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 1 홍신 엘리트 북스 13
서머셋 몸 지음 / 홍신문화사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

                                                                                           서머셋 몸

[ 1 ]

 

 선천적인 절름발이인 필립 케어리는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블랙스테이블에 있는 목사인 큰아버지 윌리엄 케어리에게 보내져 생활하게 된다. 윌리엄은 아이가 없는 가난한 목사였고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윌리엄은 사랑을 쏟으려는 백모를 무뚝뚝하게 대하는 필립이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다며 교육을 단단히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필립은 그를 위로하는 백모에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폭언을 퍼부었다. 충격을 받은 백모는 울음을 터뜨렸고 미안한 마음이 든 필립은 살며시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녀는 그를 꼭 껴안았다. 둘 사이의 스스럼이 단번에 사라지고 오히려 새로운 사랑이 생겨난 듯했다.

 

 필립이 장래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는 윌리엄 부부는 예수님께서 태어난 그림에 흥미를 느끼는 그에게 기대를 가졌고 필립은 삽화가 그려진 다른 책들도 열심히 읽어 나갔다.

  필립은 점점 책에 빠져들었고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습관인 독서의 습관을 몸에 익혔던 것이다. 그것이 모든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도피처를 만들어 준다는 따위의 일은 물론 알지 못했으며, 또한 이렇게 비현실적인 세계를 만들어 냄으로써 거꾸로 날마다의 현실 세계를 더욱더 쓰라린 환멸로 이끌어 간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큰어머니는 장차 성직자가 될 아이 필립에게서 소년 사무엘을 보고 싶어 하였다. 케어리 부부는 필립을 영국 대성당과 연관되어 있는 캔터베리의 왕립학교에 보냈다. 필립은 입학하자마자 연이어 불편한 다리 때문에 놀림을 받았고 밤에는 심지어 아이들 앞에 아픈 다리를 드러내는 굴욕을 맛보았다. 그는 아이들의 고문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다리를 내밀었던 일이 견딜 수 없어 소리 없이 흐느꼈다. 그는 처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앞날이 생각되어 더욱 비감한 심정이 되었으며 어린 마음에도 이 불행은 아마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모두가 꿈이어서 내일 아침 잠이 깨면 틀림없이 어릴 적의 행복했던 런던의 작은 침대에 누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해가 지나고 필립은 상급반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고 많은 상도 받았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그를 놀리지 않게 되었고 그도 그다지 불행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필립에게는 이미 충분한 자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그는 그의 병신 다리가 빚어낸 비웃음으로 인하여 이제 무심한 어린아이의 영역을 벗어나 고뇌에 가득 찬 자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어느날 밤 그는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어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 이뤄진 일과 같은 일을 이룰 것이며 산을 들어 옮겨 바다에 들라고 하여도 되리니,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다 얻으리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접하였고 방학을 맞아 큰아버지에게 그 가능성을 묻는다.

 

  윌리엄은 그건 믿음의 문제라고 말한다. 필립은 이때부터 방학이 끝나 학교에 돌아가기까지 자기의 다리를 고쳐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필립은 멀쩡한 다리로 계단을 뛰어내리고 축구를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면서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의심은 조금도 없었다. 진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있었다.

 

  마침내 학교로 돌아가기 전날 밤이 되었다. 필립은 흥분으로 떨리는 가슴을 안고 알몸으로 기도를 드린 후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그의 가슴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찼다. 틀림없이 다리가 나아 있다는 확신으로 살며시 눈을 뜨고 발을 만져 보았다. 그러나 그는 절뚝거리며 층계를 내려와 아침 식탁에 앉았다.

 

 필립은 13세가 되자 캔터베리 왕립 학교에 진학했다. 교장은 필립을 인정했고 필립은 그를 따랐다. 교장은 필립에게 그의 불구를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충분히 짊어지고 나갈 수 있기에 그에게 주신 십자가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비참한 불행이기 보다는 오히려 큰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립은 교장 선생님의 말을 몇 번이나 되짚어 생각하며 그 어떤 신비적 법열에 사로잡혔다. 그의 정신은 육체의 멍에에서 해방되어 무엇인가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온갖 정열을 기울여 완전해지기를 열망했으며 모든 것을 내던져 하느님에게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 성직자가 될 것을 굳게 결심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오래 가지는 못하였고 항상 같이 계시던 하느님의 존재가 점차 잊혀지기 시작했다.

 

  필립은 6학년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이제 학교가 싫었고 성적에도 통 관심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장래의 진로에 대한 필립의 마음이 변했다는 점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좋은 말로 그에게 충고했고 큰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립은 한시라도 빨리 학교를 그만두고 독일로 떠나려하였으며 결국은 교장 선생님과 백부도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다.

 

  필립은 자신의 뜻대로 일이 결정되자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좋아져서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다. 당연히 성적이 튀어 올라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학가 말이 되어 교장 선생님이 다시 한 번 그를 붙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학교생활이 끝나고 자유의 몸이 된다고 생각했으나 그 순간 느낄 것으로 예상했던 미칠 것 같은 환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깊은 우수가 마음을 사로잡았고 자기가 저지른 일이 어리석은 일이나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다시 교장 앞에 가서 학교에 머물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

 

  필립은 위크스와 헤이워드의 논쟁을 들으며 자신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신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신앙심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다만 그의 신앙심이 모자라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본보기들이 필요가 없는 외투를 벗어 던지듯 홀가분하게 어린 시절의 신앙을 벗어 던지게 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강제적으로 종교적 훈련을 받아오던 것에서 해방되었다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리고 그의 일체의 행동이 그대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하던 책임감이 홀연 사라지고 마침내 자주 독립의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마침내 필립도 하이델베르크의 생활을 끝내고 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필립도 공인 회계사 조합의 견습생으로 일자리를 찾아 런던으로 떠났다필립은 도무지 숫자를 다루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고 외롭게 생활하고 있는 런던이 싫어져서 사무실을 그만 두고 그림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나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백부는 파리는 사악한 도시라며 그의 생각을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그에게 돈조차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 가운데서 필립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의 장래를 걱정한 백모는 많지는 않았지만 가진 돈을 모두 그에게 주어 그의 새 출발을 도왔다.

 

  필립은 기차를 타자마자 금세 백모의 생각은 잊어버렸고 파리에 도착하자 기쁨과 흥분으로 설레었다. 필립은 아틀리에에 나가 그림을 시작한다. 못 생기고 지저분한 인상의 옆 자리 패니 프라이스양이 나름대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여러 미술 학도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자칭 시인이면서 파리의 예술가 지망 청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보헤미안 크론쇼도 만난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의 불구에 대한 병적인 생각은 점점 덜해져갔다.

 

   파리 미술 전람회가 열렸고 헤이워드가 파리로 왔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변해 있어서 필립은 이외로 실망했다. 아름답던 모습은 어쩐지 시든 것처럼 느껴졌고 정신연령도 조금도 변함이 없어서 열여덟 살 때 필립을 감동케 했던 그의 교양도 스물한 살의 필립에게는 가벼운 경멸을 살 뿐이었다.

 

  여름이 되어 모두 휴가를 떠나고 필립과 로슨의 휴가지로 챌리스가 간다고 하자 프라이스는 챌리스의 남자관계를 들먹이며 그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가 하면 필립의 재능까지도 폄훼한다. 아무튼 로슨과 챌리스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여름휴가는 끝났다. 아틀리에에 나가보니 프라이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런던으로 되돌아갔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낸 얼마 후 그녀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에 그녀는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 그녀의 자살이 굶주림 때문이라는 곳을 알았다. 그녀의 오빠가 장례식에 참석했고 나머지는 모두가 생전에 고인을 싫어했던 사람들뿐이었다.

 

  그 불행한 사건은 필립에게 충격을 주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프라이스의 노력이 허무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만큼 노력하거나 성실한 인간도 없었을 것이며, 한 푼의 값어치도 없으리란 것이 명확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을 믿고 있었다.

  필립은 자신의 입장을 견주어 생각해보았다. 자신은 다만 사물을 정확하게 옮겨놓는 피상적인 손재주 이상의 그 무엇도 없다고 생각했다. 소질이 없는 것이었다. 이제 돈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빈곤한 생활을 견딜 각오를 하면서 후세에 남을 걸작을 그려낼 가망은 없을 것 같은 무서운 불안감이 들었다. 과연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청춘을 바치고,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내동댕이치고, 그리고 수많은 생애의 가치를 모두 희생해버릴 만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고 고민했다.

 

  어느 날 필립은 아틀리에 선생인 프아네 교수에게 자신의 재능을 질문하고 자신의 그림에 대한 평가를 의뢰한다. 교수는 그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고 다른 일을 하도록 권유했다. 백모가 별세했다는 백부의 연락을 받고 블랙스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림 공부를 그만두고 의사가 되기 위해 성 누가 의학교에 들어갔다.

 

  필립은 의학 공부를 하면서 자주 가던 찻집의 웨이트리스인 밀드레드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집착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에게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덕분에 필립은 두 번이나 시험에 낙제를 하였다. 밀드레드는 밀러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알려온다. 그 동안 필립은 농락당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