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집 1~7 세트 - 전7권 - 개정증보판 ㅣ 장애공감 1318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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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0






 장애를 불행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장애는 개성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작품을 읽으니 그 말이 그렇게 경솔하게 들릴 수 없다. 글쎄, 하나의 장애가 있어도 다수의 비장애인들 틈에서 적응하며 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데, 장애가 두 개 이상이라면 삶 자체가 지옥이나 다름없게 된다. 하물며 작중 배경은 1960년대 일본이다. 지금 우리나라보다 보수적이며 극심한 경쟁 사회인 그 당시 일본에서 장애인은 말 그대로 불구자不具者 취급을 당했다. 사고로 장애를 얻든 선천적으로 장애인이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건 사회의 냉대와 자기 혐오다. 오히려 장애의 성질이나 극복 여부도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질 만큼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비관적이란 게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시대였다.

 이 작품에선 아이들의 장애를 단순히 동정의 대상이나 극복해야 할 장애물처럼 단순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또 작가가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인터뷰를 해서 그런지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았는데 - 여담이지만 작가가 인물들을 비슷비슷하게 그리는 면이 없잖아서 구분하기가 좀 어려웠다... -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가정 형편, 사연들이 다양하면서도 기구해서 만화임에도 빠르게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가 밝히듯 만화의 소재로는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장애에 대한 작가의 시선도 가감없어서 더욱 불편하게 읽혔다. 장애에 관한 일말의 환상까지 모조리 덜어냈기 때문인데 들리지 않는 건 기본이고 자폐증이 있거나 운신도 버거운 아이들이 용변 문제를 시작으로 살아감에 있어 수많은 문제에 직면한다는 걸 이 작가처럼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린 사람도 드물 것이다.


 새삼 부모도 부모지만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 부모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기 자식을 장애인이란 이유로 버릴 수 없어 약간 반강제적으로 아이들을 보듬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과 생판 남인 교육자들은 전혀 다른 처지지 않은가. 부모나 선생님이나 역할의 우열을 가릴 순 없겠지만 단순히 직업적 차원을 넘어 아이들에게 헌신을 다하는 모습에서 경외감을 느꼈다. 내가 '경외감'이라 표현한 이유는 과연 내가 당사자였어도 이들처럼 용변 문제부터 시작해 도토리의 집을 만들기 위해 운동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들의 선한 마음씨와 행동력이 자체가 두렵다기 보다 이런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는 점에서 왠지 모르게 두려웠던 것이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중 한 명이 소원으로 자기 아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것이란 대사는 개인적으로 정말 충격적이었다. 보통의 부모 입장에선 자식이 자기보다 먼저 죽는 모습을 꿈에서라도 보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아닌 이상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살필 리가 없는 사회에서 부모 없이 단 하루라도 살아갈 자식이 걱정스러워 저런 소원을 가진다는 건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부모로서 자식 사랑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사람이 많지만 아무리 부모 자식 관계가 피로 이어졌어도 결국엔 남이란 걸 생각한다면 저런 소원은 사랑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감정이라 봐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도토리의 집을 설립하게 된 계기나 끝내 성공한 것은 무척 소름 돋는 일이었다. 부모가 죽거나 선생님이 더는 곁을 봐줄 수 없을 때가 닥쳐도 장애인들끼리 연대해 서로름 보듬고 경제 활동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 것은 단순히 장애인 교육 시스템 확립 그 이상의 성과로 여겨졌다. 혹자는 장애인이 장애인들끼리만 뭉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하던데 그런 사람들이 청각장애인이 수화도 익히지 못하게 했다는 걸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교육을 모두 수료했다고 무턱대고 비장애인들 사회에 장애인을 보내는 건 무책임한 처사일 수도 있음에 생각이 미쳤다면 장애인만의 시설이나 문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짙은 주제의식도 물론이지만 에피소드마다 감정을 북받치게 만드는 서사도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티끌 없는 시선을 어른들이 깨닫는 과정에서 오는 감동이 실로 묵직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영악하다는 이야길 많이 접해서 도리어 아이들의 순수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인내심 있게 아이들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준 작중 어른들과 실제 사연의 주인공들이 없었으면 못 느꼈을 감동이었다. 그렇다고 내 안의 냉소적인 감정이 어디 간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을 읽으니 반성을 좀 했다. 장애인을 비롯해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이나 했을까?


 재앙이나 다름없을 상황에서 인간애를 믿은 주인공들, 그리고 작가 같은 사람 덕분에 오늘날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장애와 관련한 복지 면에선 선진국이 된 것 같다. 과거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막장이었지만 장애를 그리는 만화가 많이 나옴으로써 가능한 변화가 아니었을까.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스쳐가던 식으로 묘사된 일본의 모습을 생각하면 근거없는 추측은 아닐 듯하다. 그런 점에서 만화의 역할은 역시 중요해 보인다. 이 작품의 경우엔 작풍이나 주제의식이 워낙 강해서 진입 장벽도 높은 편이었고 가끔씩 부담스러운 내용도 있었지만 그래도 만화가 가질 수 있는 갖은 순기능을 제법 잘 활용한 수작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도 경외감 넘치는 작품이었다.

약자를 배제해야만 성립하는 교육이라면 그건 참교육이 아닙니다. - 3권 3화 ‘노나카 선생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족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이 사회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존중받으며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7권 10화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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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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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한 사람의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이 책은 위안이 되는 한편으로 각오를 다지게 만들었다.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꿈이나 다름없는 등단이란 시스템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이 책은 기자 출신 소설가인 장강명 씨의 적절한 필치로 생각보다 객관적이고 다채로운 내용들로 구성됐다. 등단 시스템과 문학상의 존재 이유, 맹점,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평가와 대안 등을 꼼꼼한 조사와 작가 자신만의 철학으로 잘 분석했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이 시스템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는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신인 장편문학상 심사위원이 되면서 겪었던 일이 꽤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개인적 취향 때문에 역사에 남을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에 책임감을 갖고 임했다는 묘사와 어떤 작품은 걸렀고 어떤 작품을 꼽았는지, 자신이 봤을 때 대상감이라 여긴 작품을 위해 다른 심사위원들과 설전을 벌였다는 에피소드는 눈여겨볼 만했다. 내가 나중에 심사위원이 됐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도 그럴 게 아직 등단도 못한 소설가 지망생이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헛웃음 나올 일이잖은가. - 나로서는 추측의 영역에 불과했던 심사위원들의 고충이라든가 작품을 출품할 때 실질적으로 대비해야 할 요소들을 짐작케 해준다는 점에서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등단과 신인상 제도는 독서 시장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서 출판사에는 합리적이고 소설가 지망생에겐 매력적인 제도라 생각했다. 당장 이런 제도 없이 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편집자를 찾거나 아무런 타이틀 없이 출판되는 것은 솔직히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 구관이 명관이라고 출판사 입장에선 기성 작가에게 투자를 하는 게 낫지 모든 불특정 다수의 신인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겠고 독자 입장에서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신인의 작품까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을 느끼지 힘들 것이다. 어지간한 애독자라면 모를까, 모든 독자가 내가 쓴 책에 약속이라도 했듯 관심을 보이길 바랐다간 꿈도 야무지다는 말이나 들을 것이다.

 작가도 비슷한 이유로 이 제도를 옹호하지만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제도를 맹신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조선 시대의 과거 제도부터 시작해 대기업 공채 시험까지 우리나라에서의 모든 시험은 비슷한 맥락과 동일한 맹점이 있다며 책의 서두를 장식한 작가는 질문의 화살을 신인 장편문학상들에 돌린다. 처음엔 소설가 지망생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지만 시간이 흘러 등단자와 비등단자로 이분하는 권력과 계급의 상징이 된 이 신인 장편문학상 제도에 대한 작가의 분석은 날카로웠다. 상을 받았느냐, 등단을 어디서 했느냐로 파벌과 차별이 생긴다거나, 혹은 기발하고 역동적이지만 기존 문단이나 심사위원의 문학관과는 위배돼 빛을 보지 못한 작가와 작품들을 두고 작가는 이 제도가 우리가 처한 상황에 적합한 듯하나 완벽하지 못하단 걸 책에서 내내 강조하고 있다.


 장강명 작가를 작가로서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믿을 만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가령 자기가 심사위원일 때의 일화를 언급하면서 심사위원들도 각자 취향에 눈이 가려져 간과하는 대작도 있음을 암시하며 작가 스스로도 그 점을 가장 우려했다는 게 특히 신뢰가 갔다. 서두에서도 그 어떤 작가보다 신인상의 특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인 본인이 등단 제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부분이 나온다. 자기 고민과 생각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는 작가는 신뢰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바로 직전에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접해서 그런지 이런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작가의 태도가 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르포의 특성상 뭔가 했던 말 반복하는 느낌이 없잖았고 작가 스스로도 공인했듯 어딘지 따로 놀면서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그 모든 요소들이 모여 글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선 등단이라는 좁지만 영광스런 구멍을 무시할 수 없고 등단한 작가끼리 연대하거나 더욱 본인들이 통과한 제도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작가는 동정의 시선을 아끼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소설가 지망생들의 절박한 마음을 당연하다는 듯 이용해 기존 제도에 대안 같은 건 필요없다는 의견이나 권위주의에 젖어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에 대해선 의문을 감추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의 내용도 으레 그렇듯 대안 없는 비판에 불과할 수 있다. 작가도 제도의 장점을 언급하며 지망생들에게 도전을 멈추지 말 것을 당부해 그렇게 느낄 독자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가장 특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기성 작가가 이만큼 기존 제도에 의문을 제기한 책은 결코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의 존재야말로,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선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것밖에 못했느냐고 할 게 아니라 이거라도 정말 대단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문학상 수상이 간절한 소설가 지망생이다. 문학상이란 타이틀이 주는 화려함과 안전함은 무시할 수 없다. 당연히 수상할 때까지 도전할 생각인데, 이 책을 읽으니 설령 시간이 더디 걸려도, 혹은 다른 길로 우회해도 꼭 내가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고 약속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나 자신한테 떳떳하려면 그만큼 거짓없이 열심히 써야 할 테니 그만큼 책임이 동반되는 약속이겠다. 참으로 듣기 좋은 동시에 잔인한 내용의 책이 아닐 수 없었다.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지금 한국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 - 4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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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ㅣ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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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이사카 코타로는 내가 꽤나 신뢰하는 작가긴 하지만, 이 작품의 두툼한 분량 앞에선 조금은 두려운 심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도입부는 한눈에 이해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어 몰입하기에 허들이 높았고 4개의 시선이 교차되는 전개 방식도 처음엔 복잡하고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사카 코타로가 천재란 건 잘 알지만 과연 650페이지가 넘는 분량 안에서, 여백 없이 빽빽하게 채워놓은 분량 동안 이야기를 치밀하고 지루하지 않게 전개시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심지어 작중 무대는 도쿄에서 모리오카까지 달리는 신칸센 안으로 한정되기까지 했다. 쓰는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이 작품의 설정은 확실히 도전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사카 코타로가 설마 이 정도로 천재일 줄은 몰랐다. 이 작품과 같은 시리즈에 속하는 <악스>나 <그래스호퍼>를 비롯해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뛰어나지 않나 싶었다. 뒤로 갈수록 촘촘해지고 기상천외하게 흘러가는 전개가 지루하지 않았는데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달리는 신칸센이 멈추지 않듯 나도 페이지를 넘기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이 작가가 캐릭터를 잘 만드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 작품에선 유독 빛이 났는데, 독특하고 귀여운 코드네임을 가진 킬러들도 매력적이었지만 희대의 악역 '왕자'의 존재감이 단연 압권이었다. 이렇게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를 희망해본 악역은 처음인 것 같은데, 고백하자면 내가 이 작품에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바로 왕자의 최후에 있다.


 최근에 작가의 데뷔작을 읽고 보니 이사카 코타로가 악인을 그리는 것에 상당히 이골이 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흔히 유머러스한 작풍의 소유자라는 독자들의 인식이 무색하게 작가는 잔인무도한 캐릭터를 참 많이도 그렸는데 나는 그중에서 <오듀본의 기도>의 시로야마와 <사신의 7일>의 혼조가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마리아비틀>의 왕자가 그 둘의 더 잔혹하고 재수없게 느껴졌다. 이 세 명 모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아주 계획적으로 악행을 해나간다는 점이 닮았는데 차이가 있다면 시로야마와 혼조는 아주 잔인하고 통쾌한 최후가 직접적으로 그려진 반면 왕자는 제3자가 '무척 잔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라고 암시하며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후를 반드시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왕자가 내면에서부터 몰락하는 장면을 꼭 보고 싶었던 만큼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후반부에서 왕자의 심리 묘사가 급속도로 적어진 점도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이 어린 악마가 자신의 악마성과 천재성과 행운을 과신하다가 어떻게 절망에 빠지는지 꼭 보고 싶었는데, 왕자가 너무 교활한 인물이라 좀처럼 그럴 기미가 없어 보여 읽는 내내 애가 탔다. 겉보기엔 유복한 집안의 도련님 같은 이점을 살려 어른들을 물먹이고 상황을 자기 입맛대로 통제하는 왕자의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그래서 후반부에 이 얄미운 새X가 완전히 의외의 인물에게 의외의 방식으로 한방 먹는 장면은 쾌감이 넘쳐났는데 당시에 왕자가 어떤 패배감을 느꼈을지 묘사가 충분하지 않은 감이 있는 게 지금도 불만이다.


 내가 허구의 인물에게 이렇게 적대감을 가졌다니, 지금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만큼 이 작품의 시나리오나 캐릭터 묘사가 수준급이었다는 반증일 테다. 얽히고설키는 흐름 속에서 자기 개성을 발산하는 캐릭터, 작품 내내 수다가 끊이질 않는 점이나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무수한 변수 등은 영락없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들을 연상시켰다. 타란티노가 이 책을 침흘리면서 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았는데 악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비정한 전개, 악인의 최후가 특히 닮았다.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치자면 원작 없는 오리지널 각본만 고집하는 타란티노라지만 자신의 10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을 <마리아비틀>이 원작인 영화로 장식해도 좋을 것 같은데... 너무 지나친 욕심이려나?

 작가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품에 여러 요소가 결합돼 한 권의 인문학 도서 못지않은 깊이를 담아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알코올 중독을 시작으로 르완다 학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꼬마 기관차 토마스, 제왕학,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라는 질문까지 작가는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요소들은 인물들의 개성을 더해줌과 동시에 하나의 작품을 위해 이사카 코타로가 작가로서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줬다. 천재 작가지만 동시에 공부하고 노력하는 작가란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는데 자신의 천재성에 도취된 왕자와 상반된다는 점에서 더욱 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알 것도 같았다. 여담이지만 왕자처럼 타인의 우위에 서려는 인간처럼 자기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역겨운 것이겠지.


 사람들의 무비판적인 모습에서 악이 태동하기 쉽다,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것이란 주제의식이 작가의 작품들에 크건 작건 녹아있는 것 같다. 그 어떤 작품보다 악에 대한 탐구가 압도적이었던 이번 작품은 치밀한 서사만큼이나 위의 주제의식 역시 돋보였다. 혹자는 너무 긴 분량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뻔하단 것을 문제삼던데,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라서 잠시 나는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생각해봤다. 단순히 취향을 저격한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뛰어난 작품인 것인지 살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 모두가 입을 모으는 <골든 슬럼버>보다 더 재밌게 읽었지만 <마리아비틀>이 팬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많이 회자되지 않은 걸 보고 개인적인 취향이 적잖이 작용했는지 의심해봤다. 만약 이 작품을 이사카 코타로 월드에 입문하기에 적합한 작품이냐 묻는다면 분량 때문에라도 일단 다른 작품을 추천할 것 같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없거나 특유의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과연 나처럼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 싶던 것이다.


 내 결론은 이렇다. 다른 건 몰라도 <마리아비틀>은 객관적으로 이사카 코타로가 쓴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방대한 분량과 스케일, 그리고 오락성과 작품성을 균형 있게 잡으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독자마다 인상은 제각각이지만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이보다 천재적인 작품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진지하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팬이 된지 10년이 넘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압도적으로 추천해보고 싶었던 작품은 처음 읽어본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술 냄새뿐이라면 그나마 낫지. 인간으로서 역한 냄새를 풍기면 끝장이야. - 159p
 

기록이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상대를 속여서 기록을 깨뜨리게 만든 녀석이 입에 올릴 만한 말은 아니군. 그렇게까지 심금을 못 울리는 대사도 드물어. - 191p


세상에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옳은지 어떤지는 알 수 없어. 그러니까 '이것은 올바른 거다'라고 믿게 만드는 사람이 제일 센 거지. - 295p


'텔레비전이나 신문은 거짓말만 흘려보낸다!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바보다'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어쩌면 '텔레비전이나 신문은 거짓말만 흘려보낸다!'는 정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 바보일지 몰라. - 360p


죽음은 절망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종점은 아니다. - 458p


내면의 충실함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상상력이 단련되면 타인에게 공감하는 힘이 강해진다. 다시 말해 그만큼 나약해진다. - 526p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은 어른들이 품고 있는 꿈의 표현일 뿐이야. 꿈이라고, 꿈. 산타클로스가 있기를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지. - 532~533p


그래서 난 너무 이상해. 어째서 너희는 으레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느냐'는 질문만 던지는 걸까? 사실은 '왜 사람을 때리면 안 되는가', '왜 남의 집에서 멋대로 자면 안 되는가', '왜 학교에서 모닥불을 피우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들도 해야 하잖아. 왜 모욕을 주면 안 되나, 하는 질문도 있겠지. 살인보다 훨씬 더 이유를 알 수 없는 규칙들이 수없이 널려 있어. 그래서 난 늘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그저 단순히 '사람을 죽인다'는 과격한 테마를 끄집어내서 어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려는 것뿐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부터 들지. - 5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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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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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7.5







 내가 이 책을 군대에서 처음 접했을 때는 제법 인상 깊게 읽은 듯하다. 당시에 이용하던 수첩을 다시 펴보니 이 책에 9.5라는 점수를 매겼던데 지금으로선 그 숫자가 납득이 안 간다. 가볍게 읽기엔 나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주제의식이 뻔하고 스케일이나 가독성도 미묘하고 무엇보다 작중에서 청각장애인이나 그들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방식도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듯한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데 그간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에서 접하지 못했던 단순한 인물 묘사라 꽤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을 읽기 직전에 <나는 귀머거리다>를 읽어서 장애인에 대한 상투적인 묘사에 유독 반감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웹툰을 접한 김에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소설이 읽고 싶어져서 이 책을 집어든 거라... 차마 작품을 접하는 순서를 탓할 순 없겠다.

 연애소설이란 측면에서 보면 나름 괜찮은 작품이긴 했다. 청각장애인인 여자와 비장애인인 주인공이 필담을 통해 연애를 하는 장면 - 여담이지만 청각장애인은 연애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듯한데 바로 이런 독특한 방식의 연애 스타일이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은 연애 세포를 자극하고 주인공이 청각장애인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거나 주변 사람에게 선뜻 자기 여자친구의 장애를 밝히길 거리끼는 장면은 연애소설다운 방식으로 잘 풀어냈다.


 중간중간 다큐멘터리 제작에 종사하는 주인공의 일 이야기는 흐름을 끊는 감은 있었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생각하면 필요한 장면이긴 했다. 단, 주인공의 일 이야기가 가독성을 무지하게 갉아먹은 걸 보면 그렇게까지 분량을 잡아먹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분량 자체는 그리 길지 않을 텐데, 어쩌면 주인공의 연애사에 비한다면 낯선 나라의 테러 이야기 같은 건 기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임을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고도의 연출이었던 건지 생각해봤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말해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작가를 '멕이는' 고도의 돌려깎기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오히려 역자의 후기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역자의 섬세하고 성실한 해석은 어휘 수준도 높고 유난을 떠는 구석도 없어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다 읽은 직후에 역자나 평론가의 해석을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처럼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은 작품의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역자의 해석엔 전부 동의하는 한편으로 이렇게도 평이한 작품에 이렇게나 훌륭한 후기를 쓸 수 있다니... 독자보다 원작자가 더 감사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너무 잔인한 평가이려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모든 작품이 다 마음에 들 순 없는 법이고 역자를 비롯해 다른 사람과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므로 역자의 해석에 공감이 가는 이상 여기서 작품에 대해 뭘 더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처음에 말했듯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건 내가 5년 전엔 이 소설에 9.5라는 점수를 매겼다는 것이다. 이게 단지 요번에 이 작품을 읽기 직전에 <나는 귀머거리다>를 읽은 탓이라고 여기기엔 차이가 너무 심하잖은가. 5년 사이에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한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인상이 급변하기가 쉽지 않은데... 얼떨떨하면서 어떤 의미에선 무섭기까지 했다.



 p.s 원제인 '조용한 폭탄'을 '사랑을 말해줘'라고 바꾼 건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닭살 돋긴 해도 바뀐 제목이 핵심 주제를 더 잘 전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조용한 폭탄'은 한 번에 와 닿지도 않거니와 어딘지 오글거리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게 직설적인 사람이 없으니까 불쾌한 기분이 들 때가 더 많은 거야. -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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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머거리다 - 안 들리는 젊은 처자가 솔직하게 쓰고 그린
라일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10








 나는 이 작품이 몇 권이 더 이어서 출판될 줄 알고 완결까지 다 읽고서 포스팅 쓰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출간 년도를 보니 2권, 3권이 출간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 작품을 그린 라일라 작가의 뜻을 생각해보면 더 화제를 몰고 더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할 작품인데 그렇지 못한 거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가 언제 청각장애인 작가가 직접 그린 청각장애인 웹툰을 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작품인데.

 제목 그대로 <나는 귀머거리다>는 저자가 자신이 선천적 청각장애인으로서 살아온 삶을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때론 진지하게 풀어낸 만화다. 장애인을 그린 작품 중에 이보다 더 장애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작품이 있을까 싶은데, 좋은 말인 한편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는 '장애는 곧 개성이다' 라는 말을 아주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본다. 장애는 불행이자 치료의 대상이므로 동정하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자 공존의 대상이기에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보자는 취지를 작가는 쉽고 깊이 있게 풀어냈다. 귀여운 그림체와 상반되게 다소 적나라하게 들릴 수 있는 작품의 제목이 이를 반영한다. 귀머거리는 그 자체로는 욕이 아님에도 우리는 왜 욕처럼 들리는가? 작품을 읽다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떠오른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장애 자체가 아닌 장애에 대한 인식이라고.


 책의 내용은 작가가 베스트 도전 시절에 그린 에피소드들이 수록됐고 실제 네이버 정식 연재 웹툰 버전과는 연출이나 그림, 그리고 분량 면에서 차이가 있다. 네이버 연재 당시엔 가장 화제성이 높은 시기다 보니까 그림체도 깔끔하고 - 그렇다고 책의 그림체가 지저분하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란 뜻이다. - 매 에피소드마다 마지막 부분에 유머러스한 장면을 넣는 등 단일 에피소드다운 완결성이 강조됐다. 이 차이는 한번에 쭉 읽을 수 있는 책과 달리 연재 웹툰은 매 에피소드를 주마다 - 정확히는 주에 두 번씩. - 끊어서 볼 수밖에 없으므로 스토리물이든 옴니버스물이든 임팩트 있는 마무리가 요구되는 것에서 비롯된 차이겠다.

 책도 좋지만 그래도 연재 버전이 더 좋았는데 그 이유를 100화가 넘어가는 시점부터 작품의 깊이가 더해진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즈음부턴 작가가 이 작품을 왜 그렸고 앞으로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 주변 친구들과 혹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가볍고 흥미 위주로 다루기엔 민감한 소재다 보니 작가 본인이 청각장애인이라도 고민이 많았던 듯하다. 흥미롭게도 그런 고민을 작품 내내 풀어내니 독자 입장에선 깊이감이 있다고 여겨졌는데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 부분이 다뤄지지 않은 이 책의 짧은 분량이 아쉽게 느껴졌다. 아직도 연재 분량이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는 게 아까운데 그나마 연재분이 유료로 바뀌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쉽게도 이 책도 이젠 절판됐는데 혹시라도 작품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네이버 완결 웹툰으로 들어가서 이 작품을 접해보길 바란다. 유료로 바뀌기 전에...


 청각장애인을 비롯해 장애인 당사자들이나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꼽는 작품이라고 하면 이 작품의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일단 진입 장벽이 무척 낮으니 부담없이 읽으라고 해도 선뜻 받아들일 사람이 적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이 작품이 완결된 2017년을 기준으로도 그렇게 진일보했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인데...... 꼭 작품의 소재나 주제의식 상관없이 그냥 재밌는 웹툰을 찾는다고 해도 난 이 작품을 꼽을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내가 봤을 때 와난의 <어서오세요, 305호에!>처럼 소수자 얘기인 것과 무관하게 일단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단 점에서 네이버 웹툰이 가장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작가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서 상황 자체가 재밌게 풀렸던 일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나 특정 사람 때문에 우울했던 일화, 청각장애인이기에 장애에 대해 사람들과 사회의 인식이 열악하단 걸 느낀 것 등 이 작품에는 우리가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청각장애인의 세계가 디테일하게 그려졌다. 이 세계를 접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신선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청각장애인에 대해 오해했거나 간과했던 부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난 이런 요소들이 이야기를 감상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그 기준에 가장 부합했던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기회가 닿으면 이 작품을 주변에 많이 추천하곤 했는데 이렇게 포스팅으로 쓰려고 하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워낙에 작품의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오히려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포스팅을 써야 했던 이유가 있다. 이미 이 책도 절판이 된 마당에 이 책을 홍보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싶지만, 이 작가에게 나처럼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꼭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었으면 진작에 이 책의 포스팅을 써야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작품이 완결된지 3년이 넘었는데 작품 활동이 뜸한 걸 보고 이렇게 묻힐 작가가 아닌데... 하고 혼자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 최근에 <토요일의 세계>라는 창비의 청소년 성장 만화 단편선에 이 작가의 작품이 수록된 걸 발견했다. 단편인 게 약간 아쉽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던 나로서 참 반갑기 그지없던 소식이었다. 그 책을 조만간 읽을 생각인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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