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생활을 꾸려가는게 3년 쯤 되는데 올해 봄부터 무언가 내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혼자 생활에 어느정도 기틀이 잡힌 것이기도 하고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더 밝고 더 진취적이고 어찌 말하면 더 속물적인 변화, 하지만 나는 그 변화가 반갑다.
지금까지는 장사하면서 손님에게 많이 배운다 생각했는데 올해는 공급자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빠른 응대, 정확함, 친절한 태도 같은 교과서적인 요소들 외에도 거래하는 상대방을 먼저 믿는 태도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하다는 선진국 사람들에게선 이런 장사꾼의 자질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이미 모든 것이 메뉴얼화되고 시스템화 된 그 회사들에게선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당신이 물건대금을 입금하면 발송해주면 그만이고, 당신의 계정을 담당하는 직원은 뭐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것이고... 최근에 거래하는 소위 개도국의 공급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 자신의 업이기에 필사적이고 진지하고 진실하다. 자신의 상품 퀄리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를 믿는다. 사람을 믿는다. 한 공급자는 내가 물건 대금을 입금하기도 전에 물건부터 발송해버렸다. "너와 내가 함께 할 길이 얼마나 긴데 널 믿지 않겠니?"
이건 사랑 아닌가. 세상에 이런 종류의 사랑도 있구나. 장사꾼들 사이의 사랑.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라 신비롭다. 이런 사람들과 새벽까지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지금도 내 왓츠앱은 띵띵거린다. 시차를 고려한다 하여도 그곳도 자정이 넘은 시각. 난 왜 지들 퇴근 시간 지나면 연락 안되는 미국애들보단 이런 공급자들이 더 정감이 갈까. 이렇게 절박한 사람들 물건을 팔아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이런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싶다. 내 나름대로 올해는 목표도 거창하고 구체적이며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충만하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마음도 성숙하였다 생각한다.
올해 들어 배우기 시작한 중국어는 이제 슬슬 중급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흥미보다는 필요에 의해 배우기 시작한 것인데 의외로 재미가 있어서 스스로 당황스럽다. 그리고 이렇게든 저렇게든 중국어로 또 새로운 계획과 꿈을 그리고 있다. 잘 되면 좋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꿈을 꿀 수 있는 동력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작년에 배운 일본어는 JLPT2급까지 따고 나름 중급까지 공부를 했지만 실질적 측면에서는 성취도가 낮았고 제일 중요한건 내가 비지니스에서 써먹을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 사람들은 예의를 중시하다보니 겨우 의사소통 되는 수준의-완벽한 존대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내 메일은 내가 내 돈주고 물건을 사겠다고 하여도 응답도 하지 않았다. 올해 새로운 일본 파트너가 생기긴 했지만 영어가 아주 능숙하여 나랑 영어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사람... 나중에 사람의 일이 어찌 풀릴지 모르지만 이걸로 봐선 내가 일년 공들인 일본어는 최상급이 아니기 때문에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일본의 격식차리는 문화 특성 때문에. 중국어는 그렇지 않으리라 기대하고 있고 그렇지만 이번에는 이 언어를 내가 정말 어려움 없이 능숙하게 구사하는 단계까지 가야지 다짐하고 있다.
불쑥불쑥 샘솟는 내 내면의 힘 때문에 스스로도 놀라고 당황스러운 나날들. 내가 원래 이런 인간이 아닌데. 올 연초까지만 해도 모든 것 다 버리고 외국으로 나가겠다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어찌 이리 되었나 모르겠다. 좋은거지 뭐. 내일도 아침부터 자정까지 계획이 잡혀져 있다. I do what I can do. 혼자 사는 사람들에겐 일단 움직이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가만히 있는다고 월급 줄 사람 없으니까. 이걸 머리로 알고 몸으로 익히기 까지 3년이 걸린건가 싶다. 해보지 뭐. 안되면 말고. What can be possibly go wrong?
근데 이런 나를 보고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똑똑한 언니가 이랬다. "넌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찾는구나? 넌 장사할 사람이 아니야." 언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단은 지금 일이 재미있다. 지금 정한 나의 목표에 도전하지 않고서는 그만둘 수 없다.
산다. 나라서 이렇게 살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나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행복하다. 더 행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