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혼술에서 중독까지, 결핍과 갈망을 품은 술의 맨얼굴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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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사회생활은 알코올 중독자가 걸어가는 길에 표지판처럼 우뚝 서서, 너는 아무 문제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그들은 직장에서 능력을 바루히하고 승진을 하고 돈을 벌며 마감을 칼같이 지킨다. 도대체 누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말인가!

나이 들면서 나는 기억이란 미생물과 같은 작은 생명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정착할 곳이 없으면, 기억에 붙여둘 적절한 레이블이 없으면 그것은 어두운 구석에 가라앉아 조용히 지내다가 난데없는 순간에 불현듯이, 혹은 꿈속 같은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힌다.

AA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멈춘다는 것이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간편한 변신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한다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진흙탕처럼 혼탁해지고 만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삶을 구역화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이중인생 심지어 삼중, 사중 인생까지도 영위하는 것은 하나의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하나의 삶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선명한 이해에 기반을 둬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술은 진정한 감정과 진정한 공포와 진정한 의문을 마비시킨다. 정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빼앗아간다.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움켜쥐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자신을 괴로운 상태로 몰아넣는다.

집에 오면 곧장 맥주를 들이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쌓여가는 술병은 스타이런이 말했듯이 일종의 동맹군처럼 느껴졌다. ... 그 무렵 나는 끊임없이 마셔대는 맥주와 와인이 내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것은 나에 대한 뼈저린 의식을 막아주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감당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게 해주었다.

알코올 중독자인 루이즈는 20대 내내 획기적 전환을 찾아 헤맸노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획기적 전환이란 어느 날 불현듯이 찾아와서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는 일대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물론 그녀는 약물과 알코올을 사용해서 그런 인생에 도달하려고 했지만 그 밖에 다른 방법도 여럿 시도했다. 루이즈에게 그런 계기는 주로 다른 아파트나 다른 직장, 그리고 다른 도시였다. 한 곳에서 일이 어그러 지면 그녀는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 ...다시 학교에 입학해서 학위나 자격증을 따고, 직업을 바꾸는 식으로. 자기인생의 외부를 구부리면 인생의 내부도 함께 구부러질 것을 기대하는 행동들.

이런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말하자마자 그냥 상투적인 표현으로 여겨지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성장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며, 어른이란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서적인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서적 수준이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성숙이 외부에서 불쑥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지냈다. 마치 성숙이라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일 것처럼. ...술을 끊으면 우리는 이제 기다리지 않게 된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서 내가 해야 할 성장의 노역을 대신해줄 거라는 끈질기고도 인간적인 소망을 버리게 된다. 술을 끊은 건 아마도 내가 그때까지 내린 결정 가운데 진실로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는 최초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성장의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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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12-1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일라님, 잘 지내시죠?
혹시 몰라서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transient-guest 2017-12-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나왔을 때 영문판 사놓고 어디엔게 들어가 있는 듯...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