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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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대학에 진학하면 철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도덕과 윤리 시간을 좋아했고 점수도 곧잘 받았다. 물론 좋아한다고 해봤자 입시를 위한 공부라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을 터다. 참된 이해를 동반하지 않은 채 수많은 철학가의 이름과 주장을 단지 암기하기만 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 책은 과거에 내가 좋아했다고 믿은 도덕, 윤리, 그리고 철학의 재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 반갑기 그지없었다. 소크라테스를 시작으로 순자와 노자, 벤담, 루소, 칸트, 흄, 밀,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존 롤스, 헤겔, 키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나 카뮈나 모리 오가이 같은 소설가, 심지어 간디와 부처까지 아우르는 구성은 몇 번을 생각해도 참 대담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우스겟소리지만 <대논쟁! 철학 배틀>이란 제목을 <대환장! 철학 배틀>로도 바꿔볼 수 있겠다. 상당히 교육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책일 텐데 여러 철학가가 가상의 토론을 벌인다는 컨셉이 어떻게 보면 유치하다 느낄 수 있겠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윤리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해당 과목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는 데 최적인 책일 듯하고 반대로 철학을 정말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독자들한텐 살짝 맛만 보여주고 토론을 마무리하는 걸 못내 아쉬워할 듯하다. 다루는 인물, 논리가 하도 많다보니 이 정도면 분량 배분을 상당히 잘했다고는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철학자들이 서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끝나는' 식이라... 토론이란 게 반드시 결론을 내리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므로 - 여담이지만 철학은 저서보단 대화를 통해 후세에 전달된 경우가 많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철학은 곧 대화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중도를 지향한 저자에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이런 부분이 불만인 독자도 분명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이 갖는 최대의 순기능은 몇몇 철학자들에 관심을 가지게 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철학에 관심이 많다곤 했지만 실제로 철학서까지 읽어본 적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니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책들에 관심이 가게 됐다. 저자가 철학자들의 핵심을 잘 정리한 덕분이다. 공감해줄지 모르겠는데 일본인은 뭔갈 쉽게 설명하는 것에 이골이 난 것 같다. 뭐, 아무리 이골이 났어도 철학은 쉽지 않은지 후반부에 다다랐을 땐 읽는 나도 그렇고 쓰는 저자도 텐션이 떨어지는 감이 있었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처음엔 '살인이나 전쟁은 절대악인가?'하는 질문부터 소년 범죄나 글로벌리즘을 다루는 등 제법 피부에 와 닿는 논제가 제시됐는데 후엔 '성선설 VS 성악설'처럼 케케묵고 교과서적인 논쟁을 비롯해 자유나 진리, 별세계, 경험과 이성 등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형이상학적 얘기들을 다루고 있어 역시 철학은 철학이라는 감상이 나왔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듯 이런 음미하는 사고 자체는 좋은데 다소 선문답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선문답의 가치를 부정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기왕 처음에 피부에 와 닿는 논제로 시작했으니 그 컨셉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래도 조금은 가볍게 가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대담한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책인 만큼 더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p.s 각 철학가의 일러스트를 담당한 이와모토 다쓰로 씨의 솜씨가 제법이었다. 인물의 특징이 아주 잘 살아서 누가 새로 등장할 때마다 감탄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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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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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고레에다 히로카즈 본인이 직접 데뷔작부터 <태풍이 지나가고>를 찍기까지의 시간과, 그 사이에 작업한 단편 TV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에 대해 쓴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감독의 팬을 자처하는 나였지만 그런 것치곤 막상 읽으면서 감독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며 민망함이 끊이질 않았다. 그와 동시에 감독의 생각을 접하고 있음에 신기한 기분도 들었는데 이는 특히 내가 감명 깊게 봤던 영화들에 관한 글에서 심하게 들곤 했다. 내심 처음에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얘기가 이어질 땐 지루함을 감추지 못했던 터라 다행인 일이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감독은 수많은 감독과 프로그램을 언급하지만 다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생각보다 일본 영화며 방송이 바로 옆나라인 우리나라에 그렇게 알려진 게 없구나 싶었다. 그만큼 일본이 폐쇄적인 건지 아니면 우리나라가 의도적으로 일제를 기피하는 건지... 요즘은 후자에 훨씬 가까운 것 같다.

 감독의 모든 작품을 보진 못했다. 다큐멘터리는 한 편도 못 봤고 - 볼 수 있다면 보고 싶다. - 영화도 못 본 작품이 몇 있다. 그래서 책의 글들의 만족도가 들쑥날쑥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 한해서 말해보자면, 감독의 작품 중 어떤 작품이 흥행과 무관하게 평단의 호응을 얻었고 외면을 받았는지 대강이라도 알고는 있었는데 그렇게 평가가 갈린 이유를 감독이 쓴 글을 읽으면서 대강 파악이 된다는 게 참 재밌었다. 감독도 인정했듯, 작품을 만들면서 생각이 너무 지나치면 안 됐던 것이다. 생각이 많이 개입되면 관객이 쫓아가질 못해 오히려 감독만의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 영화 한 편을 만들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건 그것대로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자서전의 형식으로 접하는 나조차도 장황하다 못해 과하게 느껴지는데 실제로 영화로 풀어내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역시 뭐든지 과한 건 경계하고 볼 일이구나 싶었다.


 감독은 유럽의 영화 감독들에 비해 일본의 감독은 영화를 찍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했지만, 백 번 양보해서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지 책을 읽는 내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생각의 깊이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아는 게 없다'는 감독 본인의 말엔 크게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아는 것의 개념이나 기준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어떤 사람은 또 다르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가령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대해 '전쟁의 비참함을 전달하는 시설로는 그다지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참 솔직하고 신랄한 말이 아닐 수 없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하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부족하단 지적은 일견 알쏭달쏭하게 들려 반감을 표시할 독자들이 꽤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이 감독이 일본인이란 사실이 더욱 그러한 반감을 부추길 듯한데...


 감독 본인이 바로 예시를 들었던 자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추모 공원이나 기념관에도 해당되는 터라 감독의 말에 제법 공감이 됐다. 실제로 두 곳을 방문했던 나로선, 자신들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에 있어서 아낌없이 전시한다는 느낌까지 받았던 나로선 특히나. 이러한 편향된 전시 경향이 꼭 우리나라라고 덜하리란 법은 없을 텐데 가까운 곳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고레에다 감독이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보고서 한 말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 내 마음 속을 훅 파고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인격 못지않게 그 사람의 솔직함과 날카로움도 보곤 하는데 그 사람이 창작자라고 한다면 후자의 경우를 더 중시할 때도 있다. 솔직하면서 날카로운 감각을 가진 사람의 창작물이야말로 완성도를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족 영화를 주로 발표하면서 조금 간과당하는 감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작품이건 서늘한 감각만은 유지하는 감독답게 이번 자서전도 생각의 깊이만큼이나 날카로운 발상이 영화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인간미를 내세운 따뜻한 작풍 속에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날카로운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말이다.


 자서전까지 읽으니 아직 못 본 감독의 작품은 물론이고 이미 봤던 작품들도 다시 보고 싶어졌는데, 아무래도 영화를 한 편 볼 때마다 이 책을 집어들어 그에 해당하는 글을 다시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그런 목적으로 펼쳐들 때 더욱 의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담이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최근 영화 <세 번째 살인>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은 책의 출간 시기 이후에 발표된 작품이라 본서에선 언급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 작품들에 관한 글들도 읽어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말은 주제넘게 들릴 수 있지만, 타인인 저에게 정기적으로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도모코 씨에게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된 측면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환상의 빛> 주인공처럼 가슴속 슬픔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의 씩씩함이나 아름다움 아닐까요. 그 슬픔을 받아 주는 쪽이 될 수 있었던 귀중한 체험은 제게도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 78p




물론 피해의 극심함을 호소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걸로 문제없을지도 모르지만, 전쟁을 어떤 식으로 다음 세대에거 설명할지를 결정할 때 피해자 쪽으로 기울어진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면 거기서 사고가 멈추어 일종의 배타주의와 적대주의만 부추기게 되지 않을까요. - 151p




"의미 있는 죽음보다 의미 없는 풍성한 삶을 발견한다."

영화가 그런 주장을 소리 높여 하는 게 아니라 영화 그 자체가 풍성한 삶의 실감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 지금의 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 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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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 사쿠라 마나 소설
사쿠라 마나 지음, 이정민 옮김 / 냉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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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7







 현역 AV - Adult Video의 약자 - 배우가 썼다는 AV 배우 이야기. 일본 소설 중에 해당 '직업'에 대한 소재는 종종 접했지만 이렇게 작가가 그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는 처음 접해봤다. 과연 이 작가는 자기가 속한 직업 세계를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해 책을 펼쳐봤다. 그런데, 내가 계속 AV 배우를 직업이라고 지칭했는데 이 표현이 대단히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흔히 '성진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도 AV 배우는 패배자 - 일본식 표현으론 '싸움에 진 개'라고 한단다. 아니, 개는 왜 건드려? - 라 할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바닥을 기는데 그래서 이 작품집의 제목을 '최저'라 지은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봤을 땐 너무 자학적인 제목이 아닌가 싶은데... 실제로 자학적인 건 제목만이다. 작가는 자기가 속한 직업 세계를 꽤나 덤덤하게 묘사한다. 어떤 판타지도 없이. 어떠한 과장도 없이. 어떤 식으로든 유리하다거나 동정적인 시선 또한 가미하지 않는다.

 <최저>는 총 4편의 단편이 수록된 연작 소설집이다. 공통점이라곤 '비스타'라는 가공의 AV 기획사가 등장한다는 것뿐이고 주인공은 저마다 직업이나 처지가 제각각이다. 처음엔 저자 자신의 모습을 강하게 투여했을 현역 AV 배우가, 두 번째엔 AV 기획사 비스타를 설립한 사장이, 세 번째엔 AV 배우가 되려는 유부녀가, 마지막엔 과거에 AV를 몇 편 찍은 엄마를 둔 외동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거두절미하고 딱 두 번째 이야기까지는 읽을 만했다. 책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괜찮은 편이다. AV 배우가 쓴 소설이라는 다소 엉큼한 호기심으로 접했는데 문체라든가 이야기의 시작이나 끝맺음도 준수해 술술 거부감 없이 읽혔다. 글쎄, 냉정하게 말한다면 저자의 이름빨 덕에 독자를 많이 확보했을 뿐, 저자가 현역 배우가 아니었더라면 이만한 화제를 모을 수 있었을까 싶지만 기대 이상이라는 감상에 거짓은 섞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인물 설정이 더 다채롭고 입체적이었더라면 어땠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록작도 네 편에서 그치지 않고 더 늘였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 세 번째 이야기의 유부녀가 섹스 없는 부부 사이에 지쳐 배우에 관심을 가진다는 도입은 너무 뻔했고 마지막 이야기는 너무 감상적이라 읽는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첫 번째 이야기야 워낙에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들어갔기에,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AV 배우는 여러 가지를 견뎌내는 직업'이라는 말이 이 글에서 제일 호소력 있게 나타났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에 눈길이 갔는데, 유일하게 남자인 이 인물은 건실하게 AV 기획사를 운영하려는 모습을 비춘 것이 인상적이었다. AV 기획사를 운영하는데 건실하다니,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햄버거 나오셨습니다~' 같이 어색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캐릭터야말로 바로 작가가 현역 AV 배우이기에 자연스럽게 등장시킬 수 있던 캐릭터인 것 같아 작가의 경력이 빛을 본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작가가 자기 직업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도 일맥상통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일본의 AV 산업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작중에선 AV 산업을 일종의 틈새시장으로 여기는 등 작가는 자신의 솔직한 시선을 가감없이 소신껏 드러낸다. 이런 작가의 시선에 불편함을 표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코웃음을 치거나 기껏해야 패배자의 변명이라 일축하는 사람도 적잖으리라. 물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그렇게 생각한다. 떳떳한 직업까진 못 되지만 그러한 경멸 어린 시선까지 견뎌내는 게 이 직업 종사자로서의 고충이라니까. 이쪽 업계에 발을 들였다간 변명의 여지 없이 가족한테 의절당하는 게 비일비재한 일이니까. 그런 동료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저자는 그래도 자신들도 사람이고 세상 모두가 외면하려는 이쪽 세계에도 감정이 있고 노력하는 삶이 있다고 말을 이어간다.


 내게는 이 책의 본편보다 오히려 저자 후기가 더 무게감 있게 읽혔다. 본편은 몰라도 후기는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저자가 우연히 책을 읽는 재미를 알고 글을 끄적이게 된 경위, 소설을 발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다른 소설이 아닌 AV 배우의 이야기를 맨 처음 선보이게 된 이유 등이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작가 역시 현역 배우로서 사람들한테 평가 받는 것에 있어서 프로라 그런지 자세가 남달랐다. 자신이 쓴 글이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려면, 자신처럼 '에로장이'가 쓴 에로 배우 이야기가 첫 번째 선보이는 소설로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발표했단다. 전략 한 번 잘 잡았다고 생각했고 - 실제로 나도 그런 식으로 호기심이 동해 읽게 됐으니까. - 내심 감탄했다. 이 사쿠라 마나라는 사람은 진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에. 누군가는 단지 AV 배우라는 이유로 인생 낙오자 취급하겠지만 이 사람은 아랑곳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는 걸 생각하니 이 작가만큼이나 노력 없이 산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인정한다. 나라고 AV 배우를 패배자라 생각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짜 패배자는 자기가 패배자라 여기는 존재보다 더 노력을 하지 않는 존재가 아닌가.

 이 책을 작품 외적인 요소를 제외하고서 후기를 쓰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따지고 보면 그런 요소까지 개입시켜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고 작가로서 달가운 상황도 아닐 듯한데 의외로 이 작가는 '그럼 그렇지' 하며 의연하게 넘어갈 듯하다. 그만큼 소신이 있는 작가니까 앞으로도 자기가 쓰고 싶은 걸, 그리고 하고 싶은 걸 맘껏 도전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해본 적은 없는데... 순전히 사쿠라 마나라는 사람한텐 호기심이 좀 생겼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보다 더욱. 물론 영화도 볼 것이다. 궁금하긴 하다.

아야코는 두려웠다.

성장해 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저만치 가버릴까 봐. 지금 여기 서 있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홀로 남겨질까 봐. 나이를 먹어 갈수록 주변 어른들처럼 ‘어쩔 수 없다‘는 편리한 핑계를 대면서 그동안 좇던 꿈까지 내팽게치게 될까 봐. - 227p




그때 깨달았다. 아, 책을 좋아하는 기분과 국어 수업을 재미있게 즐기는 감각은 지금 내가 느끼는 ‘말의 포옹‘이라는 것과 통하지 않을까. 이건 틀림없는 ‘만남‘이다. 지금 작가 후기를 읽어 주시는 분들도 분명히 책을 매우 좋아할 뿐 아니라 글자를 접하는 시간마저도 좋아할 것이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어느 정도 살짝 녹아들었다는 감동이었다. - 232p




쓰고 싶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그냥 쓸 뿐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자위행위 같은 것이다. - 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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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7.8







 참 기묘한 제목의 책이었다. 국내에 두 권의 책이 소개된 구라치 준의 신작 단편집인데 표제작을 비롯해 특이한 작품이 몇 있었다. 아주 인상적인 작품은 아쉽게도 없었지만 모든 수록작의 완성도가 대체로 비슷해 흥이 식지 않았던 건 좋았다.



 'ABC 살인'


 미싱 링크의 허점, 즉 연쇄 살인에 편승하는 내용은 추리소설을 조금만 읽었더라면 식상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굳이 추리소설을 많이 안 읽어봤어도 이 작품의 전개 방식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듯하다. 뭐,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보면 그 식상함이 포인트인 작품이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나름대로 신선한 작품인데 이 정도 신선함으론 추리소설론 어림도 없다고. 이토록 냉정한 감상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나같이 추리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을 낙담하게 만드는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사내 편애'


 SF적 상상력이 가미된 약간 공포스런 작품. 범죄 소설 뺨치는 상황이 소름 끼치게 연발한다. 변뎍을 부리는 AI라니, 그 존재의의에 대해선 솔직히 납득이 안 가지만 제법 신선하게 다가오는 측면도 있었다. 말 그대로 AI가 변덕을 부리니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결말 부분에서의 마지막 문장이 예상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과연 이런 미래가 도래할까 상상해봤는데 위에서 말했듯 변덕을 부리는 AI가 설득력이 떨어져서 어디까지나 재미로 읽고 말면 그만일 듯하다.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다. 살해된 피해자 앞에서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하는 형사, 피해자의 주변인을 만날 때마다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는 사람들, 피해자의 머리맡엔 케이크를, 입에는 파가 꽂아 놓은 범인의 행위... 전자는 피해자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이고 후자는 싫어하던 음식이다. 이 의미불명의 살인 현장은 후에 논리적으로 파헤쳐지는데 이때 밝혀지는 범인의 저의가 생각할수록 소름 끼친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은 그 자체로 개연성과 목적 의식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자극에 눈이 멀어 살인사건 수사의 중요성이나 죽음의 무게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추리소설이 많은 것 같아 이처럼 진지한 추리소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밤을 보는 고양이'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작중의 묘사며 전개 양상, 주인공의 설정이나 사건의 전말 등이 평범하게만 느껴졌던 작품. 인간의 오감을 초월한 동물의 감각, 그 동물의 감각을 근거로 하여 논리적으로 접근해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작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그 영화가 해당 사회 이슈를 더 효과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본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제목은 일본의 관용구로 주로 융통성 없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답답한 사람을 조소할 때 쓰는 표현이라는데 작중에선 다른 의미로 쓰였다. 정말로 홧김에 저주하는 목적으로 썼고 실제로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듯한 모양새로 발견됐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다들 느끼겠지만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작품의 배경이 1940년대의 일본이란 것이다. 패전의 분위기를 애써 외면하며 가미카제 같은 작전을 대안으로 삼던 그 미친 시대를 배경으로 젊음을 유린당하는 인물들의 처지가 애처로웠다. 오히려 작품 전체에 걸쳐 설명되는 기술이나 사건의 전개와 해결따윈 관심도 없었다. 너무 허무하게 설명되고 끝날 뿐이라서... 마치 '사건을 해결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투라 읽는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참 황당한 마무리였고 예상치 못했던 작중 배경도 더한데 해당 시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읽을 만할 듯하다. 당시의 답이 없던 분위기가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비판하는 목적에선 최고의 작품이었던 것도 같다. 왜 굳이 두부 모서리 뭐시기인지 하는 관용구를 언급했는지 모르겠지만.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지난 번에 읽은 작가의 <지나가는 녹색 바람>에서도 등장했던 네코마루 선배가 탐정역으로 나오는데 이번에도 그의 매력이 뭔지 잘 와 닿지 않았다. 벌써 두 번째 접하지만 어째 작가만 마음에 들어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아무튼 매력은 덜해도 추리력은 상당하고 또 작품 자체의 반전이나 작가 특유의 뜬금없는 주제의식은 재밌었는데 그에 비해 전개는 되게 지루해서 그게 좀 불만이다. 내가 너무 바라는 게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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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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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복지, 사회 제도, 경제 성장, 그리고 행복도 등 여러 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하는 북유럽의 이모저모를 이방인의 시선에서 살펴보는 책.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순으로 진행된다. 저자는 자신이 10년 가까이 살았다는 덴마크는 물론이고 그 사이에 짬짬이 들렀던 북유럽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사유를 해보인다. 저자에게 가장 친숙할 덴마크와 북유럽의 패자인 스웨덴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당 할애된 페이지가 100쪽이 넘지 않아 걱정이 좀 됐지만 예상 외로 수박 겉 핥기 이상의 성과를 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느끼는 데엔 저자만큼은 아니어도 나 역시 자체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에 관심을 가져왔던 덕분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선 지구본에서 북유럽이 어디 있는지 찾느라 한참 헤맬 수도 있으므로 이 책이 완벽하게 입문용으로 좋았다고는 볼 수 없다. 글쎄, 북유럽에 딱히 관심도 없으면서 이 책을 집어 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지만... 어쨌든 북유럽 나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선행 학습이 이뤄지지 않은 이상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쫓아가기 버겁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 말은 반대로 말하면 한 번이라도 북유럽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들, 여행책을 들여다봤든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접한 사람들, 실제로 여행으로 다녀오기까지 한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책이라는 것이다. 나는 북유럽에 지대한 관심이 있을 뿐더러 북유럽 작가가 썼거나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과 영화들을 꽤 좋아하며며 심지어 북유럽 5개국 중 한 곳인 노르웨이까지 다녀왔으니 이 책이 적잖이 술술 읽혔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 후기를 두루 살펴보니까 취향을 꽤나 타는 모양이던데, 솔직히 납득은 안 되지만 - 이 책의 번역이 그렇게 이상한지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주로 외국 문학을 많이 읽어서 그런 걸까? 진짜 이상한 번역의 문학을 종종 접해서 그런지 비문학은 아무리 번역이 개판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지 않았나 싶다. - 나라마다 짧게 훑고 지나간다는 건 나 또한 느꼈다. 조금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철저하고 단호한 양성 평등 정책이나 높은 세율과 신뢰가 있는 연금 제도, 때론 북해의 유전 같은 행운이나 전반적으로 인구가 적어 모든 국민이 복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등 북유럽 사회의 성공엔 여러 요인을 언급해볼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짧은 글로는 북유럽 전체를 살펴보기엔 턱없이 부족함을 인정하지만 제법 효과적이고 폭넓은 취재로 북유럽 사회가 거의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던 이유에 사뭇 가까이 다가갔다. 모름지기 국민성이란 걸 한마디로 쉽게 정의하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북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은 마냥 간과할 수많은 없는 것이기에 이 책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덴마크랑 스웨덴, 핀란드를 다룬 책은 읽어봤어도 이 책처럼 노르웨이랑 아이슬란드까지 아우르는 책은 처음이라 마냥 신선했다.

 각 나라의 역사적 맥락이나 고충을 굳이 내 후기에까지 옮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매우 흥미로운 얘기지만 저자처럼 잘 쓸 자신도 없거니와 그보다 더 중요하고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 과감히 생략하려고 한다. 북유럽은 다른 서방 국가와 다르게 비교적 같은 피부색, 머리칼을 가진 사람들끼리 살아왔기에 상대를 신뢰하기가 대체로 용이했고 - 서로 별다른 말 없이도 마음이 전달된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 그러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어 복지며 사회 제도가 안착이 가능했으리란 게 이 책에서 내내 거론되는 부분이다. 이는 이민자나 외부인이 아닌 순수히 그 나라 국민에게 해당이 되는데 그 때문에 최근 들어 노르웨이에서 테러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비극이 터지기도 하지만 이런 비극 역시 더 발달되고 차별이 없는 사회 제도로 극복할 수 있다고 앞다퉈 목소릴 높이는 북유럽 국가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북유럽이라고 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폐해는 현시점에 와선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너무나 편안한 복지가 있어 사람들에게서 경쟁력과 같은 능동적인 감정을 결여시키는 건 분명 문제고 그 복지에 수반되는 높은 세금도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평등을 추구하느라 엘리트들을 홀대하고 그들이 자국을 떠나는 걸 막을 방도가 없다는 건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이야기다. 일전에 읽은 <덴마크 사람들처럼>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역사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가졌음에도 너무나 완벽에 가까운 사회 제도 때문에 도리어 엘리트들이 해외로 떠나고 점점 해외에 비해 국가 경쟁력이 희미해진다면, 가령 아이슬란드처럼 경제적 위기에 처하거나 노르웨이처럼 언젠가 고갈이 날 것이 분명한 석유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니까.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결론에서 은근히 낙관적인 태도로 북유럽이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이 더 나은 형태의 결과를 낼 것이라고 아부인 듯 아부 아닌 - 500쪽 내내 삐딱선 타면서 깐족거릴 땐 언제고... 특히 스웨덴에선 정말이지... - 단언을 해버린다. 북유럽에 콩깍지라도 씐 것 아니냐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데, 나도 북유럽의 사회 제도가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없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북유럽이 그 정도의 복지나 그 정도의 평등을 추구할 수 있는 건 여러 북유럽만의 특수성이 있었음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되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상이라 여기는 영역을 북유럽이 제도화했는데 그 이면에 단점이 있다고 한들 그들이 추구하는 바까지 훼손되는 건 아니니 아직은 그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 때라고 본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란 제목은 어딘지 비꼬는 투가 역력하지만 저자도 어느 정도 인정하듯 이 비꼬는 투엔 질투도 포함됐다. 당연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를 넘은 질투나 트집이 아니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생소한 지점에 매스를 들이대는 건 중요하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계속 말했듯 거의 완벽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계속 말하다 보니 참 기막힌 제목이 아닐 수 없네.

‘자신을 좋아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순수함은 끝난다.‘ 존 디디온, <자존심에 대하여> 중에서. - 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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