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로부터 금주제도란 효과를 발휘한 전례가 없다.

불편함은 여행을 귀찮게 만들지만, 동시에 일종의 기쁨-번거로움이 가져다주는 기쁨-도 품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비수기에만 이곳을 찾았다. 마치 화장을 지운 시간만 골라서 여자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스페체스 섬)

당연한 얘기지만, 섬은 어디 다른 곳에 가는 길에 훌쩍 들르듯 방문할 수 없다. 작정하고 그 섬을 찾아가든지, 아니면 영영 찾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세상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은데, 동시에 또한 내 발로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한때 주민의 한 사람으로 일상생활을 보내던 곳을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여행자로 다시 방문하는 기분은 제법 나쁘지 않다. 그곳에는 당신의 몇 년 치 인생이 고스란히 잘려나와 보존되어 있다. 썰물이 진 모래사장에 찍힌 한 줄기 발자국처럼, 선명하게.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 보고 들은 것, 그때 유행했던 음악, 들이마신 공기, 만났던 사람들, 주고받은 대화. 물론 개중에는 즐겁지 않은 일과 슬픈 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좋았던 일도,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일도 모두 시간이라는 소프트한 포장지에 싸여, 당신 의식의 서랍 속에 향주머니와 함께 고이 담겨 있다.

보스턴에서는 내리쬐는 햇볕의 느낌도 다른 곳과 묘하게 다르고, 시간도 특별한 방식으로 흐른다. 빛은 약간 비스듬하게 쏟아지고, 시간은 약간 변칙적으로 흐르는....것처럼 보인다.

참, 던킨 도너츠도 보스턴 쪽에서 유독 편애받는 것 중 하나다. 당연히 이 도시에도 수많은 스타벅스가 존재한다. 그러나 완고한 보스턴 시민들은 길을 가다 문득 커피를 마시고 싶어지면 스타벅스보다 던킨 도너츠에 들어가는 쪽을 선호하는 것 같다. 비록 남녀 종업원들의 태도가 친절과는 거리가 멀고, 커피 맛이 그다지 인상적이라고도 할 수 없고, 의자와 탁자, 조명기구는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달리고, 인터넷 환경 같은 개념에서 이렇다 할 배려를 찾아볼 수 없을 지라도.

나는 이 보트를 타고 난생처음 살아 있는 고래의 실물을 봤는데, 아무리 바라봐도 싫증나지 않았다. 저렇게 거대한 생물이 위장을 꽉 채우려면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먹어야겠구나 실감이 든다. 고래를 하루를 거의 고스란히 포식 작업에 소비한다. 살기위해 쉼 없이 먹는다고 할까, 쉼 없이 먹기 위해 산다. 말러의 심포니도 듣지 않는다. 예약녹화도 하지 않는다. 연하장도 쓰지 않는다. 트위터와 소개팅도(아마) 하지 않는다. 정기검진도 안 받는다. 물론 소설도 쓰지 않는다. 고래들에게는 그렇게 한가롭게 굴 여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배 갑판에서 고래들을 구경하며 적잖이 철학적 성찰에 빠져든다. 우주적 견지에서 보면 그들의 생활방식과 우리 생활방식에 본질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보스턴 앞바다에서 무심히 정어리 떼를 쫓는 것과 말러 교향곡 9번을 집중해서 듣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하나의 빅뱅과 또다른 빅뱅 사이의, 덧없는 일취지몽에 불과하지 않을까.

토스카나가 우수한 와인 생산지인 이유는 숲과 포도밭이 혼재한다는 점이에요. 숲은 포도밭의 풍부한 자양분이 되죠. 아주 중요한 사실이에요. 포도밭만 있으면 알게 모르게 토양이 척박해지거든요.

여행중에는 좀처럼 체중 관리가 안 된다.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

다른 글도 아니고 여행기는, 여행 직후에 마음먹고 쓰지 않으면 좀처럼 그 생생함을 살릴 수 없습니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씨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그책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작고 조그마하다. 일본 문고판 사이즈이다. 그리고 책의 '태'도 딱 그 수준이다. 서점에서 직접 보고 샀더라면 12,000원 받고 이렇게 찍어내다니 하고 부들부들 욕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알라딘에서 카드로 긁고 퀵배송 받아서 그런 부들부들 단계는 스킵했다. 뭐 여튼 12,000원의 가격표 보다는 450엔+세금 의 가격표가 더 어울리는 그런 외양인데 그렇다 할지라도 이 책은 아 가 씨 각본이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아 가 씨 의 각본이니까 다 용서가능하고 다 이해가능하다. 


이 책은 사실 책이 아니라 '각본'이므로 별도의 내용에 대한 리뷰는 불필요할 것이다. 내가 인상적으로 본 건 1. 각본의 분량이 생각보다 엄청 적다는 것. 책 한권이 보통 300쪽 내외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2시간 넘는 영화의 모든 내용이 저 손바닥 만한 책에 담긴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정말 여기 다 적혀 있는거 맞아? 하고 정독했는데 정말로 모든 대사와 모든 장면에 대한 지시가 고작 150쪽 남짓의 분량에 다 들어간다. 2. 각본이란 상당히 딱딱한 글이다. 내가 본 영화의 원형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해서 구입해 본 것인데, 사실 영화를 보지 않고 각본만 봤다면 이게 무슨 말을 하는건지 별로 와닿지 않았을거 같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했을지도 확신이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배우의 연기와 아름다운 미쟝센을 볼 때보다 오히려 그것을 모두 배제한 텍스트로서의 각본만을 읽을 때 배우와 연출과 미술의 대단함 그리고 종합예술로서 영화의 위대함 등등이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영화 각본을 보기 전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고 그래서, 아가씨의 각본을 읽으며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 관념적으로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제 별점은요,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6-08-30 0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나리오는 좀 드라이하지만 하나씩 깊게 읽으면 멋진 내용이 펼쳐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옛날에 번역한 시나리오 영화화 되지 못했지만 제 머릿속엔 영화 한 편이 남아 있어요 지금도 장면 하나하나가 다 떠오르네요 ㅎ

LAYLA 2016-08-30 14:05   좋아요 0 | URL
드라마나 영화 보면서 크게 못 느꼈었는데 각본을 보니 이런 종류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답니다. 읽는 것도 익숙해지면 말씀해주신 것철머 더 잘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살이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재에서 미미여사의 팬을 워낙 많이 또 오래 봐왔던지라 언젠가 한 번은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에 큰 흥미가 없어서 나름의 결심을 필요로 했던 일이었는데 정말 우연히 미미여사의 이 책을 읽게 된것. 그 우연이란 내가 도서관을 방문한 날 2층 소설 서가가 대청소 날이라서 서가로 들어가서 책을 빌리는 건 불가능이고 3층 반납대에 반납되어 정리된 소설만 빌릴 수 있었던 것...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읽고 갓 반납한 '하루살이'를 빌리게 되었다. 내용은 내가 기대한만큼 막 쫀쫀하거나 기발하거나 탄탄하지는 않았다. 문장도 딱히 유려한지도 모르겠고 (미미여사의 장기는 유려한 문체가 아니라 막힘없는 문체인거 같기는 하다만) 사실 지금까지 들은 명성에 대해서 응...?하는 인상을 주는 다소 평이한 책이었다. 그나마 하나 건진 것이라면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랄까? 책의 주요한 사건이나 서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사소하게 드러나는 묘사와 캐릭터의 성격에서 이 작가가 기본적으로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냉소는 넘치니 책에서라도 따뜻한 시선-멍청한 따뜻함이 아니라 산전수전 뒤의 따뜻함-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다.진정한 미미여사의 진가를 알기 위해 책을 더 읽어 볼것인가? 언젠가 더 읽어 볼수는 있겠지. 시간이 많고 세상 모든 것 다 필요없이 뒹굴거리고 싶을 때. 지금 당장으로서 더 읽어 봐야겠다는 욕구가 일지는 않는, 그런 수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산책자 -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상중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서가에 있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도쿄에 대해 조금 수준 있는 에세이가 아닐까 하며...그런데 이 책 사실. 도쿄 따위완 그다지 상관 없는 책이다. 책 속에 있는 사진들이 도쿄 속의 장소들을 '배경'으로 하여 강상중을 모델로 찍은 사진인걸 봤을 때 알아챘어야 하는데...상식적으로 책의 주요한 내용이 도쿄의 특정한 장소들에 대한 것이라면 그 장소만 찍어야지 글을 쓴 강상중이 모델처럼 근엄하게 여기저기 서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예를 들면 포시즌스 호텔에 앉아서 일상의 비일상성을 이야기한다거나 마츠리 축제를 보며 혼돈 속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한다거나 하는, 사실 배경이 도쿄가 아니어도 전혀 상관없을거 같은 그런 책이다. 개인적 소감이라면, 문장이 세련되어서 싸구려나 조잡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굳이 강상중의 팬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너무 철학적으로 지루한 것도 아니고 양산형 힐링 여행 에세이도 아닌 지점에서 이 책 '인문 에세이'라는 장르로서 가지는 의의가 있겠지만 책이 의의만으로 읽는 건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소재(떡밥)을 던져도 물 흐르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던 학부시절 사과대 교수님들이 떠오랐다. 강상중씨도 그런 교수이겠지. 그에겐 소재나 주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쿄 어디든 전세계 어디든 우선 거기서 시작을 한다 뿐이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신묘하고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의 말빨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도쿄 따위와는 1의 관계도 없다. 그냥 강상중의 이야기. 굳이 부제를 붙인 편집자의 세심한 배려를 무심히 지나치지 마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유명한 책을 이제와서 읽은건 법에 대해 숨이 막힐것 같은 거리감을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느껴왔기 때문일 것이다. 법학교양서도 읽기 싫을 정도로. 법원 앞의 몰개성한 변호사 간판들이 너무 싫었고 멋을 안 부려도 너무 안 부리는 법조인들의 블랙앤화이트 차림새는 돈 벌어 뭐하누 하는 감상을 자아냈고 게중에서도 최악이라면 음주운전이라던지 행인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했다던지 하는 찌질한 짓을 저질러 놓고서 판사앞에 무릎꿇고 선처를 바라는 피고인들을 봤을 때였다. 그런 피고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서류만 뒤적거리는 뽀얀 피부의 젊은 판사를 봤을 때 - 기미나 점이 하나도 없는 그 새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통해 그/그녀가 그간 얼마나 공부만 하고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리 양보해도 좋은 인상을 가지기 힘들었던 것이다. 저런 꼴을 보고 근무하다니 판검사가 건강한 정신건강을 유지하는게 가능한 일인가? 한번씩 터지는,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판검사.판검사 출신들의 인성수준 스캔들이 아무 설명 없이도 참 잘 이해되었던 것. 뭐 어쨌든 그런 심리적 거부감을 넘어 법을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법인데, 조금은 헤비한 내용이 아닐까 짐작하며. 음 그런데 사실 이 책을 읽고나서 보니 그런 마음의 준비 따윈 전혀 필요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일반독자 대상으로 눈높이를 조금 낮춘 수준이 아니라 아예 무릎까지 꿇고 앉아 있는 수준이라 (서술 형태가 대화체이다) 이해하는데 어려운 내용이 전혀 없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 책은 헌법 그 자체보다는 헌법이 지키고 수호하려고 하는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법학의 딱딱함보다는 인문학의 소프트함으로 느껴지는거 같다. 이에 대해, 으흠 한국에선 그다지 별 파워도 없고 효용도 없는 헌법이 사실 이런 것이었군 하는 정도의 감흥은 있었는데 솔직히 기대했던 수준의 '깊이'있는 글은 아니었기에 다소 실망스러웠다. 냉정히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순수한 글들은 대학 저학년 시절에 충분히 읽었던지라...저는 정말로 헌법에 대해서 알고 싶었단 말입니다. 법학 교양서 정도로 라이트 하게 읽으시려는 분들에겐 좋은 책일듯 하다. 여러 사례와 예시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설명도 했던 말 또 계속 하시며 독자들 눈 높이에 엄청 맞춰주신다. 학부생이 읽으면 더 좋을거 같고. 김두식 교수는 교양법학에 관심이 많다 하시는데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헌법의 풍경 독자들을 위해 이것보다 한 단계더 높은 수준의 책을 써주셔도 참 좋을거 같다. 뭐랄까. 이 책은 헌법에 대한 개념은 비유를 통해 마치 전래동화 들려주듯 친절한 어조로 가르쳐 주지만 이것만으로 독자들이 어떤 유의미한 액션을 취하기엔 너무 라이트하단 느낌이다. 결국 마지막에 하게 되는 질문, 헌법을 지키고 수호하기 위해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해 독자들이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도록 김두식 교수가 좀 더 도와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격하거나 급진적으로 풀 수도 있는 소재이지만 김두식 교수라면 풍부한 해외 사례를 들어 한국 사회의 부족한 점과 해결과제에 대해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로 꼼꼼하게 풀어내 주실 수 있을 거 같다. 조금 더 난도가 있는 교수님의 다음 권을 기다린다.

한번 궤도를 이탈해보고 나니 남과 다르게 사는 자유를 알게 되었고, 그 자유에 기초한 선택은 이전보다 훨씬 더 수월했습니다.

검사는 범죄를 수사하여 공소를 제기하고 형을 집행하는 사람이지, 결코 우리나라의 도덕과 윤리를 지켜주는 파수꾼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도덕, 윤리, 사회적 책임까지 판단하고 가르쳐 달라고 검사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