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누가 할래 -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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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5







 누가 뭐라 하든, 동거는 결혼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의 내용은 퍽 흥미로웠다. 결혼이란 정말이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배우자의 삶의 방식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식을 올리는 건 그야말로 도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고작 설거지 누가 하느냐로 감정이 상했다고 서술한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데이트할 때가 아닌 삶의 일상적인 순간마다 사랑스러우리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혼까지 했는데 설거지 하나 때문에 빈정이 상해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의미에서 동거는 결혼했을 때 겪을 시행착오를 미리 경험할 수 있게 충분히 할 만하다. 물론 동거도 부담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한 과정임을 무턱대고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설령 동거를 해서 헤어진다 해도 그 역시 의미가 있으니까.

 이 책을 페미니즘 도서라 생각하며 읽었고 작가도 그 점을 꽤나 강조하고 있지만 원래 좋은 페미니즘 도서가 그렇듯 이 책은 생각보다 다양한 측면으로도 읽혔다. 개인적으로 '여남 평등'이란 표현만 제외한다면 - 참고로 난 '양성 평등'이란 단어를 선호한다. - 전개되는 내용이 꽤나 일리가 있고 통찰력도 있으며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하고, 결정적으로 자기 얘기에 도취해 공정함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았던 게 가장 좋았다. 남자 친구, 나중엔 남편이 되는 '그'의 변론이란 글이 각 챕터의 끝자락마다 실린 게 재밌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양반의 글에 좀 더 분량을 할애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결국 여남 관계란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합리적인 이유와 입장이 있고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관대하기에 유리하게 말할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주장'이란 짧은 글들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었다. 만약 이 남자의 글이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았더라면 난 저자의 글 전체를 온전히 신용하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페미니즘 측면에서 봤을 때 딱 알기 쉽고 일리가 있으며 재치있게 논리를 전개해 괜찮게 읽혔다. 남자 친구이자 나중에 남편이 되는 '그'가 그렇게 악한은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범하는 차별적인 언동이 어떻게 저자의 신경을 건드리는지, 이에 대해 저자가 시도하는 다채로운 반격 등을 담은 내용이 남자인 내가 읽어도 몰입감이 제법이었다. 어디까지나 실화에 기반한 에세이지만, 저자가 엄연히 문학상을 받고 데뷔한 소설가인 지라 소설의 문법에 익숙한 내겐 더욱 술술 읽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저자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모든 이야기는 한국 여성 독자가 읽어도 정서적으로 괴리감이 적을 듯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여권이 비등비등해서 딱히 남의 나라 이야기라 치부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결혼하면 성씨가 바뀐다는 내용만 뺀다면. 이 부분은 충격적이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일본에서 결혼하면 아내의 성는 배우자의 성으로 바뀌는데 그로 인해 동사무소 같은 곳을 돌아가며 서류를 작성하고 시간과 돈이 낭비된다는 것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저자는 비교적 가볍게 저술했지만 이건 좀 심각한 일이 아니냐며 내가 다 억울할 정도지 뭔가. 생각해 보니 알고 있었지만 성이 바뀐다는 게 사람에 따라선 굉장한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저자가 얘기한 내용도 충격이었지만 이렇게 저자의 글을 읽기 전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내 자신에게도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일본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잖아? 미국도... 그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 읽으니까 저자의 소설도 읽고 싶어졌는데 국내에 아직 출간된 게 없더라. 저자가 데뷔하며 수상한 문학상이 R-18문학상인데 그 상을 받은 소설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저자의 데뷔작도 궁금해졌다. 조만간 국내에 소개된다면 읽어볼 생각이다. 얼른 출간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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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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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설마 <데프 보이스>의 후속편이 나올 줄은 몰랐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농인 사회를 제대로 그려낸 그 작품은 진지한 주제의식과 성찰, 그리고 농인 사회에 대한 사려 깊은 묘사가 돋보였는데 이렇게 후속작까지 읽을 수 있어 반가웠다. 내심 전편의 부제가 '법정의 수화 통역사'임에도 주인공이 법정에 서는 장면이 없었던 게 아쉬웠는데 작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건지 본작에선 바로 법정의 수화 통역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이 책은 전 경찰, 현 수화 통역사인 아라이 나오토가 농인 사회와 마주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모은 연작 소설집이다. 작가 자신도 <데프 보이스>의 후속작이 나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러 독자의 성원에 힘입어 이렇게 간신히 연작의 형식으로 뒷이야기를 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뭐가 됐든 정말로 반가운 후속작이 아닐 수 없는데 우리나라에선 2년 만에 출간됐지만 일본에선 전편으로부터 무려 7년 만에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후속작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기존의 주제의식이 더욱 심화됐다. 이 정도면 후속작이 또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단 두 편으로 풀고 끝내기엔 이야기나 캐릭터들이 너무 아쉽다.



 '변호 측 증인'


 아라이가 법정의 수화 통역가로서 활약한 에피소드. 통역은 신성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라이가 좀 고지식한 감이 있지만 그만큼 직업 정신이 투철해서 다른 통역가의 귀감이 될 만하다. 특히 이번 에피소드에선 농인 사회 전반에 너무나 무지한 세상과 싸움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행보를 보인다. 무고하게 누명을 쓴 농인을 변호한 변호인 못지않게 아라이는 농인과 청인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통역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저 놈(농인)이 그렇게 훌륭한 말을 했다고요? 당신이 지어낸 건 아니고? 믿기지가 않네. 순 벙어린 줄 알았는데.' 라고 냉대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분노했던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농인이 아닌 나도 뚜껑 열리는데 당사자는, 하물며 아라이는 오죽했겠는가.



 '바람의 기억'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아라이는 통역가치고 사건에 꽤나 능동적으로 참여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선 아라이 스스로 '통역가 실격'이라 자책할 정도로 사건에 끼어든다. 자신들과 똑같은 농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범죄자들의 리더가 너무 골칫거리라는데 여느 통역가보다 괜찮은 수화를 구사할 줄 안다는 이유로 지목돼 아라이는 껄끄럽지만 리더인 신가이의 수화를 통역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실청한 중도실청자 신가이는 농인을 노리는 범죄 집단의 리더로서 '농인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가르쳐줬기에' 오히려 피해자들이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고 적반하장식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에 실청된 자신과 다르게 수화를 구사하면서도 들을 줄도 아는 아라이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등 신가이는 자신을 다른 농인과 선을 그으면서도 청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질투하기도 하는 등 쉽게 파악이 되지 않는 언행을 보인다. 농인 부모의 들리는 자녀인 코다로 태어난 아라이는 그런 신가이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는데...


 신가이가 아라이를 질투하는 이유가 청인과 농인, 두 세계를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 있다는 점에 눈길이 갔다. 청인만의 세계라면 몰라도 농인의 세계에도 발을 담그고 있단 것도 부럽다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우리 청인들은 이렇게 생각할 듯하다. 농인의 세계는 단지 들을 수 없기에 선택의 여지 없이 속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세계라고. 또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벗어나고 싶을 것이리라 지레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는 농인 입장에서 대단히 무례하고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다. 같은 농인을 등쳐먹은 신가이마저도 농인의 세계를 온전히 부정하지 못하듯 농인의 세계 역시 청인의 세계처럼 함부로 폄훼돼선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신가이가 뼛속까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부정하지 않았는지 아라이의 참견에 의해 잘못을 뉘우치는 건 퍽 감동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두 번째 에피소드가 제일 좋았다. 다양한 인격과 입장의 농인이 등장한 것도 흥미로웠고 아라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신가이의 모습이 한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용의 귀를 너에게'


 작가가 직전 에피소드에서 통역가인 아라이가 너무 활동적이었던 게 내심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하고 자각이라도 했는지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그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단, 다소 지리멸렬하게 보이는 제목의 풀이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농인의 농聾이라는 한자에 그런 유래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농'이란 글자가 귀가 없이도 들을 수 있는 뿔이 있어 자연스럽게 귀가 떨어져 없어졌다는 얘기에서 비롯됐으리라고 몇 명이나 알고 있었을까. 단지 귀로 듣고 입으로 소리내 말하는 것이 곧 대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주변에서 농인을 보지 못하면 쉽게 떠올릴 만한 생각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제목에 담긴 의미는 제법 의미심장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도 의미심장한 나머지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번 에피소드는 아라이가 상대적으로 나설 자리가 적었던 것, 다뤄지는 사건의 윤곽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던 것, 수화 통역가로서 활약할 자리가 적었던 점들 때문에 가장 이질적이었다. 주요하게 다루는 소재도 농인이 아닌 함묵증에 걸린 아이였던 것도 이러한 이질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하지만 농인이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고 오해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로써 쉽게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는 함묵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처지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고 이야기도 그를 적극 강조하고 있어 꽤나 통찰력이 돋보이는 세계관 확장이 아니었나 싶다. 책의 첫 장에서부터 씨앗을 뿌려둔 작중의 '정육학'의 개념, 국가가 '옳은 가정의 모습이란 자고로 이래야 한'고 주장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정면에서 반박하는 지라 이래저래 곱씹을 만한 내용이 많았다. 추리소설치고 전개도 약간 심심하고 결말도 싱겁게 나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만듦새는 갖추고 있어 딱히 아쉬울 건 없었다.

이제 바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아. 들릴 리가 없잖아. 바람은 이제 불지 않아. 만약에 들린다고 하더라도 그건 네 안에서 들리는 소리야. 바람은 네 안에서 불고 있어. - 2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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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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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최근 이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이 출간된 걸 알고 부리나케 이 작품 <레오파드>를 읽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겠다고 어언 5년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스노우맨>의 다음 이야기를 읽게 됐다. 전작의 엄청난 성공과 그에 대한 부담의 발로인지 엄청난 분량으로 돌아온 <레오파드>는 작가의 팬인 내 입장에서 보통 기대되는 작품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78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로 들리겠지만, 난 실제로 요 네스뵈라면 얘기가 다르다고 생각해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막상 읽을 때는 물리적인 두께가 있어 아무래도 들고 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생스럽진 않았다.

 전편이 순전히 노르웨이라는 배경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낸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홍콩, 노르웨이, 콩고, 르완다 등 대륙을 넘나드는 확장된 스케일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시리즈의 주된 배경인 노르웨이를 어떻게 활용해냈는지 - 참고로 시리즈 1, 2번째 작품은 아예 배경이 호주와 태국이었다. - 그 전적을 생각하면 작중에 급변하는 배경들도 그저 생각없이 선정된 것이라고 넘겨짚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이야기의 배경뿐만 아니라 백과사전급 분량을 꽉꽉 채우는 모든 요소에도 해당하는 얘기인데, 요 네스뵈는 결코 그냥 언급하는 소재가 없다. 캐릭터, 대사, 배경, 소도구... 이 크고 작은 복선들은 철저하고 교묘하게 등장하며 퇴장하는데 이번 작품은 분량이 분량인 지라 인과관계가 꽤나 복잡하긴 했다. 작가의 큰 그림에 헉소리가 났는데, 당연한 얘기겠으나 이러한 두꺼운 분량은 작품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절대 아니다.


 하마터면 '스노우맨'에 의해 모든 것을 읽을 뻔했던 해리는 이번에야말로 사직하고 - 적어도 본인은 사직을 했다고 믿었다. - 홍콩으로 간다. 어쩌다 보니 불법 체류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듯했던 그의 앞에 고국의 후배 형사인 카야 솔네스가 찾아와 노르웨이로 같이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스노우맨'을 연상시키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했대도 심드렁하게 반응하던 해리는 아버지가 위독하단 얘길 듣고 어렵사리 귀국을 결심한다. 그렇게 해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고난 수사 본능으로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고, 반대로 그가 쥐약이라 할 만한 경찰 조직에서의 정치 싸움에 필요 이상으로 휘말리게 되고, 새로운 인연에 의해 다시 불안한 기운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해리의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그의 곁을 떠나 이번 작품에서도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행복할수록 불안하다니... '마블'의 토니 스타크가 모두가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것이 진정한 악몽이라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본작의 해리 홀레도 그 말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 대해 사심을 줄이고 객관적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레드 브레스트>부터 전편 <스노우맨>까지가 시리즈의 정점이란 사람들의 말처럼 상대적으로 분량에 비해선 임팩트가 약한 작품이긴 했다. 해리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대화, 카야 솔네스와의 캐미, 크리포스와의 알력 다툼 등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는 여러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할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좀 아쉬웠다. 이 부분은 내가 기대가 너무 큰 탓일 수도, 아니면 작가가 너무 부담을 느껴서 위축한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허에 허를 찌르는 것은 좋았지만 그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사건의 전말을 복잡하게 만든 감은 있어 오히려 최종 단계에 이르렀을 땐 자극에 무뎌진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과한 분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소 애매한 지점이긴 하나 분량보단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게 만드는 전개가 독이라면 독이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섣불리 추천할 수 없는 작품이다. 꼭 시리즈의 팬이어야만 이해가 된다는 얘긴 아니지만, 작중에 나오는 수많은 전개에 녹아든 감정선은 역시 전작을 다 챙겨 본 독자가 아니면 크게 주목 않고 지나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특히 해리가 아들로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한 죄책감을 주변에 털어놓는 장면은 내 개인적으론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해리의 죄책감은 항상 과한 듯하면서도 연민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자기는 멀쩡한데 주변이 엉망이 되곤 하는 운명의 장난을 증오해서 이번 편에서도 역시 가슴이 아팠다. 그런 만큼 해리가 이 이상 어떤 상처를 입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여기서 더 말하면 스포일러이므로 말을 아끼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더 하자면, 후속작이 기대되는 한편으로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거야? 해리는 영원히 경찰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무리 험한 처지에 놓여도 그를 즐기기만 했지 동정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해리 홀레는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처투성이인 인물이라 나도 모르게 그의 처지에 몰입하고 마는 것 같다. 어차피 해피엔딩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바라게 된다.

 후속작 <팬텀>도 조만간 읽을 것이고 최신작 <폴리스>도 늦어도 올해 안에 읽으려고 한다. 사실 어렴풋하게 스포를 당해서 걱정은 좀 되지만... 그래도 끝장은 봐야지. 아, 쉽지 않겠군.

해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경지란 뻔한 함정을 피하는 것이었다. - 214p




사람은 누구나 겉보기와는 다르며, 인생은 솔직한 배신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거짓말과 기만이라는 말. 그리고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 살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말. - 358p




죽음도 최악의 시련은 아니에요. 심지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죠.

그럼 뭔데?

굴욕이죠. 명예와 위엄을 박탈당하는 것. 무리에서 쫓겨나 따돌림당하는 것. 그게 최악의 형벌입니다. 거의 생매장 수준이죠. 그럴 때 유일한 위안은 인간의 목숨이 꽤나 짧다는 사실뿐이에요. - 365p




우리는 복잡하면서도 정확하게 맞물려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해. 자신의 운명을 조종하면서, 내 우주의 지배자가 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지. - 5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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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성스러운 ㅣ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1
김보영 지음, 변영근 그래픽 / 알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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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어느 날 신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남자에다가 백인이고 장애인이 아니며 이성애자인... 아무튼 절대자가 모든 차별 받는 존재를 적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내려오자 대부분의 차별주의자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역시 신은 남자였구나......'란 대사는 소름 끼칠 정도의 불안감을 선사한다. 나는 이 대사로 비롯될 터인 세계의 변화가 작품 속에서 어떻게 그려졌을지 너무나 기대됐다.

 소설은 나의 이러한 기대를 영리하고 허무하게 배반한다. 페미니즘과 연동한 SF를 쓰라는 의뢰를 김보영 작가는 정면돌파를 감행하며 완수해낸 셈인데 그 분명한 목적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짙게 깔려 있어 읽는 재미 자체는 은근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비교를 하자면, 소설보단 다큐 같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좀 받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도 <천국보다 성스러운>에 비하면 대단히 은유적이라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다.


 신의 이름을 빌린 차별주의자들이 태초에 성별에 따라 남녀를 차별해 세상을 개판으로 만든 도입부, 먼 미래에서 깨어난 남자가 대뜸 여자를 찾으면서 보이는 무척이나 미개한 모습, 어느 날 신이 모습을 드러낸 현재, 이 작품은 중편의 분량임에도 그 안에서도 더욱 간략한 단편들로 이뤄져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들이 아까도 말했듯 매우 명확한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애당초 작가가 그런 글을 의뢰받았고 작가는 그대로 썼을 뿐이니까.

 소설의 메시지가 명확히 드러난다는 게 그렇게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순 없을 듯하다. 물론 직설적이다 보니 오히려 공허하단 느낌을 받았던 건 부정할 수 없다. 같은 얘기라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길 풀어나갔을 때 사람들은 신선해하면서 더욱 그 이야기에 설득당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얘기를 요약하듯이 풀어낼 뿐이라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속뜻이 좋더라도 말이다. 난 소설은 가급적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할수록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비단 그렇지만 않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됐다. 굳이 말하자면 마뜩찮은 깨달음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다. 내가 이 소설을 다 읽고서 정말로 아쉬웠던 부분은 사건을 수습하는 방식에 있다. 이 책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던 이유, 차별주의자 신이 등장한 이후에 변모할 세계의 모습이 어떤 디스토피아를 이룩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못했던 게 이 작품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설정은 참신하나 그 설정이 야기할 모든 상황을 간단하게 수습해버리는 전개와 결말에서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독자는 적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아예 낚였다고 생각했다. SF는 현실과 다른 형태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에 특화된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그에 걸맞은 모양새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물론 결말의 수습 방식에 대한 떡밥을 초반부터 뿌렸기에 개연성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낚였다는 기분을 떨치기는 쉽지 않았다. 좀 맞지 않는 얘길 수 있는데 꼭 중편이어야 했나? 차라리 각 잡고 상상해서 풀어냈으면 분량을 더 늘여서라도 변화한 세계를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작가가 의뢰를 받은 게 중편소설이니까 소용없는 가정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작품 본편에 대한 아쉬움이 적잖다 보니 책의 일러스트며 가격 등도 눈에 안 들어오거나 불만스럽기 그지없었다. 일러스트의 경우엔 소설 본편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형태였으면 더 효과적이었을 듯하고 가격의 경우엔 100쪽이 넘을까 말까한 얇은 소설이 11,500원이나 한데 살 때도 그랬지만 읽고 나선 더 황당하다. 물론 종이의 재질이나 일러스트가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그 가격이 과한 게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책을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결국 본편이 아쉬우니까 가격마저 곱게 보기가 힘들다. 차라리 확 별로였으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할 텐데 단지 아쉬울 뿐이라서 자꾸 말을 아끼게 되는 게 더 답답하다. 최소한 분량이라도 길었다면 이런 느낌은 안 들었으려나?

이백 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 사람은 때로 백 년을 살고, 백 년간 백 년 전의 풍습을 지키는 데에 골몰하다가 가는 거지. 변하지 못하고, 자라지 못한 채. - 28p




인간이 비합리적이 되는 것 외에 저놈들을 사멸시킬 방법이 있겠어? - 78p




신의 의지는 언제나 신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 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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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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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리베카 솔닛의 '맨스플레인' 이후로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페미니즘 용어가 바로 본서의 제목이기도 한 '맨박스'가 아닌가 싶다. '맨박스'란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남자다움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책에선 저자 자신을 포함해 이러한 맨박스에 갇혀버리는 남자들에게 변화를 촉구하고자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저자가 변화를 촉구하는 대상은 선한 남성들이다. 이때 저자가 말하는 선한 남성들이란 자신은 선하기 때문에 딱히 맨박스고 자시고 딱히 벗어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남성들을 가리킨다. 그럼 남자들이 자신을 선하다고 하는 게 착각이라는 게 저자의 요지란 건가? 그건 아니다. 실제 저자의 속내는 어떤지 모르나 적어도 이 책에선 그렇게 폭력적으로 이분법적인 사고를 느낄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서두는 저자의 충격적인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

 뉴욕의 브롱크스는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로 유명한 만큼 이 지역 출신인 저자의 유년기도 어땠을지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그래도 저자는 굳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어쩌면 무덤까지도 갖고 가야 했을 과거를 서두에서 적극적으로 인용한다. 친구들이 인지 장애가 있는 동급생을 윤간할 때 차마 자신의 남자다움을 의심당할까 노심초사했던 일, 더러운 행위가 벌어진 장소에서 동급생의 손을 잡고 끌고 나오지 못했던 일,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기 합리화를 하며 결과적으로 방관해버린 일... 차마 그대로 옮겨 적지 못할 일을 저자는 무척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만으로 이 책, 그러니까 저자의 모든 말을 신뢰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겠다고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저자는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이다.


 난 책을 읽는 자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읽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모르던 것을 알기 위해 읽는 자세다. 이 상반된 자세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책에 따라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맨박스>의 책장을 펼칠 땐 난 전자의 자세를 취했었는데 상술한 서두를 지난 뒤인 중반부부턴 점차 후자의 자세를 취하게 됐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서 뒷장으로 갈수록 책이 느리게 넘어갔고 짧음에도 다 읽기까지 시간도 좀 걸렸다. 자신이 책으로부터 뭔갈 배우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경우에 따라선 거부감이 드는 일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문에 살짝 갈등했던 것도 같다. 물론 지나고 보니 참 부질없는 갈등이 아니었나 싶지만 말이다.

 아까도 말했듯 저자가 쓴 이 글의 대상 독자는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선한 남성들이다. 나 역시 이에 포함된다. 저자는 이 선한 남성들의 본질이나 성정에 대해선 특별히 의심을 두거나 하진 않는다. 단, 문제는 이 남성들이 자신이 선하기 때문에 모든 성차별 문제로부터 어떤 책임도 없다는 판단 하에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들리는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을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과 저자의 주장이 묘하게 뉘앙스가 바뀐 채 악용된다는 얘길 접했는데 책에서 저자가 정확히 지적한 문제점들을 살펴본다면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상황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는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라 성별에 따라 이분화된다는 게 참 웃기는 일일 수도 있겠다. 여담이지만 남성이건 여성이건 선한 사람의 비율은 근본적으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쪽의 악함이 더 부각되는 건 다른 문제지만... 어쨌든 이 책에서 저자는 자칭이건 타칭이건 어쨌든 전체적으로 다수에 해당하는 선한 남성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단순히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필요한 이유만을 말하기 위해서라면 '맨박스'란 용어는 조금 과한 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저자는 그 이상의 이야길 하고 있다. 한 개인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들을 외면하고 지나간다는 게 왜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라는 지적보다 뼈아프게 다가오는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돌이켜 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다. 주변에서, 특히 내 앞에서 동의할 수 없는 말이 나왔어도 그냥 속으로 적당히 비웃거나 경멸하고 그랬는데 내심 그 자리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타협해서 입을 열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나는 언젠가 적잖은 사람들 앞에서 페미니스트라고 공언한 적이 있었는데 나의 발언에 대해 그다지 반응이 없었던 데에는 그 말에 책임이 있는, 혹은 설득력이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마치 <알라딘>에서처럼 램프를 문지르며 소원을 비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지니가 들어주는 소원은 기껏해야 겉면만 바뀌는 것에 불과한데 그럼 나도 겉면만 페미니스트였단 말인가. 책을 읽으면서 어딘가 가슴이 찔리는 느낌을 받았던 건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참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인간의 됨됨이는 인간의 말보다 행동을 통해 보는 게 더 정확하단 것처럼 저자의 주장 역시 변화와 행동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이전에 읽은 어떤 페미니즘 도서보다 근원적인 구석이 있다. 남성의 전근대적인 성역할을 꼬집으며 전개되는 주장은 다소 뻔한 감이 있었지만 방향 자체가, 이를 테면 어쨌거나 선한 남성들이 침묵하게 되는 이유를 그간 갇혀온 맨박스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임을 지적한 건 감탄할 만한 점이었다.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이 말 하나는 정말 맞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씁쓸한 얘기지만, 남자에게 페미니즘을 가장 설득력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남성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람도 자신 역시 맨박스에 갇혔던 사람이라며 서두를 깔고 글을 써내려갔기 때문에 더욱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뜬금없지만 이 책이 3년 전에 출간됐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나도 나름 페미니즘 저서에 관심을 가진 편이라 생각했는데 왜 이제야 읽었나 싶었던 것이다. 워낙에 랜덤으로 돌아가며 책을 읽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늦은 만남이 아니었는지... 이런 책은 더 일찍 읽었어야 했는데. 괜히 쓸데없이 머리에 든 게 많은 상태에서 읽어서 중간에 살짝 헤맸던 걸 생각하면 이 늦은 만남은 역시 독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아예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 더 늦기 전에 읽을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우리 ‘남자‘들은 마치 첫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우리들은 마치 두 살 때부터 섹스를 해온 것처럼 행동했다. - 32p




남성들은 자신이 필수적으로 권력과 영향력을 가져야 하며 여성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남자로서 실격처럼 느껴지는 것, 그것이 맨박스의 발현이다. - 117p




사회적으로 학습한 맨박스의 규범을 무시한다고 해서 나약하거나 무른 인상을 주진 않을까 걱정해선 안 된다. 오히려 맨박스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남자의 모습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특별한 용기와 배짱 없이는 맨박스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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