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9.3







 리베카 솔닛의 '맨스플레인' 이후로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페미니즘 용어가 바로 본서의 제목이기도 한 '맨박스'가 아닌가 싶다. '맨박스'란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남자다움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책에선 저자 자신을 포함해 이러한 맨박스에 갇혀버리는 남자들에게 변화를 촉구하고자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저자가 변화를 촉구하는 대상은 선한 남성들이다. 이때 저자가 말하는 선한 남성들이란 자신은 선하기 때문에 딱히 맨박스고 자시고 딱히 벗어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남성들을 가리킨다. 그럼 남자들이 자신을 선하다고 하는 게 착각이라는 게 저자의 요지란 건가? 그건 아니다. 실제 저자의 속내는 어떤지 모르나 적어도 이 책에선 그렇게 폭력적으로 이분법적인 사고를 느낄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서두는 저자의 충격적인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

 뉴욕의 브롱크스는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로 유명한 만큼 이 지역 출신인 저자의 유년기도 어땠을지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그래도 저자는 굳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어쩌면 무덤까지도 갖고 가야 했을 과거를 서두에서 적극적으로 인용한다. 친구들이 인지 장애가 있는 동급생을 윤간할 때 차마 자신의 남자다움을 의심당할까 노심초사했던 일, 더러운 행위가 벌어진 장소에서 동급생의 손을 잡고 끌고 나오지 못했던 일,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기 합리화를 하며 결과적으로 방관해버린 일... 차마 그대로 옮겨 적지 못할 일을 저자는 무척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만으로 이 책, 그러니까 저자의 모든 말을 신뢰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겠다고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저자는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이다.


 난 책을 읽는 자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읽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모르던 것을 알기 위해 읽는 자세다. 이 상반된 자세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책에 따라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맨박스>의 책장을 펼칠 땐 난 전자의 자세를 취했었는데 상술한 서두를 지난 뒤인 중반부부턴 점차 후자의 자세를 취하게 됐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서 뒷장으로 갈수록 책이 느리게 넘어갔고 짧음에도 다 읽기까지 시간도 좀 걸렸다. 자신이 책으로부터 뭔갈 배우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경우에 따라선 거부감이 드는 일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문에 살짝 갈등했던 것도 같다. 물론 지나고 보니 참 부질없는 갈등이 아니었나 싶지만 말이다.

 아까도 말했듯 저자가 쓴 이 글의 대상 독자는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선한 남성들이다. 나 역시 이에 포함된다. 저자는 이 선한 남성들의 본질이나 성정에 대해선 특별히 의심을 두거나 하진 않는다. 단, 문제는 이 남성들이 자신이 선하기 때문에 모든 성차별 문제로부터 어떤 책임도 없다는 판단 하에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들리는 수많은 여성들의 외침을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과 저자의 주장이 묘하게 뉘앙스가 바뀐 채 악용된다는 얘길 접했는데 책에서 저자가 정확히 지적한 문제점들을 살펴본다면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상황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는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라 성별에 따라 이분화된다는 게 참 웃기는 일일 수도 있겠다. 여담이지만 남성이건 여성이건 선한 사람의 비율은 근본적으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쪽의 악함이 더 부각되는 건 다른 문제지만... 어쨌든 이 책에서 저자는 자칭이건 타칭이건 어쨌든 전체적으로 다수에 해당하는 선한 남성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단순히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필요한 이유만을 말하기 위해서라면 '맨박스'란 용어는 조금 과한 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저자는 그 이상의 이야길 하고 있다. 한 개인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들을 외면하고 지나간다는 게 왜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라는 지적보다 뼈아프게 다가오는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돌이켜 보면 나도 다르지 않았다. 주변에서, 특히 내 앞에서 동의할 수 없는 말이 나왔어도 그냥 속으로 적당히 비웃거나 경멸하고 그랬는데 내심 그 자리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타협해서 입을 열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나는 언젠가 적잖은 사람들 앞에서 페미니스트라고 공언한 적이 있었는데 나의 발언에 대해 그다지 반응이 없었던 데에는 그 말에 책임이 있는, 혹은 설득력이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마치 <알라딘>에서처럼 램프를 문지르며 소원을 비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지니가 들어주는 소원은 기껏해야 겉면만 바뀌는 것에 불과한데 그럼 나도 겉면만 페미니스트였단 말인가. 책을 읽으면서 어딘가 가슴이 찔리는 느낌을 받았던 건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참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인간의 됨됨이는 인간의 말보다 행동을 통해 보는 게 더 정확하단 것처럼 저자의 주장 역시 변화와 행동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이전에 읽은 어떤 페미니즘 도서보다 근원적인 구석이 있다. 남성의 전근대적인 성역할을 꼬집으며 전개되는 주장은 다소 뻔한 감이 있었지만 방향 자체가, 이를 테면 어쨌거나 선한 남성들이 침묵하게 되는 이유를 그간 갇혀온 맨박스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임을 지적한 건 감탄할 만한 점이었다.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이 말 하나는 정말 맞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씁쓸한 얘기지만, 남자에게 페미니즘을 가장 설득력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남성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람도 자신 역시 맨박스에 갇혔던 사람이라며 서두를 깔고 글을 써내려갔기 때문에 더욱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뜬금없지만 이 책이 3년 전에 출간됐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나도 나름 페미니즘 저서에 관심을 가진 편이라 생각했는데 왜 이제야 읽었나 싶었던 것이다. 워낙에 랜덤으로 돌아가며 책을 읽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늦은 만남이 아니었는지... 이런 책은 더 일찍 읽었어야 했는데. 괜히 쓸데없이 머리에 든 게 많은 상태에서 읽어서 중간에 살짝 헤맸던 걸 생각하면 이 늦은 만남은 역시 독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아예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 더 늦기 전에 읽을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우리 ‘남자‘들은 마치 첫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우리들은 마치 두 살 때부터 섹스를 해온 것처럼 행동했다. - 32p




남성들은 자신이 필수적으로 권력과 영향력을 가져야 하며 여성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남자로서 실격처럼 느껴지는 것, 그것이 맨박스의 발현이다. - 117p




사회적으로 학습한 맨박스의 규범을 무시한다고 해서 나약하거나 무른 인상을 주진 않을까 걱정해선 안 된다. 오히려 맨박스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남자의 모습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특별한 용기와 배짱 없이는 맨박스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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