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 1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 / 한길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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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로마가 불멸의 고급 콜걸처럼 여겨진다. 스스로는 무엇 하나 노력해서 생산할 줄 모른다. 그렇다고 돈주고 뒷바라지해주는 남자가 부족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창부. 지금 와서는 나이가 좀 들었지만 아직도 장래를 생각해서 저축을 한다든지 생활설계를 한다는 것과는 무관한 여자. 오다가다 객사한다 한들 그게 무슨 한이 되느냐고 여기는 타고난 낙천가. 로마는 그런 자유로운 여자만이 가지는 매력으로 언제나 남자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런 도시다.

그는 2년 전에 이집트 아스완하이댐 공사를 맡기 위해 일본에서 이집트로 파견되었고, 그동안 단 한 번 가족들과 만나기 위해 귀국했다고 말했다. 사막 속 공사이니 전부터 희지도 않았지만 피부는 점점 더 검어졌고, 아랍 사람을 부리는 일도 힘에 부쳤단다. 그래도 파도처럼 추렁이는 모래산 너무로 피라미드를 봤을 때, 역시 저건 삼각형이 아니면 안 될 것이요, 그 형체가 가장 아름답고 자연스럽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는 감탄했단다.

그가 로마에서 묵고 있는 호텔 이름을 들었을 때, 그에 대한 나의 호감은 결정적이 되었다. 로마에서 최고급에 속하는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거기를 숙소로 잡은 이유는 하고자 하는 것을 하려면 되도록 쾌저한 환경이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라 말했다. 인간은 돈을 모을 때보다 쓸 때가 보다 아름답다고 늘 나는 생각하고 있다.

로마 시내를 걷고 있으면 S.P.Q.R 라고 쓴 포스터가 자주 눈에 띈다. 로마 시 포고문이다. 피렌체나 밀라노 그 어느 도시라 한들 고작 포고나 시민 제군으로 시작하지만, 로마만은 다르다. S.P.Q.R 즉 라틴어로 "로마 원로원 및 시민!"이라는 말이다. 이것만은 2천 년 전이나 마찬가지다.

공기가 건조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밝고 현실적인 성격 때문일까. 이 이탈리아에서는 해골마저 들고 흔들면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날 듯싶다.

여기 뉴욕, 아니 미국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가 이 배우와 비슷해. 모두들 불안해하는 한편, 자신들의 정신상태야말로 현대인의 증거라는 기묘한 자부심마저 갖고 있지.

화장품은 한 가지씩 살 때는 별스런 금액이 아니지만 한꺼번에 사려니 어쩜 이렇게도 바보 같은 금액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 나폴리 도둑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이 남자가 일흔 노인이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그의 얼굴에서는 대부분의 노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초조함이 없었다. 스스로가 탐하는 것을 알고 또 그런 인생을 보낸 한 남자가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원건축은 예술적으로 굉장하다든지 종교적인 분위기가 충만하다든지 그런 성실한 이유가 아니라 여기서라면 결혼해도 좋겠다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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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8-1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이 어떤 도시에 특별히 매료되면서 그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경우가 정말 많은 듯싶어요. 정말 어떤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빠져들게 만드는 도시 가운데 '로마' 같은 도시가 얼마나 더 있을까요. 저도 로마에 도착하던 '첫날밤의 흥분'(깜깜한 밤하늘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봤던)만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답니다. ㅎㅎ

* * *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 괴테,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中에서

* * *

"어제 처음 로마에 도착한 사람도 하루만 지나면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로마에 살고 있었던 듯한 얼굴로 시내를 돌아다닌다. 그들을 맞는 로마 사람들도 그들을 이방인으로 보지 않는다."

"베네치아와 피렌체에도 고대가 그림자를 떨구고는 있지만, 고대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다릅니다."
- 시오노 나나미, 《황금빛 로마》 中에서

LAYLA 2014-08-15 03:54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로마에서 큰 감흥을 못 느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니 이탈리아란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더라구요. 다시 가서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겠구요 :)

transient-guest 2014-08-14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로마까지 가기도 전에 들린 오래된 성당 옆을 지나가는 아피아 가도 길바닥에 업드려서 입을 맞추려고 했었지요..ㅎㅎ 그런데 너무 더러워서 말았네요. 시오노 나나미는 지금에 와서 조금 삐딱하게 읽으면 어릴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지만 상당히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인생도 드라마틱하기 그지 없구요.ㅎㅎ

LAYLA 2014-08-15 03:55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런 로맨티스트의 면모가 있으시군요. 이 책을 그녀나이 서른 즈음에 쓴 것 같은데 확실히 이 언니 대단하다, 멋지다 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본인의 도도함이 글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것도 멋이 있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