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누가 할래 -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황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8.5







 누가 뭐라 하든, 동거는 결혼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의 내용은 퍽 흥미로웠다. 결혼이란 정말이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배우자의 삶의 방식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식을 올리는 건 그야말로 도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고작 설거지 누가 하느냐로 감정이 상했다고 서술한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데이트할 때가 아닌 삶의 일상적인 순간마다 사랑스러우리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혼까지 했는데 설거지 하나 때문에 빈정이 상해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의미에서 동거는 결혼했을 때 겪을 시행착오를 미리 경험할 수 있게 충분히 할 만하다. 물론 동거도 부담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유의미한 과정임을 무턱대고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설령 동거를 해서 헤어진다 해도 그 역시 의미가 있으니까.

 이 책을 페미니즘 도서라 생각하며 읽었고 작가도 그 점을 꽤나 강조하고 있지만 원래 좋은 페미니즘 도서가 그렇듯 이 책은 생각보다 다양한 측면으로도 읽혔다. 개인적으로 '여남 평등'이란 표현만 제외한다면 - 참고로 난 '양성 평등'이란 단어를 선호한다. - 전개되는 내용이 꽤나 일리가 있고 통찰력도 있으며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하고, 결정적으로 자기 얘기에 도취해 공정함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았던 게 가장 좋았다. 남자 친구, 나중엔 남편이 되는 '그'의 변론이란 글이 각 챕터의 끝자락마다 실린 게 재밌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양반의 글에 좀 더 분량을 할애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결국 여남 관계란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합리적인 이유와 입장이 있고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관대하기에 유리하게 말할 수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주장'이란 짧은 글들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었다. 만약 이 남자의 글이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았더라면 난 저자의 글 전체를 온전히 신용하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페미니즘 측면에서 봤을 때 딱 알기 쉽고 일리가 있으며 재치있게 논리를 전개해 괜찮게 읽혔다. 남자 친구이자 나중에 남편이 되는 '그'가 그렇게 악한은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범하는 차별적인 언동이 어떻게 저자의 신경을 건드리는지, 이에 대해 저자가 시도하는 다채로운 반격 등을 담은 내용이 남자인 내가 읽어도 몰입감이 제법이었다. 어디까지나 실화에 기반한 에세이지만, 저자가 엄연히 문학상을 받고 데뷔한 소설가인 지라 소설의 문법에 익숙한 내겐 더욱 술술 읽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의 저자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모든 이야기는 한국 여성 독자가 읽어도 정서적으로 괴리감이 적을 듯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여권이 비등비등해서 딱히 남의 나라 이야기라 치부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결혼하면 성씨가 바뀐다는 내용만 뺀다면. 이 부분은 충격적이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일본에서 결혼하면 아내의 성는 배우자의 성으로 바뀌는데 그로 인해 동사무소 같은 곳을 돌아가며 서류를 작성하고 시간과 돈이 낭비된다는 것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저자는 비교적 가볍게 저술했지만 이건 좀 심각한 일이 아니냐며 내가 다 억울할 정도지 뭔가. 생각해 보니 알고 있었지만 성이 바뀐다는 게 사람에 따라선 굉장한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저자가 얘기한 내용도 충격이었지만 이렇게 저자의 글을 읽기 전까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내 자신에게도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일본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잖아? 미국도... 그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 읽으니까 저자의 소설도 읽고 싶어졌는데 국내에 아직 출간된 게 없더라. 저자가 데뷔하며 수상한 문학상이 R-18문학상인데 그 상을 받은 소설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저자의 데뷔작도 궁금해졌다. 조만간 국내에 소개된다면 읽어볼 생각이다. 얼른 출간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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