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7.8







 참 기묘한 제목의 책이었다. 국내에 두 권의 책이 소개된 구라치 준의 신작 단편집인데 표제작을 비롯해 특이한 작품이 몇 있었다. 아주 인상적인 작품은 아쉽게도 없었지만 모든 수록작의 완성도가 대체로 비슷해 흥이 식지 않았던 건 좋았다.



 'ABC 살인'


 미싱 링크의 허점, 즉 연쇄 살인에 편승하는 내용은 추리소설을 조금만 읽었더라면 식상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굳이 추리소설을 많이 안 읽어봤어도 이 작품의 전개 방식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듯하다. 뭐,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보면 그 식상함이 포인트인 작품이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나름대로 신선한 작품인데 이 정도 신선함으론 추리소설론 어림도 없다고. 이토록 냉정한 감상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나같이 추리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을 낙담하게 만드는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사내 편애'


 SF적 상상력이 가미된 약간 공포스런 작품. 범죄 소설 뺨치는 상황이 소름 끼치게 연발한다. 변뎍을 부리는 AI라니, 그 존재의의에 대해선 솔직히 납득이 안 가지만 제법 신선하게 다가오는 측면도 있었다. 말 그대로 AI가 변덕을 부리니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그래서 오히려 결말 부분에서의 마지막 문장이 예상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과연 이런 미래가 도래할까 상상해봤는데 위에서 말했듯 변덕을 부리는 AI가 설득력이 떨어져서 어디까지나 재미로 읽고 말면 그만일 듯하다.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다. 살해된 피해자 앞에서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하는 형사, 피해자의 주변인을 만날 때마다 그녀의 명복을 빌어주는 사람들, 피해자의 머리맡엔 케이크를, 입에는 파가 꽂아 놓은 범인의 행위... 전자는 피해자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이고 후자는 싫어하던 음식이다. 이 의미불명의 살인 현장은 후에 논리적으로 파헤쳐지는데 이때 밝혀지는 범인의 저의가 생각할수록 소름 끼친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은 그 자체로 개연성과 목적 의식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자극에 눈이 멀어 살인사건 수사의 중요성이나 죽음의 무게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추리소설이 많은 것 같아 이처럼 진지한 추리소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밤을 보는 고양이'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작중의 묘사며 전개 양상, 주인공의 설정이나 사건의 전말 등이 평범하게만 느껴졌던 작품. 인간의 오감을 초월한 동물의 감각, 그 동물의 감각을 근거로 하여 논리적으로 접근해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작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그 영화가 해당 사회 이슈를 더 효과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본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제목은 일본의 관용구로 주로 융통성 없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답답한 사람을 조소할 때 쓰는 표현이라는데 작중에선 다른 의미로 쓰였다. 정말로 홧김에 저주하는 목적으로 썼고 실제로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듯한 모양새로 발견됐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다들 느끼겠지만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작품의 배경이 1940년대의 일본이란 것이다. 패전의 분위기를 애써 외면하며 가미카제 같은 작전을 대안으로 삼던 그 미친 시대를 배경으로 젊음을 유린당하는 인물들의 처지가 애처로웠다. 오히려 작품 전체에 걸쳐 설명되는 기술이나 사건의 전개와 해결따윈 관심도 없었다. 너무 허무하게 설명되고 끝날 뿐이라서... 마치 '사건을 해결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투라 읽는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참 황당한 마무리였고 예상치 못했던 작중 배경도 더한데 해당 시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읽을 만할 듯하다. 당시의 답이 없던 분위기가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비판하는 목적에선 최고의 작품이었던 것도 같다. 왜 굳이 두부 모서리 뭐시기인지 하는 관용구를 언급했는지 모르겠지만.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지난 번에 읽은 작가의 <지나가는 녹색 바람>에서도 등장했던 네코마루 선배가 탐정역으로 나오는데 이번에도 그의 매력이 뭔지 잘 와 닿지 않았다. 벌써 두 번째 접하지만 어째 작가만 마음에 들어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아무튼 매력은 덜해도 추리력은 상당하고 또 작품 자체의 반전이나 작가 특유의 뜬금없는 주제의식은 재밌었는데 그에 비해 전개는 되게 지루해서 그게 좀 불만이다. 내가 너무 바라는 게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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