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음, 서제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리는 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내게 해준다. 거리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 P11

뉴욕 거리는 자기 자신의 역사라는 징역형으로부터 도망쳐 열린 운명이라는 가능성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 P22

‘어디서든‘ 꽃을 피우려면 사람은 주변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낼 만큼 뛰어나거나, 속한 환경에 맞춰 살 만큼 겸손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라도 아니라면 뜻이 맞는 최소한의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평범한 식물들이 교외의 잔디밭에 심어지는 것과 풍요롭게 가꾼 정원에 심어지는 것의 차이다. 정원에서는 똑같이 수수한 나무와 꽃인데도 한데 모인 그 풍셩함 덕분에 ‘있어야 할 자리‘에서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8번로에서는 여자가 경험한 것들이 그를 흥미진진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남부의 어느 도시 대학에 데려다 놓는다면, 그는 이내 쓸쓸한 사람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 P24

레너드와 나는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어느 베이커리 쇼윈도 앞을 지나가는 중이다. 빛나는 판유리 뒤에 마들렌이 한 접시 가득 놓여 있다.

"마들렌은 한 번도 안 먹어봤네." 내가 말한다. "저건 맛이 어때?"

"맛있어." 레너드가 대답한다. "폭신폭신하고." 그가 덧붙인다. "그걸로 여섯 권짜리 장편소설을 쓸 정도는 아니지만." - P31

"그 사람들은 어른인 척하 거야." 레너드가 말했다. "그뿐인 얘기지. 40년 전에 사람들은 결혼이라고 불리는 벽장에 들어갔어. 벽장 안에는 옷이 두 벌 있는데 너무 뻣뻣해서 저절로 서 있을 정도야. 여자는 ‘아내‘라고 불리는 드레스 속으로, 남자는 ‘남편‘이라고 불리는 정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지. 그게 다야. 그 사람들은 옷 속으로 사라졌어." 레너드는 성냥을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지금 우리는 척을 하지 않아. 벌거벗은 채로 여기 서 있지. 그런 거야."

"나는 이 삶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한다.
"누군들 적합하겠어?" 레너드가 내 쪽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한다. - P41

생각을 할 때 나는 덜 외로워졌다. 내게는 나 자신일는 친구가 있었다. 나 자신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새로워진 지혜의 힘을 느꼈다. 그리스인들로부터 체호프를 거쳐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까지,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본성을 탐구하는데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모든 사람은 오직 일하는 자기 자신의 생각만이 자아의 고독을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P60

나는 방 한가운데 알몸으로 섰다.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사랑이라는 환상은 침해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해야 할 생각들이, 배워야 할 생각들이, 배워야 할 기술이, 발견해야 할 자아가 있었다. 고독은 선물과도 같았다. 혼자서 발을 들여놓을 의지만 있다면 나를 반겨줄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문으로 걸어나갔다. - P70

세상에서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과 세상에서 존재를 인정받아야 하는 일에 대한 적대감이... - P128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그가 안드레아에게 말했다. "남자들이 메인 요리였어. 하지만 지금은 그냥 양념일 뿐이지. 조언하자면, 가능한 빨리 그 단계에 도달하길 바라. 인생은 그때가 돼야 해볼 만해지거든." - P159

기질을 공유한다는 것은 한 벌의 톱니바퀴가 작동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발상은 복잡하지 않아도 톱니바퀴의 맞물림은 완벽해야 한다. 거의 정확한 정도로는 안 되고, 완벽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톱니바퀴는 돌아가지 않는다. - P172

어째서인지 뉴요겡서는 하루를 얼마나 녹초가 되어 보내든 간에 시간이 여전히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고립이라는 개념에 한계가 정해진다.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있지는 않더라도 내가 호흡하는 공기 속에 격렬한 감저이 가득하다. 내가 정치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매일의 대화 속에 정치가 담겨 있다. 내 욕망이 강렬하지 않지만, 욕망은 분명 이 도시에서 통용되는 화폐다. - P1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값비싼 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5
메리 웨브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전집은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책들을 초역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독자로서 반갑고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까지도 들지만. 책을 읽어보면 어쩔 수 없이, 이 책이 지금까지 소개되지 않았던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문학을 A급이라 한다면 이걸 B급이라 불러야 할까? 거칠다거나, 세련됨이 부족하다거나, 평면적이라거나. 하나의 작품으로서 개성은 있지만 전체적 총점의 차원에서는 확실히 유명한 고전에 비해서는 부족한 지점들이 있다. 이 책은 언청이 여주인공이 동네의 잘 생긴 총각을 사랑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이 책의 홍보 문구)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사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언청이 여주인공보다는 그녀의 오빠인 기디언이다. 계급상승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념을 가진 그는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소설의 캐릭터로서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건 여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조연인 기디언이며 그렇기에 여주인공의 행동이나 사건의 진행은 수동적이며 우연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 한마디로, 문학으로서의 수준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단점은 결말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이 책의 매력은 고대나 중세 문학에서 다루는 '비극'을 그 시대의 배경에서 잘 살리고 있다는 점. 한계라면 이미 문학은 그 수준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는데 우리 시대에 이 이야기를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는점. 다시 말하자면 그 시대엔 왜 인기가 있었는지 잘 알겠다는 뜻도 된다. 승자만 살아남는 냉정함은 자본주의 세상에서보다 문학의 세상에서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읽는 이전 세대의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뛰어났던 작가와 작품을 돌아보는 이 기획은 유의미하고 이런 책을 읽을 기회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지만 21세기 독자로서 큰 기대는 살짝 접는 것이 실망도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값비싼 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5
메리 웨브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 고통받을 때 시간이 대체 무엇이겠나? 아무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사랑에 굶주린 신랑의 귀에 서둘러 돌아갈 시간을 알리는 야경꾼의 목소리가 들어올까? 새벽녘에 세상을 뜰 이는 어차피 보지도 못할 해가 몇 시에 뜨는지 관심이 있을까? 우리 가련한 존재들이 우리가 처한 상황의 강력한 힘에 맞서 버틸 때, 평온함 혹은 평온함으로 여기는 것을 얻으려 고군분투할 때, 투어장에 꼼짝없이 갇힌 짐승처럼 망연자실해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을 잊는다. 그래서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바깥세상에서는 무수한 일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김애란 외 지음 / 프란츠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은 며칠 전 나는 화면 속 로버트의 얼굴을 보고 작게 동요했다.

‘저 남자, 날 감상하고 있어‘란 자각이 들어서였다. 동시에 ‘오랜만이다‘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동자에 담긴 호감과 호기심 그리고 성적 긴장을 마주하는 것은. 그런데 그게 전혀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ㅇ낳았다. 오히려 로버트는 욕망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편에 속했다. 처음 나는 ‘내가 너무 외로워서 그런가?‘ 스스로를 의심했다. 현수와 헤어진 뒤 누군가와 정신적으로도 또 육체적으로도 진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이 인간적인 호감인지 성적 주체가 되는 기쁨인지 성적 대상이 되는 설렘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그 모든게 섞인 총체적인 무엇일지 몰랐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 P24

큰 교훈 없는 상실, 삶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그걸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 P38

"언어도 마찬가지야. 사용할 당시에만 맞는 말이고 결국은 변하게 돼 있어. 맞았던 답이 틀려지는거지. 명심해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음악뿐이야." - P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양의 언어를 만나다 - 당신의 시선을 조금 바꿔줄 스페인어 이야기
그라나다 지음 / 북스토리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페인에서는 중간 이름에 dolores(고통), angustias(고뇌)를 넣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이름에 넣을 수 있는지 물었다. 성경에 나오는 시련, 고통도 인간에게 필요한 과정이기에 이러한 단어도 이름에 넣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P151

남태평양에는 섬나라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곳인 키리바시 공화국의 키리티마티 섬과 쿡 제도(뉴질랜드령)는 매우 가깝고 시각이 같아 겉보기에는 잘 통할 것 같다. 그런데 시차가 24시간으로 실은 날짜가 전혀 다르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모른다. - P1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