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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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흔히 내용이 어떻든 간에 분량이 짧으면 쉽고 빠르게 읽힐 것이라 방심하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니 분량과 가독성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내용은 100페이지가 채 안 되고 역자들의 후기가 아니었으면 너무나 단출하게 여겨질 분량이었을 것인데 생각해보면 그 '단출함'이야말로 이 책이 500년 가까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용건을 확실하게, 날카롭게 가식따윈 없이 전달하는 <자발적 복종>은 가히 통찰력의 교과서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얇은 분량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뜻밖에 잘 읽히지가 않아 당혹스러웠다. 대략 30페이지에 걸쳐 기술된 역자의 서두가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밝혀 적응이 안 됐고 본문은 그보다 더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과 비문학을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읽지 못한 나의 독서 습관의 폐해가 간접적으로 드러난 사례일 수 있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식의 대단한 선민의식이 없어서야 유지될 수 없는 문체이기에 솔직히 거부감이 좀 들었다. <자발적 복종>이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대중을 계몽시키기 위해 쓴 책이니 대략 책의 컨셉과 맞는 문체라서 이런 거부감은 걸러야 하긴 했지만 은근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본문의 내용도 약간 고리타분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16세기에 집필된 것도 모자라 저자가 예시로 드는 사례는 죄다 아테네니 페르시아니 로마니 하는 고대의 전투와 시민, 독재자들이라서 상대적으로 더 옛스럽게 읽혔다. 집필 당시를 기준으로 해도 상당히 옛날 일을 예시로 든 셈인데 그때는 어느 정도 교양으로써, 독자들이 익히 알 만한 화제를 들고 온 것인 모양이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 독자에게는 거의 모든 예시에 각주가 필수일 만큼 생소해서 이런 부분은 영 거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요소를 차치한다면... 약간의 집중력이 요구되나 결국 어느 시간대, 어느 장소에서건 유효하고 반복되는 사안에 대해 얘기해서 그만큼 우리 주변 상황에 대입시키며 곱씹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될 때가 2015년으로 아직 촛불 집회 전이라 출간 자체부터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건 역시 이 책의 통찰력이 꽤나 깊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왜 소수의 독재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지, 자유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얼마나 가볍고 그를 쟁취하기 소홀히 하는지, 노예 근성을 심으려고 독재자가 어찌나 노력하고 이런 악순환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 먹혀드는지... 이미 아는 얘기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걸려드는 이 얘기 속에 자유로울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당초 <자발적 복종>이 집필되고 또 이렇게 오래 읽힐 수조차 없었겠지. 500년 전의 프랑스 저자가 쓴 이 책은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고 아쉽게도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세상 어느 누가 피의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다시 사 와야 할 만큼 소중하며, 그것을 잃었을 때 모든 존엄한 삶을 참혹한 것으로 만들고 오히려 죽음을 자청하게 하는 소중한 자산(즉, 자유)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후회하겠는가? - 48p




우리는 욕망의 대상에서 오직 자유라는 재산만을 가장 소홀하게 다룬다. 사람들은 자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원하기만 한다면 취득할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50p




단 한 사람도 따끔한 말 한마디, 대담한 용기와 사려 깊은 조언을 하는 자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슬픈 일이다. - 126~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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