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쏜살 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사노 아키라 지음, 박명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5







 소설 원작 영화는 무조건 찾아보면서 이상하게 영화 원작 소설은 잘 안 찾아본다. 편견일 수 있지만 대체로 그런 소설은 영화를 곧이곧대로 옮기려는 경향이 크고 작중의 료타처럼 좀 안 풀린 작가나 영화 원작 소설을 쓴다는 생각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소설로까지 읽을 만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를 참 재밌게 봤는데, 학교 졸업이 머지않은 지금의 나에게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15년 동안 변변찮은 글 한 줄 못 쓴 소설가 료타가 도박 때문에 등을 진 가족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탐정일로 추잡하게 돈을 벌어가면서도 또 정신 못 차리고 순간의 도박이 주는 희열에 몸을 담그고... 한마디로 답이 없는 남자의 총체적 난국 스토리다. 문제는 주인공의 현재 처지는 본인 자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인데 당사자로서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부질없는 자존심만 세우기 바빠 참으로 찌질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런 료타의 모습이 굉장히 현실적일 뿐더러 마냥 남 얘기 같지 않게 여겨지는 건 어째서일까?


 영화로도 재밌었지만 소설로도 나쁘지 않았다. 책을 펼치기 전의 우려대로 캐릭터 묘사나 장면 묘사, 연출 등이 영화와 거의 똑같아서 김샐 뻔했지만 몇몇 캐릭터의 좀 더 심층적인 심리 묘사, 그리고 주인공 료타의 찌질함, '답 없음'이 한층 두드러져 점점 읽는 맛이 났다. 아베 히로시는 정말 좋은 연기자지만 그 우월한 비주얼과 피지컬 때문에 료타의 찌질함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소설 덕에 알게 됐다. 영화의 료타한테 동정심이 갔다면 소설의 료타는 나도 잔소리하고 싶게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장면들의 순서나 연출, 심지어 인물들의 대사도 거의 일치한 덕분에 영화 내용이 정말 선명하게 떠올랐다. 때문에 소설보다 영화를 본 게 다행이구나 싶었는데 영화를 볼 때 미처 주목하지 못했거나, 혹은 소설에서 상상으로 덧붙인 장면이 있는 등 소설 쪽이 역시 디테일이 강해서 '나중의 재미'로써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료타의 어머니가 언급한 나비에 대한 묘사나 아파트의 정경에 관한 묘사, 인물들의 대사 한 줄에 담긴 심리적 고민과 갈등 등 디테일한 부분이 담겨져 있어 원작 영화를 무척 재밌게 본 나로서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이런 추가된 부분들은 장황하지도 않고 원작의 내용과 딱 들어맞았는데 감독의 개입이 있었을 테지만 소설가의 공도 클 것이기에 내심 '영화 원작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잘 안 풀린 사람'이라고 생각한 내 스스로가 못내 부끄러워졌다.


 소설과 소설 원작의 영화가 있으면 소설 먼저 읽는 게 맞다고 여겼는데 이번에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엔 원작이 영화였던 것인데 과연 장르를 떠나 원작을 먼저 접하는 게 맞는가 보다. 소설의 디테일한 부분을 나중에 접했기에 더 재밌었던 것이리라. 

 이처럼 결과적으로 내용은 비슷했지만 장르의 차이 때문인지 꽤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이미 두 번을 본 영화임에도 다시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이번엔 소설에서 언급된 디테일까지 떠올리며 봐야지.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779445962

 이건 원작 영화에 대한 포스팅.

말해 두는데, 그렇게 쉽게 네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간 큰 착각이야! - 115p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다 큰 남자라는 거다. - 124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