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보수 일기 - 영국.아일랜드.일본 만취 기행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절판


실제로 평소에도 인간을 사고하게 하는 것은 공포의 힘이다. 입시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재산이 줄어들지 모른다, 병이 날지 모른다. 그런 공포에 등을 떠밀려 사람은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검사 수치를 알아보는 것이다. 어디서 읽었는데 사람의 화제는 거의 대부분 공포가 테마라고 한다. 날씨가 나빠질지도, 추워질지도, 월급이 깎일지도, 애인에게 차일지도, 기미가 생길지도, 애가 유괴될지도, . ..종류와 대소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공포라는 것이다. -58쪽

기념품이란 물건은 어디나 지조가 없다. 스톤헨지 초콜릿, 스톤헨지 머그, 스톤헨지 티셔츠, 스톤헨지 스노볼... -109쪽

세로선이 천장 꼭대긱에서 교차하며 죽 늘어선 것을 보고 있노라니 누군가가 머리통을 위로 끌어당기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기독교 문화권의 하늘에 대한 집착과 동경은 동양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하늘이 지켜보고 계신다.'가 아니라 '주님 곁으로'인것이다.
성당 안에서 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또 무섭다. 빛을 통과시켜 본다는 데 종교적 의미가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참회하고 싶어지는 박력이 있다.
안마당을 둘러싼 회랑. 오랜 세월에 걸쳐 더해진 기념물. 그 모든 것이 고딕이라 돌아보다 보면 위압감에 피로가 왈칵 몰려든다. -118쪽

여행을 가면 그 사람의 실무 능력과 인생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164쪽

타라의 언덕은 아일랜드 사람의 마음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아일랜드계인 스칼렛 오하라의 아버지가 자기 농장에 타라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스칼렛도 마지막에는 '타라로 돌아가자'고 결심하고.-165쪽

기호품이라는 존재는 문화 그 자체다. 살아가는 데는 결코 필요하지 않지만 필요하지 않기에 필요하다는 점에 인간이라는 동물의 특질과 부조리함이 드러나는 데다가, 동물인 인간을 불투명한 막으로 덮어 '인간'이라는 다른 존재로 바꿔준다. 그 부분을 야만이라느니 낭비라느니 몸에 나쁘다느니 하는 말로 물리적으로 깎아내면 속살이 날로 드러나 껄끄러워진다. 너무 과하게 씻으면 좋지 않다. 때를 너무 많이 벗겨내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지 않던가. 인간은 몸에 나쁜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고,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177쪽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전시는 '되는'전시와 '글러먹은'전시로 나뉜다. 영국의 전시는 매우 '되는'전시인데, 더블린은 '글러먹은'쪽이다. 즉, 관객의 관람 템포와 감각을 생각하지 않는다.
'되는'전시는 관객의 시선과 심리 상황을 읽는다. 내용에 완급이 있고, 본 것이 관객의 마음속에서 한 편의 드라마로 연속되도록 구성된다. 그렇게 때문에 별 대단한 물건을 전시하지 않아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감동이 있고 어떻게 진열하느냐에 따라 전시품 하나하나가 돋보인다. 그런 전시를 관람한 뒤에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좋은 전시회를 봤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영국은 그런 의미에서도 매우 노회하고 위엄을 부여하는 재주가 있는데, 더블린은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그냥 있는 대로 죄 갖다 늘어놨다'싶은 꾸밈없는 서글서글함이 있다.-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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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품절


그런데 내가 지나갈 때는 군인묘지 철문이 열려 있고, 첫 번째 줄의 묘가 다 파헤쳐진 채 수많은 병사들이 죽은 형제들을 하나씩 새 나무관 속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까 분명해졌다. 스페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없었지만, 사막 군대는 살아서도 사막에 있고 죽어서도 사막에 묻히는 법인데 지금 망자를 모두 파내어 함께 이 사막을 떠나려 하고 있다. 결국 스페인은 이 땅을 포기한 것이다! 끔찍하게도,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모래 속에서 한 구씩 한 구씩 나온 시체들은 백골이 아니었다. 마치 미라처럼 바싹 말라 쪼글쪼글해진 모습이었다.-88쪽

호세가 잠수복으로 갈아입자 남녀노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주민들이 뛰어나와 구경했다. 20년 전에 잠수하는 사람을 보고 처음이라는 거였다. 당시 관광객 몇 명이 배를 타고 와서 산소통을 매고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반시간 후에 올라와 보니 배 위에서 어부들이 울면서 기다리고 있더란다. 관광객들이 다 물에 빠져 죽은 줄 알았다는 것이다.-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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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일기 - 아프리카의 북서쪽 끝, 카나리아에서 펼쳐지는 달콤한 신혼 생활
싼마오 지음, 이지영 옮김 / 좋은생각 / 2011년 4월
절판


추억이란 정말이지 엄청나게 놀라운 것이다. 슬펐던 것은 점차 희미해지는 반면, 행복했던 시간은 기억을 거듭할수록 더 선명해지니 말이다.-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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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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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화된 삶(중산층에서 농부나 소기업가의 비중이 줄고 대기업의 고용인이 늘어나는 20세기의 삶)에서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시간을 대부분 이런저런 조직 속에서 보내게 된다. 그들은 컨퍼런스에, 워크숍에, 세미나에, 정보 교환 모임에, 일과 후 토론회에, 프로젝트 팀에 참가한다." 계속해서 타인과 접촉하는 이런 환경에서는 일을 해 나가는 경험이나 지식보다는 인간관계를 맺는 소프트스킬이 더 중요하다. -85쪽

최근에는 행동만이라도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점차 가혹해지고 있다. 순응하지 않는데 따른 불이익이 점점 커져, 긍정적인 태도를 갖지 않으면 직업을 잃고 실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피 인물로 낙인찍혀 완전히 고립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87쪽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극과 진정한 드라마로부터 물러선다는 것은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 깊은 무력감이 놓여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왜 뉴스를 나 몰라라 하는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요." ...부정적인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뉴스를 보지 말라는 것, 그러니까 환경을 바꾸라는 얘기는 우리가 희망한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진짜 세상'이 저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이런 무서운 가능성에 '긍정적'으로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찬성과 지지, 좋은 뉴스, 미소 짓는 사람들로만 조심스럽게 구성해둔 자신의 세계로 후퇴하는 것뿐이다.-92쪽

신학과는 무관하게 칼뱅주의의 몇몇 요소들은 20세기 후반에도 미국에 남아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중상류층은 바쁜 것 그 자체를 신분의 표지로 여겼다. ...누구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노트북 컴퓨터를 저녁마다 집으로 가져갔다. 일 중독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었고, 멀티태스킹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예전 엘리트들은 유유자적함을 과시했지만, 우리 시대의 부유층은 기진맥진함을 드러내 보이려 안달했다. ..과로를 미덕으로 여기는 풍조가 어느덧 종교적 경지에까지 달했다. -115쪽

19세기 초반이 되자 칼뱅주의의 어두운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국부가 급격히 팽창하는 가운데 하룻밤 사이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이 나타나는가 하면 알거지로 전락하는 이도 있었다. 격동하는 가능성의 신시대를 맞은 사람들은 인간이 처한 상황을 새롭게 보게 되었으며 선조들의 징벌적인 종교를 거부했다. ...중산층 여성들은 죄책감을 강요하고 가부장적으로 구속하는 옛 종교에 반발하면서 다정하고 모성적인 신성을 내세웠다. ...칼뱅주의 이후의 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총칭해 신사상(new thought)또는 신사상 운동이라고 한다. ...신사상의 관점에서 보는 신은 냉담하고 무관심한 존재가 아니라 편재하는 전능한 정신 또는 영혼이다. -118쪽

칼뱅주의는 고통받는 영혼에게 오직 하나의 위안거리를 주었는데 그것은 물질적 세상 속에서 힘들게 일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노동의 위안이 없어지자 남은 것은 병적인 자기성찰이었다. 사람들은 소화불량, 불면증, 요통 등 신경쇠약 증세를 불러들이기에 딱 좋은 상태에 놓였다. ...여성들에게는 그런 특별한 일 자체가 없었다. 일상의 노동이 비정형적이며 많은 부분 여성의 노동과 겹치는 성직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칼뱅주의를 믿는 영혼, 혹은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은 영혼은 진짜 일, 그러니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기혐오로 자신을 소진시킬 수 밖에 없었다. -124쪽

옛 칼뱅주의와 새로운 긍정적 사고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연속성은 양쪽 모두 자기반성이라는 부단한 내면적 과제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칼뱅주의자들은 느슨함, 죄악, 방종함의 징후를 찾기 위해 스스로 감정을 감시했다. 한편 긍정적 사고에서는 분노나 의심과 관련된 부정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경게한다. ...이제 자아는 영원히 맞붙어 싸워야 할 적대자가 되었다. 칼뱅주의는 사악한 성향을 이유로, 긍정적 사고는 '부정성'을 이유로 자아를 공격한다. ...그러려면 기묘한 자기소외가 요구된다. 과제의 대상인 자아가 있고 그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또 다른 자아가 있다. 긍정적 사고와 관련된 글들에서 수 많은 법칙과 작업 기록표, 자기평가 양식을 제공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것들은 자아가 자신에게 그런 작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재프로그래밍하고 길들이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지침이다. -132쪽

칼뱅주의가 단지 개종만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것처럼, 지토머의 긍정적 태도 또한 지속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내용의 글을 매일 아침 읽고, 긍정적인 내용을 매일 아침 생각하고,,,"-138쪽

..하지만 동기 유발 산업이 개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더라면 지금처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자라지 못햇을 것이다. 동기유발 산업은 더 넓고 지출 규모가 큰 시장, 미국의 거대 기업들을 포함한 산업계 전반으로 파고들었다. 긱업은 동기 유발 상품을 무더기로 사들여 직원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준다.-145쪽

긍정적 사고는 고용주의 손에 의해 19세기 주창자들이 짐작도 하지 못했을 용도로 바뀌었다. 떨치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는 권고가 아니라 직장에서의 통제를 위한 수단, 더 높은 실적을 내라고 들들 볶는 자극제가 되었다. ...동기 유발이 채찍으로 사용되면서 긍정적 사고는 순응적인 직원의 품질 보증서가 되었고, 1980년대 이후 다운사이징 국면에서 고용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채찍을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146쪽

일부 제약 회사는 이미 동기 유발자로서의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으로 보이는 대학 치어리더들을 고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고용된 치어리더들은 제약 회사외 대학 간 정식 충원 통로로 들어온 영업자에게 뒤지지 않는 실적을 올렸다. .."과장된 몸짓, 과장된 미소, 과장된 열정. 치어리더들은 바로 이런 것들을 배우고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지요."-149쪽

제 3세계 선교 교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신도를 모으기 위해 그 지역의 음악과 문화를 약간 가미하고, 교회와 연계된 교육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마찬가지로 요즘의 초대형 교회들은 소비자들의 욕구에 발맞추기 위해 취학 전 교육과 방과 후 교육, 스포츠, 10대 활동, 갱생 프로그램, 취업지원, 건당 박람회, 매 맞는 여성 및 이혼하 ㄴ사람들을 위한 지원 그룹등을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 센터로 변모했고 에어로빅이나 근력 키우기 강좌까지 연다. 미국 교회들은 복지 혜택이 충분한 국가에서라면 세속적인 사회복지 당국이 해야 할 사업을 대신하고 있다.-197쪽

긍정심리학의 진정한 보수성은 현실의 불평등과 권력 남용에도 불국하고 현상 유지에 애착을 갖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행복에 관한 긍정심리학자들의 실험은 현존하는 여러 가지 것에 대한 개인의 만족감을 재는 데 크게 의존한다. -237쪽

지금까지 이루어진 인류의 지적 진보는 우리가 사물을 자기 감정의 투사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장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잇는 방식으로 파악하려 했던 오랜 투쟁의 결과다. 천둥은 하늘의 분노가 아니고 질병은 신이 내리는 벌이 아니며 마법은 사고나 죽음을 초래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가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그것은 이 세계가 인간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인과관계, 개연성, 우연이라는 자체의 알고리즘에 의해 전개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는 과정이었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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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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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이었던가요? 아니면 그 전 혹은 그 후였던가요? 어쨌든 어느 해 여름의 일입니다. 둘이서 우리가 살던 아파트의 안뜰을 날아다니는 제비들의 공중 곡예를 감탄하며 보고 있을 때 당신이 말했습니다. "아, 저렇게 책임은 없고 자유만 있다니!" 점심 먹으면서 당신은 나에게 물었지요. "당신, 사흘째 나와 한마디도 안 한것 알아요?" 당신이 나와 살면서 차라리 혼자 사는 것보다 더 외로웠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봅니다.
그때는 내 기분이 왜 그리 침울했는지, 그 이유를 당신에게 결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부끄러웠던 것이겠지요. 당신의 흔들림 없는 의연함, 미래를 신뢰하는 당신의 믿음, 주어지는 행복의 순간을 포착할 줄 아는 당신의 능력, 그런 것이 감탄스러웠습니다. 어느 날이낙 당신이 베티와 생제르맹 광장의 어느 작은 공원에서 커다란 버찌 아이스크림 하나로 점심을 때울수 있었던 것, 그것도 나는 좋았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친구가 더 많았습니다.-40쪽

생태주의란 삶의 양식이 되고 매일의 실천이면서 끊임없이 또 다른 문명을 요구하는 것이더군요. 여느새 나는, 평생 무엇을 이루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직접 산 게 아니라 멀리서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한쪽 면만 발달시켰고 인간으로서 무척 빈곤한 존재인것 같았지요. 당신은 늘 나보다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차원에서 활짝 피어난 사람입니다. 언제나 삶을 정면돌파했지요. 반면에 나는 우리 진짜 인생이 시작되려면 멀었다는 듯 언제나 다음 일로 넘어가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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