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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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최근 이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이 출간된 걸 알고 부리나케 이 작품 <레오파드>를 읽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겠다고 어언 5년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스노우맨>의 다음 이야기를 읽게 됐다. 전작의 엄청난 성공과 그에 대한 부담의 발로인지 엄청난 분량으로 돌아온 <레오파드>는 작가의 팬인 내 입장에서 보통 기대되는 작품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78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로 들리겠지만, 난 실제로 요 네스뵈라면 얘기가 다르다고 생각해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막상 읽을 때는 물리적인 두께가 있어 아무래도 들고 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생스럽진 않았다.

 전편이 순전히 노르웨이라는 배경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낸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홍콩, 노르웨이, 콩고, 르완다 등 대륙을 넘나드는 확장된 스케일이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시리즈의 주된 배경인 노르웨이를 어떻게 활용해냈는지 - 참고로 시리즈 1, 2번째 작품은 아예 배경이 호주와 태국이었다. - 그 전적을 생각하면 작중에 급변하는 배경들도 그저 생각없이 선정된 것이라고 넘겨짚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이야기의 배경뿐만 아니라 백과사전급 분량을 꽉꽉 채우는 모든 요소에도 해당하는 얘기인데, 요 네스뵈는 결코 그냥 언급하는 소재가 없다. 캐릭터, 대사, 배경, 소도구... 이 크고 작은 복선들은 철저하고 교묘하게 등장하며 퇴장하는데 이번 작품은 분량이 분량인 지라 인과관계가 꽤나 복잡하긴 했다. 작가의 큰 그림에 헉소리가 났는데, 당연한 얘기겠으나 이러한 두꺼운 분량은 작품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절대 아니다.


 하마터면 '스노우맨'에 의해 모든 것을 읽을 뻔했던 해리는 이번에야말로 사직하고 - 적어도 본인은 사직을 했다고 믿었다. - 홍콩으로 간다. 어쩌다 보니 불법 체류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듯했던 그의 앞에 고국의 후배 형사인 카야 솔네스가 찾아와 노르웨이로 같이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스노우맨'을 연상시키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했대도 심드렁하게 반응하던 해리는 아버지가 위독하단 얘길 듣고 어렵사리 귀국을 결심한다. 그렇게 해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고난 수사 본능으로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고, 반대로 그가 쥐약이라 할 만한 경찰 조직에서의 정치 싸움에 필요 이상으로 휘말리게 되고, 새로운 인연에 의해 다시 불안한 기운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해리의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그의 곁을 떠나 이번 작품에서도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행복할수록 불안하다니... '마블'의 토니 스타크가 모두가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것이 진정한 악몽이라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본작의 해리 홀레도 그 말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 대해 사심을 줄이고 객관적으로 얘기를 해보자면, <레드 브레스트>부터 전편 <스노우맨>까지가 시리즈의 정점이란 사람들의 말처럼 상대적으로 분량에 비해선 임팩트가 약한 작품이긴 했다. 해리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대화, 카야 솔네스와의 캐미, 크리포스와의 알력 다툼 등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는 여러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할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좀 아쉬웠다. 이 부분은 내가 기대가 너무 큰 탓일 수도, 아니면 작가가 너무 부담을 느껴서 위축한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허에 허를 찌르는 것은 좋았지만 그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사건의 전말을 복잡하게 만든 감은 있어 오히려 최종 단계에 이르렀을 땐 자극에 무뎌진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과한 분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소 애매한 지점이긴 하나 분량보단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너무 많은 걸 기대하게 만드는 전개가 독이라면 독이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섣불리 추천할 수 없는 작품이다. 꼭 시리즈의 팬이어야만 이해가 된다는 얘긴 아니지만, 작중에 나오는 수많은 전개에 녹아든 감정선은 역시 전작을 다 챙겨 본 독자가 아니면 크게 주목 않고 지나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특히 해리가 아들로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한 죄책감을 주변에 털어놓는 장면은 내 개인적으론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해리의 죄책감은 항상 과한 듯하면서도 연민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자기는 멀쩡한데 주변이 엉망이 되곤 하는 운명의 장난을 증오해서 이번 편에서도 역시 가슴이 아팠다. 그런 만큼 해리가 이 이상 어떤 상처를 입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여기서 더 말하면 스포일러이므로 말을 아끼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더 하자면, 후속작이 기대되는 한편으로 더욱 걱정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거야? 해리는 영원히 경찰이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무리 험한 처지에 놓여도 그를 즐기기만 했지 동정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해리 홀레는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처투성이인 인물이라 나도 모르게 그의 처지에 몰입하고 마는 것 같다. 어차피 해피엔딩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바라게 된다.

 후속작 <팬텀>도 조만간 읽을 것이고 최신작 <폴리스>도 늦어도 올해 안에 읽으려고 한다. 사실 어렴풋하게 스포를 당해서 걱정은 좀 되지만... 그래도 끝장은 봐야지. 아, 쉽지 않겠군.

해리가 생각하는 예술의 경지란 뻔한 함정을 피하는 것이었다. - 214p




사람은 누구나 겉보기와는 다르며, 인생은 솔직한 배신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거짓말과 기만이라는 말. 그리고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 살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말. - 358p




죽음도 최악의 시련은 아니에요. 심지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죠.

그럼 뭔데?

굴욕이죠. 명예와 위엄을 박탈당하는 것. 무리에서 쫓겨나 따돌림당하는 것. 그게 최악의 형벌입니다. 거의 생매장 수준이죠. 그럴 때 유일한 위안은 인간의 목숨이 꽤나 짧다는 사실뿐이에요. - 365p




우리는 복잡하면서도 정확하게 맞물려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해. 자신의 운명을 조종하면서, 내 우주의 지배자가 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지. - 5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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