은 저들이고, 우리는 우리라는 사실이 아름답소."가 전부였소.

"네가 마시는 것은 무엇인가? 물인가, 파도인가?"

나는 늘 남녀가 만났을 때 함께 잠을 자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는 10분 안에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고 그 처음 10분 이후의 시간은 세금 같은 것으로, 약속된 계약이 정말로 즐거울 것 같으면 지불할 가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금세 쓸데없는 비용이 되어 버렸다.

앨리슨은 열 척의 배를 내 안에 띄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줄리는 1천 척의 배를 띄웠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사랑을 나누었다. 그것은 섹스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물론 섹스가 훨씬 더 현명했을 테지만.

"나는 매력적인 남자가 반드시 매력적인 영혼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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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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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들면 문득 시간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시간의 경과가 고통이 될 때는 자는 게 최고다. 죽는 것도 아마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하지만 죽는 것은 쉬운 일 같아도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평범한 사람은 죽는 대신 수면으로 임시변통하는 것이 간편하다.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아도, 번민이 있어도, 영혼이 달아날 것 같아도 배만은 어김없이 고파오는 법이다. 아니, 그보다는 영혼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밥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사람의 생각만큼 들락날락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있구나 하고 안심하고 있으면 이미 없다.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하면 아니, 있다.

정리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소설처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처럼 재미있지는 않다. 그 대신 소설보다 신비하다. 모든 운명이 각색한 자연스러운 사실은 인간의 구상으로 만들어낸 소설보다 더 불규칙적이다. 그러므로 신비하다.

"당신은 날 때부터 노동자는 아닌 것 같은데..."
한바 책임자의 말을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그 후 이런저런 일을 겪었고 또 울고 싶어진 일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닳고 닳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대체로 울 것까지는 없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 머릿속에 고인 눈물은, 지금도 그런 처지가 된다면 또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괴롭고 분하고 불안한 눈물은 경험으로 지울 수 있다. 고마움에 흘리는 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전락한 자신이 여전히 예전의 자신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인식되었을 때 흘리는 기쁨의 눈물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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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전규태 옮김 / 열림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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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상의 표지 이미지가 너무 깜찍해서 구매한 것이지만, 정말로 받아보고서 모양새가 예뻐서 요리보고 조리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한참을 즐거워했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최근의 소세키 전집 디자인에도 심드렁하였는데(내가 그 시리즈를 구매한 건 출판되지 않은 소세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였다) 이 책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아직 출간되지도 않은 근간 목록까지 훑으며 이 시리즈를 모아 놓으면 얼마나 예쁠까 상상을 하였다. 이건 사야지 이건 말고 가늠을 해 가며...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출판되는 책보다 작은 판형인데 일본의 문고판 느낌을 내려 한 것인가 싶다. 양장도 아니고 겉의 띠지를 벗겨내면 마치 헐벗은 듯 빈약한 모습인데 그래도 예쁘니 다 용서된다. 이 만듦새로 13000원은 너무 비싸다 싶지만 예쁜애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카드나 긁을 뿐. 흠이라면 곳곳에 눈에 띄는 오타들. '그래서 웬지 느끼하다'같은 오타를 보며 예쁜얼굴과 백치미는 진정 한 세트로 묶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어 한숨이 나온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인간실격만을 읽어 보았는데 너무 깊어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자기혐오가  이책에선 무척 옅어진 모습이다. 수록된 단편들의 화자가 모두 여성이다 보니 그에 맞추어 여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돌이켜 보고 세상의 추함에 반응하는지를 그려놓았는데, 이들의 자기혐오란 인간실격에 비하자면 발을 동동거리는 귀여운 수준이다. 여자들은 자신을 파괴하는데 있어서도 남자만큼은 되지 않는다는 마초이즘일까? 김승옥의 강변부인을 읽을 적엔 아니 남자가 여자를 어찌 이리 잘 안대 싶어서 소름이 끼쳤는데 여성독자가 보기에 이 글은 그렇게 여자로서 간파당한다는 느낌보다는 다자이 오사무란 사람이 만들어 낸 여자란 이런 모습이구나 하고 읽는 재미가 있었다. 


...여자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입 밖에 낼 수 없는 비밀이 있게 마련이다. 사실 그건 여자의 '타고난 운명' 같은 것이다. 여자란 누구나 '진흙탕'을 하나씩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확실히 그렇다. 여자에게는 하루하루가 전부니까. 남자와는 다르다. 죽은 다음의 세계는 생각지 않고 제대로 사색할 줄도 모르는 속물, 시시각각의 아름다운 완성만을 소원하고 있는 속물, 생활을, 생활의 감촉에만 탐닉하는 바보! 여자가 찻잔이나 예쁜 옷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만이 삶의 참보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진정 찻잔이나 예쁜 옷만으로 해결될 것이라면 21세기의 여자들이 이 책을 쥐고 있지 않을테지만 저 바보!란 말이 너무 귀여워 분한 마음은 들지도 않는다. 


남은 일곱 권의 책도 예쁘게 예쁘게 만들어 주시길. 오자 한 번만 더 봐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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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전규태 옮김 / 열림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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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 있을 때와 앉아 있을 때 전혀 생각하는 게 달라지나 보다. 앉아 있을 때에는 왠지 맥없이 무기력한 일들만 생각하게 된다. 내 맞은편 자리에는 네뎃 사람, 같은 또래의 샐러리맨들이 멍청하게 앉아 있다. 서른 남짓으로 보이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눈이 멀뚱하고 혼탁하다. 패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이들 중 누군가에게 슬그머니 웃어 보인다면 그 웃음 한 번만으로 나는 질질 끌려가서 그 사라과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파국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미소 한 번으로 족하다. 무섭다. 이상한 노릇이다. 조심해야겠다.

바람이 세찬 탓일까. 구름이 유난히 예쁘다. 마당 한쪽에 장미 네 송이가 피어 있다. 노랑 하나, 하양 둘, 분홍 하나. 꽃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인간에게도 분명 좋은 면이 있다고 새삼스레 생각해본다.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도 인간이고, 꽃을 사랑하는 것도 인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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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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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쌓아 날을 이루는 것도, 날을 쌓아 달을 이루는 것도, 달을 쌓아 해를 이루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을 쌓아 무덤을 이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의 스물넷은 남자의 서른 살에 해당한다. 도리도 모르고 부정도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안정되는지도 물론 모른다. 위대한 고금의 무대가 한없이 발전하는 가운데 자신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물론 모른다. 다만 말주변만은 뛰어나다. 천하를 상대로 하는 일도,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일도, 일단의 군중 앞에서 일을 처리하는 일도 여자는 할 수 없다. 여자는 단지 한 사람을 상대하는 재주는 터득하고 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싸울때 이기는 사람은 항상 여자다. 남자는 항상 진다.

금은 색이 순수하고 진하다. 부귀를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색을 좋아한다. 영예를 열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색을 고른다. 명성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이 색으로 장식한다.

꿈을 버릴까? 버릴 수 있는 꿈이라면 밝은 곳으로 나가기 전에 버리면 된다. 버리면 꿈이 달려든다.

5년 동안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목숨보다 확실한 꿈속에 있던 오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5년 전은 옛날이다. 서쪽과 동쪽으로 갈리고, 길고 짧은 옷소매로 갈리고, 이별의 슬픔을 가리는 저녁 구름이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의 빗장이 되어, 만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진 지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바람불면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비 내리면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달밤에 핀 꽃을 보고도 변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개미는 단것에 모이고 사람은 새로운 것에 모인다. 문명인은 격렬한 생존 가운데서 무료함을 한탄한다. 서서 세 번의 식사를 하는 분주함을 견디고 길거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병을 걱정한다. 삶을 마음대로 맡기고 죽음을 마음대로 탐하는 것이 문명인이다. 문명인만큼 자신의 활동을 자랑하는 자도, 문명인만큼 자신의 침체에 괴로워하는 자도 없다. 문명은 사람의 신경을 면도칼로 깎고 사람의 정신을 나무공이로 둔하게 한다.

늙어서 자식이 없으면 불안하다. 노후에 기댈 자식이 없으면 더욱 불안하다. 기댈 자식이 남이 되는 것은 불안한 데다 꺼림칙하기까지 하다. 기댈 자식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 안 되는 법도는 꺼림칙할 뿐만 아니라 무정하다.

긴고는 부모라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담는 물의 모양을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그대로가 좋습니다. 움직이면 변하지요.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움직이면요?"
"예, 사랑을 하면 변합니다."
여자는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꿀꺽 삼킨다. 얼굴이 새빨개진다.
"시집을 가면 변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그대로가 좋습니다. 시집을 가기에는 아깝습니다."

"서양은 사람을 두 유형으로 꾸며서 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두 유형이라니?"
"예의 없는 내면과 아름다운 외면요. 성가시니까요."
"일본도 그렇지 않으냐? 문명의 압박이 심하니까 겉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으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지."
"그 대신에 생존경쟁도 치열하게 되니까 내면은 점점 무례해지겠지요."

세상에는 진지함이 어떤 건지 평생 알지도 못한 채 끝내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네. 껍데기만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흙으로만 만들어진 인형이나 다를 바 없지. 진지함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있는데도 인형이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네. 진지해지고 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네.

인간은 진지해질 기회가 거듭될수록 완성되어가지. 인간다운 기분이 드는 거네.

길을 나서면 무언의 객
집을 나서면 머리를 깎지 않은 중

문제는 무수하게 존재한다. 좁쌀인가 쌀인가, 이는 희극이다. 공인가 상인가, 이 역시 희극이다. 저 여자인가 이 여자인가, 이 역시 희극이다. 쓰즈레오리인가 슈친인가. 이 역시 희극이다. 영어인가 독일어인가, 이 역시 희극이다. 이 모든 것이 희극이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삶인가 죽음인가. 이것이 비극이다.

10년은 3천6백 일이다. 아침부터 밤가지 보통 사람의 심신을 피로하게 하는 문제는 모두 희극이다. 3천6백 일 내내 희극을 행하는 자는 결국 비극을 잊는다. 어떻게 삶을 해석할까 하는 문제로 번민하다 죽음이라는 글자를 염두에 두지 않게 된다. 이 삶과 저 삶의 선택에 바쁘기에 삶과 죽음이라는 최대 문제를 방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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