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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친 여름 ㅣ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경영대학에 속한 학생의 신분이다. 경영학과를 3년간 꿈꾼것도 아니고 대단히 이 과와 관련된 무언가가 하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다. 그저 원서 쓸 때 시간은 쫓기고, 이것 저것 어디에나 붙여놔도 말은 되는 과니까 싶어서 오다 보니 이 과에 속하게 되었다. 이렇게 써 놓고 나니 난 참으로 무책임하게 나의 인생을 결정한것같기도 하다. 하여튼, 이렇게 과에 대한 진지한 고찰없이 들어와 놓고 보니 말이다, 이 과는 정말 욕망이 덩어리져서 뭉쳐진 과 같더란 말이다. 경영학과를 저런 과정으로 들어간 내가 나이브한걸지도 모르겠다만. 하여튼 나로서는 견디기 힘든 점이 많았다. 대학이란 것이 원래 전국의 다양한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지만 경영대학생의 하나의 큰 흐름을 보자면 다들 욕망과 욕심과 야망으로 똘똘뭉쳐져 있더란 말이다. (모두가 다 그런건 아니다 당연히)애초에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는 학문이니까 그런 것이다. (과연 학문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과, 경영학이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 돈과 명예와 성공 - 즉 사회에서 한가닥 해먹는것에 목적이 있어서 모인아해들이니 당연한 결과이다. 학문에 뜻이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경제학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은 있어도 경영학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난 한명도 못봤다) 하여튼 나는 그런 분위기에서 불편함을 느꼈고 때때로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돈과 성공에 대해 그리 초연한 편은 아니다. 그걸 가져야한다는 막연한 생각은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상대적인 것 아닐까..몇살엔 무슨 자격증을 따고 몇살엔 얼마쯤 모으고..벌써부터 (20대 초반부터) 국회의원 선거를 염두에 둔다던지, 주식과 부동산에 관심을 둔다던지하는 그런 욕망속에서 나는 지나치게 어리고 순진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것만 같았다. 소속집단 주류의 정체성과 다른 개인의 모습은 무언가 . 불안함을 유발시킨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시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도대체가, 부동산 투자에 대해 이야기 하는 대학 내 라디오 방송이라니!! (대학생의 금전적 능력에 걸맞는 제테크 방법에 대해 학내 라디오 방송에서 주마다 일러준다.)하여튼 간에 중요한건 이게 아니고. 이 책에 실린 2편의 중편, 내가 훔친 여름 그리고 60년대식 중 내 마음을 움직인 건 60년대 식 이었다. 내가 훔친 여름이란 작품은 내가 김승옥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같다는 인상을 준 , 그러한 작품이었다. '선데이 서울'에 연재되었다는 60년대식에 이리 크고 깊은 감명을 받는 걸 보니 내 수준이 이 정도인가보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선데이 서울이 아마...뭐....그런 잡지 아닌가? 그렇다고 글이 수준이 낮은건 당연이 당연히 아니고, 작가가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쉽게 풀어서 쓴 글이겠지..(내가 훔친 여름은 중앙일보에서 연재되었다고 한다) 60년대식은, 열정없는 한 인간의 하루 이틀에 걸친 행동을 하나하나 낱낱이 따라가며 그리고 있다. 김승옥 소설의 특징이다. 이제 기껏4편 읽었는데 모두 이렇다.
이 이상의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선택해서 읽어주세요
"...그리고 이런 말씀 드리기에는 좀 뭣합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형에게서 제가 느낀 바로는, 형은 많은 지식도 가지고 계신 것 같고 교양도 있어 보이고 선량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만, 뭐랄까요, 정열은 없는 사람같습니다. 정열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저는 별로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도인은 어안이 벙벙해져버렸다. 그에게 한 대 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그렇다. 도인이 가장 경계하는 것들 중의 하나야 말로 바로 정열이라는 것이었다. 도인의 이해 속에서 정열이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가장 나쁜 원인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였다. 정열이라고 하면 도인의 머릿속에 우선 떠오르는 것은 어쩐지 수양이었고 연산군이었고 일본 군국주의자들이었고 히틀러였고 중공의 홍위병이었다. 그리고 약간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모든 것에서 엿보이는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판단이 결핍됐을 때 나오는 우격다짐의 행동이었고, 무기교를 감추려는 광란의 몸짓이었고, 지나가버린 일, 또는 이렇게 쓸 수도 있고 저렇게 쓸 수도 있는 시간에 대하여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느끼고 있는 절망감에 호소하는 과격한 프로파간다였다.....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정열이란 말처럼 서먹서먹하고 아니 두렵기까지 한 말은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 속에서 정열을 제거해버리려고 노력해왔으며, 모든 사람들이 정열을 내세우지 말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화학기사의 입에서 '당신에게는 정열이 없어보인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도인은 이상스럽게도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정열이 없는 보이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는 얘기에선 패배감조차 느꼈다. 이런 느낌들이 정열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정열이 없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 모욕감을 느끼고 패배감을 느낀 그는, 그렇다면 정열을 무의식적이나마 긍정하고 있덨던 것이 분명하다. 아니다. 이제야 도인은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열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과도한 정열이, 또는 정열로 위장한 추잡한 욕망이 빚어내는 인간에 대한 과오를 경계한 나머지 이제 그에게는 이성과 지성에서 나온 판단을 밀고 나갈 힘이 되어줄 최소한의 정열조차 닳아 없어져버린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언가, 찌르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열정과 야망.욕망을 혼동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타인의 욕망.야망에 기가 질려 어리버리하게 내가 가져야 순수한 열정도 놓치고 산 것이 아닌가. 나도 그들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근데 닮기 싫다고서 행한 행동들이 야망의 부재가 아닌 열정의 부재로 나타난건 아닌가.하는 반성.아니 구분할 필요조차 없이 어느새 열정을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열정이 없는 이성과 지성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나를 변화시킬수 없다) 주변의 모습에 위축되지 말고, 열정과 욕망을 혼돈하지 말고, 나만의 열정을 지켜야겠다는 큰.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돈과 세속적인 부를 향한 노력을 욕망으로 정의 하는 내가 오만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열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튼 내 기준에선 그건 나의 열정이 아니니 나만의 열정으로 살아야겠다는, 나만의 기준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 책이다. 감사합니다 김승옥님. 패션쇼에서 옷의 디테일이 보이면 하급. 아직 수준 낮은 디자이너의 쇼이고 옷의 이미지가 보이면 상급, 대가의 쇼라고 하였다. 모든 예술에서 통하는 말인가 보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그 무엇. 그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