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8






 스포일러 100%


 제목만 봐선 그저 그런 일본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캐치 프레이즈는 '있을 수 없는 사랑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랑'이다.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이 작품을 통해 '서로 안심할 수 있는 상대인데도 불행한 첫 만남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궁극적인 사랑의 형태'를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범상치 않은 내용의 소설을 썼으리란 예상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비록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접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다. 처음 읽을 때나 다시 읽은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고, 개인적으로 <퍼레이드>, <요노스케 이야기>, <악인>을 뛰어넘은 요시다 슈이치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200쪽 조금 넘는 이 소설은 얼핏 보면 분량이 너무 짧게 설명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형태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여자를 집단 강간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던 여자와의 사랑이 상식적으론 결코 와 닿지 않으니까 말이다.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렇게 소설의 내용을 옮기고 있자니 소설의 설정이 실로 엽기적이다. 작가가 이 사랑을 그릴 때 독자에게 설득시키려는 것이 아닌 독자에게 공감을 유도하고 있으니 난처하기 그지없다. 최근에 <가위남>을 소개할 때도 비슷한 고충이 따랐는데, 작품에 따라선 스포일러 없이 그 묘미를 남들에게 전달하기가 정말 힘들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스포일러 100%의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그래야 그나마 감상다운 감상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조차도 두 남녀 주인공 슌스케와 가오리의 사랑의 형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닐까 하고 가장 가능성 있는 해석을 제시할 뿐, 가오리가 배신했다가(=복수에 성공했다가) 그 태도를 철회한 이유와 슌스케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거나 누명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내가 이 작품을 9년 전에 처음 읽었을 땐 '이상하긴 해도 이만하면 설득력 있게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은 지금은 인물들의 관계가 뭘 어떻게 포장하기가 버거운 만큼 자꾸 말을 아끼게 된다. 이런 형태의 사랑이 있을 수도 있다고 넘기기엔 성폭력 피해자의 아픔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고, 반대로 이 작품을 두고 성폭력 가해자를 그럴싸하게 미화한 폭력적인 스토리라 매도하기엔 결코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유일하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다른 작품을 쓸 때도 그랬듯 요시다 슈이치가 이번에도 어느 한쪽으로 예단하기 어려운 지점을 잘 건드렸다는 것뿐이다.

 참 골때리는 설정이지만 이 작품을 두고 미화라느니 폭력적이라느니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현실성 있는 통찰이 크게 작용했을 터다. 성폭력 가해자임에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연줄을 통해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는 등 - 암묵적으로 '법을 위반했지만 한편으론 남자로선 이해할 만한 실수'라고 동정까지 받는다... - 사회적 대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던 반면,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은 전학을 간 뒤나 기껏 구한 직장에서나 남편과 친정한테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 파멸로 치닫는다는 걸 씁쓸할 정도로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가령 TV에서 노출 개그를 하고 있는 남자 코미디언의 모습에 웃자 친부라는 작자가 '남자 알몸을 보고 왜 웃느냐'며 딸을 나무라는 모습부터 나중에 집단 강간 피해자란 사실을 빌미로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고소하려고 하자 친정 쪽에서 결혼 직전까지 자기 과거를 숨긴 대가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까지 제3자 입장에서도 피가 솟구치는 장면이 짧은 분량 안에 강렬하게 그려졌다. 난 이런 장면을 상상하고 묘사할 줄 아는 작가가 성폭력 가해자를 미화한다고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 작품의 내용도 민감하긴 해도 내겐 마찬가지인 관점에서 폭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훗날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처음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감정이 살아났지만, 당사자들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감정이기에 애써 거릴 두거나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인 가나코는 복수하려는 척이라도 해야만 했던 전개도 마냥 엽기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단지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를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시선, 세상 사람들의 고정 관념에 얽매였다는 게 내가 슌스케와 가나코의 모습에서 받은 인상이다. 상대방을 향한 둘의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 만큼 사회적인 시선과 무관해야 마땅하지만, 한 번 사건으로 기록에 남은 두 사람의 관계엔 타인의 잣대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게 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에서 가장 씁쓸한 부분이었다. 공소시효를 들먹일 생각은 없지만, 과거의 사건은 과거인 거고 기이하긴 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하거나 이미 맺는 중인 두 남녀의 모습에 이렇게 저렇게 토를 달 수밖에 없다니... 이것이야말로 사생활 침해의 진정한 폐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작가의 발군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집약된 궁극의 연애소설이다. 가끔 사랑의 시작과 끝을 성의없이 묘사하는 무늬만 연애소설인 작품도 있는 걸 생각하면 이 작품은 어느 등장인물의 심리 하나 허투루 묘사하지 않은 밀도 높은 연애소설이었다. 비단 슌스케나 가오리만이 아니라 둘의 과거를 추적하는 역할을 맡은 와타나베도 - 이 캐릭터 덕에 이 작품이 추리소설인 것 같은 느낌도 풍겨졌다.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독자와 똑같은 제3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당혹스러움을 대변함과 동시에 섣불리 두 사람의 관계를 단정짓지 않는 신중함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등 이래저래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만약 와타나베가 전형적인 기레기였다면 이 작품의 색깔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 자극적이기만 하고 여운 따윈 쓰레기통에나 던진 작품에 그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처음 한 번은 몰라도 이렇게 두 번 읽지도 않았을 거고 세 번, 네 번 읽을 생각도 안 들었을 것이다. 연애소설을 잘 찾아 읽지 않지만, 아마 이 작품이 나한테 있어 오래도록 손에 꼽히는 연애소설이지 않을까 싶다. 굳이 연애소설에 한정하지 않아도 어떤 카테고리에든 손에 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면 과찬인 걸까? 판단은 앞으로 여러 좋은 작품을 읽으면서 내려야겠다.


 이 작품을 9년 전에 읽을 당시엔 영화가 나오지 않았는데, 2013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둔 영화 <안녕 계곡>이 - 참고로 '안녕 계곡'이 원제다. - 개봉됐다고 한다. 감독은 생소하지만 캐스팅된 배우를 보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던데, 괜한 기대는 금물이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과연 원작의 묘미를 잘 살렸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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