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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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한 사람의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이 책은 위안이 되는 한편으로 각오를 다지게 만들었다.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꿈이나 다름없는 등단이란 시스템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이 책은 기자 출신 소설가인 장강명 씨의 적절한 필치로 생각보다 객관적이고 다채로운 내용들로 구성됐다. 등단 시스템과 문학상의 존재 이유, 맹점,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평가와 대안 등을 꼼꼼한 조사와 작가 자신만의 철학으로 잘 분석했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이 시스템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는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신인 장편문학상 심사위원이 되면서 겪었던 일이 꽤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개인적 취향 때문에 역사에 남을 작품이 빛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에 책임감을 갖고 임했다는 묘사와 어떤 작품은 걸렀고 어떤 작품을 꼽았는지, 자신이 봤을 때 대상감이라 여긴 작품을 위해 다른 심사위원들과 설전을 벌였다는 에피소드는 눈여겨볼 만했다. 내가 나중에 심사위원이 됐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도 그럴 게 아직 등단도 못한 소설가 지망생이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헛웃음 나올 일이잖은가. - 나로서는 추측의 영역에 불과했던 심사위원들의 고충이라든가 작품을 출품할 때 실질적으로 대비해야 할 요소들을 짐작케 해준다는 점에서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등단과 신인상 제도는 독서 시장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서 출판사에는 합리적이고 소설가 지망생에겐 매력적인 제도라 생각했다. 당장 이런 제도 없이 출판사에 원고를 들고 편집자를 찾거나 아무런 타이틀 없이 출판되는 것은 솔직히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니까. 구관이 명관이라고 출판사 입장에선 기성 작가에게 투자를 하는 게 낫지 모든 불특정 다수의 신인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겠고 독자 입장에서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신인의 작품까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을 느끼지 힘들 것이다. 어지간한 애독자라면 모를까, 모든 독자가 내가 쓴 책에 약속이라도 했듯 관심을 보이길 바랐다간 꿈도 야무지다는 말이나 들을 것이다.

 작가도 비슷한 이유로 이 제도를 옹호하지만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제도를 맹신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조선 시대의 과거 제도부터 시작해 대기업 공채 시험까지 우리나라에서의 모든 시험은 비슷한 맥락과 동일한 맹점이 있다며 책의 서두를 장식한 작가는 질문의 화살을 신인 장편문학상들에 돌린다. 처음엔 소설가 지망생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지만 시간이 흘러 등단자와 비등단자로 이분하는 권력과 계급의 상징이 된 이 신인 장편문학상 제도에 대한 작가의 분석은 날카로웠다. 상을 받았느냐, 등단을 어디서 했느냐로 파벌과 차별이 생긴다거나, 혹은 기발하고 역동적이지만 기존 문단이나 심사위원의 문학관과는 위배돼 빛을 보지 못한 작가와 작품들을 두고 작가는 이 제도가 우리가 처한 상황에 적합한 듯하나 완벽하지 못하단 걸 책에서 내내 강조하고 있다.


 장강명 작가를 작가로서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믿을 만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가령 자기가 심사위원일 때의 일화를 언급하면서 심사위원들도 각자 취향에 눈이 가려져 간과하는 대작도 있음을 암시하며 작가 스스로도 그 점을 가장 우려했다는 게 특히 신뢰가 갔다. 서두에서도 그 어떤 작가보다 신인상의 특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인 본인이 등단 제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부분이 나온다. 자기 고민과 생각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는 작가는 신뢰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바로 직전에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접해서 그런지 이런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작가의 태도가 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르포의 특성상 뭔가 했던 말 반복하는 느낌이 없잖았고 작가 스스로도 공인했듯 어딘지 따로 놀면서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그 모든 요소들이 모여 글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선 등단이라는 좁지만 영광스런 구멍을 무시할 수 없고 등단한 작가끼리 연대하거나 더욱 본인들이 통과한 제도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작가는 동정의 시선을 아끼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소설가 지망생들의 절박한 마음을 당연하다는 듯 이용해 기존 제도에 대안 같은 건 필요없다는 의견이나 권위주의에 젖어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에 대해선 의문을 감추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의 내용도 으레 그렇듯 대안 없는 비판에 불과할 수 있다. 작가도 제도의 장점을 언급하며 지망생들에게 도전을 멈추지 말 것을 당부해 그렇게 느낄 독자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가장 특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기성 작가가 이만큼 기존 제도에 의문을 제기한 책은 결코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의 존재야말로,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선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것밖에 못했느냐고 할 게 아니라 이거라도 정말 대단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문학상 수상이 간절한 소설가 지망생이다. 문학상이란 타이틀이 주는 화려함과 안전함은 무시할 수 없다. 당연히 수상할 때까지 도전할 생각인데, 이 책을 읽으니 설령 시간이 더디 걸려도, 혹은 다른 길로 우회해도 꼭 내가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고 약속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나 자신한테 떳떳하려면 그만큼 거짓없이 열심히 써야 할 테니 그만큼 책임이 동반되는 약속이겠다. 참으로 듣기 좋은 동시에 잔인한 내용의 책이 아닐 수 없었다.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지금 한국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 - 4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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