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모두는 자신이 받은 교육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 자신이 사는 시대의 산물이다.

모터사이클을 탈 때면 사람과 장비가 일체가 된다. 모터사이클이 타는 이의 고유수용성감각(자신의 신체 위치, 자세, 펴형, 운동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 중추신경계로 전달하는 감각) 즉, 타는 이의 움직임과 자세에 맞춰지는 까닭에 신체의 일부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바이크와 라이더가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 되는 것은 말을 탈 때와 아주 흡사하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자동차는 운전자의 신체 일부가 되지 못한다.

그는 랜드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슈퍼컴퓨터에 들어갈 다양한 체스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프로그램 테스트를 위해 슈퍼컴퓨터와 체스를 두곤 했다. 특히 LSD 를 복용한 황홀 상태에서 대결하는 것을 좋았다. 그렇게 하면 자기 수가 훨씬 더 변칙적이고 독창적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1965년 무렵부터 교통체증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동부는 특히 더했다. 모터사이클 타고 달리던 길 위의 삶, 캘리포니아에서 누렸던 자유와 환희는 거기서 끝났다.

어쩌면 나조차 내가 연구 분야에서 성공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저는 좋은 연구자가 되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게으르고 너무 엉성하고 심지어는 너무 불성실한 사람인 듯합니다. 제가 정말로 즐거운 것은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것...그리고 읽고 쓰는 일입니다."

"...우리의 과학 사랑도 따지고 보면 순전히 문학적이었지"

마감 기한을 하루 앞둔 9월 9일, 원고를 들고 페이버앤드페이버로 갔다. 출판사 사무실은 대영박물관 근처 그레이트러셀 스트리트에 있었다. 원고를 넘기고 걸어서 박물관으로 갔다. 창작자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은 그곳의 유물을 보면서 나 또한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기분에 젖었다.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실체와 존재가 있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이모는 조너선에게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인생인데 그 아이가 그토록 열중해서 해내는 그 모든 것이 놀랍기만 하더구나."

여긴 정말 근사한 도시예요. 풍요롭고 사람을 흥분시키고, 규모와 깊이가 다 무한해요. 런던처럼요. 두 도시가 심오하게 다르긴 하지만요. 뉴욕은 알록달록하고 번쩍번쩍해요. 밤중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모든 대도시가 그런 것처럼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양식이 뒤섞여 있는 것이 거대한 퍼즐 도시랄까, 고품격 모자이크 작품 같은 곳입니다. 반면에 런던은 진화해온 도시라는 느낌을 줍니다.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 유적이나 지구의 지각처럼, 현재가 겹겹이 쌓인 과거라는 시간의 층을 투명하게 덮고 있는 도시죠. 그런데 말이에요, 아무리 합성물처럼 번쩍거린다 해도 뉴욕은 또 이상하게 전통적이고 고풍스러운 도시랍니다. 거대한 대들보의 고가철도는 1880년대에 건설된 환상열차고, 가재꼬리를 형상화한 듯한 크라이슬러빌딩은 화려한 에드워드시대 양식을 재현했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보면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는 거대한 킹콩의 그림자가 겹쳐 보입니다. 이스트브롱스크 지역은 20년대 초 런던의 화이트채플 구역 같아요.

열흘 뒤 마침내 근무 환경과 임금 문제가 타결되어 직원들이 업무에 복귀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날 밤, 내 차 앞유리가 박살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큼지막한 손글씨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사랑해요, 색스 박사님. 그래도 박사님은 파업파괴자였어요."

나는 위스턴이 떠나고 나서야 우리가 나누던 그 모든 두서 없는 이야기가 한 지점으로 수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대화의 초점은 작별이었다. 우리에게, 그리고 미국에서 보낸 자신의 반생, 그 33년에 고하는 작별. 공항에서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오기 직전에 한 낯선 사람이 다가오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오든 선생님 맞으시죠...선생님을 우리나라에 모실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습니다. 언제든 다시 오십시오. 귀빈이자 친구로서 환영합니다." ...나는 위스턴에게 이런 만남이 흔히 있는 일인지 물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결코 흔해빠진 일은 아니죠. 이렇게 오가다 만나는 분들한테는 순수한 사랑이 있어요." 그 예의 바른 낯선 신사가 삼가는 몸가짐으로 물러난 뒤 나는 위스턴에게 이 세계를 어떻게 느끼는지, 아주 작은 곳으로 느끼는지 아니면 아주 큰 곳으로 느끼는지 물었다.

"둘 다 아니에요. 큰 곳도 작은 곳도 아닙니다. 아늑해요. 아늑한 곳이죠"

그러고는 나지막이 덧붙였다.

"정든 집처럼"

`깨어남`은 아무튼 놀라운 책이야 60년대 말 언제쯤인 듯한데 네가 쓰고 싶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기억이 난다. 좋은 과학책인 동시에 하나의 작품으로 읽을 가치도 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지. 여기에서 그걸 확실하게 성취했어. 네가 보여주곤 하던 `그레이트 다이어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어. 대단한 재능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한 가지 자질이 너무나 부족했어. 정말이지 가장 중요한 자질, 인간애라고 불러도 좋고 연민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쯤 되는 것 말이야. 그리고 솔직히 네가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체념했어. 그런 자질은 가르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그 연민의 결핍이 곧 네 관찰력의 한계라고 믿었지. 그때 내가 몰랐던 건 인간애라는 것이 사람이 삼십대가 될 때까지 성장이 유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야. 그때 네가 썼던 글에서 빠져 있던 그것이 지금 `깨어남`에서 최고 지휘자 역할을 해냈어. 그것도 아주 멋지게. 네 글쓰기 스타일 자체도 인간애가 지휘하고 있어. 그랬기에 그처럼 벽이 없는, 그토록 감수성이 풍부하고 다양성이 살아 있는 글이 될 수 있었던 거야.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건지 너 자신

너 자신은 알려나 모르겠다. 그저 환자들과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일어난 일일까, 아니면 LSD의 도움으로 사람이 열린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와 진짜로 사랑에 빠진 것일까(반하는 것하고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말이야) 아니면 그 셋 다일까...

1994년 초여름에 도둑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다. 어느 날 밤 시내에 갔다 오는데 현관에 녀석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우유를 한 접시 가지고 나왔다. 목이 말랐던지 싹싹 핥아먹었다. 그러고는 나를 보는데 이렇게 말하는 눈빛이었다. "이봐요, 고맙긴 한데요, 배도 고프단 걸 몰라요?"

이번에는 접시에 생선을 한 조각 담아다 주었다. 무언의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약조가 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같이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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