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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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특정한 상태를 폄하할 때 흔히 질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똑같은 상태지만 인정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교수들은 어떤 질환의 신체적 귀결을 의미하는 ‘기능장애‘와 사회적 맥락의 어떤 결과를 의미하는 ‘능력장애‘의 차이를 강조한다.

... 능력이란 다수의 횡포에 불과하다. 만약 대다수 사람들이 팔을 퍼덕거려서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될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상태에는 명시적으로 존재하는 진실이 없다. 이는 단순히 관습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신경 촬영법을 통해 확인해 보면 어릴 때 수화를 배운 사람은 수화 능력이 거의 대부분 언어 영역에 보관되지만, 어른이 되어 수화를 배운 사람은 시각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뇌 영역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어는 그 언어에 노출되어 있을 때만 배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뇌의 언어 중추가 효율성 차원에서 위축된다.

"때때로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이 보다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해요. 소인증일까요? 아니면 나 자신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우울증일까요? 슬픔에 비하면 차라리 소인증은 극복하기 쉬웠어요."

베티는 브루클린에 있는 그들 동네를 남편 솔과 함께 산챍하면서 장애인을 만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전쟁을 치르지만 그런 전쟁은 당신이 문을 닫기만 하면 그만이에요. 곧바로 편안해지죠. 하지만 이 전쟁은 닫을 문이 없어요"

"사람들은 내 입장에 되어 사는 게 어떤지 전혀 몰라요. 하지만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떤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죠."

"사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성찰적인 최초의 다운증후군 아이예요. 다운증후군이고 자기 성찰적이라는 사실은 축복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볼 때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봐요. 그런 맥락에서 제이슨은 자신의 부족한 점들이 얼마나 두드러져 보이겠어요?"

정신분열증에 대한 유전적 취약성은 태아기 환경의 차이를 비록해서 촉발성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는다. 산과적 합병증이나 진통 또는 분만 과정의 합병증은 태아의 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정신분열증 환자들일수록 과거에 그러한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 인신 기간 중에 임부가 풍진이나 인플루엔자 같은 병에 걸리는 경우에도 위험이 증가한다.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사람들 중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도 어쩌면 임신 중기의 임부가 겨울에 바이러스에 감열될 확률이 높은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임신 기간 중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정신분열증과 상관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임신 중에 전쟁을 겪거나 배우자가 사망한 여성이 낳은 자녀가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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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려고 하지 마라 -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유혹적인 글쓰기
메러디스 매런 엮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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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저자가 아니라 '엮은이'로 표시되어 있다. 말 그대로 매러디스 매런이란 사람은 스무명의 미국 유명 작가들을 간략히 인터뷰해서 이 책을 엮어내었다. 한 책에 스무명이나 되는 작가의 인터뷰를 담으려니 인터뷰 내용이 짧을 수 밖에 없고 그 짧은 인터뷰에 딱히 인터뷰어의 통찰이나 직관이 담긴것도 아니라서 정말 그녀는 엮은이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라이트하게 미국의 유명작가들이란 이런 경로로 글을 쓰고 이렇게 벌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바자나 보그에 실린 유명인사들 인터뷰 보는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그 이상의 의미있는 무엇 - 잘 쓰려고 하지 마라는 식의 명료한 메시지-을 얻을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작법서는 더더욱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미국의 출판업계에서는 나름 잘 나간다, 자리를 잡았다 하는 전업 작가들이지만 한국 독자들이 한 번에 알만한 작가들은 별로 없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부를 팔았다, 수천만부를 팔았다 하는데 그들의 필모를 잘 보면 일단 양으로 많이 써낸 분들. 딱히 월드클래스 수준이 아니라도 저렇게 팔아치우는 걸 보면 영어로 쓰는게 깡패라는 깨달음이 온다. 


책의 내용은 주로 그들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와 작가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픈 말 등등인데 앞서 말했듯이 분량 자체가 적다보니 그렇게 깊이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작가들의 커리어 패스가 너무도 제각각이다 보니 그들이 하는 조언이 상충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일년에 수억을 받는 직장을 때려치고 쓴 첫 책이 대박이 나서 고생따위 없이 커리어 전환을 한 작가는 '저질러라!' 식의 조언을 한다. 지금 다니는 그 직장 다니면서 써봐야 별 소득 없을거라는 이야기. 반면 육아를 하고 아이들 교육비를 벌기 위해 기술문서 작성등 글과 관련된 사이드잡을 여러개 하며 어렵게 어렵게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이어온 사람들은 반대의 조언을 한다. 밥벌이는 중요한 것이니 일단 먹고 살 방편을 생각하고 글을 쓰라고.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느낌은 명료한 제목과는 달리 그냥 아 이렇구나 저렇구나 남들의 생각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제목을 보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마시길.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첫째, 미국식 작가 양성 과정.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학에서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든 다양한 작가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수련하고 데뷔를 한다.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한국식 데뷔의례와는 다르다. 신인작가들이 유능한 에이전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둘째, 미국에서도 여성작가들의 커리어 잇기는 정말 힘들구나 하는 깨달음. 주로 자리를 잡은 나이가 있는 5670년생 작가들 이야기라 그런지 이 책에 나오는 여성작가들 대부분이 기혼인데 그들이 들려주는 애를 키우며 글을 쓰는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책상 옆에 가두리를 치기도 하고 옷장 안에 책상을 넣은 다음 옷장 안에서 글을 쓰기도 한다. 남성 작가들의 인터뷰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 요즘 세대는 다를거 같지만 바로 직전 세대까지만 해도, 그 잘난 미국에서도 여자들은 이렇게 글을 써왔구나 하는 애틋함. 셋째, 미국에서 전업작가들은 대충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흥미로운 구경. 정말 대박작가들이 편하게 하는 소리와 이름은 좀 유명하지만 아직도 겨우 밥먹고 사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그 결이 달라서 그런지 굳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인터뷰에서 느껴진다.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기에 미국에서 작가로 사는 삶이 어떤것인지 대충이나마 그 다른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다소 어색한 번역, 그리고 각 작가의 인터뷰마다 그 작가의 책에서 한 문단 정도를 따와서 밑줄긋기 하듯 써놓았는데...그게 원문으로 보면 의미가 있겠지만 그저그런 번역으로 실려있다보니 읽어봐야 별 감흥 없는 쓸데없는 부분이 되고 말았다. 원문도 같이 병기를 해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고, 내용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원서로 읽어도 괜찮을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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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려고 하지 마라 -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유혹적인 글쓰기
메러디스 매런 엮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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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바깥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쓸거리가 더 이상 없다면 나도 내 내면 세계에서 몇 가지를 짜내겠지만, 내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은 내 삶의 목표가 아니다.

사람들은 소설 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큰 키와 운동신경이 없으면 덩크슛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것은 알면서도, 뇌가 있고 노트북이 있는데 소설 그까짓 게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어? 라고 생각한다.

출판업계에서는 여성작가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여성소설이라는 좁은 범주에 넣어버린다. 아차 하는 사이 책에는 분홍색 커버가 둘러져버리고, 남성 독자들은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내 책을 꺼내 읽는 행동도 감히 시도조차 못하게 된다. 내가 왜 그런 식으로 남성독자들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워터 포 엘리펀트는 일부러 분류하기 애매하도록 신경을 좀 썼다. 아흔세 살의 할아버지가 화자인 소설이라면 범주화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글의 공통점은 글에, 문장에, 문단에 리듬이 있다는 점이다. 리듬이 없으면 책을 읽기가 힘들다. 그런 점에서 글은 음악과 매우 비슷하다. 책 속에는 저마다 고유의 리듬이 있어서 독자들을 이끌어준다. 사람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이 저절로 흘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문장이나 문단에 내재한 리듬은 그 글의 디엔에이와도 같다. 그런 리듬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에게는 오만 가지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글을 쓸 수 없는 약 20년간의 공백 기간이 있다.

시도했었다. 실패했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더 잘 실패하라. -Samuel Beckett

위대한 작가들은 대개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고 힘들어한다. 시시한 작가들은 대개 자신감이 넘친다

지금 나는 나이 쉰이 다 되어 간다. 쓰고 싶은 건 뭐든지 쓸 수 있는 나이다. 이 사람 저 사람 감정을 보호하려 애쓰면서 이렇게 써도 되는지 아닌지 허락을 받으며 쓰고 싶지는 않다.

누구도 당신에게서 글쓰기를 앗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누가 당신에게 글쓰기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능은 있으나 부질없이 인생을 허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심지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을 잃어도 끈질기게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재능도 있고 자기 관리도 잘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성실한 자기 관리는 재능은 무론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스스로를 그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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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1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쓰는 게 제 삶의 목표인데 괜히 부끄러운~~~~!

2018-02-14 0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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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모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이모에게서 연락이 오면 냉정하게 대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이모도 더이상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엄마가 이모를 부담스러워했다는 사실은 이모를 아프게 했지만 그만큼이나 엄마 역시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이십대 초반의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다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있지, 카로. 한지와 나는 매일 이야기를 나눠. 일하지 않는 시간이 겹치면 수도원 주위를 산책하고 밤에는 매점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 나눠 마셔. 자정이 넘으면 수돗가 옆 나무 밑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한지는 나를 알아. 그리고 나는 한지가 코뿔소의 마음을 상상하듯, 한지의 마음을 상상해. 가끔씩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지의 집 발코니에 앉아 있기도 해.

...쉰다섯 명까지 불어났던 봉사자들이 삼 주 만에 열다섯 명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늘 시끌벅적했던 거실은 황량해졌고, 아이들이 뜨개질을 하던 바닥에는 뜨개바늘과 털실만 굴러다녔다. 몇몇 애들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차를 마시다가 훌쩍대기도 했다. 그 눈물에는 떠난 이들에 대한 감미로운 애정이 담겨 있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생활을 함께했다는 행복. 그 지속될 수도, 반복될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함께 존재했다는 행복. 그 눈물은 고독이 없었던 시간에 대한 애도였다.

그녀 나이 서른하나.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도 실금 하나 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닞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그녀의 이십대를 통해 깨쳤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별 가망이 없으리라고 의사는 조심스레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무녀졌을 말이었지만 말자는 오히려 편안했다. 더이상의 수술도 항암치료도 싫었다. 무엇을 위해 생을 연장해야 하는지 이유도 알 수 없었고 어떤 미련도 없었다. 차라리 잘됐지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살아 있다는 것도 두렵다는 점에서는 죽음과 진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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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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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사회생활은 알코올 중독자가 걸어가는 길에 표지판처럼 우뚝 서서, 너는 아무 문제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그들은 직장에서 능력을 바루히하고 승진을 하고 돈을 벌며 마감을 칼같이 지킨다. 도대체 누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말인가!

나이 들면서 나는 기억이란 미생물과 같은 작은 생명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정착할 곳이 없으면, 기억에 붙여둘 적절한 레이블이 없으면 그것은 어두운 구석에 가라앉아 조용히 지내다가 난데없는 순간에 불현듯이, 혹은 꿈속 같은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힌다.

AA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간편한 변신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한다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진흙탕처럼 혼탁해지고 만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삶을 구역화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중인생 심지어 삼중, 사중 인생까지도 영위하는 것은 하나의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하나의 삶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선명한 이해에 기반을 둬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술은 진정한 감정과 진정한 공포와 진정한 의문을 마비시킨다. 정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빼앗아간다.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움켜쥐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자신을 괴로운 상태로 몰아넣는다.

집에 오면 곧장 맥주를 들이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쌓여가는 술병은 스타이런이 말했듯이 일종의 동맹군처럼 느껴졌다. ... 그 무렵 나는 끊임없이 마셔대는 맥주와 와인이 내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것은 나에 대한 뼈저린 의식을 막아주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감당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게 해주었다.

알코올 중독자인 루이즈는 20대 내내 획기적 전환을 찾아 헤맸노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획기적 전환이란 어느 날 불현듯이 찾아와서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는 일대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물론 그녀는 약물과 알코올을 사용해서 그런 인생에 도달하려고 했지만 그 밖에 다른 방법도 여럿 시도했다. 루이즈에게 그런 계기는 주로 다른 아파트나 다른 직장, 그리고 다른 도시였다. 한 곳에서 일이 어그러 지면 그녀는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 ...다시 학교에 입학해서 학위나 자격증을 따고, 직업을 바꾸는 식으로. 자기인생의 외부를 구부리면 인생의 내부도 함께 구부러질 것을 기대하는 행동들.

이런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말하자마자 그냥 상투적인 표현으로 여겨지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성장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며, 어른이란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서적인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서적 수준이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성숙이 외부에서 불쑥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지냈다. 마치 성숙이라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일 것처럼. ...술을 끊으면 우리는 이제 기다리지 않게 된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서 내가 해야 할 성장의 노역을 대신해줄 거라는 끈질기고도 인간적인 소망을 버리게 된다. 술을 끊은 건 아마도 내가 그때까지 내린 결정 가운데 진실로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는 최초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성장의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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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12-1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일라님, 잘 지내시죠?
혹시 몰라서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transient-guest 2017-12-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나왔을 때 영문판 사놓고 어디엔게 들어가 있는 듯...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