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시간 노리코 3부작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월
구판절판


그런 점도 좋다. 한때 같이 잔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남자는 쓰레기다. 요사노아키코의 노래에도 '남자 허물없이 다가올 날을 생각하면 사랑하는 것도 귀찮아지네'라는 구절이 있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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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남자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지세현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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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이란 생각하는 만큼 움직여요. 모두 가만히 있다가....갑자기 움직이면 움직이는 만큼 인간처럼 되고....-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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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구판절판


그 나자는 거의 매일 같이 부대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미군부대의 잡역부들은 일자무식으로부터 대학을 나온 사람까지 다양했지만 다들 어딘지 켕기는 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병역 기피자가 많았다. 정식으로 허락된 건 아니지만 군복을 입을 수 있고,꼬부랑글씨로 된 신분증이 나오니까 요령만 좋으면 큰소리 쳐가면서 검문을 피할 수 있었다. 찌들고 떳떳치 못한 사람들은 군복이 썩 잘 어울리고 건강하고 거침없어 보이는 미남자에 대해 이것저거 궁금해했다. 동생뻘되는 친척이라는 소리는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도 안 믿었다. 사지가 멀쩡한 상이군인이라는 신분은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우린 그런 것들을 즐겼다. 그런 것들은 우리의 행복감을 상승시켰다. 남이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않는 비단옷과 보석이 무의미하듯이 남이 샘내지 않는 애인은 있으나마나 하지 않을까. 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 나는 내 몸에 물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는 나를 구슬 같다고 했다. 애인한테보다는 막내 여동생한테나 어울릴 찬사였다.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도 곧 그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 같은 -37쪽

이슬, 구슬 같은 물결....어디다 그걸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그해 겨울은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이었다. 안감냇가 말고 애인들이 갈 수 있는 데는 많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대학생이 되고 고드악교 때의 금기의 장소에 미처익숙해지기도 전에 난리가 나고 서울은 폐허가 돼버린 것이다. 그나마 극장이 남아 있는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전시의 극장은 난방이 안됐다. 그는 내 옆에 꿇어앉아 자기 털장갑을 뒤집어서 내 발끝에 씌워주곤 했다. 손가락장갑을 바닥만 뒤집으면 그 안에 다섯 손가락이 뭉쳐 있게 되고 그걸 발끝에다 신으면 아무리 꽁꽁 언 발가락도 스르르 녹으면서 훈훈해진다. 그는 어떻게 그런 신통한 생각을 해낼 수가 있었을까. 그건 일석이조였다. 언 발가락이 따뜻해졌을 뿐 아니라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 당하고 있다는 만족감까지 맛볼 수 있었으니까.-38쪽

앉은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경양식도 같이 파는 찻집은 자리가 꽉 차 주로 쌍쌍인 젊은이들이 내가 앉은 테이블의 빈자리는 잠시 넘보다가 나가버리곤 했다. 주인의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었다. 연탄갈비집도 영업을 시작했을 시간이다. 그 가게 앞을 카바이트와 연탄불 냄새를 그리워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늙은이가 눈에 선하다. 그는 누구일까. 애무할 거라곤 추억밖에 없는 저 불쌍한 늙은이는.
나는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 쌍쌍이 붙어 앉아 서로를 진하게 애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늙으닝 하나가 들어가든 나가든 아랑곳없으련만 나는 그들이 그 옛날의 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통수가 머쓱했다. 온 세상이 저애들놀아나라고 깔아놓은 멍석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101쪽

나에게 그가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인 것처럼 그에게 나도 영원히 구슬 같은 처녀일 것이다. 우리는 그때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다. 우리가 신봉한 플라토닉은 실은 임신의 공포일 따름인 것을.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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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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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같은 글까지 더하면 장장 360페이지이다.

거기다 양장에다가 반딱반딱하는 종이..에세이집이랑 두꺼운 두께, 반딱반딱 종이는 정말!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문학사상사에게 이쁜 책을 기대하는 건 무리이겠지만..)

글이 많아서일까, 하루키에게 기대했던 발랄함 엉뚱함보다는 그의 고집이 더 크게 다가왔다.

에. 그것은 그렇지만 역시 제 생각엔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진행이 계속 반복된다고 해야할까 ^^

하긴 그 나이에,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에게 제 고집이 없다는게 더 이상한 일일테지만.

꼭 찝어서 말할 순 없지만 그의 그런 고집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요즘 그러곤 한다. 음악하는 사람이나 글쓰는 사람이나, 이런 예술하는 사람들의 예민함, 욕심, 하나라도 성에 차지 않으면 견뎌내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에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피곤해지곤 한다.

360페이지의 번역어투로 인한 피곤함이 더해져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일상적인 소재가 많아서 그의 색다른 발상을 볼 수 없다는 점도 아쉬웠고.

그의 다른 에세이에 비해 쉽게 쉽게 썼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독자입장으로서 정성들인 글이 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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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8-01-0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밖엔 보지 않았어요. 20대에 읽은 '상실의 시대'는 너무 공감가는 얘기였지요. 그 나이대의 사람들의 감수성을 흔드는 뭔가가 있었어요. 기억 안나는 어느 소설가는 혹평했지만요. 지금은? 글쎄, 그 때처럼 강한 인상은 없겠지요. 그저 담담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사보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좋아하시나요?

LAYLA 2008-01-0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단 에세이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독자 중 한명입니다. 전 정작 상실의 시대는 읽지 않았어요. 몇 번이나 시작은 했는데 많이 못 읽게되더라구요 ^^

털짱 2008-01-10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님을 만나 참 좋았습니다.

올 한해도 님과 같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요...?

알라딘이 올해는 좀 더 훈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비밀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8월
구판절판


물론 선의에서 무의식적으로 학생에게 손을 대는 열성적인 선생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남기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체벌이 열성의 하나의 방법론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것은 세속적인 권위에 의해 지탱되는 단지 비굴한 폭력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28쪽

정보라는 것은 참 묘해서, 들어오는 정보의 어디까지가 필요하고 어디서부터가 필요하지 않은지를 생각해보면, 점점 경계선이 불분명해진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전부 필요없는것 같고, 반대로 일단 정보가 부족하다고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면 한없이 불안해지게 된다. -46쪽

사람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차 감퇴하는 것이 비단 성적인 능력만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능력'도 감퇴한다. 이는 확실하다. 예컨대 젊었을 적에는 나도 제법 빈번히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았다. 사소한 일로 좌절해서 눈앞에 깜깜해지거나, 누군가가 던진 한 마디에 가슴을 찔려 발밑의 땅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꽤 심각했던 나날이었다-130쪽

왜 나이를 먹으면 상처받는 능력이 떨어지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또 그것이 나 자신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쪽이 마음이 편안한가 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처받는 일이 적은 쪽이 편안하다. 지금은 누군가한테 아무리 심한 말을 듣더라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한테 배반당해도, 믿고 빌려준 돈을 못 받더라도, 어느 날 아침 펼쳐든 신문에 하루키는 벼룩의 똥만큼도 재능이 없다는 기사가 실려있더라도 그렇게 상처받지 않는다. 물론 마조히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기분은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일로 낙담하거나 며칠이고 끙끙 앓으며 고민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쩔수 없지 뭐 다 그런거잖아 하고 생각하고 그걸로 잊어버린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잊으려고 애를 써도 쉽사리 잊을 수 없었다. -130쪽

결국 이것은 어쩔 수 없지 뭐 다 그런거야 하고 생각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다시 말해, 몇 번이나 그런 비슷한 일을 경험해왔고, 그 결과 무슨 일이 생겨도 뭐야, 또 지난번과 똑같은 일이잖아? 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이젠 매사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강인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순진한 감수성이 닳아버렸다는 의미이다. 즉 뻔뻔스러워진 것이다. 그러나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보잘것없는 개인적인 체험으로 말씀드리자면, 일종의 순진한 감수성을 간직한 채 내가 속한 직업적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소방수가 레이온 셔츠를 입고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131쪽

그렇지만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그다지 상처받지 않게 된 것은 나라는 인간이 뻔뻔스러워진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면서 나이 먹어서 젊은 애들처럼 정신적으로 상처받고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고 인식했고 나는 그 이후 되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훈련을 쌓아왔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인식에 도달했는가를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그때 절실히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것은 젊은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경향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들에게 부여된 하나의 고유한 권리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131쪽

우디 앨런의 영화 <애니 홀>에서 주인공 올비 싱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실은 말이지, 아주 비관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어. 말하자면, 인생은 호러블한것과 미저러블한 것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 호러블하다는 것은 글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치명적인 경우랄 수 있지. 예를 들면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장애라든가....그리고 음...미저러블 한 것은 그 밖의 모든 것이지. 그러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미저러블한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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