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머거리다 - 안 들리는 젊은 처자가 솔직하게 쓰고 그린
라일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10








 나는 이 작품이 몇 권이 더 이어서 출판될 줄 알고 완결까지 다 읽고서 포스팅 쓰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출간 년도를 보니 2권, 3권이 출간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 작품을 그린 라일라 작가의 뜻을 생각해보면 더 화제를 몰고 더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할 작품인데 그렇지 못한 거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가 언제 청각장애인 작가가 직접 그린 청각장애인 웹툰을 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 이건 정말 흔치 않은 작품인데.

 제목 그대로 <나는 귀머거리다>는 저자가 자신이 선천적 청각장애인으로서 살아온 삶을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때론 진지하게 풀어낸 만화다. 장애인을 그린 작품 중에 이보다 더 장애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작품이 있을까 싶은데, 좋은 말인 한편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는 '장애는 곧 개성이다' 라는 말을 아주 효과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본다. 장애는 불행이자 치료의 대상이므로 동정하며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자 공존의 대상이기에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보자는 취지를 작가는 쉽고 깊이 있게 풀어냈다. 귀여운 그림체와 상반되게 다소 적나라하게 들릴 수 있는 작품의 제목이 이를 반영한다. 귀머거리는 그 자체로는 욕이 아님에도 우리는 왜 욕처럼 들리는가? 작품을 읽다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렇게 떠오른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장애 자체가 아닌 장애에 대한 인식이라고.


 책의 내용은 작가가 베스트 도전 시절에 그린 에피소드들이 수록됐고 실제 네이버 정식 연재 웹툰 버전과는 연출이나 그림, 그리고 분량 면에서 차이가 있다. 네이버 연재 당시엔 가장 화제성이 높은 시기다 보니까 그림체도 깔끔하고 - 그렇다고 책의 그림체가 지저분하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란 뜻이다. - 매 에피소드마다 마지막 부분에 유머러스한 장면을 넣는 등 단일 에피소드다운 완결성이 강조됐다. 이 차이는 한번에 쭉 읽을 수 있는 책과 달리 연재 웹툰은 매 에피소드를 주마다 - 정확히는 주에 두 번씩. - 끊어서 볼 수밖에 없으므로 스토리물이든 옴니버스물이든 임팩트 있는 마무리가 요구되는 것에서 비롯된 차이겠다.

 책도 좋지만 그래도 연재 버전이 더 좋았는데 그 이유를 100화가 넘어가는 시점부터 작품의 깊이가 더해진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즈음부턴 작가가 이 작품을 왜 그렸고 앞으로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지 주변 친구들과 혹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너무 가볍고 흥미 위주로 다루기엔 민감한 소재다 보니 작가 본인이 청각장애인이라도 고민이 많았던 듯하다. 흥미롭게도 그런 고민을 작품 내내 풀어내니 독자 입장에선 깊이감이 있다고 여겨졌는데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 부분이 다뤄지지 않은 이 책의 짧은 분량이 아쉽게 느껴졌다. 아직도 연재 분량이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는 게 아까운데 그나마 연재분이 유료로 바뀌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쉽게도 이 책도 이젠 절판됐는데 혹시라도 작품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네이버 완결 웹툰으로 들어가서 이 작품을 접해보길 바란다. 유료로 바뀌기 전에...


 청각장애인을 비롯해 장애인 당사자들이나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꼽는 작품이라고 하면 이 작품의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일단 진입 장벽이 무척 낮으니 부담없이 읽으라고 해도 선뜻 받아들일 사람이 적을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이 작품이 완결된 2017년을 기준으로도 그렇게 진일보했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인데...... 꼭 작품의 소재나 주제의식 상관없이 그냥 재밌는 웹툰을 찾는다고 해도 난 이 작품을 꼽을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내가 봤을 때 와난의 <어서오세요, 305호에!>처럼 소수자 얘기인 것과 무관하게 일단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단 점에서 네이버 웹툰이 가장 자랑스러워할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작가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서 상황 자체가 재밌게 풀렸던 일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교나 특정 사람 때문에 우울했던 일화, 청각장애인이기에 장애에 대해 사람들과 사회의 인식이 열악하단 걸 느낀 것 등 이 작품에는 우리가 평소에 접해보지 못했던 청각장애인의 세계가 디테일하게 그려졌다. 이 세계를 접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신선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청각장애인에 대해 오해했거나 간과했던 부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난 이런 요소들이 이야기를 감상함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그 기준에 가장 부합했던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기회가 닿으면 이 작품을 주변에 많이 추천하곤 했는데 이렇게 포스팅으로 쓰려고 하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워낙에 작품의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오히려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포스팅을 써야 했던 이유가 있다. 이미 이 책도 절판이 된 마당에 이 책을 홍보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싶지만, 이 작가에게 나처럼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꼭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었으면 진작에 이 책의 포스팅을 써야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작품이 완결된지 3년이 넘었는데 작품 활동이 뜸한 걸 보고 이렇게 묻힐 작가가 아닌데... 하고 혼자 전전긍긍했는데, 다행히 최근에 <토요일의 세계>라는 창비의 청소년 성장 만화 단편선에 이 작가의 작품이 수록된 걸 발견했다. 단편인 게 약간 아쉽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던 나로서 참 반갑기 그지없던 소식이었다. 그 책을 조만간 읽을 생각인데,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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