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지음, 정경진 옮김 / 스핑크스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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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당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서평을 훑어보다가 얼떨결에 이 작품의 스포일러까지 읽고 말았던 것이다. 그냥 지나치고 읽기엔 너무 눈길을 끄는 내용이었던 만큼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넘길 즈음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웃기게도 난 반전의 내용을 알면서도 속고 말았다. 작가가 워낙에 그럴싸하게 숨긴 나머지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읽은 서평이 사실은 헛것이 아니었는지 의심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스포일러를 당한 게 무색하게 나는 이 작품을 즐기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참...

 처음 읽을 땐 반전의 놀라움에 감탄했다면 요번에 다시 읽을 때는 이런 반전을 구사한 작가의 주제의식에 눈길이 더 많이 갔다. 예전엔 놀라운 반전이라고만 여겼는데 최근에 작가의 다른 작품 <거울 속은 일요일>을 의식하며 읽으니 이 작가가 굉장히 노력하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반전의 놀라움으로 승부하려는 작가가 아니라 그 반전을 통해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라는 게 내가 <가위남>을 다시 읽으면서 받은 인상이다.


 동서고금의 추리소설가들은 제각각의 작품 세계를 갖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런 뉘앙스의 말을 꼭 작품 속에 넣는 것 같다. '선입견 따위, 쓰레기통에나 던지라지.' 그 말 그대로다. 추리소설에선 가장 의외의 사람이 범인이고 가장 알리바이가 확실한 사람이 범인이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클리셰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선입견을 파고들거나 이용하는 건 추리소설에선 절대불변의 규칙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가위남>만큼 '선입견'이란 개념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파고드는 작품도 없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가급적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고 소개해보고 싶다. 어떤 종류의 반전을 구사하는지도 함구하겠다. 내 경우엔 반전의 핵심까지 알고도 속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아예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으면 좋겠다. 게다가 다른 이유도 있다. <가위남>은 선입견을 파고드는 아주 좋은 작품이긴 하나 그놈의 선입견 때문에 소개하는 입장에선 곤란한 작품이기도 하다. 가령 주인공이 연쇄살인범이고, 연쇄살인범이 세 번째 희생자를 물색하는 도입부나, 또 주인공이 연쇄살인범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봐 그 심상 세계가 묘하게 매력적인 것 등 이 작품의 기본 설정 자체를 좋게 표현했다간 속된 말로 미친 놈 소리 듣기 딱 좋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난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잔인한 작품이 취향도 아니며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여러모로 내가 인상 깊게 읽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주인공의 심상 세계가 매력적이지만 딱히 공감도 안 가고 경찰의 시점과 병행되는 전개도 생각보다 눈길을 끌지 못했다. 작가가 캐릭터 만드는 솜씨가 형편없었으면 이 작품은 답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작중에서 그럴 듯하게 설명되지만, 사건 전개에 있어 우연이 너무 남발되는 것도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개중엔 너무 허술한 부분도 있어 역시 데뷔작은 어쩔 수 없구나 싶었다. 후반 100페이지를 읽기 전까지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엔 반전이 전부인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 반전이 없었으면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앞의 서사들은 통째로 되살아날 일 없이 그대로 지지부진한 채로 묻혔을 테니까. 다시 읽으니 그 점이 더욱 극명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반전을 빼면 시체라고.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반전 없이는 애초에 구상되지도 않았을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쓰던 도중에 급하게 떠올린 반전일 가능성은 절대 없다. 단순히 복선과 치밀한 구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강조된 선입견의 위험성은 모두 반전의 놀라움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가위남>은 선입견 따위, 쓰레기통에나 던지라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작품이다. 선입견이 무가치할 뿐더러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작중 내내 강조하는데, 선입견을 가져선 안 된다는 걸 누군들 모를까 싶겠지만 정작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하려는 사람은 적다는 걸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선입견이 생긴 것엔 어느 정도 근거도 있고 필요하단 의견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대다수의 사람은 뭐가 선입견인지 일일이 따지며 살지도 않는다. 누군가 나서서 언급하지 않는 이상 선입견은 선입견으로 인식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을 쓴 슈노 마사유키는 그 '누군가'에 해당할 사람이다. 자신이 떠올린 반전을 위해, 그에 걸맞은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충격을 배가시키기 위해 다각도로 공부한 슈노 마사유키는 이 작품으로 하여금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독자들 사이에서 반전하면 생각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에도 성공했다. 지금 읽어도 혁신적인 작품이고, 중요한 건 이 작가가 원 히트 원더에 속하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울 속은 일요일>을 읽었을 땐 <가위남>으로만 평가하기엔 아까운 작가라고 여겨졌다. 그가 지금은 고인이고 그의 다른 작품이 좀처럼 국내에 소개되지 않는 게 아까울 따름이다. 천재가 이렇게 잊혀져선 안 되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위남>이 영화로도 나왔다는 것인데,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심히 의심스러울 것이다. 영화로 구현되면 어떤 부분 때문에 작품의 묘미가 확 떨어질 텐데, 아니나 다를까 캐스팅 목록을 보니 아예 그 묘미를 포기한 것 같다. 영화는 영화대로 재밌을 것 같지만, 만약 둘 다 본다면 무조건 소설 먼저 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난 이미 소설부터 읽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반대로 접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왜, 산에서 곰을 만나면 죽은 척하라는 이야기가 있잖아. 옛날부터 그렇게 전해 내려왔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사람도 많다고 말이지. 그건 당연한 거야. 죽은 척했다가 실패하면 곰한테 잡아먹히는 거잖아? 나는 곰 앞에서 죽은 척했습니다만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사람은 없어. 당연히 성공 사례밖에 보고되지 않아. 자살도 마찬가지야. 자살에 성공한 인간은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말하지 못해. 이미 죽은 몸이니까. - 56p




그리고 오히려 나와 경사 나리와 마쓰모토 형사님의 직감이 일치했을 때가 위험한 거야. 모두가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믿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될 수 있어. 누명은 그렇게 해서 씌워지는 거야.

네가 해야 할 건 이런 직감을 몸에 익히는 게 아니야. 너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는 거야. - 1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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