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에 있어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못지 않게 중요한 책이다. 저자 파이어벤트는 '과학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규범에 도전한다. 파이어벤트에 따르면 과학의 발전은 합리적인 논증과 경험적 발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의 퇴행과 비합리성이 유지될 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과학이 아나키즘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과학발전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우리는 무언가를 '발전'이라고 볼 수 있는가?이런 질문에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어떤 측정도구를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고 답한다.합리성에 관한 이런 비판은 특히 두부류에게 이득을 준다. 하나는 포스트모던주의자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인들이다.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객관성과 합리성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공생관계다.저자의 과학방법론 비판에 쉽게 동의되지는 않는다. 나는 과학에 있어서 여전히 자연주의적 방법론을 옹호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한번쯤 자연주의를 재고하며 깊은 사색에 빠지는 보는건 어떨까?
어렵다. 교양서라 하기엔 내용이 진득하고 부피감이 있다. 학술서라 하기엔 다방면을 훑는다. 그래서 교과서다. 총체적이나, 주제별로 가볍지 않은 내용을 던진다. 기본소득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대한민국 개신교 현상을 종교사회학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사회학에 항상 따라 붙는 꼬리표는 표본과 모델을 지나치게 단순화 한다는 점에 있다. 이 책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 하다. 특히 기독교NGO에 이야기는 순수주의적이다. 그러나 대형교회가 갖는 문제들을 다시 한 번 공론화의 장으로 옮기는데 이 책이 요긴할 듯 하다.
흔히 이 책은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아렌트가 단지 그것만을 말하려고 했을까? 내가 보기에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그 물음이란, '아이히만이 이토록 사유 불능한 인간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그 힌트는 '언어규칙'에 있다. 나치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 제거', '대량학살' 등의 노골적 용어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치스의 계획은 '이주정책', '최종 해결책'이란 용어로 은폐되었다. 이런 언어규칙이 사고를 마비시켰다. 순화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행위에 대한 정당함과 타당성이 사고에 각인된다. 진실을 외면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아렌트는 이를 고발한 것이다.
이 책을 읽을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거 다 아는 얘기 아냐? 어떤 새로운 주장이 있는거지?'. 저자는 친절하게도 끝부분에 이 의문에 관해 답한다. 답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행동경제학이 전통경제학에 의문을 던진건 맞다. 그러나 프레임 자체를 바꾸진 못했다. 경제 주체가 합리적인 판단을 못하는건 매우 특수한 경우들 뿐이라는 프레임에 오히려 정당성을 주었다. 전통경제학은 아직도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시장이 합리적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우리는 자유시장 주체가 합리적이기에(애덤 스미스의 표현으로는 '이기적'이기에) 서로 속고 속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일반론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이 피싱이다.' 나는 이 답에 전적으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