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모든 개 흄세 에세이 3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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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닷이 가고 코르넬리아가 오기까지 공백이 있었는데 그 사이 나는 자라서 결혼까지 했다. 아니, 내가 결혼과 관련해 크게 한 것이 없으니 결혼을 당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내 말은 개인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 P25

나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오래 혼자 있어서 용기가 잘 나지 않는 사람에게, 이야기할 대상이 없어서 밤만 되면 겁이 나는 사람에게, 불을 끄고 쓸쓸한 침실로 혼자 들어가기 싫은 사람에게, 애정은 넘쳐흐르는데 애정을 쏟아부을 대상이 없는 사람에게, 오래 사랑받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해러즈에 가서 개를 구해 오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는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보호해주고 싶어 안달하는 친구들이 줄을 서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친구들은 실컷 베풀고도 보답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무슨 일이 생겨도 불평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어떠한 죄를 저질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즉각적이고 기꺼운 마음으로 용서해줄 것이다. 실로 성자라 할 만하다. 그것도 활기찬 성자다. 또한 인간 성자들만큼 셀 수 없이 많고, 높이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훌륭한 개보다 더 완벽한 성자는 아마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 P75

사람의 감정은 우연과 기회의 놀음이다. - P79

안타깝게도 나이 많은 여자에게는 젊은 남자들이 해롭다. 그런 젊은 남자들은 항상 존재하고, 나이 든 여자들은 위험을 감수해가며 그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준다. 감히 말하건데 내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그들도 내게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정도로 나이가 많지가 않아서 그들의 헌신이 귀찮기만 했다. - P84

누가 해묵은 슬픔을 글로 쓰거나 생각하고 싶겠는가. 슬픔을 한구석으로 밀어내고 침묵으로 덮은 채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만 끄집어내 취한 다음, 등을 돌려 내게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행복을 마주해본다.

이것이 바로 남은 생 동안 비틀거리고 휘청거릴 때마다 나 자신에게 해주었던 충고였다. 그러나 슬픔은 들러붙으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은 오후에 산책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옆으로 치워버린 뒤 다시 갈 길을 가면 되는 밤송이 같은 것이 아니다. 오직 세월이, 그것도 오랜 세월이 흘러야 마침내 사라진다. 그러나 그 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떨까. - P113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날씨에 따라 신을 찬양하거나 불길할 정도로 조용히 지내게 된다. 과부가 되면서 앞으로 어디에서 살지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포메라니아에서 곧바로 빛과 온기와 색채와 향기가 가득한 이곳으로 왔다면 내 성질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랬다면 젊을 때부터 온화하고 유한 사람으로 서서히 나이 들지 않았을까. 절망하는 대신 흔들림 없이 평온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눈앞의 고요와 평화를 느끼지 않기는 힘드니까. 주변이 아름다움으로 넘쳐나면 반드시 영혼으로 스며들어 거기에 머물게 되는 법이다. 나는 아름답게 걷는다. 스스로 아름다운 바이런의 여인과는 달리 나는 빛과 온기와 색채와 향기의 도움을 받아 아름답게 걷는다. 여기에서는 ‘결연해지기‘가 쉽다. 식은 죽 먹기다. 그것이 일상적인 상태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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