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ㅣ 쏜살 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박명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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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소설 원작 영화는 무조건 찾아보면서 이상하게 영화 원작 소설은 잘 안 찾아본다. 편견일 수 있지만 대체로 그런 소설은 영화를 곧이곧대로 옮기려는 경향이 크고 작중의 료타처럼 좀 안 풀린 작가나 영화 원작 소설을 쓴다는 생각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소설로까지 읽을 만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를 참 재밌게 봤는데, 학교 졸업이 머지않은 지금의 나에게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15년 동안 변변찮은 글 한 줄 못 쓴 소설가 료타가 도박 때문에 등을 진 가족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탐정일로 추잡하게 돈을 벌어가면서도 또 정신 못 차리고 순간의 도박이 주는 희열에 몸을 담그고... 한마디로 답이 없는 남자의 총체적 난국 스토리다. 문제는 주인공의 현재 처지는 본인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인데 당사자로서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부질없는 자존심만 세우기 바빠 참으로 찌질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런 료타의 모습이 굉장히 현실적일 뿐더러 마냥 남 얘기 같지 않게 여겨지는 건 어째서일까?


 영화로도 재밌었지만 소설로도 나쁘지 않았다. 책을 펼치기 전의 우려대로 캐릭터 묘사나 장면 묘사, 연출 등이 영화와 거의 똑같아서 김샐 뻔했지만 몇몇 캐릭터의 좀 더 심층적인 심리 묘사, 그리고 주인공 료타의 찌질함, '답 없음'이 한층 두드러져 점점 읽는 맛이 났다. 아베 히로시는 정말 좋은 연기자지만 그 우월한 비주얼과 피지컬 때문에 료타의 찌질함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소설 덕에 알게 됐다. 영화의 료타한테 동정심이 갔다면 소설의 료타는 나도 잔소리하고 싶게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장면들의 순서나 연출, 심지어 인물들의 대사도 거의 일치한 덕분에 영화 내용이 정말 선명하게 떠올랐다. 때문에 소설보다 영화를 본 게 다행이구나 싶었는데 영화를 볼 때 미처 주목하지 못했거나, 혹은 소설에서 상상으로 덧붙인 장면이 있는 등 소설 쪽이 역시 디테일이 강해서 '나중의 재미'로써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료타의 어머니가 언급한 나비에 대한 묘사나 아파트의 정경에 관한 묘사, 인물들의 대사 한 줄에 담긴 심리적 고민과 갈등 등 디테일한 부분이 담겨져 있어 원작 영화를 무척 재밌게 본 나로서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이런 추가된 부분들은 장황하지도 않고 원작의 내용과 딱 들어맞았는데 감독의 개입이 있었을 테지만 소설가의 공도 클 것이기에 내심 '영화 원작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잘 안 풀린 사람'이라고 생각한 내 스스로가 못내 부끄러워졌다.


 소설과 소설 원작의 영화가 있으면 소설 먼저 읽는 게 맞다고 여겼는데 이번에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엔 원작이 영화였던 것인데 과연 장르를 떠나 원작을 먼저 접하는 게 맞는가 보다. 소설의 디테일한 부분을 나중에 접했기에 더 재밌었던 것이리라. 

 이처럼 결과적으로 내용은 비슷했지만 장르의 차이 때문인지 꽤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이미 두 번을 본 영화임에도 다시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번엔 소설에서 언급된 디테일까지 떠올리며 봐야지.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779445962

 이건 원작 영화에 대한 포스팅.

말해 두는데, 그렇게 쉽게 네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간 큰 착각이야! - 115p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다 큰 남자라는 거다. - 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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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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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흔히 내용이 어떻든 간에 분량이 짧으면 쉽고 빠르게 읽힐 것이라 방심하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니 분량과 가독성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내용은 100페이지가 채 안 되고 역자들의 후기가 아니었으면 너무나 단출하게 여겨질 분량이었을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 '단출함'이야말로 이 책이 500년 가까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용건을 확실하게, 날카롭게 가식따윈 없이 전달하는 <자발적 복종>은 가히 통찰력의 교과서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얇은 분량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뜻밖에 잘 읽히지가 않아 당혹스러웠다. 대략 30페이지에 걸쳐 기술된 역자의 서두가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밝혀 적응이 안 됐고 본문은 그보다 더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과 비문학을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읽지 못한 나의 독서 습관의 폐해가 간접적으로 드러난 사례일 수 있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식의 대단한 선민의식이 없어서야 유지될 수 없는 문체이기에 솔직히 거부감이 좀 들었다. <자발적 복종>이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대중을 계몽시키기 위해 쓴 책이니 대략 책의 컨셉과 맞는 문체라서 이런 거부감은 걸러야 하긴 했지만 은근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본문의 내용도 약간 고리타분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16세기에 집필된 것도 모자라 저자가 예시로 드는 사례는 죄다 아테네니 페르시아니 로마니 하는 고대의 전투와 시민, 독재자들이라서 상대적으로 더 옛스럽게 읽혔다. 집필 당시를 기준으로 해도 상당히 옛날 일을 예시로 든 셈인데 그때는 어느 정도 교양으로써, 독자들이 익히 알 만한 화제를 들고 온 것인 모양이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 독자에게는 거의 모든 예시에 각주가 필수일 만큼 생소해서 이런 부분은 영 거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요소를 차치한다면... 약간의 집중력이 요구되나 결국 어느 시간대, 어느 장소에서건 유효하고 반복되는 사안에 대해 얘기해서 그만큼 우리 주변 상황에 대입시키며 곱씹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될 때가 2015년으로 아직 촛불 집회 전이라 출간 자체부터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건 역시 이 책의 통찰력이 꽤나 깊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왜 소수의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지, 자유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얼마나 가볍고 그를 쟁취하기 소홀히 하는지, 노예 근성을 심으려고 독재자가 어찌나 노력하고 이런 악순환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 먹혀드는지... 이미 아는 얘기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걸려드는 이 얘기 속에 자유로울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당초 <자발적 복종>이 집필되고 또 이렇게 오래 읽힐 수조차 없었겠지. 500년 전의 프랑스 저자가 쓴 이 책은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고 아쉽게도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세상 어느 누가 피의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다시 사 와야 할 만큼 소중하며, 그것을 잃었을 때 모든 존엄한 삶을 참혹한 것으로 만들고 오히려 죽음을 자청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즉, 자유)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후회하겠는가? - 48p




우리는 욕망의 대상에서 오직 자유라는 재산만을 가장 소홀하게 다룬다. 사람들은 자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원하기만 한다면 취득할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50p




단 한 사람도 따끔한 말 한마디, 대담한 용기와 사려 깊은 조언을 하는 자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슬픈 일이다. - 126~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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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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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추리소설의 매력은 누가 뭐라 해도 반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추리소설이 늘 반전의 부담을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어쩔 때는 너무 뻔하고 어쩔 때는 너무 작위적이고 또 어쩔 때는 너무 예상 밖이라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 '반전은 중요하지만 반전을 위한 반전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반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작중의 여러 요소를 어떻게 조합시켜 연출하느냐가 반전의 깊이보다 관건일 수 있다.

 이 작품은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유명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작품으로 <용의자 X~>와 똑같이 장편소설이다. 처음에 사건의 규모만 봤을 땐 단편일 것 같았는데 알리바이, 원거리 살인과 더불어 의외의 전개 - 삽질인 줄 알았지만 사건의 핵심이었더라는 식 - 가 기막힌 동기와 트릭하고 어우러진 등 꽤나 두툼하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용의자 X의 헌신> 바로 뒤에 나온 장편소설이라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게 불가피한 일이었고, 아쉽게도 전작보다 약간 임팩트가 약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자체적인 완성도가 뛰어나 작가의 작품 중 순위권에 올리기에 손색이 없지 않나 싶었다.


 처음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이과생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기가 십분 발현된 그야말로 'How done it?'의 모범 같은 작풍이 인상적이었는데 <용의자 X~> 이후로는 작풍에 변화가 가미됐다. 이러한 변화는 독특하면서도 아쉽기도 한데 물리학자가 논리를 적용시키기 까다로운 사람의 감정과 마주한다는 게 아이러니해서 재밌는 한편으로 시리즈 고유의 색깔이 옅어졌단 우려가 들기 때문이었다.

 작가도 이를 의식했는지 작중에서 '허수해' 개념이나 공룡 화석에 대한 일화 등 개성적인 요소가 들어갔는데 생각만큼 잘 와 닿지 않았다. 특히 허수해 운운하는 건 겉멋 혹은 의미 부여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옛날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물리학자가 주인공인 시리즈의 개성은 후속작인 <한 여름의 방정식>에 가서야 되찾았던 것 같다. 그 작품을 읽으니까 명백히 비교되네. 지금 보니까 이 작품은 <용의자 X~>의 드라마와 시리즈의 과학적 색깔의 중간을 점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성녀의 구제>에서 트릭 못지않게 재밌었던 건 구사나기의 호감이란 변수였다. 아마 시리즈에서 구사나기가 가장 존재감이 있던 에피소드일 텐데 여담이지만 드라마처럼 가볍게 다뤄지지 않아서 좋았다. 드라마는 몇몇 캐릭터 변경에 의해 내용도 차이가 있었는데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이런 부분은 좀 아쉬웠다. 용의자를 향한 구사나기의 애정은 약간 케케묵은 감은 있어도 진실하고 또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도 하니 역시 원작에서의 묘사가 더 마음에 든다.


 역자 후기에서 작품이 세 방향의 수사 방식이 다뤄져서 흥미롭단 말이 있었는데 나 역시 공감한다. 드라마와는 또 다른 소설만의 개성으로 감각 수사의 날카로움과 무모함을 보여준 우츠미, 다소 이성을 잃고 삽질을 하는 듯했으나 정석적인 수사의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증명한 구사나기,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논리적이고 기발한 추리를 해낸 유가와. 이들로 대표되는 세 개의 요소가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범인의 동기가 비정상적이지만 공감도 가고 무엇보다 트릭으로써 대단히 잘 구체화된 것 같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도 너무 훌륭하고. 늘 말하지만 제목 짓는 것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따라올 사람은 정말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의 반전의 토대가 될 범인의 심리는 작중에서 그리 오랜 시간에 걸쳐 묘사되진 않지만, 트릭의 정체가 뜬금없지 않은 데에는 상술했던 구사나기의 호감이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보답받지 못할 감정을 품고 있고 결국 제 손으로 자신의 감정을 좌절시켰으며 그를 위해 본인이 오랫동안 노력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이런 요소가 범죄의 양상과 너무 닮아있어 안타깝고도 소름이 돋았다.

 이성과 논리와 과학이 개입하기에 인간의 감정은 사회적 입장과 고집과 실수라는 변수가 있으므로 쉽지 않다. 이를 <성녀의 구제>는 '완전범죄는 힘들다'는 교훈을 내거는 추리소설의 통속적인 서사 안에서 잘 녹여냈는데 어떻게 보면 그렇기에 가장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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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라, 군청 - S큐브 ㅣ 계단섬 시리즈
코노 유타카 지음, 코시지마 하구 그림, 정호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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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3







 여기, 기묘한 섬이 있다. 섬의 주민들은 자신이 무슨 연유로 이 섬에 왔고 살게 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섬을 나갈 필요를 못 느끼고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게 마음 편하다. 그 섬의 이름은 계단섬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동창생인 마나베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마나베 역시 자신이 어째서 이 섬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마나베는 주인공의 예상대로 여러모로 불합리한 섬의 정체와 자신에게 닥친 미스터리한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을 파악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떨떠름한 반응과 포기를 종용하는 설득 아닌 설득 뿐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정도 나이의 아이까지 섬에 오자 그녀는 더욱 전의를 불태운다. 자신이 믿는 바를 올곧게 관철해왔던 마나베로선 최적의 동기 부여가 아닐 수 없던 것이다. 반면 이상주의자인 마나베와 달리 주인공은 무척 비관적인 인물로 단지 동창생이란 이유로 마나베와 대동하지만 속으론 비웃음에 가깝게 관조하며 그녀의 매 행동에 어깃장을 놓는다. 조금도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상극을 달리는 둘은 서로를 존중하는 듯 배려 없이 섬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다양한 미스터리와 마주하게 된다...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의해주시길.)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제목에서 암시되는 관념적인 문장이나 주제의식이 아니라, 계단섬에서 마주치는 연쇄 낙서 사건의 전말도 아닌 당연히 계단섬의 정체다. 이 섬의 목적은 무엇인가, 도대체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섬의 주민은 올 때 기억을 잃고 나갈 의지조차 갖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마나베가 이상하게 취급 당하고 실제로 왜 마나베만 유독 독자 기준에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란 말인가.

 누구나 한 번쯤 자기 단점을 완벽히 버리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볼 때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그 단점마저 나 자신의 근간이란 지점에서 출발한 작품인 듯하다. 섬의 주민은 원래 세상의 사람들이 분리해낸, 즉 없애고 싶은 자기 모습인데 예를 들면 지나치게 말수가 적고 학교를 두려워하고 승부에 지는 것을 마음 편해하고 비관적이고 이상적인 모습들이 있었다. 단점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듯 비관적인 주인공과 이상적인 마나베가 한 자리에 있는 건 무척 의미심장하게 읽혔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꽤나 충격을 받은 눈치였고 - 그는 이상주의자인 그녀가 부담스러운 한편으로 존중하는 면도 강했기에 -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섬의 정체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인지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에 비해 굉장히 인상적으로 마무리됐다. 본래 자신에게 버림받은 섬의 주민들이 계단섬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게 소름 돋았고 그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란 건 묘하게 씁쓸한 일이었다. 때문에 주인공이나 마나베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섬에서 살아가겠다는 것부터, 그들에게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더 있다는 것까지 묘하게 감동적이지 않았나 싶다. 생각보다 철학적이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줘 아무래도 후속작도 찾아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행복을 찾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불행을 받아들일 권리도 가지고 있어. -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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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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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4







 원래도 존경하는 작가였지만 '작가의 말' 때문에 더 존경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소설집 위주로 출판되는 우리나라 문단의 성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오히려 단편집이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작가가 어떤 사건을 겪거나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 작풍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를 살펴보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수록작들의 경향의 차이를 스스로 너무 친절하게 밝히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만큼 작가로서 강조하고픈 내용이기에 정성을 다해 적은 것일 테고 그러한 작가의 정성이 내게는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도 느껴져 적잖이 인상적이었다. 간혹 김영하 작가를 두고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 일컫는데 여기서 '젋다'는 게 단순히 나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행보와 경향을 수식하는 걸 생각하면 '작가의 말'에서 보인 정성은 그 명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단면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시대와 호흡하며 발전을 다짐하는 작가야말로 진정 젊은 세대를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오직 두 사람'


 표제작으로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쓸 수 있는 모국어에 대해 얘기하면서 시작되는 작품이다. 아버지와 유난히 막역한 관계인 딸을 화자로 내세운 서간문체 소설로 상당한 절제미가 돋보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쓰는 사람에 따라선 한없이 감정적이게 될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달랐다. 누가 봐도 아버지에게 얽매여 서서히 너절해지는 삶을 살고 있는 화자가 나름의 논리로 스스로의 삶을 정의하고 후에 결핍을 극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거듭나 제법 여운이 있었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세상에서 모국어를 쓰는 단 두 사람의 관계에 대입시킨 건 엉뚱하면서도 논리적으론 잘 와 닿지 않았는데 화자의 감정선을 이해가 아닌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서두이자 일화가 아닌가 싶었다. 타인의 결핍을 바라보는 정서를 함양시키기에 참 매력적인 이야기이기도 했고.



 '아이를 찾습니다'


 '작가의 말'에 가장 많이 언급된, 아마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일 것이다. 잔인하기론 <살인자의 기억법>보다 더했는데 최근에 본 영화 <친애하는 우리아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영화에선 피가 이어지지 않은 자식을 둔 주인공이 소통을 시도하고, 이 작품 '아이를 찾습니다'에선 오래 전에 유괴당한 친아들을 찾았는데도 너무나 자기 아이 같지 않아 당혹스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이는 찾았지만 자신의 부주의, 혹은 운명의 야속한 장난 때문에 유괴를 당한 비극에선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잔인함은 더욱 상기될 뿐이다. 아이는 자신을 유괴한 사람을 부모로 여기면서 그 누구보다 친부모를 어색해하고 주인공의 가정은 완전히 파탄이 나는데...

 작품에 녹아있는 엄청난 아이러니와 잔인함은 완벽하게 독창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끝까지 반전 없이 흘러가는 전개는 그 자체로 역설적이라 감탄했다. 반대로 섣불리 희망적인 게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짐작도 하게 만들었는데 그렇다고 작품의 내용이 그렇게 비관적이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신기했다. 누굴 원망해도 풀리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맞게 된 한 줄기 위로가 내려졌기 때문일까.



 '옥수수와 나'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알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활기차서 '역시 김영하구나' 란 말이 절로 나온 작품. 소설가 주인공이 상당히 철없으면서도 정서적 유쾌함이 겸비된 인물인데 덕분에 전개를 예측하지 못한 채 결말까지 내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이런 작풍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못내 아쉽다. 이렇게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무게감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는 우리나라에 흔치 않기 때문이다. 흔히 장르 소설에서 요구될 법한 김영하의 작풍은 좀 더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에도 역시 유효한데 이 작품 '옥수수와 나'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으니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은지와 박인수'


 이 작품도 김영하 특유의 유쾌함이 가미됐는데 이전에 학교에서 수업 자료로 접한 작품이라 반갑기도 했다. 이 작품은 위에서 언급된 '옥수수와 나'의 주인공이 쓴 것처럼 읽히기는 하는데 뭔 소린지 못 알아먹겠는 유형의 소설에 해당된다. 영악하게 이용당하고 필요 이상으로 억울해진 출판사 사장이 시한부 인생인 업계 동료를 만나고 이내 반전 없이 그와 이별하게 되는 내용이다. 생과 사의 대비가 명확한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성장이란 것도 어딘가 깔끔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단지 이야기의 가독성과 아이러니에 웃을 뿐... 여하튼, 표제작과 '아이를 찾습니다' 같은 작품과는 완전히 결이 달라 소설집의 다채로움에 눈이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란 말인가.

 특유의 가벼운 작풍이 아닌 다른 작풍에 도전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은 꽤나 성과를 거둔 듯하다. 그렇기에 '옥수수와 나'도 그렇고 '최은지와 박인수' 같은 작풍을 점점 보기 힘들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론 바뀐 작풍도 작가에게 충분히 어울리고 무엇보다 내실이 있어서 이전 작풍을 버리는 것이 아닌, 단순히 정체되지 않겠다는 뜻으로 다가와 언젠가 나올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 기대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작가긴 했지만 차기작을 바로 찾아볼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소설집을 읽으니 작가의 팬이 되지 않고는 베길 재간이 없었다.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 166p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 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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