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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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대학에 진학하면 철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도덕과 윤리 시간을 좋아했고 점수도 곧잘 받았다. 물론 좋아한다고 해봤자 입시를 위한 공부라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을 터다. 참된 이해를 동반하지 않은 채 수많은 철학가의 이름과 주장을 단지 암기하기만 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 책은 과거에 내가 좋아했다고 믿은 도덕, 윤리, 그리고 철학의 재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 반갑기 그지없었다. 소크라테스를 시작으로 순자와 노자, 벤담, 루소, 칸트, 흄, 밀,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존 롤스, 헤겔, 키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나 카뮈나 모리 오가이 같은 소설가, 심지어 간디와 부처까지 아우르는 구성은 몇 번을 생각해도 참 대담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우스겟소리지만 <대논쟁! 철학 배틀>이란 제목을 <대환장! 철학 배틀>로도 바꿔볼 수 있겠다. 상당히 교육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집필된 책일 텐데 여러 철학가가 가상의 토론을 벌인다는 컨셉이 어떻게 보면 유치하다 느낄 수 있겠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윤리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해당 과목에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는 데 최적인 책일 듯하고 반대로 철학을 정말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독자들한텐 살짝 맛만 보여주고 토론을 마무리하는 걸 못내 아쉬워할 듯하다. 다루는 인물, 논리가 하도 많다보니 이 정도면 분량 배분을 상당히 잘했다고는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철학자들이 서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끝나는' 식이라... 토론이란 게 반드시 결론을 내리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므로 - 여담이지만 철학은 저서보단 대화를 통해 후세에 전달된 경우가 많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철학은 곧 대화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중도를 지향한 저자에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이런 부분이 불만인 독자도 분명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이 갖는 최대의 순기능은 몇몇 철학자들에 관심을 가지게 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철학에 관심이 많다곤 했지만 실제로 철학서까지 읽어본 적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니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책들에 관심이 가게 됐다. 저자가 철학자들의 핵심을 잘 정리한 덕분이다. 공감해줄지 모르겠는데 일본인은 뭔갈 쉽게 설명하는 것에 이골이 난 것 같다. 뭐, 아무리 이골이 났어도 철학은 쉽지 않은지 후반부에 다다랐을 땐 읽는 나도 그렇고 쓰는 저자도 텐션이 떨어지는 감이 있었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처음엔 '살인이나 전쟁은 절대악인가?'하는 질문부터 소년 범죄나 글로벌리즘을 다루는 등 제법 피부에 와 닿는 논제가 제시됐는데 후엔 '성선설 VS 성악설'처럼 케케묵고 교과서적인 논쟁을 비롯해 자유나 진리, 별세계, 경험과 이성 등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형이상학적 얘기들을 다루고 있어 역시 철학은 철학이라는 감상이 나왔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듯 이런 음미하는 사고 자체는 좋은데 다소 선문답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선문답의 가치를 부정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기왕 처음에 피부에 와 닿는 논제로 시작했으니 그 컨셉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래도 조금은 가볍게 가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대담한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책인 만큼 더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p.s 각 철학가의 일러스트를 담당한 이와모토 다쓰로 씨의 솜씨가 제법이었다. 인물의 특징이 아주 잘 살아서 누가 새로 등장할 때마다 감탄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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