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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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편의 단편 소설들이 현재의 나, 현재의 남성과 여성, 세태를 묘사하고 풍자한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을 시작으로 다른 인물들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왠지 조금은 흡사한 성향과 성격을 내포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작가가 상상하는 이야기 속의 여인들은 대표성을 뛴 여성, ‘정아‘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속감정을 과감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작가는 이러한 솔직함 가득하고 사실성 넘치며, 활기차면서도 동시에 씁쓸한 여운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가족과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정아의 이야기는 남자 친구 건호로부터 시작된다. 건호를 만나게 된 동기가 황당하다. 물론 지금의 시대엔 자연스러울 수 있다. 서울에서 몇 년 만에 만난 중학 동창 은미는 정아를 처음 만나 극진히(?) 대접 후 여행을 제안한다. 명문대에 적을 둔 은미가 학기 중에 어떻게 여행을 갈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런 그녀를 철석같이 믿고 여행을 결심한다. 여행 출발 당일 은미는 정아를 데리고 바다나 산이 보이는 수려한 여행지가 아닌 낯선 고층 건물로 유인한다. 결국 은미는 정아에게 다단계, 네트워크 마케팅의 세계 여행을 안내한 것이다. 이후는 말을 안 해도 답이 나온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정아는 다단계의 쓰나미에 무너져버리고, 결국 눈칫밥 먹던 친척 집에서마저 나오게 된다. 마지막에 찾은 곳이 한동네 오빠가 근무하던 주유소였고, 오빠 대신 건호라는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꼬이고 꼬여가는 소설처럼 마술을 부리듯 전개된다.

자린고비같이 짜고 짜며 알뜰한 건호 외에 낯선 남자 윤구와 한바탕 홍역을 앓은 뒤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건호의 눈물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낯선 남자 윤구와 우연히 만난 정아는 지현이란 가명을 쓴 채 또 다른 자아를 연기해 사고를 치고 만다. 그 사고에 별다른 반응 없이 대처하는 건호의 일상이, 건호가 이야기 막바지 흘린 눈물에 모두 담겨 있는 것일까? 이러 저라 한 상상을 하게 한다. 인생이란 낯선 것과 마주칠 때 처음엔 두렵지만 어느새 익숙해지는 것,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되는 것인지 청춘들의 삶을 통해서 생각해보게끔 한다. 한 편의 짧은 단편 영화를 보고 읽는 느낌이다.



끊임없이 수족(手足)을 돌보았던 것처럼 헌신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고시에 패스한 남자 친구와 결별하는 여교사 정정은. 그녀는 결국엔 선을 통해 만나게 된 160대 키에 마흔을 바라보는 7급 공무원과 결혼 직전까지 이르게 된다.
여교사 정정은은 ˝똥차가 비켜야 신차가 나간다˝ 는 여동생의 강요 섞인 압박의 스트레스와 실연에 따른 부작용인 것인지 자신의 제자인 혜린에게까지 질투 섞인 태도를 보인다. 제자인 혜린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반 학생들의 말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감히 뚱뚱한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냐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제자 혜린이 펜팔로 만났다는 훤칠한 키의 남자가 하는 말을 믿는 게 못마땅 한 것일 수 있고, 통통하다 못해 탕탕한 제자 혜린이 자신을 얼마나 어여쁘게 과대포장했을지에 대한 비이냥도 내포되 있다. 정정은은 문득 예전에 이러지 않았던 자신의 음흉함과 타인에 대한 비난이 어떤 영문인지 생각해본다. 이 모두를 갠지스강에 재를 태우듯 없애버리고 싶어 하는 두 얼굴의 마음은 정정은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의 고민거리가 아닐까 싶기도 한 스토리였다.

남자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던 영진도 엉뚱하게 총각 행세를 하는 유부남에게 모든 걸 바친
다. 아낌없이 영진에게 모든 걸 받치며 헌신한 것처럼 느낀 그녀는 결혼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결국 영진이 자신이 유부남이었는지 알고 있지 않았느냐는 어이없는 반문과 그런 쿨함이 좋았다는 남자의 말에 영진은 고개 숙이고 만다. 주변의 조언도 남자 면역력이 없었던 그녀에겐 긴가민가한 반응으로 밖에 들리지 않아,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헤어짐 후 그녀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복싱이 그나마 위인이긴 한데, 이번엔 어린놈의 자식이 권투를 가르쳐 준다는 식으로 접근해 그녀에게 고백하려 한다. 지극히도 남자 면역력이 없던 영진에게 찾아온 어린 남자에겐 어떤 반응의 액션을 취할지 궁금해다. 아웃파이터로 더 이상 아픔이란 카운터펀치를 맞지 않게 될지, 결국 다시 인파이터의 자세로 적극성을 뛸지도 모를 일이다.

항상 약자라는 인식, 당연스럽게 그땐 그랬다는 말도 안 되는 관습은 사그라지고 파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뇌리를 강력하게 스쳐간다. 무엇이 혐오이고, 잘못인지도 모르는 방관자들! 어떤 것들이 현실인지 모를 남자 혹은 인간들의 망각이 다수의 약자, 특히 여성이라면 당연히 어려움을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썩어 빠진 생각이 사라져야 한다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그러한 생각이 들 때 전개되는 소설 속 통쾌한 장면의 에피소드는 남자 독자의 입장이지만 글이 시각적으로 머릿속에 구현될 때는 대리만족까지 들 정도이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당돌한 이야기들 , 분노에 울분이 치밀어 오는 소재들이 현실이라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남자와 여자라는 소재, 소외받던 여자들에 대한 당당할 권리와 고집과 독단으로 잘못된 관습과 태도로 살아온 남성들에게도 경종을 울릴 만한 소재들이다. 물론 편을 나누자는 소설은 절대적으로 아니다. 불필요함을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자는 우리의 동반자 정아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힘 있고 과감한 메시지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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