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듀본의 기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9.4







 이사카 코타로의 데뷔작은 작가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몽환적이고 심오하며 나쁘게 말하면 시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배경은 여느 때처럼 센다이가 아닌 100년 넘게 외세와 단절된 가상의 섬 오기시마이고 말하는 허수아비가 등장하며 그 허수아비는 이방인 이토에게 '당신은 이 섬에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가져올 사람'이라고 예언한다. 이윽고 범죄가 발생하고 머잖아 범인이 밝혀지는데 사건의 트릭이나 동기가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결이 아주 다르다. 이 작품의 배경과 소재에 매료되지 않으면 '긴 분량에 걸쳐 고작 요런 이야기나 하려 했냐'고 누군가는 따지려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스케일은 미묘하지만 분위기가 중요한 작품이라 이사카 코타로의 팬을 제외한 독자한테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 읽으니까 이 작품이 전보다 더 심오하게 느껴졌다. 데뷔작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이 한 작품에 녹아든 내용이 방대해서 축약하여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크게는 편의점 강도 용의자인 이토가 경찰로부터 도망치다 오기시마에 오게 된 것, 그 이토가 그 섬에는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가져올 사람이란 예언이 나온 것, 사건이 벌어지고 그 범인의 동기나 사건이 벌어질 당위성이 도통 짐작도 안 간다는 것, 한편 섬의 바깥에선 이토의 동급생이자 절대악이라 할 수 있을 경찰 시로야마가 이토를 잡으려고 하는 것, 허수아비의 조언에 따라 끝마무리가 다소 아쉬웠던 전 여자친구 시즈카에게 이토가 편지를 보내는 것 등으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겠다. 쑥쑥 넘어가는 가독성과 별개로 난해하기론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시키는데 데뷔작을 읽으니 이 작가가 왜 포스트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불렸는지 새삼 이해가 됐다.


 이후에 작가가 펼쳐보일 이사카 월드의 근간으로 삼을 만한 작품으로 팬이라면 무조건 읽어야 할 작품인데 특유의 유머 감각과 골때리는 캐릭터, 무시할 수 없는 정교한 퍼즐식 구성, 그리고 특유의 철학과 음악에 대한 예찬 등은 이사카 코타로가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구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데뷔작임에도 능수능란하게 그려낸다. 유일하게 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절대악 시로야마의 캐릭터성인데, 이후의 작품에도 잔인한 캐릭터나 상황이 많이 그려지지만 시로야마는 유독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 개인적으로 사이코패스 캐릭터라고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돈데 비중은 적지만 등장할 때마다 하는 짓거리가 가관이라 그의 악행이 선명하게 각인됐다. 특히 이만한 악인이 퇴장은 또 정말 어이없게 이뤄져서 정말이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캐릭터다. 여담이지만 이 장면만 생각하면 난 꼭 쿠엔틴 타란티노가 생각난다.

 워낙에 얘깃거리가 많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두 캐릭터, 말하는 허수아비 유고와 무차별 심판자인 사쿠라에 대해서는 꼭 언급해야겠다. 일단 유고부터. 유고는 외세와 100년 넘게 단절된 오기시마에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캐릭터다. 허수아비지만 말을 하고 미래를 볼 줄 알지만 예언을 하진 않고 자신의 몸이 박힌 지면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지만 섬 바깥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모순된 존재가 바로 유고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섬 주민에게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지만 한편으로 그 어떤 사건이나 재앙도 미연에 방지하는 법이 없어 원한을 사고 있기도 하다. 이래저래 탄생의 배경이며 존재 이유를 상식적으론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인데 이 작품에선 마치 추리소설의 명탐정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최근 작품을 보면 이사카 코타로가 추리소설을 상정하고 쓴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지만 데뷔작만 보면 영락없이 자기 스타일대로 추리소설 한 권을 쓴 느낌이 역력한 게 흥미로웠다. 단, 정통적인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먼데 굳이 분류하자면 메타 추리소설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이 작가가 은유한 추리소설의 철학적인 결함이나 명탐정의 역할에 대한 고뇌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고뇌에 필적할 정도이며 신선하기로는 작가의 여느 작품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의 메인 사건은 시시할지언정 사유나 주제의식은 탄탄하기 그지없었는데 혹자는 추리소설을 쓰려다 실패한 작품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 5년 전에 처음 이 책을 읽은 내가 그때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작가의 고뇌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걸 보고 그렇게까지 매도하고 싶진 않았다. 반대로 이런 식으로 추리소설에 접근할 수 있구나 싶어 5년 전보다 더 신선하게 읽혔다. 아마 추리소설 독자라면 주제의식 면에선 높이 평가할 사람이 많으리라 본다.

 이번엔 사쿠라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시로야마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캐릭터성을 가진 인물로 옛날에 읽은 어느 후기에서 누군가가 그 둘은 동전의 앙면과도 같다고 분석했던데 난 그 분석에 대해선 좀 아리송하다. 유명 영화의 악역으로 비유하자면 시로야마는 혼돈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점에서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닮았고 사쿠라는 복불복의 재난이라 평가받는 점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인만의 기준으로, 나름의 개똥 철학과 독선적인 행동력으로 섬의 시끄러운 인간을 총살시키는 사쿠라는 섬의 주민들은 물론이고 경찰도 인정해주는 공인된 심판자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공인된 심판자치고 자아도취하는 구석이 없다는 건데 그렇다고 이 인간에게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살인의 기준 자체가 터무니없는 데다가 그의 살인이 과연 정당한 심판이었는지 의심을 하는 섬 주민이 아무도 없어 이 정도면 무정부 사회와 뭐가 다른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데 작가는 이 의문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덧붙이지 않는다.


 섬에서 사쿠라의 존재가 용인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유고가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매커니즘보다 더 논란이 될 만한 지점일 것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사쿠라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지금도 헷갈리는데, 추측하자면 시로야마처럼 경찰을 가장한 절대악이 있듯 - 여기서 섬뜩한 건 시로야마는 자기 악행을 보다 교묘하고 성공적으로 달성해나가기 위해 경찰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 우리가 정의의 심판이라 여기는 것도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결함투성이일지도 모른다고 암시하기 위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비판적인 복종에 대한 비판이 작가의 다른 작품, 특히 <마왕>에서 많이 다뤄진 걸 생각하면 그리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닌 듯하다. 외세와 단절돼 폐쇄성이 적잖은 오기시마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아주 확신하긴 좀 그렇지만 페쇄성 짙은 사회일수록 무비판적인 복종은 쉽게 이뤄지는 법인데, 작가가 어디까지 의도했는지 몰라도 무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오기시마의 폐쇄성을 강조하고자 사쿠라란 캐릭터가 탄생하진 않았는지 감히 추측을 던져본다.

 저번에 읽었을 땐 시시한 작품이라 여겼는데 다시 읽으니 느낌이 또 달랐다. 다시 읽으니까 작품의 내용이 더 심오하게 다가온 것도 놀라웠고 저번 포스팅과는 인상 깊은 구절이 다른 것도 신기하고 이번 포스팅이 훨씬 긴 것도 묘하게 보람이 느껴진다. 아마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어쩌면 두 번도 더 읽을지 모르겠는데 몇 년 뒤가 될지 몰라도 그때마다 인상이 다를 것 같아 미래의 그때가 사뭇 기대된다.




 p.s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408841419

 이건 5년 전 포스팅.

 

 

 

 

 

 

인상 깊은 구절

 

 

 

인생이란 건, 백화점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나 마찬가지다. 너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 있어도 너의 위치는 어느 틈엔가 저 앞으로 나가 있지. 그 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흘러가는 거야. 도착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어. 제멋대로 그곳을 향해 간다 이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몰라. 자기가 있는 곳만큼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고들 생각해. - 53p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는 것, 이것은 인간만이 갖는 몹쓸 속성일지도 모른다. - 70p


생각해 봐, 그렇잖아. 저 다나카의 바람이 뭔지 알아? 만일 신이 나타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쳐. 저 사람이 뭘 빌 것 같아? 난 알아. 저 다나카라는 남자는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걷게 해 주세요.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똑바로 걸어 보고 싶어요.'라고 할 거야, 틀림없어.

(중략) 그 기적이 나에겐 이미 이루어졌잖아. (중략) 나는 평범하게 걷고 있잖아. 저 남자가 신께 비는 소원이 나에게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그러니 나는 훨씬 낫다 이거지. 안 그래? - 115p


답장은 올까?

올 미래도, 오지 않을 미래도 있죠. 가능성은 양쪽 다 있단 말입니다. - 143p


이 명탐정이라는 인물은 뭘 위해 있는지 알아? 우리를 위해서야. 바로 이야기 밖에 있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시시해. - 159~160p


당신은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무언지 아는가?

음악과의 교감? - 2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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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수에 탐닉하다 - 푸드헌터 이기중의 소멘.우동.소바.라멘 로드
이기중 지음 / 따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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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일본 여행에 있어 먹는 걸, 특히 면요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꽤 흥미로웠던 책이다. 이 책은 소멘을 시작으로 우동, 소바, 라멘으로 이어지는 본격 일본 면요리 기행기인데 다루는 요리 중에 소바의 비중이 단연 높았고 그 다음으로 근소하게 라멘의 분량이 높았다. 이렇게 책으로 보니 일본에선 면요리가 우리나라 국밥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요리구나 싶었다. 각 면요리별로 대표적인 맛집을 탐방한 작가의 집념 역시 대단했다. 거의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몇 번에 걸쳐 방문을 했으니 돈도 적잖이 들었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그나마 일본이라 부담이 없었던 것이려나.

 책의 전반적인 흡입력은 TV 방송보다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주제로 한 기행기란 측면에서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가 연상됐는데 전문성이나 시각 자료나 뭐로 보나 그 프로그램보다 한 수 아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리의 유래를 설명하는 부분이나 다양한 종류의 면을 다룬 것, 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높이 살 만했다. 개인적으로 사진과 텍스트의 비중이 적절하게 어울린 건 좋았지만 텍스트 자체는 다소 평이하고 반복적인 감이 있는 등 작가의 문장력 자체는 특기할 구석은 없던 건 아쉬웠다. 물론 다양한 일본 면요리에 대한 소개라는 목적에는 충실한 글이므로 애초에 이 이상의 문장력을 요구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겠다. 글의 목적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불만이랄 게 나올 수가 없는 책이었다.


 의외로 내가 이 책에 소개된 가게를 3곳을 가봤다는 게 신기했다. 하코다테의 시오라멘 아지사이, 후쿠오카의 이치란과 잇푸도인데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가 아닌 책에서 접하니까 괜히 반갑고 그랬다. 책에 소개된 다른 가게 중 관심이 가는 가게가 많았다. 시마바라의 소멘 가게나 현 전체에 우동집이 널린 가가와 현, 나고야의 기시멘, 모리오카의 냉면, 교토의 청어 소바, 삿포로의 미소라멘, 아카유의 카라미소라멘, 토야마의 블랙라멘, 와카야마의 돈코츠쇼유라멘, 히로시마의 츠케멘, 규슈의 구루메와 구마모토 라멘 등 - 많기도 하다. - 가보고 싶은 가게들이 많이 소개됐다. 위에서 문장력이 평이하다 했지만 식욕을 자극하기엔 충분히 맛깔나기에 새벽에 읽는 게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시국도 시국이고 한일 관계도 너무 나빠져서 예전처럼 자주 여행을 못 갈 거 같지만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책에 소개된 가게들을 찾아가보자고 다짐했다. 오히려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건지 책에 소개된 가게들이 유독 그림의 떡처럼 느껴졌는데... 꼭 우동이나 라멘을 먹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 시국과 양국의 갈등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국내의 맛집을 찾아다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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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ㅣ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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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다시 읽으면 인상이 많이 달라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다시 읽어도 인상이 거의 그대로인 작품도 있다. 비록 흔치 않지만 재밌게 읽었던 책이 10년 뒤에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을 텐데, <남쪽으로 튀어!>가 딱 그랬다. 지금 읽어도 역시 오쿠다 히데오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대학 강의 때 교수님이 이 작품을 두고 대중 소설치곤 괜찮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난 그 말에 썩 동의하지 못했다. 일단 그 교수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를 너무 잘 안 나머지 둘을 모르는 스타일이라 본인이 전공한 순수 문학만이 진리라고 여기셔서 대중 소설이라면 무조건 평가절하하고 보는 위인이다. 나는 <남쪽으로 튀어!>가 대중 소설'치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장르를 초월하여 그냥 잘 쓴 작품이니까. 700쪽이 넘는 분량이 쉬지 않고 넘어가는 가독성, 만화처럼 선명한 캐릭터, 폭주하는 스토리와 그 속에 담긴 리얼리티와 사전 조사 등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가 빼곡하고 수준 높게 구현됐다. 개중 가장 인상적인 요소로 단연 지로의 아버지인 이치로의 캐릭터성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내가 10년 전에 읽을 때와 지금 읽을 때 달리 느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치로에 대한 첫인상이다.


 이치로가 내 아버지라면 어떨까 하고 가정해보면 참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치로는 평범함과는 아예 담을 쌓은 인물인데 특히 첫 등장이 가관이었다. 연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국민이 되길 거부하겠다고 말하다니, 이보다 강렬한 등장은 없을 것이다. 옛 과격파 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치로는 사고방식이 시위로 날뛰던 그 당시에 고대로 멈춰 있다. 한마디로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인물인데 어렸을 땐 이런 이치로가 그저 웃기기만 했다면 지금 읽으니 민폐도 이런 민폐도 없구나 싶어 눈살이 찌푸려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첫인상뿐이지 책을 완독하고 난 다음의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치로가 민폐긴 해도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에서나 그렇지 가정에선 가부장적이거나 폭군은 아니라서 - 초반엔 독재자가 아닌지 의심됐지만... - 점점 호감이 생겼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게 좋았다. 아들에게 꼭 자길 닮을 필요는 없다는 것. 이 말에서 이 책의 정체성이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 공산주의 찬양이 아님을 제대로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정체성은 무리를 이루면 파벌도 만드는 인간 사회에서 벗어나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안빈낙도가 어떤 형태인지 - 오히려 공산주의보단 무정부주의에 가까우려나. - 질문하는 것에 가깝다. 이치로가 지로에게 자길 닮을 필요는 없어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정진하되 남을 속여먹진 말라는 말이 이치로의 사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냈다고 본다.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은 주인공이 초등학생임에도 사상처럼 무겁고 위험할 수도 있는 소재가 하나도 불편하지 않게 다뤄졌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답게 주인공은 얘기가 어려워진다 싶으면 솔직하게 그런 얘긴 자기한테 해봤자 모른다고 독자들을 대변한다. 확실히 사상이 중요한 소재긴 하지만 그를 통한 계몽이 목표가 아닌 작품인 만큼 사상의 내용보단 사상을 갖고 행동하는 인물의 모습에 초점을 둔다. 덕분에 작품은 굉장히 유쾌하게 전개되는데 마냥 가벼운 것이 아닌 뼈가 있는 유쾌함이라 무게감 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단순히 지금의 체제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삶이 아닌 패배할 것을 알고도 발버둥치는 삶에 호감이 느껴진다는 걸 작가가 제대로 어필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은 사상을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는 걸 초등학생의 눈높이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대단히 막힘없이 풀어낸 것,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10년이 지나서 읽어도 작가 최고의 작품이란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었는데 다시 10년 뒤에도 이 생각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에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작가를 디스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만큼 잘 만든 작품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만약 나온다면 독자 입장에서 너무 좋은 일이겠지만 정말 쉽지 않을 듯하다.



 p.s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둔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다. 김윤석이 이치로 역을 맡았는데 - 배역의 이름은 최해갑 - 배우의 이름을 들었을 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선 아버지가 주인공으로서 극이 전개된다. 내 기억으론 그래서 영화가 소설의 매력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고 보는데 이 부분이 다시 봐도 인상이 그대로일지 궁금하다. 엄연히 아이의 성장담이었던 원작이 영화에선 어른의 기행으로 재해석된 감이 있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아무래도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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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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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이 착하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진심으로 착하지 않다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반문해보면 위험한 사람은 생각보다 꽤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런 내용이 나온다. 오랜 시간동안 인권에 대해 공부해온 저자가 '결정 장애'란 말을 가볍게 말하고 다닌 것에 대해 누군가 지적한 일화가 나오는데 당시 그 지적을 받았던 저자는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왜 나쁘며 나쁘다면 어떤 이유에서 나쁜 것이냐며 다소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고 말한다.

 책에선 우리가 평소에 차별이라고도 여기지 않았던 지점이 등장한다. 코미디언이 흑인 분장으로 웃기는 걸 시작으로 예맨 난민을 수용하길 가장 반대한 사람이 여성이란 것까지 가볍게 접할 수 있던 주제부터 깊은 주제까지 저자는 일관된 논리로 다뤄냈다. 대다수의 페미니즘 도서가 그렇듯 이 책도 모든 말이 구구절절 옳게 들리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저자의 사고 방식이 좋았다.


 아까 언급한 프롤로그로 예를 들어보겠다. 난 '결정 장애'라는 표현의 논란엔 미묘하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애'라는 단어가 단순히 장애 유무를 논하는 팩트를 넘어, 어떤 형태로든 욕설의 뉘앙스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정도로 모욕적인 표현이라면 '장애'라는 단어는 완전히 비속어/욕설로 분류됐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장애인이고 장애인이 아닌 사람은 비장애인이라고 칭하자는 사회의 흐름을 생각하면 오히려 '장애'는 예전에 비해 욕설의 느낌이 순화된 듯하다고 여겨졌다.

 그렇다고 '결정 장애'가 아예 문제가 없는 표현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애매하다. 그래서 내가 평소 말하듯 섣불리 트집이라고 단정을 짓지 못하는 이유다. 더 순화시키거나 대체할 수 있을 만한 표현이 있다면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장애'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부정적 어감은 아무래도 부정하기 힘드니까.


 책에는 수많은 좋은 구절들과 몇 번을 읽어도 아리송한 구절들이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이 한 가지 요소 때문에 책의 모든 내용이 좋게 와 닿았다. 어떤 논란을 마주했을 때, 혹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이나 생각하곤 했던 논리에 혹시 결함이 있을지 생각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이 책의 저자는 책을 쓰는 내내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전제가 뒤로 갈수록 설명이 부족했던 - '1부에서 그렇게 얘기했으니 이 다음부터 어련히 알아서 이해하겠지' 하고 쓰는 느낌을 받았다. - 2부와 3부의 아쉬움을 메꿔줬다. 물론 압도적인 흡입력의 1부의 공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사실상 1부만 보면 근래 읽은 페미니즘 도서 중 가장 뛰어났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개인적으로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란 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게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이 말을 특권을 가진 당사자가 호의는 베풀 용의가 있어도 당연하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엔 심리적 저항감이 심하다고 분석했는데 이게 꽤 그럴싸했다. 똑같은 말을 입장만 바꿔서 살펴보면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는 걸 확실하게 인식시켰다고 할 수 있겠는데, 여기서 이 '입장만 바꿔서'라는 말도 심층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말이지 않나 싶다. 역지사지만 잘 실천하면 세상 모든 갈등은 대번에 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저자는 그렇게 일차원적인 해석을 내놓지 않는다.


 서로 반대되는 한두 가지의 입장만 바꿔선 택도 없으리란 걸 저자는 예맨 난민 이슈를 통해 효과적으로 설명했다. 성별이 됐든 인종이 됐든 성소수자가 됐든, 사회적 약자는 다른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공감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예맨 난민을 수용하지 말자고 반대하는 사람 중에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았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저자는 우리가 단지 하나의 정체성만 갖고 있는 게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여성이라도 날 때부터 한국 국적인 사람은 난민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성소수자여도 백인이라면 흑인보다 사회적 차별에 덜 시달릴 수 있다는 식으로. 이처럼 거의 완벽하게 사회적 강자에 속하는 사람이나 반대로 완벽하게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사람은 극히 적듯 우리 각자에겐 복합적인 요소가 얽히고 설켜 있어 그토록 타인의 문제에 공감대를 갖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항상 논란이 불거지고 사람들끼리 반목하는 것에 대해 나는 늘 한쪽만을 탓하며 얼른 이 갈등의 골이 사라지길 바라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꼭 이 책 덕분이라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완벽이란 개념은 존재하기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하면서 페미니즘이 항상 논쟁거리인 게 지극히 당연하고 논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만약 페미니스트가 하는 말은 모두 옳다고 신봉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 또 그만큼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논쟁이 생기는 상황과 그 논쟁에 의해 충분한 토론과 사유를 거쳐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어느 순간부터 페미니즘 책은 은근히 하는 말이 거기서 거기라고 여겼으면서도 계속 찾아 읽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나는 충분히 페미니스트라며 페미니즘 책을 그만 읽는다면 그 순간부터 그 어떤 논쟁도 날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랬다간 타성에 젖길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겠지.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다. - 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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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6
타카노 이치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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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3






 스포일러 있음


 최근에 시간 여행물을 접하면서 내가 시간 여행이란 설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시간 여행자가 과거로 가면서 발생하는 모순, 타임 패러독스 때문인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아예 타임 패러독스를 배제한 평행 우주를 다뤄서 그나마 좀 괜찮게 읽은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의 친구를 살리기 위해 과거의 자신한테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과거 시점에서 친구가 살아봤자 그건 평행 우주에서의 일이므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 과거의 친구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이 작품은 그럼에도 과거로 편지를 보낼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어떻게 과거가 바뀔지도 모르는데 편지 같은 건 보내지 않을 것인지 묻고 있다.

 이 작품은 평행 우주 속 친구라도 구해겠다고 대답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친구를 구하기 위한 다른 친구들의 우정이 정말 눈물겨웠는데 순정 만화 특유의 감성으로 넘치는 듯 부족함이 없게 진심 어린 감정을 잘 전달해냈다. 개중에는 원래는 죽었어야 할 친구가 살게 되면서 자기 운명이 크게 바뀌게 될 - 아무리 그래도 슬하에 자식도 있는데 저렇게 헌신적이라니... 스와가 실로 성인으로 보였다. - 친구도 있어서 이들의 우정이 더욱 돋보였다. 과연 이렇게까지 타인을 살리고자 할 의지를 갖출 수 있을까? 작품에선 친구들의 편지가 어떻게 과거로 갔는지 그 과학적 매커니즘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대신 친구들의 마음이 진심이었기에 그들의 의지가 결실을 맺었음을 암시하며 진실된 마음이란 무엇인지 어필하고 있다.


 처음엔 이 작품의 답답한 감정선이 싫었다. 주인공 나호는 너무 자신감이 없고 카케루는 어떻게 손대기 힘들 정도로 유리 멘탈이다. 스와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의 캐릭터가 개성적이고 매력적이라서 중화가 됐지, 나호와 카케루만으론 이 작품을 완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결국엔 제3자에 불과해서 그렇게 느낀 건지 독자로선 둘의 마음이 엇갈리는 장면이나 자책하는 장면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또 개인 취향이지만 순정 만화 특유의 오글거리는 묘사도 거슬릴 때가 많아 짧지만 이래저래 완독에 있어 난관이 끊이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래도 다르게 생각하면 그토록 답답한 전개가 무척 현실적인 연출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편지가 왔고 상황에 따른 조언이 적혔던들 그 말을 그대로 따르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미래의 나 자신한테 온 편지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과연 이 편지대로 움직였다 해도 좋은 결과가 나타날지 확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매우 답답하게도 왜 그 조언을 따라야 하는지 미래의 나호는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아 과거의 나호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드는데, 이거야 전개를 위한 시적 허용이라 하더라도 과거의 나호가 너무 행동력이 떨어져 답답한 마음이 가실 길이 없었다. 도대체 답답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는데;; 한편으론 아까도 말했듯 그렇게 답답한 게 현실적이었던 것 같아 지금에 와선 납득이 갔다. 솔직히 그래서 이야기가 더 재밌게 전개되기도 했고.


 대체로 시간 여행물에선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이상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전제를 까는 것 같다. 그 말 그대로 작품에서 나호의 원래부터 소심했던 성격 때문에 기껏 미래의 자신이 보낸 편지를 수포로 만드는 선택이 질리지도 않고 반복된다. 이 장면 때문에 정말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이상 미래를 바꾸기가 정말 힘들단 게 피부로 와 닿았다. 카케루도 마찬가지다. 얘는 아무리 주변에서 노력해도 어떻게든 자괴감에 빠진다. 어떻게 보면 자살 충동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 대하기가 쉽지 않음을 한숨 나오도록 잘 그렸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보다 나는 타인이든 미래의 나 자신이든 간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문제를 극복하기가,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미래를 바꾸기가 어려움을 그린 것이라 봤다.

 난 원래 내 문제를 남에게 잘 말하지 않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도 자기만의 문제로 벅찬데 거기서 내가 내 문제를 들어달라고 하는 게 찡찡대는 것 같아서 가급적 입을 닫는 편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내 문제에 대해 누군가가 공감해주거나 몇 마디 해줬을 때의 효과를 깨닫고 나선 내가 그 전엔 정말 내 안에 갇혀 살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또 그와 반대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너무나 진실된 마음으로 잘 전달하는 작품이라 느껴졌다.


 <오렌지>는 애니메이션, 소설, 실사 영화로도 제작됐는데 그만큼 인기를 얻은 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 번째로 현재가 바뀌지 않더라도 과거라도 바꾸겠다는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것, 두 번째는 자살한 친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며 도움을 받는 관계임을 잘 전달한 것이겠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더군다나 진실 되게 그리기가 난해한 것도 있는데 모두 성공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한 작가가 대단했다. 원래 순정 만화에 호감이 있지 않았고 솔직히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도, 심지어 지금도 호감이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이렇게 순정 만화를 불호하는 나 같은 독자도 매료시킨 걸 보면 확실히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작품이라고 여겨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보고 그런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매권 말미에 다른 단편 만화도 수록됐는데 그 작품은 뭘 어떻게 말하기가 곤혹스러울 정도로 산만하고 정신없어서 그냥 <오렌지>가 엄청 뛰어난 작품이란 결론이 나오게 됐다. 그 작품만 수록되지 않았어도 다른 순전 만화도 찾아봤을 텐데... 일단은 그냥 <오렌지>를 완독한 것으로 만족하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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