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맛 여행
나가라 료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8.0







 누가 이 책을 읽는 나를 보고 아직도 유럽 여행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느냐고 하던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향후 5년 안엔 유럽을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아 꼭 그 미련을 버려야 할까 싶다. 뭐, 앞으로의 여행은 이전의 여행과는 달리 절차가 복잡해지겠지만 내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떠나겠다면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돈과 시간이 있어도 여행을 못 가는 처지가 되니 새삼 여행이 나한테 있어 정말 중요했음을 깨닫고 있다. 내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책임감 있게 다녀와야지. 암, 그렇고 말고.

 <유럽 맛 여행>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유럽 나라들의 음식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만화가겸 일러스트레이터인 일본인 저자가 남편과 함께 파리, 암스테르담, 북유럽(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런던, 그리고 베를린에서 어떤 먹방을 즐겼는지 그려냈다. 프랑스하면 역시 빵이고 네덜란드는 감자튀김, 영국은 피쉬 앤 칩스 등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요리들은 물론이고 음식이 별로 유명하지 않은 영국과 독일의 여러 길거리 음식처럼 현지에서밖에 경험할 수 없는 음식들도 제법 폭넓게 소개해준다.


 개인적으로 북유럽 파트를 기대했는데 너무 짤막한 일러스트로 대체해서 김샜다. 안 그래도 작가의 그림체가 가독성이 떨어지고 흑백이라 음식 그림치고 식욕을 자극하지 못하는 게 불만이었는데 내가 가장 관심 있던 부분을 통일성 없게 일러스트로만 그려서 불만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나마 그 일러스트는 컬러라서 기분이 환기됐는데, 이럴 거면 다른 나라도 전부 컬러로 그리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아쉬움이 더욱 배가됐다. 통일성이 없는 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흠이었다.

 소개하는 음식 종류나 맛 표현은 기대 이상이었는데 특히 작가가 실제로 거주하는 베를린은 음식뿐 아니라 도시까지 애정을 담아 소개해줘서 차라리 베를린만 만화로 그리는 게 어떨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작가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편집부에서 베를린만 그리는 건 아무래도 화제성이 떨어지니까;; 다른 유럽 나라까지 포함한 미식 탐방기로 확장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서 베를린은 다른 기회가 있다면 그때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싶다고 후기에서 밝혔다.


 찾아보니까 베를린을 무대로 한 작가의 다른 만화가 일본에서 출간되긴 했던데 그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될는지 잘 모르겠다. 소개되면 좋으련만. 내가 봤을 때 편집자의 조언은 독이 된 듯하다. 차라리 베를린에 집중했으면 보다 밀도 높은 만화가 탄생됐을 것 같다. 뭐, 나중에라도 작가가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렸다니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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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8






 스포일러 100%


 제목만 봐선 그저 그런 일본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캐치 프레이즈는 '있을 수 없는 사랑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랑'이다.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이 작품을 통해 '서로 안심할 수 있는 상대인데도 불행한 첫 만남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궁극적인 사랑의 형태'를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범상치 않은 내용의 소설을 썼으리란 예상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비록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접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다. 처음 읽을 때나 다시 읽은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고, 개인적으로 <퍼레이드>, <요노스케 이야기>, <악인>을 뛰어넘은 요시다 슈이치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200쪽 조금 넘는 이 소설은 얼핏 보면 분량이 너무 짧게 설명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형태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여자를 집단 강간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던 여자와의 사랑이 상식적으론 결코 와 닿지 않으니까 말이다.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렇게 소설의 내용을 옮기고 있자니 소설의 설정이 실로 엽기적이다. 작가가 이 사랑을 그릴 때 독자에게 설득시키려는 것이 아닌 독자에게 공감을 유도하고 있으니 난처하기 그지없다. 최근에 <가위남>을 소개할 때도 비슷한 고충이 따랐는데, 작품에 따라선 스포일러 없이 그 묘미를 남들에게 전달하기가 정말 힘들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스포일러 100%의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그래야 그나마 감상다운 감상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조차도 두 남녀 주인공 슌스케와 가오리의 사랑의 형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닐까 하고 가장 가능성 있는 해석을 제시할 뿐, 가오리가 배신했다가(=복수에 성공했다가) 그 태도를 철회한 이유와 슌스케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거나 누명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내가 이 작품을 9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땐 '이상하긴 해도 이만하면 설득력 있게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은 지금은 인물들의 관계가 뭘 어떻게 포장하기가 버거운 만큼 자꾸 말을 아끼게 된다. 이런 형태의 사랑이 있을 수도 있다고 넘기기엔 성폭력 피해자의 아픔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고, 반대로 이 작품을 두고 성폭력 가해자를 그럴싸하게 미화한 폭력적인 스토리라 매도하기엔 결코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유일하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다른 작품을 쓸 때도 그랬듯 요시다 슈이치가 이번에도 어느 한쪽으로 예단하기 어려운 지점을 잘 건드렸다는 것뿐이다.

 참 골때리는 설정이지만 이 작품을 두고 미화라느니 폭력적이라느니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현실성 있는 통찰이 크게 작용했을 터다. 성폭력 가해자임에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연줄을 통해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는 등 - 암묵적으로 '법을 위반했지만 한편으론 남자로선 이해할 만한 실수'라고 동정까지 받는다... - 사회적 대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던 반면,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은 전학을 간 뒤나 기껏 구한 직장에서나 남편과 친정한테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파멸로 치닫는다는 걸 씁쓸할 정도로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가령 TV에서 노출 개그를 하고 있는 남자 코미디언의 모습에 웃자 친부라는 작자가 '남자 알몸을 보고 왜 웃느냐'며 딸을 나무라는 모습부터 나중에 집단 강간 피해자란 사실을 빌미로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고소하려고 하자 친정 쪽에서 결혼 직전까지 자기 과거를 숨긴 대가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까지 제3자 입장에서도 피가 솟구치는 장면이 짧은 분량 안에 강렬하게 그려졌다. 난 이런 장면을 상상하고 묘사할 줄 아는 작가가 성폭력 가해자를 미화한다고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 작품의 내용도 민감하긴 해도 내겐 마찬가지인 관점에서 폭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훗날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처음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감정이 살아났지만, 당사자들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감정이기에 애써 거릴 두거나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인 가나코는 복수하려는 척이라도 해야만 했던 전개도 마냥 엽기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단지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를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시선, 세상 사람들의 고정 관념에 얽매였다는 게 내가 슌스케와 가나코의 모습에서 받은 인상이다. 상대방을 향한 둘의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 만큼 사회적인 시선과 무관해야 마땅하지만, 한 번 사건으로 기록에 남은 두 사람의 관계엔 타인의 잣대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게 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에서 가장 씁쓸한 부분이었다. 공소시효를 들먹일 생각은 없지만, 과거의 사건은 과거인 거고 기이하긴 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하거나 이미 맺는 중인 두 남녀의 모습에 이렇게 저렇게 토를 달 수밖에 없다니... 이것이야말로 사생활 침해의 진정한 폐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작가의 발군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집약된 궁극의 연애소설이다. 가끔 사랑의 시작과 끝을 성의없이 묘사하는 무늬만 연애소설인 작품도 있는 걸 생각하면 이 작품은 어느 등장인물의 심리 하나 허투루 묘사하지 않은 밀도 높은 연애소설이었다. 비단 슌스케나 가오리만이 아니라 둘의 과거를 추적하는 역할을 맡은 와타나베도 - 이 캐릭터 덕에 이 작품이 추리소설인 것 같은 느낌도 풍겨졌다.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독자와 똑같은 제3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당혹스러움을 대변함과 동시에 섣불리 두 사람의 관계를 단정짓지 않는 신중함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등 이래저래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만약 와타나베가 전형적인 기레기였다면 이 작품의 색깔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 자극적이기만 하고 여운 따윈 쓰레기통에나 던진 작품에 그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처음 한 번은 몰라도 이렇게 두 번 읽지도 않았을 거고 세 번, 네 번 읽을 생각도 안 들었을 것이다. 연애소설을 잘 찾아 읽지 않지만, 아마 이 작품이 나한테 있어 오래도록 손에 꼽히는 연애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굳이 연애소설에 한정하지 않아도 어떤 카테고리에든 손에 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면 과찬인 걸까? 판단은 앞으로 여러 좋은 작품을 읽으면서 내려야겠다.


 이 작품을 9년 전에 읽을 당시엔 영화가 나오지 않았는데, 2013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둔 영화 <안녕 계곡>이 - 참고로 '안녕 계곡'이 원제다. - 개봉됐다고 한다. 감독은 생소하지만 캐스팅된 배우를 보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던데, 괜한 기대는 금물이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과연 원작의 묘미를 잘 살렸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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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지음, 정경진 옮김 / 스핑크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9.8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당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서평을 훑어보다가 얼떨결에 이 작품의 스포일러까지 읽고 말았던 것이다. 그냥 지나치고 읽기엔 너무 눈길을 끄는 내용이었던 만큼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넘길 즈음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웃기게도 난 반전의 내용을 알면서도 속고 말았다. 작가가 워낙에 그럴싸하게 숨긴 나머지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읽은 서평이 사실은 헛것이 아니었는지 의심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스포일러를 당한 게 무색하게 나는 이 작품을 즐기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참...

 처음 읽을 땐 반전의 놀라움에 감탄했다면 요번에 다시 읽을 때는 이런 반전을 구사한 작가의 주제의식에 눈길이 더 많이 갔다. 예전엔 놀라운 반전이라고만 여겼는데 최근에 작가의 다른 작품 <거울 속은 일요일>을 의식하며 읽으니 이 작가가 굉장히 노력하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반전의 놀라움으로 승부하려는 작가가 아니라 그 반전을 통해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라는 게 내가 <가위남>을 다시 읽으면서 받은 인상이다.


 동서고금의 추리소설가들은 제각각의 작품 세계를 갖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런 뉘앙스의 말을 꼭 작품 속에 넣는 것 같다. '선입견 따위, 쓰레기통에나 던지라지.' 그 말 그대로다. 추리소설에선 가장 의외의 사람이 범인이고 가장 알리바이가 확실한 사람이 범인이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클리셰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선입견을 파고들거나 이용하는 건 추리소설에선 절대불변의 규칙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가위남>만큼 '선입견'이란 개념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파고드는 작품도 없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가급적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고 소개해보고 싶다. 어떤 종류의 반전을 구사하는지도 함구하겠다. 내 경우엔 반전의 핵심까지 알고도 속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아예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게다가 다른 이유도 있다. <가위남>은 선입견을 파고드는 아주 좋은 작품이긴 하나 그놈의 선입견 때문에 소개하는 입장에선 곤란한 작품이기도 하다. 가령 주인공이 연쇄살인범이고, 연쇄살인범이 세 번째 희생자를 물색하는 도입부나, 또 주인공이 연쇄살인범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봐 그 심상 세계가 묘하게 매력적인 것 등 이 작품의 기본 설정 자체를 좋게 표현했다간 속된 말로 미친 놈 소리 듣기 딱 좋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난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잔인한 작품이 취향도 아니며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여러모로 내가 인상 깊게 읽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주인공의 심상 세계가 매력적이지만 딱히 공감도 안 가고 경찰의 시점과 병행되는 전개도 생각보다 눈길을 끌지 못했다. 작가가 캐릭터 만드는 솜씨가 형편없었으면 이 작품은 답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작중에서 그럴 듯하게 설명되지만, 사건 전개에 있어 우연이 너무 남발되는 것도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개중엔 너무 허술한 부분도 있어 역시 데뷔작은 어쩔 수 없구나 싶었다. 후반 100페이지를 읽기 전까지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엔 반전이 전부인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 반전이 없었으면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앞의 서사들은 통째로 되살아날 일 없이 그대로 지지부진한 채로 묻혔을 테니까. 다시 읽으니 그 점이 더욱 극명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반전을 빼면 시체라고.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반전 없이는 애초에 구상되지도 않았을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쓰던 도중에 급하게 떠올린 반전일 가능성은 절대 없다. 단순히 복선과 치밀한 구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강조된 선입견의 위험성은 모두 반전의 놀라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가위남>은 선입견 따위, 쓰레기통에나 던지라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작품이다. 선입견이 무가치할 뿐더러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작중 내내 강조하는데, 선입견을 가져선 안 된다는 걸 누군들 모를까 싶겠지만 정작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하려는 사람은 적다는 걸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선입견이 생긴 것엔 어느 정도 근거도 있고 필요하단 의견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대다수의 사람은 뭐가 선입견인지 일일이 따지며 살지도 않는다. 누군가 나서서 언급하지 않는 이상 선입견은 선입견으로 인식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을 쓴 슈노 마사유키는 그 '누군가'에 해당할 사람이다. 자신이 떠올린 반전을 위해, 그에 걸맞은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충격을 배가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공부한 슈노 마사유키는 이 작품으로 하여금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독자들 사이에서 반전하면 생각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에도 성공했다. 지금 읽어도 혁신적인 작품이고, 중요한 건 이 작가가 원 히트 원더에 속하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울 속은 일요일>을 읽었을 땐 <가위남>으로만 평가하기엔 아까운 작가라고 여겨졌다. 그가 지금은 고인이고 그의 다른 작품이 좀처럼 국내에 소개되지 않는 게 아까울 따름이다. 천재가 이렇게 잊혀져선 안 되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위남>이 영화로도 나왔다는 것인데,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심히 의심스러울 것이다. 영화로 구현되면 어떤 부분 때문에 작품의 묘미가 확 떨어질 텐데, 아니나 다를까 캐스팅 목록을 보니 아예 그 묘미를 포기한 것 같다. 영화는 영화대로 재밌을 것 같지만, 만약 둘 다 본다면 무조건 소설 먼저 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난 이미 소설부터 읽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반대로 접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왜, 산에서 곰을 만나면 죽은 척하라는 이야기가 있잖아. 옛날부터 그렇게 전해 내려왔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사람도 많다고 말이지. 그건 당연한 거야. 죽은 척했다가 실패하면 곰한테 잡아먹히는 거잖아? 나는 곰 앞에서 죽은 척했습니다만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사람은 없어. 당연히 성공 사례밖에 보고되지 않아. 자살도 마찬가지야. 자살에 성공한 인간은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말하지 못해. 이미 죽은 몸이니까. - 56p




그리고 오히려 나와 경사 나리와 마쓰모토 형사님의 직감이 일치했을 때가 위험한 거야. 모두가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믿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될 수 있어. 누명은 그렇게 해서 씌워지는 거야.

네가 해야 할 건 이런 직감을 몸에 익히는 게 아니야. 너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는 거야. - 1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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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와 통곡의 순례자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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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3







 이번 에피소드에선 코노하의 트라우마라 할 수 있을 미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회상에서만 단편적으로 등장해서 늘 궁금증을 유발했던 미우가 대관절 코노하에게 어떤 존재인지 살펴볼 수 있었는데 예상대로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어느 정도 멘탈을 다잡은 듯한 코노하였지만 미우가 자기의 평소 생활 반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바로 멘붕에 빠져버린다. 하긴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엔 코노하가 멘붕한 모습이 그리 못나게 보이진 않았다. 기껏 가까워진 여자친구 고토부키와 삽시간에 소원해진다거나 아쿠타가와나 다케다처럼 새로 사귄 친구들과 단숨에 거리가 생기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토오코 선배만큼은 코노하에게 있어 구원이었던 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미 이 시리즈의 결말까지 다 아는 입장에서 더 선명하게 느껴진 건데, 역시 코노하에겐 토오코 선배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토오코의 에피소드는 이 책을 기준으로 두 권은 더 지나야 본격적으로 다뤄질 테니 그 얘기는 그때 가서 하도록 하고, 이번 권의 주역인 미우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그래도 예전에 비해 코노하의 멘탈이 강해지긴 한 건지 생각보다 우여곡절이 뒤따르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야길 좀 질질 끄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건의 발단이나 발생 원인 파악, 해결 등이 비교적 쉬운 편이었으며 분량에 비해 복잡하지도 않았다.


 물론 미우가 일그러진 심성의 소유자긴 하지만 지난 에피소드에서 나온 인물들에 비하면 차라리 양호한 편이라 느껴졌다. 애초에 그렇게 난리를 칠 만한 일일까도 싶었지만 사람의 자괴감이나 배신감, 질투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당사자를 엇나가게 만드는 만큼 이전보다 훨씬 납득할 수 있는 사연이었다. 이 책 직전에 <종이의 집>을 봤더니 미우는 양반으로 느껴진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동상이몽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항상 가까이 지냈고 서로 친한 사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해도 의외로 한 쪽에서 상대방을 증오할 수도 있단 걸 미우의 사례에서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코노하에게 무슨 죄가 있겠냐만, 때론 상대방의 맹목적인 동경은 나 자신을 옥죄는 감옥이 될 수 있음을 작가는 너무나 잘 표현했다.

 최근에 읽은 슈노 마사유키의 <거울 속은 일요일>에서 비슷한 주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선 이 주제가 훨씬 광기 넘치게 묘사됐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광기야말로 작가의 주특기라 할 수 있겠는데 차이가 있다면 그전까진 그 광기를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유명 고전문학의 사례를 적극 인용한 반면 이번 에피소드에선 인용하는 고전문학의 존재감이 옅었다는 것이다. 특정 작품보단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 세계를 소재로 다룬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순수하게 본편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너무 모티브로 잡은 고전문학과 너무 밀접하단 느낌을 받은 것에 비하면 차라리 시리즈의 개성은 옅어졌어도 독립된 이야기를 강조한 요번 구성이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작가한텐 미안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번 작품에 한해선 본편 자체가 강렬해서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용했는가는 독자 입장에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부분이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또 한 번의 거대한 산을 넘은 느낌이 들던 찰나에 막판에 초대형 떡밥을 던지며 에피소드가 마무리됐다. 떡밥을 던지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번 떡밥은 꽤 심상치 않았다. 무려 두 권으로 분권된 기념비적인 마지막 에피소드는 상당히 묵직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전에 잠시 쉬어가기로 만날 예정인 외전도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던 기억이 나 벌써부터 완결까지 남은 세 권 모두 기대가 된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얼마 안 남았으니 빠르면 올해 안에 다 읽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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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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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최근 잇달아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접하다보니 이 작품에도 자연스레 손이 갔다. 일본 추리소설엔 정말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그것도 시리즈물론 단연 독보적이다.

 놀라운 건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지 작가는 특별히 청각장애인과 연관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단 작가 본인이 청인이며 가족이나 친구 중에 청각장애인이 없으며 그전까지 청각장애인과 관련한 시설에서 일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다만 아내가 청각장애인은 아니지만 경추 손상이라는 중증 장애인인 터라 장애에 관해 여러 사람들과 만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장애인이 등장하는 소설은 없을까' 하면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비록 청각장애인도 아니고 주변에 청각장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탄탄한 사전조사와 관련 업계 사람들의 도움 덕분인지 <데프 보이스>는 고증에 있어선 빈틈이 없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서 코다로 유명한 이길보라 감독이 추천해줄 정도면 그 수준이 짐작될 것이다.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줄임말로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들리는 아이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데프 보이스>에서 이 코다라는 키워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의 문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들린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쉽게 녹아들 수 없고, 그렇다고 반대로 청인들 사이라고 쉽게 녹아들 수 있는 것도 아닌 이 혼란스런 정체성은 주인공인 아라이의 성장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청각장애인 커뮤니티와 '해마의 집'이라는 농아시설을 둘러싼 두 번의 사건을 통해 아라이가 내적 성장을 하게 된다는 게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이 과정을 아라이와 비슷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이길보라 감독이 공감했다는 건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상술했듯 작가는 청각장애인도 코다도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이든 장애인이 아니든 공감이 가고 몰입하게 되는 내용을 썼다는 건 작가로서 소재에 대단히 집중하고 노력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작품을 칭찬할 때 소재만 언급하는 건 좀 아까운 일일 수 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며 작가는 추리소설이란 정체성 역시 소홀히 다루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건의 발단이며 전개, 해결에 이르기까지 제3자나 다름없어 보이는 주인공 아라이가 어떤 식으로 사건에 개입하는지, 전직 경찰이지만 현재는 수사권이 없는 일반인이 어떻게 사건을 추적하고 진상에 도달하는지, 사건의 마무리와 이후에 수습할 요소들을 아라이가 전문 수화 통역사로서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기대하게 만들면서 작품은 임팩트있게 끝맺어진다.

 단순히 소재에 집중하기만 한 소설이 아닌 소설적인 완성도, 특히 추리소설적인 서사도 탄탄하기 그지없었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이 마쓰모토 세이초상 최종 후보에 그쳤다는데 그럼 당시에 이 작품을 제치고 수상을 거머쥔 작품은 또 어떨지 궁금해졌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 일이지만 당장 이 작품만 살펴보면 후보에 그쳤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 이만큼 소재와 스토리가 균형을 이루며 수준급인 작품도 흔치 않으니까. 단순히 인권 감수성만 높을 뿐 아니라 추리소설로도 흡입력이 높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혹자는 이 작품의 반전이 어느 정도 뻔한 구석이 있고 주인공의 위치가 사건을 주체적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는 만큼 답답한 면도 없잖다고 하던데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처음 읽을 당시 '법정의 수화 통역사'라는 부제가 무색하게 정작 법정에서 통역하는 장면 대신 법정으로 나아가기까지 아라이가 갈팡질팡하는 내용만 나온 것에 대해 허무함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일단 이 작품에 <용의 귀를 너에게>라는 후속작이 있으며 그 작품에서 수화 통역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땐 작가가 아라이의 내적 갈등이나 정체성 혼란을 집중해서 다룬 게 적절하게 느껴져 지난 번과 달리 허무함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다.

 소재도 소재지만 추리소설적 완성도에 대해서 나의 극찬에 동의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워낙에 관심이 많은 소재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하고 나 역시도 되짚어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이 글만 읽고 너무 기대하지 말 것을 당부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이것만은 강조하고 싶었음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어찌 됐든 추리소설로는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로도 빼어나지 않을 순 있어도 부족함이라곤 없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의 저자 마루야마 마사키는 선보여줬다. 이는 청각장애인이나 코다도 아닌 작가가 청각장애인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 이상으로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편견을 깨부수는 것이 힘겹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것은 역사에 남을 도전이라 한다면 과장 조금 보태서 이 작품 역시 그 반열에 올릴 만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이 작품의 후속작이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한다. 내가 알기론 세 번째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땐 시간이 필요할 뿐 능히 세 번째, 네 번째 작품도 나올 듯하다. 부디 그 작품들까지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란다.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으니까 출간만 되기를...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184468410

 이건 처음 읽었을 때 쓴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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