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모든 개 흄세 에세이 3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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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닷이 가고 코르넬리아가 오기까지 공백이 있었는데 그 사이 나는 자라서 결혼까지 했다. 아니, 내가 결혼과 관련해 크게 한 것이 없으니 결혼을 당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내 말은 개인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 P25

나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오래 혼자 있어서 용기가 잘 나지 않는 사람에게, 이야기할 대상이 없어서 밤만 되면 겁이 나는 사람에게, 불을 끄고 쓸쓸한 침실로 혼자 들어가기 싫은 사람에게, 애정은 넘쳐흐르는데 애정을 쏟아부을 대상이 없는 사람에게, 오래 사랑받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해러즈에 가서 개를 구해 오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는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보호해주고 싶어 안달하는 친구들이 줄을 서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친구들은 실컷 베풀고도 보답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불평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어떠한 죄를 저질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즉각적이고 기꺼운 마음으로 용서해줄 것이다. 실로 성자라 할 만하다. 그것도 활기찬 성자다. 또한 인간 성자들만큼 셀 수 없이 많고, 높이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훌륭한 개보다 더 완벽한 성자는 아마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 P75

사람의 감정은 우연과 기회의 놀음이다. - P79

안타깝게도 나이 많은 여자에게는 젊은 남자들이 해롭다. 그런 젊은 남자들은 항상 존재하고, 나이 든 여자들은 위험을 감수해가며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준다. 감히 말하건데 내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그들도 내게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정도로 나이가 많지가 않아서 그들의 헌신이 귀찮기만 했다. - P84

누가 해묵은 슬픔을 글로 쓰거나 생각하고 싶겠는가. 슬픔을 한구석으로 밀어내고 침묵으로 덮은 채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만 끄집어내 취한 다음, 등을 돌려 내게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행복을 마주해본다.

이것이 바로 남은 생 동안 비틀거리고 휘청거릴 때마다 나 자신에게 해주었던 충고였다. 그러나 슬픔은 들러붙으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은 오후에 산책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옆으로 치워버린 뒤 다시 갈 길을 가면 되는 밤송이 같은 것이 아니다. 오직 세월이, 그것도 오랜 세월이 흘러야 마침내 사라진다. 그러나 그 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떨까. - P113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날씨에 따라 신을 찬양하거나 불길할 정도로 조용히 지내게 된다. 과부가 되면서 앞으로 어디에서 살지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포메라니아에서 곧바로 빛과 온기와 색채와 향기가 가득한 이곳으로 왔다면 내 성질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랬다면 젊을 때부터 온화하고 유한 사람으로 서서히 나이 들지 않았을까. 절망하는 대신 흔들림 없이 평온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눈앞의 고요와 평화를 느끼지 않기는 힘드니까. 주변이 아름다움으로 넘쳐나면 반드시 영혼으로 스며들어 거기에 머물게 되는 법이다. 나는 아름답게 걷는다. 스스로 아름다운 바이런의 여인과는 달리 나는 빛과 온기와 색채와 향기의 도움을 받아 아름답게 걷는다. 여기에서는 ‘결연해지기‘가 쉽다. 식은 죽 먹기다. 그것이 일상적인 상태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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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나의 삶에서 내가 그대 삶 속의 그대에게 씁니다
이윤 리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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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산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비포 앤 애프터라는 글자 아래 확연한 변화를 보여주는 체중 감량 프로그램, 치아 미백 스트립, 탈모 치료, 혹은 성형 수술 광고를 보면 순간 들뜬다. 그 어떤 불만이나 불행에도 해결 방안이 있다고 확언하는 듯한 그 광고들에 혹하면서도 당혹스럽다.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시간을 분리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 논리는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시도만큼이나 가당찮다. 새로운 풍경은 기껏해야 주의를 분산할 뿐, 결국에는 오랜 습관이 나타날 새로운 배경에 불과하다. 시간이 흘러도, 장소를 바꿔도,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남는다. 세상에서 가장 일관성이 없는 사람도 일관적으로 자기 자신이다. - P12

우리의 기억은 과거보다 현재를 더 많이 드러낸다. 물론 과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사진, 일기, 편지, 오래된 여행 가방 등 증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 차고 넘치는 증거 중에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어울리는 것들을 고르고 나머지는 버린다. 과거를 짊어지는 법은 여럿이다. 미화해서 해석하거나, 없던 일로 치거나, 각색하거나 혹은 완전히 허구로 꾸밀 수 있다. 현재는 그처럼 쉽게 조작할 수 없다. - P13

무언가를 숨길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혹은 지키고 싶어서. - P16

나는 장래 면역학자로서 미국에 왔다. 면역학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을 떠날 핑계와 먹고 살 기술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제외하면, 면역계의 작동 원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면역계는 비자기물질을 발견하고 공격해서 제거하는 임무를 맡는다. 면역 세포는 기억하는 능력을 지녔는데, 어떤 세포는 자신이 생성된 시점부터 모조리 기억한다. 때로는 오류가 생겨 선택저으로 기억하거나, 더 위험한 경우에는 무분별하게 기억해서, 면역계가 자기를 마치 제거돼야 할 비자기로 잘못 인식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Immune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영단어 중 하나이다. 면역으로 방어하는 대상이 무엇이건, 질병이건 어리석음이건 사랑이건 외로움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사그라들지 않는 고통이건, 나는 면역을 원했고 내가 창조한 인물들에게도 면역을 주고 싶었는데, 헛된 바람이라는 사실은 내심 알았다. 생명이 있는 한, 삶에 면역이 될 수 없다. - P23

나는 늘 믿어왔다.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다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그 순간에,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해하는 모종의 비밀이 있다고. 나도 그 비밀을 알고 싶다. - P67

우리는 타인이 겪은 불행의 깊이를 슬쩍 들여다보고 고통을 잴 수 있다는 희망에 매달린다. 더 슬픈 슬픔이 있고, 더 절망스러운 절망이 있다고. 타인의 고통을 알아보는 순간 자신의 고통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피하려고 고통을 잰다. 뭐, 적어도 이 점을 강조한다. 남을 위로하는 마음의 크기는 자신을 위로하는 마음의 크기를 넘지 못한다. - P75

체념을 습득하며 슈테판 츠바이크는 고통을 잴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았다. 고통에는 등급이 없다. ... 자살하기 며칠 전에 리오의 축제에 다녀와서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이 폭탄에 죽어나가는 와중에 즐거움이 폭발하는 현장에 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라고 말한 슈테판의 절망과, 중국의 한 마을에서 감옥에 갇힌 듯한 자기 삶을 비관하여 제초제를 먹고 자살한 열다섯 살 여자아이의 절망을 비교할 수 있을까? - P76

어떤 비평가들은 내 소설에 정치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낭독 자리에서 한 젊은이는 내가 정치적 글에 무관심한 이유를 따졌다. 중국의 한 기자는 대부분 작가는 자기 시대에 역사적 책임 의식을 느낀다고 내게 말했다. 그들은 묻는다. 왜 당신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나요?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중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나는 주어진 각본에 맞추어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타인의 뜻에 내 삶을 맞추기를 거부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정치적 선언입니다. - P80

팬케이크와 맥피어슨의 우정은 서로 이해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에 결별하는 양상을 띠고, 이것이 나의 마음을 몹시 어지럽힌다. - P89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매일 전화한 친구는 내가 퇴원한 뒤에도 매일같이 전화해주었다. 때로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글을 써, 친구는 매번 말했다. 못 쓰겠어. 나는 말했다. 네 인물들은 살아갈 자격이 있어, 친구는 말했다. 이제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 나는 말했다. 나는 아직 그들에게 관심이 있어. 친구는 말했다. - P106

"아, 친애하는 톨스토이, 내가 얼마나 막막하고 슬픈지 자네가 안다면!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흘려보낸 듯한 기분을 자네는 부디 느끼지 않기를 바라네." 투르게네프가 편지에 썼다. 그는 마흔 살이었다. 그가 대표작들을 쓰기 전이고, 수십 년이나 지속될 톨스토이와의 다툼도 일어나기 전이다. 오 년 후에 그는 플로베르를 만나 친구가 되고, 아니 거의 가족처럼 친해지고, 플로베르가 죽기까지 십칠 년 동안 친분을 유지한다. - P108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과 살면서 후회나 갈망이나 미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파리코뮌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투르게네프는 플로베르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 우리같은 사람들이 살기 힘든 시대네. 우리처럼 타고난 구경꾼들 말일세." 그러나 구경꾼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선택이다. 살고자 내리는 선택이다. - P111

"우리는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씁니다.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투르게네프가 젊은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언했다. 나도 그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증명하는 일은 설사 실패하더라도 명확한 결론을 내줌으로써 안도감을 선사하는데, 안도감을 주는 것들을 우리는 습관적으로 또 중독적으로 찾는다. 나는 참으로 야심만만했다.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모든 미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또 내가 누군가에게 미련을 남기지 않도록 모두에게서 거리를 둔 채로 살 수 있다고 증명하려 했다. - P126

다음 날에 나는 대영박물관에 갔다. 살아 있는 사람들과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잊기에 좋은 곳이다. - P139

고독은 고귀하지만, 고독에서 빠져나올 힘이 없는 예술가에게는 치명적이다. 예술가는 반드시 자기 시대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요란하고 불순한 시대이더라도 말이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주고받고, 주고 또 주고, 또 받아야 한다.

-로맹 롤랑, 장 크리스토프 - P193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끝내 선택하였으며 돌아설 수 없는 방향이 우리라는 사람을 정의하듯이, 우리가 결국 선택하지 않은 길은 한때 고려된 가능성으로서 우리에 관한 무언가를 말한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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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광고 카피 도감
오하림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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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인 제가 늘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카피라이팅이란 뭔가요?"입니다. 저는 늘 그에 대한 답으로 "카피라이팅은 아름다운 글쓰기보다 신경 쓰이는 글쓰기에 가깝습니다."라고 답합니다. - P20

최근에는 일하다 뵙게 된 개발자 한 분의 말에 반해 저도 다른 상대에게 써먹어 봤습니다. "이해가 안되는데요"라는 말 대신 "더 이해하고 싶어서 그러는데요"로 시작하는 말이었지요. - P25

그 인생-말하면 설교, 쓰면 문학.
그 일상-생각하면 평범, 쓰면 문학.
그 청춘-말하면 건방, 쓰면 문학.
그 불만-말하면 푸념, 쓰면 문학.
테마는 당신 안에.

-제12회 봇짱문학상 공모전 - P35

사랑에 피의 연결이 필요 없다는 것은 부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특별양자제도 - P119

인생은 겨울이 아니라 봄으로 끝내고 싶다.

-힐데모어.고령자 전용 주택 - P171

마음에, 모험을.

-신쵸샤 여름 추천 도서 100선 - P189

어떤 꿈이라도, 수첩에 접으면 계획이 된다.

-놀티, 시스템 다이어리 브랜드 - P193

미생의 윤태호 작가님께서 과거 한 프로그램에 나와 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용산역 앞 감자탕집에서 직장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면, 보통 회사 뒷얘기를 해요. 어떤 뒷얘기인지 자세히 들어보면, 일하기 싫어서 욕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나는 그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고 싶은데, 왜 그 상사는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려고 하느냐는 거예요. 오히려 일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 P249

옛날에는 값싼 술로 꿈 얘기만 했다.
지금은 값비싼 쑬로 돈 얘기만 한다.

- 카미야 Bar - P325

한 번의 여름, 평생의 기억

-제93회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 P337

등을 밀어준 것은, 그때 도망가지 않았던 자신이었다.

-칼로리메이트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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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들은 - 최승자의 아이오와 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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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피곤하지만 잠은 올 것 같지가 않다. 향수 따위는 없다. 내가 강한가? 그러나 경남이 집에서 경남이와 함께 잘 때 내가 자면서 엄마를 불렀던 것처럼 내가 모르는 내 무의식은 무언가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에 그게 내게는 생애 최초로 겪는 가장 큰 충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은 엄마 꿈 한번 꾸지 않았던 것처럼, 내 무의식이 스스로를 차단하고 있는 것 같다. 퓨즈처럼, 불이 나기 전에 스스로 끊어져버리는. - P25

‘펑키‘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흑인 사회에서 나온 말이고, 원래의 뜻은 남녀 간의 정사로 인해 이불에서 나는 냄새라고 했다. 흑인 아이들이 (흑인들은 가난하니까 방이 많은 집에서는 살 수 없었을 테고 적은 숫자의 방에서 모여 살면서 부모의 정사에서 나오는 그 냄새를 더 많이 맡았을 것이다)이 빌어먹을 펑키 시트 좀 치울 수 없어요? 하고 항의하곤 했던 배경에서 나온 단어라고 했다. - P47

오늘은 메이플라워 맞은편 잔디밭을 가로질러 아이오와 강변으로 갔다. 잔디밭에 달맞이꽃들이 피어 있었다. 강변 벤치에 누워 오리들이 떠 있는 강물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시 한 구절이 떠오랐다. 그건 로드 맥퀸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쓴 시집 중에 나오는 구절로 대학교 1학년 때 그의 시집을 읽다가 기억해둔 것인데, 이상하게도 몇십 년이 지나면서 그의 다른 시들은 다 잊어버렸으면서도 그 구절만큼은 잊히지 않고 내 기억의 서랍 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글쎄, 오늘은 좀 외로웠나, 아니면 나의 앞날이 불안해졌나. 그 구절은 이렇다.

"Lonely rivers going to the sea give themselves to many brooks."

이건 내가 슬며시 외로운 생각이 들 때마다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다시 되살려보곤 하는 구절이다.

"바다로 가는 외로운 강물은 많은 여울에게 저를 내준다." - P49

어떤 나무들은 바다를, 바다의 소금기를 그리워하여 바다 쪽으로, 그 바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바다 쪽으로 구부러져 자라난다고 한다. - P51

승자에 대해서는 "승자는 행복을 두려워한다."라고 쓰여 있었다는 게 기억날 뿐이다. 내가 보기엔 보이가 행복을 두려워하는(두려워한다기보다는 거부하는) 것 같은데, 바로 그 보이가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도 우거지상을 하고 다니는건가? - P99

나는 내 나이에 나보다 더 늙은 사람들을 보면 신경질이 난다. 내 나이를 생각나게 해주기 때문에. - P130

나는 마틴을 볼 때마다 젊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그는 이십대는 아니고 삼십대이긴 하지만. 내가 삼십대라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라는 것도 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한다는 것이지 언제 시작하느냐가 아니니까. 이대로 살다가는 아마도 10년 후 오십대에 가서 나는 또 사십대만 되어도 뭐든 시작할 수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 삶의 염치없음. - P199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수가 갑자기 내게, 너 슬프니 아이오와를 떠나는 게?라고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슬프다라는 단어를 쓸 수 있었을까? 내가 슬픈 얼굴을 하고 다녔나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가끔 그런 때가 찾아온다, 그것은 심리학적 생리와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고, 그것으로 그들과 나 사이에, 특히 쇼나와 나 사이에 묘하게 드리워져 있던 안개 같은 감정이 청산된 것 같았다. - P206

내 생명선이 보통 사람들보다 아주 짧은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관해 집중적으로 물었더니,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고, 내 생명선이 끝나는 부분은 아직 오지 않았고, 아마 쉰쯤이 그 시기에 해당될 터인데 그러나 그때에 죽지는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 P263

나의 이상한 버릇 중의 하나: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결정해야만 할 때 얼마간 궁리를 해보다가 그래도 마음을 정하지 못할 땐 결정을 잠에 맡긴다.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하고 하룻밤 자고 나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 결정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아니 결정을 내린다기 보다는 잠을 자는 동안 내 무의식이(아마도 내 의식과 내 패배의식의 지배를 받지 않고서)결정을 이미 내려놓고서 내 의식이 깨어날 무렵 의식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최종 재가를 받기 위하여. 의식은 이미 어젯밤에 결정을 내리길 포기했으므로, 자기를 위해 대신 일해준 무의식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 서류에 얼른 사인을 해준다. - P332

나는 언제나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내가 다 늙어서 이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현재가 감옥이라고 생각했고, 미래도 닫힌, 출구 없는 감옥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시간이 감옥이라고 생각해왔다. ...이제 나는 이 프로그램을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나는 더이상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내가 나를 불행하다고 보지 않게 되었다. ...내가 나를 불행하다고 보지 않을 때, 내가 현재를, 미래를, 시간을 더 이상 감옥으로 보지 않게 될 때 나는 어떤 가능성의 입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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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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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끔 슬픈 미소를 지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꺼져가는 촛불처럼 보였다. - P42

훗날 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순이 넘었지만 레이턴은 내가 아는 가장 젊은 남자다. 그리고 가장 친절하고, 관대한 남자다." - P29

샤갈은 말했습니다."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채는 사랑이다." - P53

클로드 모네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세상의 인정을 받는 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모네는 꺾이지 않고 자신의 직감을 끝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훗날 모네는 회고했습니다. "나는 위대한 화가가 아니다. 단지 내가 느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 과정에서 세상의 그림 그리는 규칙들을 자주 잊어버렸을 뿐이다." - P104

드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이 있고, 예술이 있다. 인간의 마음은 둘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다." - P168

당시 파리에는 카유보트 같은 다이아 수저들이 꽤 잇었습니다. 기술과 자본주의의 발달, 식민지 개척 등의 흐름을 타고 엄청난 부를 얻은 가문 출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평온하고 풍족했지만,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tv와 인터넷이 있지만 그 시절엔 밥 먹고 수다 떠는 것 외에는 일반적인 즐길 거리가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런 부유한 젊은이들의 삶을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P186

카유보트 자신의 작품이 재평가받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재산과 작품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모두 부자였기 때문에, 그림을 내다 팔려는 사람이 없어 노출 기회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인상파 화가들의 마음씨 좋은 후원자‘로만 기억되던 카유보트는 1960년대 화가로 본격 재조명을 받기 시작해 지금은 19세기 말 파리의 모습, 그리고 비 오는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 화가로 꼽힙니다. - P196

평생을 풍족하게 살았지만, 물려받은 재산에 가려 노력과 재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카유보트. 하지만 세상을 떠난 뒤엔 달랐습니다. 유언에 따라 그의 인상파 컬렉션은 루브르 박물관에 기부됐습니다. 관련 업무는 유언에 따라 친구였던 르누아르가 도맡았습니다. 인상파를 극도로 싫어하던 당시 미술계 주류와 박물관 위원회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결국 조건부로 기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지금 루브르 박물관을 대표하는 소장품이 됐습니다. - P193

틴토레토

베네치아에서 그의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장소는 자선기관 건물 ‘스쿠올라 디 산로코(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천장에 몰래 공짜 그림을 그려준, 글 첫 부분에 언급한 바로 그곳입니다. - P315

프리드리히가 남긴 "예술의 유일한 근원은 바깥 세계가 아니라 예술가 마음속 깊은 곳의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이라는 말 - P329

마지막 순간까지도 르누아르는 그림생각뿐이었습니다. 숨을 거두기 며칠 전 르누아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그림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어." 1919년 12울 3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꽃을 준비시키던 그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꽃..."

그의 78년 인생에는 곡절이 많았습니다. 특히 가난과 질병은 먹구름처럼 평생 그의 삶에 슬픔과 고통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이 모든 아픔이 자신의 그림에 스며드는 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굶을 때도, 세상이 그의 작품에 돌을 던질 때도, 딸과 생이별했을때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입거나 자신의 곁을 떠날 때도, 격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도 오직 행복만을 그렸습니다. 르누아르의 손이 붓을 건드리는 모든 순간마다 어김없이 캔버스에는 화사한 행복이 피어났습니다.
- P352

그래서 르누아르의 작품은 행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가 평생 남긴 총 4,0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은 인간의 위대한 의지를 상징하는 일종의 기념비이기도 합니다. 운명이 주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끈질긴 집념으로 행복을 캔버스에 담아낸, 한 사람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르누아르가 최고의 인상파 화가 중 하나로 꼽히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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