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9.4







 원래도 존경하는 작가였지만 '작가의 말' 때문에 더 존경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소설집 위주로 출판되는 우리나라 문단의 성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오히려 단편집이었기에 의미가 남달랐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작가가 어떤 사건을 겪거나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 작풍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를 살펴보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수록작들의 경향의 차이를 스스로 너무 친절하게 밝히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만큼 작가로서 강조하고픈 내용이기에 정성을 다해 적은 것일 테고 그러한 작가의 정성이 내게는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도 느껴져 적잖이 인상적이었다. 간혹 김영하 작가를 두고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 일컫는데 여기서 '젋다'는 게 단순히 나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행보와 경향을 수식하는 걸 생각하면 '작가의 말'에서 보인 정성은 그 명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단면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시대와 호흡하며 발전을 다짐하는 작가야말로 진정 젊은 세대를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오직 두 사람'


 표제작으로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쓸 수 있는 모국어에 대해 얘기하면서 시작되는 작품이다. 아버지와 유난히 막역한 관계인 딸을 화자로 내세운 서간문체 소설로 상당한 절제미가 돋보였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쓰는 사람에 따라선 한없이 감정적이게 될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달랐다. 누가 봐도 아버지에게 얽매여 서서히 너절해지는 삶을 살고 있는 화자가 나름의 논리로 스스로의 삶을 정의하고 후에 결핍을 극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거듭나 제법 여운이 있었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세상에서 모국어를 쓰는 단 두 사람의 관계에 대입시킨 건 엉뚱하면서도 논리적으론 잘 와 닿지 않았는데 화자의 감정선을 이해가 아닌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서두이자 일화가 아닌가 싶었다. 타인의 결핍을 바라보는 정서를 함양시키기에 참 매력적인 이야기이기도 했고.



 '아이를 찾습니다'


 '작가의 말'에 가장 많이 언급된, 아마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일 것이다. 잔인하기론 <살인자의 기억법>보다 더했는데 최근에 본 영화 <친애하는 우리아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영화에선 피가 이어지지 않은 자식을 둔 주인공이 소통을 시도하고, 이 작품 '아이를 찾습니다'에선 오래 전에 유괴당한 친아들을 찾았는데도 너무나 자기 아이 같지 않아 당혹스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이는 찾았지만 자신의 부주의, 혹은 운명의 야속한 장난 때문에 유괴를 당한 비극에선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잔인함은 더욱 상기될 뿐이다. 아이는 자신을 유괴한 사람을 부모로 여기면서 그 누구보다 친부모를 어색해하고 주인공의 가정은 완전히 파탄이 나는데...

 작품에 녹아있는 엄청난 아이러니와 잔인함은 완벽하게 독창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끝까지 반전 없이 흘러가는 전개는 그 자체로 역설적이라 감탄했다. 반대로 섣불리 희망적인 게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짐작도 하게 만들었는데 그렇다고 작품의 내용이 그렇게 비관적이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신기했다. 누굴 원망해도 풀리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맞게 된 한 줄기 위로가 내려졌기 때문일까.



 '옥수수와 나'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알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활기차서 '역시 김영하구나' 란 말이 절로 나온 작품. 소설가 주인공이 상당히 철없으면서도 정서적 유쾌함이 겸비된 인물인데 덕분에 전개를 예측하지 못한 채 결말까지 내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이런 작풍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못내 아쉽다. 이렇게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무게감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는 우리나라에 흔치 않기 때문이다. 흔히 장르 소설에서 요구될 법한 김영하의 작풍은 좀 더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에도 역시 유효한데 이 작품 '옥수수와 나'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으니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은지와 박인수'


 이 작품도 김영하 특유의 유쾌함이 가미됐는데 이전에 학교에서 수업 자료로 접한 작품이라 반갑기도 했다. 이 작품은 위에서 언급된 '옥수수와 나'의 주인공이 쓴 것처럼 읽히기는 하는데 뭔 소린지 못 알아먹겠는 유형의 소설에 해당된다. 영악하게 이용당하고 필요 이상으로 억울해진 출판사 사장이 시한부 인생인 업계 동료를 만나고 이내 반전 없이 그와 이별하게 되는 내용이다. 생과 사의 대비가 명확한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성장이란 것도 어딘가 깔끔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단지 이야기의 가독성과 아이러니에 웃을 뿐... 여하튼, 표제작과 '아이를 찾습니다' 같은 작품과는 완전히 결이 달라 소설집의 다채로움에 눈이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란 말인가.

 특유의 가벼운 작풍이 아닌 다른 작풍에 도전하겠다는 작가의 다짐은 꽤나 성과를 거둔 듯하다. 그렇기에 '옥수수와 나'도 그렇고 '최은지와 박인수' 같은 작풍을 점점 보기 힘들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론 바뀐 작풍도 작가에게 충분히 어울리고 무엇보다 내실이 있어서 이전 작풍을 버리는 것이 아닌, 단순히 정체되지 않겠다는 뜻으로 다가와 언젠가 나올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 기대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작가긴 했지만 차기작을 바로 찾아볼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소설집을 읽으니 작가의 팬이 되지 않고는 베길 재간이 없었다.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 166p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 26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