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미카코는 미혼의 아가씨들이 대체로 그러듯이 남자를 연인이나 약혼자 같은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이런 남자가 애인이라면 혹은 남편이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미카코 같은 아가씨들이 남자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벗어나는 유부남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동성 등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벌레나 마찬가지로 생각되는 것이다. 우연히 그냥 인간일 뿐인 것이다.

남자 동료인 다카하타 씨와 나는 비교적 자주 대화를 나누는데 그는 젊어 보인다든가 미인이라든가 하는 건 관계 없다고 말한다.

"즉 둘 다 척하면 통하는, 머리가 재빨리 돌아가는 데가 있잖아요? 그런 건 남자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거거든."
"흐음"
"그런 걸 남자들은 할망구라고 불러요. 지나치게 똑똑한 여자는 모두 할망구. 그렇기 때문에 젊고 미인인 할망구도 있는 거예요."
"알 거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네요."
"똑똑한 건 젊은 축에 들지 않는다고 남자들은 생각하죠. 즉 남자들은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여자를 젊다고 생각 안 해요. `아가씨`니 `할망구`니 하는 건 물리적 나이하고는 상관없다는 거예요."

나는 데쓰카 선배가 어린 남자를 데리고 이리저리 홍차 티백을 뒤흔들듯이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향이나 색이 더이상 우러나오지 않게 되면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것도 알고 있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열여덟이나 아홉, 스물도 채 안 된 어린 남자를 만나는 것은 데쓰카 선배가 로맨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열을 올리는 건 몽상가나 하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그 나이의 아이는 붕붕 떠 있는 것이 솜사탕 같아 보인다.

데쓰카 선배는 핸드백을 열고 종잇조각을 꺼냈다. 데쓰카 선배의 핸드백은 맞물림쇠가 고장 났다. 그런데도 새것을 사지 않고 벌써 몇 년째 들고 다닌다. 나는 데쓰카 선배 이상으로 그 핸드백에 익숙해서 데쓰카 선배 이상으로 그 핸드백에 친근감을 갖고 있다. 노처녀란, 그녀가 갖고 있는 물건이나 몸짓, 말투에 오래 익숙해지다보면 그런 것들로도 그녀의 독신생활이 얼마나 됐는지를 헤아리게 되는, 그런 데가 있다.

하나얏코는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마음이었다. 일의 재미라고 하는, 금단의 나무에서 딴 열매 맛을 이 아이는 알아버렸다. 결국 알아버렸다. 그건 여자의 행복에 반하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모르고 지나치는 것보다는 알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거라고 하나얏코는 생각을 정리한다.

나는 로맨티스트라서 결혼이라는 건 `그래, 가는 거야!`하고 점프하는 것 같은 맛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남녀 사이란 어느 쪽이 됐든 한 쪽이 억지로라도 끈을 꽉 묶어놓고 있지 않으면 자연히 풀려버리는 허망한 면이 있다.

"자네들은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니 난처하군. 사람은, 남자와 여자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게 있어. 그런 좋은 사이가 되면 나이도 주름도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알마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다리나 눈을 잃으면 다리가 없고 눈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달을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언어상실증 환자를 접하는 사람들이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 나고 만다. 언어상실증 환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듣고 속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파악한다. 그들은 언어가 갖는 표정을 간파한다. 종합적인 표정, 언어에 당연히 수반되는 표정을 느끼는 것이다.

중국인 신경과 의사인 디주에 왕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의 비밀이란 그의 왼쪽 뇌실 관자뿔 부분에 금속 파편인 탄환 부스러기가 있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그것을 제거하는 것을 몹시 꺼렸던 것 같다.

파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면 반드시 음악이 들려온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마다 새로운 선율이 머릿속에 가득 차 그것을 작곡에 이용한 듯하다.

뢴트겐 검사 결과 쇼스타코비치의 머리가 움직이면 파편이 움직여서 관자엽의 음악 영역을 압박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몸을 기울이면 선율이 무한한게 흘렀고, 천재 쇼스타코비치는 그것을 작곡에 이용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그녀는 또한 내가 영어로 말할 때 무질서하다고 함.
중국어는 `시간`이나 `공간` 개념부터 문장 시작함. 순서는 이런 식이다.

지난가을 만리장성에서 우리는 먹는다 바비큐를.

따라서 중국어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작은 인간보다 언제나 크다. 영어 문장에서는 순서가 달라서, 전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여 나(I)나 제이크, 메리가 모든 것의 앞에 있음.

그에 관한 현실은 너무 연약하여 섬세한 중국 화병처럼 깨지기 쉽다.

이 나라에서 외로움은 뭔가 매우 단단하고 매우 무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쉽사리 만질 수 있고 닿을 수 있다.

당신 친구들은 대나무 숲을 탈출한 세 마리 판다를 보듯, 우리 세 동양인을 쳐다본다.

내 서랍에서 마오쩌둥 어록을 꺼낸다. 마오의 연설에는 여성들과 동등한에 관한 기록이 몇 쪽 있다.

위대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일어나 생산적인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은 생산 현장에서 동등한 일에 동등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

12시 30분. 아직도 리스본으로 가기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카페 밖에 앉아 작은 잔으로 쓴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포르투갈인들은 하루에 에스프레소를 몇 잔이나 마실까? 어떤 사람의 몸이 카페인과 설탕과 니코틴과 코카콜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떨까? 그럼 너무 많은 열정을 불러이일으킬까? 삶이 좀 더 활력에 넘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십억 광년의 고독 대산세계문학총서 81
다니카와 슈운타로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나는 화성에게 말 걸고 싶어진다.

이쪽은 흐려서
바람도 낮고
바람도 강해질 뿐
이봐!
그쪽은 어때.

달이 보고 있다.
완전히 냉정한 제3자로서

많은 별이 주시해서 아프다
아직도 어린 지구의 자식들이여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화성의 붉은색이 따뜻한 것이다.

슬픔은
깎다 만 사과
비유가 아니고
시가 아닌
그냥 거기에 있는
깎는 도중의 사과
슬픔은
그냥 거기에 있는
어제 날짜 석간신문

사랑의 시작

너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네 얼굴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정신 차려 보니 문득 귀에 익은 음악 한 소절을 반복해서 읊조리고 있는 거야
너를 만나고 싶지만
그것은 정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호기심으로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버린 건가
다시 한 번 네 앞에서 나의 마음을 ㅗ학인하고 싶은 거야
그 이전의 일은 떠오르지 않네
너를 포옹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어
단지 네가 없는 세계가 정말 따분해서
나는 고속 촬영하는 영화 속 배우처럼
천천히 담배에 불붙이는 거야
그러면 너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쾌락처럼도 생각돼
너는 어쩌면 언젠가 내가 타국에서 본
아득한 옛날 아름다운 조각상의 하나일지도 몰라
그 옆에서 분수는 높이 솟아 햇살에 빛나고 있네

울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려
눈시울을 눈물로 적신 채
상대의 농담에 나는 웃었다.

내가 운 이유는 통속 소설의 통속적인 한 줄 때문이지만
하지만 알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구원받아
덕분에 웃었을지도 모른다.

5월의 노래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는 달
그 사람을 사랑해도 좋다고
푸른 하늘 눈동자 따뜻하게
나를 내려다보시는 달

바바루아가 흔들리는 달
꽃나무 아래 앉아
심장의 알레그로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새로운 나를 만나는 달

집집마다 숲이 있고
숲에는 바다가 있고
바다에는 사막이 있어
모든 역사가 겹쳐지는 달

- 할지도 모를 달.

9월의 노래

당신께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슬픔이 아니지
바람에 흔들리는 맨드라미를
말없이 바라본다.

당신 곁에서 울 수 있다면
그건 슬픔이 아니지
파도 소리 반복되는 저 파도 소리는
내 마음 늙어가는 소리

슬픔은 언제나
낯설다
당신 탓이 아니다
내 탓도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모두는 자신이 받은 교육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 자신이 사는 시대의 산물이다.

모터사이클을 탈 때면 사람과 장비가 일체가 된다. 모터사이클이 타는 이의 고유수용성감각(자신의 신체 위치, 자세, 펴형, 운동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중추신경계로 전달하는 감각) 즉, 타는 이의 움직임과 자세에 맞춰지는 까닭에 신체의 일부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바이크와 라이더가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 되는 것은 말을 탈 때와 아주 흡사하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자동차는 운전자의 신체 일부가 되지 못한다.

그는 랜드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슈퍼컴퓨터에 들어갈 다양한 체스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프로그램 테스트를 위해 슈퍼컴퓨터와 체스를 두곤 했다. 특히 LSD 를 복용한 황홀 상태에서 대결하는 것을 좋았다. 그렇게 하면 자기 수가 훨씬 더 변칙적이고 독창적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1965년 무렵부터 교통체증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동부는 특히 더했다. 모터사이클 타고 달리던 길 위의 삶, 캘리포니아에서 누렸던 자유와 환희는 거기서 끝났다.

어쩌면 나조차 내가 연구 분야에서 성공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저는 좋은 연구자가 되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게으르고 너무 엉성하고 심지어는 너무 불성실한 사람인 듯합니다. 제가 정말로 즐거운 것은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것...그리고 읽고 쓰는 일입니다."

"...우리의 과학 사랑도 따지고 보면 순전히 문학적이었지"

마감 기한을 하루 앞둔 9월 9일, 원고를 들고 페이버앤드페이버로 갔다. 출판사 사무실은 대영박물관 근처 그레이트러셀 스트리트에 있었다. 원고를 넘기고 걸어서 박물관으로 갔다. 창작자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은 그곳의 유물을 보면서 나 또한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기분에 젖었다.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실체와 존재가 있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이모는 조너선에게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인생인데 그 아이가 그토록 열중해서 해내는 그 모든 것이 놀랍기만 하더구나."

여긴 정말 근사한 도시예요. 풍요롭고 사람을 흥분시키고, 규모와 깊이가 다 무한해요. 런던처럼요. 두 도시가 심오하게 다르긴 하지만요. 뉴욕은 알록달록하고 번쩍번쩍해요. 밤중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모든 대도시가 그런 것처럼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양식이 뒤섞여 있는 것이 거대한 퍼즐 도시랄까, 고품격 모자이크 작품 같은 곳입니다. 반면에 런던은 진화해온 도시라는 느낌을 줍니다.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 유적이나 지구의 지각처럼, 현재가 겹겹이 쌓인 과거라는 시간의 층을 투명하게 덮고 있는 도시죠. 그런데 말이에요, 아무리 합성물처럼 번쩍거린다 해도 뉴욕은 또 이상하게 전통적이고 고풍스러운 도시랍니다. 거대한 대들보의 고가철도는 1880년대에 건설된 환상열차고, 가재꼬리를 형상화한 듯한 크라이슬러빌딩은 화려한 에드워드시대 양식을 재현했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보면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는 거대한 킹콩의 그림자가 겹쳐 보입니다. 이스트브롱스크 지역은 20년대 초 런던의 화이트채플 구역 같아요.

열흘 뒤 마침내 근무 환경과 임금 문제가 타결되어 직원들이 업무에 복귀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날 밤, 내 차 앞유리가 박살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큼지막한 손글씨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사랑해요, 색스 박사님. 그래도 박사님은 파업파괴자였어요."

나는 위스턴이 떠나고 나서야 우리가 나누던 그 모든 두서 없는 이야기가 한 지점으로 수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대화의 초점은 작별이었다. 우리에게, 그리고 미국에서 보낸 자신의 반생, 그 33년에 고하는 작별. 공항에서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 직전에 한 낯선 사람이 다가오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오든 선생님 맞으시죠...선생님을 우리나라에 모실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습니다. 언제든 다시 오십시오. 귀빈이자 친구로서 환영합니다." ...나는 위스턴에게 이런 만남이 흔히 있는 일인지 물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결코 흔해빠진 일은 아니죠. 이렇게 오가다 만나는 분들한테는 순수한 사랑이 있어요." 그 예의 바른 낯선 신사가 삼가는 몸가짐으로 물러난 뒤 나는 위스턴에게 이 세계를 어떻게 느끼는지, 아주 작은 곳으로 느끼는지 아니면 아주 큰 곳으로 느끼는지 물었다.

"둘 다 아니에요. 큰 곳도 작은 곳도 아닙니다. 아늑해요. 아늑한 곳이죠"

그러고는 나지막이 덧붙였다.

"정든 집처럼"

`깨어남`은 아무튼 놀라운 책이야 60년대 말 언제쯤인 듯한데 네가 쓰고 싶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기억이 난다. 좋은 과학책인 동시에 하나의 작품으로 읽을 가치도 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지. 여기에서 그걸 확실하게 성취했어. 네가 보여주곤 하던 `그레이트 다이어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어.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한 가지 자질이 너무나 부족했어. 정말이지 가장 중요한 자질, 인간애라고 불러도 좋고 연민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쯤 되는 것 말이야. 그리고 솔직히 네가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체념했어. 그런 자질은 가르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 연민의 결핍이 곧 네 관찰력의 한계라고 믿었지. 그때 내가 몰랐던 건 인간애라는 것이 사람이 삼십대가 될 때까지 성장이 유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야. 그때 네가 썼던 글에서 빠져 있던 그것이 지금 `깨어남`에서 최고 지휘자 역할을 해냈어. 그것도 아주 멋지게. 네 글쓰기 스타일 자체도 인간애가 지휘하고 있어. 그랬기에 그처럼 벽이 없는, 그토록 감수성이 풍부하고 다양성이 살아 있는 글이 될 수 있었던 거야.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건지 너 자신

너 자신은 알려나 모르겠다. 그저 환자들과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일어난 일일까, 아니면 LSD의 도움으로 사람이 열린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와 진짜로 사랑에 빠진 것일까(반하는 것하고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말이야) 아니면 그 셋 다일까...

1994년 초여름에 도둑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다. 어느 날 밤 시내에 갔다 오는데 현관에 녀석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우유를 한 접시 가지고 나왔다. 목이 말랐던지 싹싹 핥아먹었다. 그러고는 나를 보는데 이렇게 말하는 눈빛이었다. "이봐요, 고맙긴 한데요, 배도 고프단 걸 몰라요?"

이번에는 접시에 생선을 한 조각 담아다 주었다. 무언의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약조가 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같이 살아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