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품절


여자라는 존재는 방으로 가득한 저택 같은 거예요. 거기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가 있고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도 있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거실도 있지요. 그러나 그것들 너머에는 전혀 다른 방들이 있답니다. 누구도 문고리조차 잡아보지 않은, 아예 그런 방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안타 해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방들. 그리고 그 방들 중에서도 가장 깊은 방, 신성하고 신성한 그곳에 영혼이 홀로 앉아 끝내 오지 않을 어떤 발자국을 기다리는 것, 그게 바로 여자의 본성이예요.-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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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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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이라고 믿는다. 이십대 혹은 이십대적 삶에 대한 내 연민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동기라면 동기였다."

뒷표지에 실린 작가의 말 서두이다. 작가의 말도 이렇고, 책에 대한 기사를 봐도 이런 내용인지라 나는 이것이 '자기가 불쌍한줄도 모르는 불쌍한' 20대들에게 바치는 책이라 믿었다. 김영하답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뭐가 뭔지 독자를 헷갈리게 해주시길래 나는 책을 다 읽을때까지도 책의 주제라던지, 작가가 하고싶은 말에 대해 좀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끝까지 읽었건만...마지막 장을 덮고서 속으로 외쳤다. "뭥미??"

책의 앞부분에선 김영하가 요즘 20대를 짚어내려 참 애썼다는 게 (지금20대를 열렬히 살고있는 나에겐) 팍팍 느껴졌다. 가장 인상깊었던건 주인공의 여친인 빛나가 주인공 하숙집에 놔두고 다녔던 물건들이다. 미드를 즐겨보는 그녀의 100G외장 하드 디스크와 바비브라운 립글로스. 근데 뭐랄까, "참 애썼네" 정도는 되었어도 그것이 진실을 꼬집는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보통 20대 여자들은 내장 하드에 미드를 받아보거나 PMP에 넣어서 들고다닐망정 외장하드까지 들고다니진 않는다. 그리고 빛나같은 여자에겐 바비브라운 립글로스가 아니라 맥 립스틱이 어울린다. 아주 사소한 꼬투리이지만 초반부터 걸리적 거렸던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남성작가의 한계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책을 다 읽고나서는 분명해졌다. 김영하는 현재의 20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다시 언급해 보자면

"...온라인은 언제나 부당하게 폄하돼왔다. 그것은 일회성의, 익명의, 무책임한 그리고 심지어는 부도덕한 공간으로 치부되었다. 뭐,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는 바로 그 쓰레기 위해서 자라났다."

그는 쓰레기로 치부되었던 온라인 공간을 놀이터로 삼고 성장한 새로운 세대에 대한 연민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근데 문젠 소설이란게 온라인공간+새로운 세대 요 두가지 이야기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란 말이다. 한 '세대'를 글감으로 다루려 한다면 그 세대의 배경인 정치 경제 문화 기타 등등이 글 속으로 보이지 않게 잘 녹아들어가야 할 것이고 주제의식에 있어서도 어느정도 반영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근데 그는 온라인공간과 무기력한 20대 주인공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고 있다.  인터넷 탐닉과 무기력이라는 것은 그 복합적 배경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의 특징이기에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걸 문제의'원인'으로 보고 여기서 시작하자니 꼬이고 꼬일 수밖에.

주인공(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무기력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책에서는 언급이 구체적으로 되지 않는다. (작가가 사회의 힘에 대해 인지하지 못해 몰라서 안썼는지, 쓸 필요를 못느꼈는지, 주제를 위해 일부러 잘라버린 건지 그 구체적 이유는 알 수 없음)그냥 그는 무기력하고 욕심도 없고 돈을 벌 생각도 없는 대학원을 나온 젊은이이이다. 고아로 자라 사치스런 외할머니의 용돈을 받아 생활하던 그는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남은 것이 빚 뿐이라는 현실을 알게 된다. 집은 빚쟁이에게 넘어가고 무일푼으로 거리로 내쫓긴 그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인터넷 채팅에 탐닉한다.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지만 사장이 그를 모욕하자 바로 그만둔다. 그리고 뭐 여러가지 사건사고를 겪은다음 그의 결론은 이것이다. "더이상 도망치지 말자." 그는 헌책방에 취직한다. 책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분명 일반상식으로 봤을때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이 일할만한 곳은 아니다. 책방에 딸린 쪽방에서 기거하며 "잘될거야 다 잘될거야" 이러면서 책은 끝난다.

다시한번.

뭥미??

책은 '무기력한' 젊은이가 '인터넷'에 탐닉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작가는 그것이 '현실도피'라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그니까 이제 정신차리고 현실로 돌아와서 적은 월급에 고된 일이라도 감샵니다, 하고 넙쭉 받아서 하란건가?  편의점에서 일하다 사장의 모욕에 그만두는 부분은(=정신차리기 전 이야기) 뒷부분(=정신차린 후 이야기)과 대비되어 그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해 보인다. 인격적으로 모욕을 받을 때 저항하는 건 젊은애들의 철없는 행동일 뿐이라는 이런 식의 은근한 메세지는 무섭기까지 하였다.

한 세대가 왜 이런식으로 현실을 피하며 눈감고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그냥 걔들이 그렇게 자라서 그런가? 그들에 대한 연민은 어디서 나온것인가? 취업안되는게 불쌍한가? 그가 진정 젊은 세대에 대한 연민을 가졌다면 최소한 '정신차리고 현실로 돌아와'식의 메세지는 던지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IMF로 부모가 직장에서 짤리는 걸 보았고 돈 무서운 줄 알고 컸으며 꿈보다 먹고사는게 중요하단걸 배우며 자란 세대들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열심히 살고 있는 애들인데 닥친 현실은 가장 답답하고 고되다. 그런 애들에게 답을 제시하는게 힘들다면 그저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고 토닥여줄수 있지 않았나.

작가가 무슨 의도로 넣었는지 모르겠다만 주인공이 대학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원 진학으로 방향을 바꾼 이야기가 나온다. 고아라서 경영대를 나온 그는 금융권 취업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런 애를 '정신이 나약해서 현실도피'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작가는 밟히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싶은걸까?

그렇다고 해서 뭐 내가 주인공이 고학력백수를 끌어모아 '완전고용보장 청년실업수당 제공하라'구호 외치며 시위 벌이는 (산으로 가는) 소설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적절한 일자리를 찾는데 있어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젊은이)'에게 해줄말이 '정신차려'밖에는 없었냔 거다. 화살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나 정부로 향할수도 있었을텐데...애초에 잘못한것이 없는 애한테 정신차리라고 하니 좀 황당할수밖에.

김영하가 386 마지막 쯤 되는가? 그 직후인가? 뭐 어쨌든, 난 그들이 젊은 축에 속하고 지금까지 젊은세력의 상징처럼 불려져왔다고 해서 지금의 20대와 같다는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과 우리는 너무도 다르다.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신차리라는 말은 좀 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운동하는 것도 숭고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경영학을 이중전공하고 상대평가속에서 학점따려고 싸우는 것도 처절하다. 운동을 하면 자긍심이라도 남지 후자는 자기혐오와 싸우며 살려고 '정신차리고' 고군분투하는것이다. 인터넷은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운동장이자 휴식처일지도 모른다. 근데 이것마저 현실도피라고 쏘아붙이면 어쩌란 말인가?

한편으론 경영학과의 한계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가 7년은 공부한 학문인데 이래저래 작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한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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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06-25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아직 안 읽었는데.. 사실 별로 읽고 싶지 않더라구요. ^^; 이 리뷰를 읽으니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되네요. 정신차리라는 말.. 저도 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88만원 세대를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구요 ㅋㅋ 오랜만에 님의 긴 리뷰를 읽으니 기분이 좋네요. 그동안 너무 조용하셨어요~~~ 그래도 잘 지내셨죠?

LAYLA 2008-06-25 23:19   좋아요 0 | URL
네 전 잘 지내요 ^^
이 책을 읽으며 김영하씨도 이제 40에 가깝단걸 다시 생각해봤어요. 같은 인터넷이라도 그 시대의 인터넷이랑 요즘의 인터넷이 같을리가 없지요 흐흐

hanalei 2008-06-27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짧은 기간에 장족의 발전을 하시는군요.
삐딱해진 세상에 삐딱선을 탄다면 바른 생활이겠죠.

땡땡 2008-06-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짧은 기간에 장족의 발전을 하시는군요.
삐딱해진 세상에 삐딱선을 탄다면 바른 생활이겠죠.2
 
아주 사적인 시간 노리코 3부작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월
구판절판


그런 점도 좋다. 한때 같이 잔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남자는 쓰레기다. 요사노아키코의 노래에도 '남자 허물없이 다가올 날을 생각하면 사랑하는 것도 귀찮아지네'라는 구절이 있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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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남자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지세현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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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이란 생각하는 만큼 움직여요. 모두 가만히 있다가....갑자기 움직이면 움직이는 만큼 인간처럼 되고....-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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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구판절판


그 나자는 거의 매일 같이 부대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미군부대의 잡역부들은 일자무식으로부터 대학을 나온 사람까지 다양했지만 다들 어딘지 켕기는 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병역 기피자가 많았다. 정식으로 허락된 건 아니지만 군복을 입을 수 있고,꼬부랑글씨로 된 신분증이 나오니까 요령만 좋으면 큰소리 쳐가면서 검문을 피할 수 있었다. 찌들고 떳떳치 못한 사람들은 군복이 썩 잘 어울리고 건강하고 거침없어 보이는 미남자에 대해 이것저거 궁금해했다. 동생뻘되는 친척이라는 소리는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도 안 믿었다. 사지가 멀쩡한 상이군인이라는 신분은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우린 그런 것들을 즐겼다. 그런 것들은 우리의 행복감을 상승시켰다. 남이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않는 비단옷과 보석이 무의미하듯이 남이 샘내지 않는 애인은 있으나마나 하지 않을까. 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 나는 내 몸에 물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는 나를 구슬 같다고 했다. 애인한테보다는 막내 여동생한테나 어울릴 찬사였다.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도 곧 그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 같은 -37쪽

이슬, 구슬 같은 물결....어디다 그걸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그해 겨울은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이었다. 안감냇가 말고 애인들이 갈 수 있는 데는 많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대학생이 되고 고드악교 때의 금기의 장소에 미처익숙해지기도 전에 난리가 나고 서울은 폐허가 돼버린 것이다. 그나마 극장이 남아 있는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전시의 극장은 난방이 안됐다. 그는 내 옆에 꿇어앉아 자기 털장갑을 뒤집어서 내 발끝에 씌워주곤 했다. 손가락장갑을 바닥만 뒤집으면 그 안에 다섯 손가락이 뭉쳐 있게 되고 그걸 발끝에다 신으면 아무리 꽁꽁 언 발가락도 스르르 녹으면서 훈훈해진다. 그는 어떻게 그런 신통한 생각을 해낼 수가 있었을까. 그건 일석이조였다. 언 발가락이 따뜻해졌을 뿐 아니라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 당하고 있다는 만족감까지 맛볼 수 있었으니까.-38쪽

앉은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경양식도 같이 파는 찻집은 자리가 꽉 차 주로 쌍쌍인 젊은이들이 내가 앉은 테이블의 빈자리는 잠시 넘보다가 나가버리곤 했다. 주인의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었다. 연탄갈비집도 영업을 시작했을 시간이다. 그 가게 앞을 카바이트와 연탄불 냄새를 그리워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늙은이가 눈에 선하다. 그는 누구일까. 애무할 거라곤 추억밖에 없는 저 불쌍한 늙은이는.
나는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 쌍쌍이 붙어 앉아 서로를 진하게 애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늙으닝 하나가 들어가든 나가든 아랑곳없으련만 나는 그들이 그 옛날의 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통수가 머쓱했다. 온 세상이 저애들놀아나라고 깔아놓은 멍석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101쪽

나에게 그가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인 것처럼 그에게 나도 영원히 구슬 같은 처녀일 것이다. 우리는 그때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다. 우리가 신봉한 플라토닉은 실은 임신의 공포일 따름인 것을.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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