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설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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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스포일러 : 있음


 요번에 부산에 여행갔을 때 서면 YES24에서 산 책. 그 여행이 이른바 '소설을 제시간에 완성시켜 출품한 자신한테 보상'해주기 위한 여행이었던 만큼 이 책을 구매했다는 게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자세를 바로잡게 됐달까? 이 얘기는 블로그의 부산 여행기에서 마저 풀어내게 될 것 같다. 기대해주시길.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작가라는 직업을 소재로 한 이 단편집은 암울하고 광기 어린 직업세계와 고충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의 '학생 아리스' 시리즈나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 색다른 매력이 있어 흥미롭게 읽혔다. 생각해보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중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등장하지 않는 책은 이번에 처음 접한 것 같은데 - 슬슬 혀가 쥐가 날 것 같다... - 역시나 '예상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굳이 본격 추리소설만이 아닌 그냥 소설을 잘 쓰는 작가란 걸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항상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왜 굳이 밀실의 이유나 범인의 의외의 정체 등을 다루는 본격 추리소설만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 추리소설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매 작품마다 카뮈의 <이방인>에 필적하는 살인 동기를 다루는 터라 트릭과 반전에 치중하는 작가의 스타일이 내용과 약간 따로 노는 구석이 있다는 의문이 늘 떠나지 않았다. 꼭 살인 동기가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진지한 통찰 또한 일품인데 이러한 작가의 특징은 본격 추리소설이란 장르의 외견을 넓혔다기 보다 오히려 본격 추리소설이 작가의 특징을 모두 담아낼 만한 그릇으론 약간 비좁다는 인상을 줬다. 그래서 내심 작가와 동명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도 한 번 접해보고 싶었는데 <작가 소설>의 수록작들은 그런 점에서 내 궁금증과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줘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사실 소설가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작가 입장에선 작가나 출판계가 가장 익숙할 테니 은근히 많이 다루기도 했던 만큼 새로움을 느끼기 힘들단 생각에 그렇게 흥미가 동하지 않았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소설>은 이런 내 선입견을 깼다. 난 이 작가가 호러 소설을 이렇게 잘 소화할 줄 몰랐다. 더군다나 최근 나름대로 소설을 완성시킨답시고 새벽에 머리 좀 쥐어뜯어봤기 때문일까, 작중 작가들의 다양한 고충이 십분 공감이 갔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추리소설가답게 작가들의 세계에 범죄를 가미해 기묘하고 섬뜩하게 비틀어낸 것도 색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작가가 평소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고민한다는 게 느껴졌는데 이런 걸 보면 누가 뭐라 해도 참 천상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위키에서 보면 덕업일치를 이룬 작가라는 구절이 있던데 그 말이 맞는 말 같다. 작가로서 쓴맛을 이래저래 경험했을 텐데 그래도 노력하며 작품을 끊임없이 써낸다는 건 어렸을 때 자신이 품었던 로망을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졌다. 작가 지망생으로 본받을 만한 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글 쓰는 기계'


 강렬했던 첫 수록작. 잠재력은 있지만 팬이 느린 작가를 위해 출판사가 마련한 특단의 기계가 등장하는데, 그 기계의 정체는 작가를 구속시켜 소설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뒤에 있는 구덩이에 떨어뜨리는 극한의 장치가 설치된 최첨단 고문 기계다. 소설을 쓰는 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과 엄연히 다르지만 이 기계를 이용한 작가들은 효율성이 극대화돼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작품을 써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이 기계에 마약처럼 빠져든 작가의 미래는 상당히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한 작가가 종국에는 자신의 집에 똑같은 기계를 설치해 기계의 힘을 빌리고도 편집자와의 미팅 시간 안에 분량을 못 채우는 걸 봐서 정말 머지않아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는 담당 편집자의 모습에서 나 역시 형언할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꼭 경험에서 우러나와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소설을 쓰는 것에 효율이란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 제아무리 결과물이 좋아도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작중 작가의 경우 그 기계의 덕을 꽤 봤지만 작작 한다면 모를까, 결국 마약처럼 빠져들어서 스스로를 서서히 좀먹는다는 식의 묘사를 보면 애당초 기계의 힘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욕심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꿈이겠지만... 사실 작가라면 한 번쯤 해볼 생각인데 이런 식으로 구현한 작가한테 소름이 좀 돋았다. 단순하지만 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였다.



 '죽이러 오는 자'


 마지막까지도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범인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독자가 상상해야 하는 것도 오싹하니 괜찮은 연출이었다. 일본만의 아날로그적인 문화인지 모르겠는데, 소설가한테 팬레터를 보낸다는 설정을 본격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인 미싱 링크와 엮어서 풀어낸 게 신박했다. 이쯤 되니 작중 소설가의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별로였으면 사람들이 팬레터로 욕을 써서 보낼 정도인 건지...



 '마감 이틀 전'


 마감에 쫓겨 다급해진 나머지 별 시덥잖은 트릭까지 떠올리는 대책 없는 추리소설가의 좌충우돌 집필기. 처음엔 제법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나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산으로 가는 트릭과 가망이 없는 집필 속도는 극히 공감이 가서 읽는 내내 킥킥거렸지만, 그에 반해 뻔히 예상이 가면서도 뜬금없는 반전은 다소 아쉬웠다.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작가의 모습이 식상하다는 것 이전에 이런 반전이 꼭 필요한 반전이었는지 아리송했기 때문이다. 결말보다 과정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인 작품이었다.



 '기코쓰 선생'


 이 책에서 유일하게 훈훈하게 마무리된 작품. 앞선 세 작품이 너무 암울해서 이 작품도 읽는 내내 불길했는데 - 다른 의미에선 암울하기 짝이 없는 출판계의 미래를 낯낯이 드러내서 제일 암울하게 읽혔다. 작가의 고민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귀여운 내막이 드러나서 나까지도 피식 웃고 말았다. 작가 특유의 캐릭터 설정이 돋보였고 개인적으로 이 캐릭터들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언급이 됐음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유일하게 후일담이 궁금했던 작품이다. 과연 주인공은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을 것인가. 남일 같지 않아서 응원하게 됐다.

 여담이지만 주인공의 아버지가 출판계에서 악명 높은 독설가 편집자라는 설정인데, 비유를 하자면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쳐에 버금갈 만한 위인일까 싶었다. 현직 소설가가 정색하고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독설가의 아들을 겁주는 걸 보면 아버지란 작자가 참 괴팍한 인물일 것 같다. 아, 그래도 플레쳐와 비교하는 건 실례이려나.



 '사인회의 우울'


 작가란 직업은 예체능 계열에 속하지만 분명 연예인들과는 다른 직업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인회 한 번에 쑥스러워 하는 작가의 모습은 내가 다 민망했는데 나중엔 쑥스러워서 사인회를 고사하려 했던 게 아니란 게 밝혀져 그건 그것대로 충격이었다. 약간 뜬금없는 반전이긴 했지만... 아무튼 사인회에 임하는 작가의 고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일본어가, 정확히는 일본 글자가 참 비효율적인 글자란 것도 엿볼 수 있었다. 그 나라는 괜히 한자를 병용해서 쓸데없는 해프닝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사인회라는 설정 때문에 그 부분이 많이 부각됐다.



 '작가 만담'


 가볍게 웃기고 씁쓸한 자학이 녹아든 소설. 특별한 반전은 없고 한 번 더 짚고 넘어갈 만한 내용도 딱히 없었다. 다만 시시껄렁해도 어쨌든 대화만으로 이어가는 전개는 흡입력 있고 재밌었다. 소설이 아니라 진짜 만담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만담이었을지 모르지.



 '쓰지 말아주시겠습니까?'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소설가에게 작품의 소재나 에피소드, 하물며 등장인물 성격이나 이름 같은 것을 어떻게 떠올린 거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거의 다 주변의 것들을 작품 속에 녹여낸 것이란 답이 돌아온다. 작가로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글로 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민감한 사안이 아니면 작가의 집필에 제동을 걸지 않는 편인 것 같다. 애당초 소설이란 게 사회적으로 대단히 파급력이 있는 책이 아니라서 소설 속에 무단으로 에피소드나 어떤 사람의 성격을 차용했던들 당사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으면 작품 속에 당사자들도 자기 얘기인지 모르게끔 변화를 가미하려고 해 '완전 범죄'는 더욱 그리 어렵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예외도 존재하는 법. 자신의 얘기를 쓰지 말아달라고 약속을 받아냈음에도 상대가 어겼을 때 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도 모르게 복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작품에선 과민 반응인 줄 알았던 작가의 걱정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는 결말 때문에 분위기를 급격하게 오싹하게 만들었다. 작중 내용만으로 따지면 아무리 약속이라고 해도 복수하는 사람이 선을 한참 넘겼다고 할 수 있지만 소설의 내용을 떠나서 실제로 비슷한 사례를 접한다면 과연 제3자 입장에서 작가의 편을 들 것인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문학 작품에 있어 현실 세계의 에피소드에 관한 저작권이나 프라이버시는 함부로 접근하기 참 민감한 문제인 것 같다.



 '꿈 이야기'


 개인적으로 꿈을 꿀 때면 내가 접한 만화, 영화, 소설의 등장인물은 물론 내 실제 친구들이나 말로만 듣던 사람들까지도 한 데 모이는 등 <어벤져스>급의 캐스팅이 펼쳐지는데 이 풍경은 장관이라기 보다 개판에 훨씬 가깝다. 각기 다른 이야기와 세계관의 인물들이 모였으니 전개가 개판일 수밖에 없지. 뭐, 그래도 꿈이니까 말 그대로 꿈에 가까운 상상도 풀어낼 수 있는 것일 터다.

 작가가 내 꿈과 비슷한 설정의 소설로 단편집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게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작중에선 모종의 기계의 힘을 빌린다고 나오지만 어쨌든 이야기가 없는 가상의 세계에서 이야기꾼으로 살아간다는 게 한 번쯤 꿈꿔왔으면서 뒤가 구린 일이란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작년에 개봉한 <예스터데이>란 영화에선 모두가 비틀즈를 기억하지 못하자 가수 지망생인 주인공이 비틀즈의 노래를 자신의 노래로 둔갑시켜 가수로 데뷔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꿈 이야기'의 내용이 딱 그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오리지널 작품이 아닌 남의 작품으로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는 것에 대해 굴욕을 느끼고 자괴감에 빠져 번민한다는 전개가 특히 비슷했다.


 그 자괴감을 참다 못해 가까운 사람에게 사실을 고백해도 돌아오는 답이 압권이었다. 하긴 애당초 이야기가 없는 세계라고 본인이 설정했는데 누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겠는가. 그냥 또 하나의 잘 만든 이야기라 생각하겠지.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얼떨결에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점이 <예스터데이>의 주인공과 달랐달까?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달았는지 깨닫지 못했는지 독자들은 알 길이 없다. 작가는 상상의 영역으로 넘겼는데 이런 여운 있는 결말이 아주 좋았다.

 작가가 후기에 이 책의 수록작들을 가급적 순서대로 읽어달라고 말했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작가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마지막에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무척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긴, 이야기를 사랑하면서도 기존 작품들과는 또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를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지조가 담긴 작품이기에 내가 작가라도 애착이 갈 작품이었다.

장편이 못 되는 트릭이라도 단편이라면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구질구질하지. - 91p




소설가가 되기에 걸맞은 적령기는 없어. 그래서 고약한 거야. 야구 선수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년 소녀는 어느 시기가 오면 꿈에 손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하지만 소설가라는 꿈은 늙어 지칠 때까지 계속 가질 수도 있어. 그건 더이상 꿈이 아니야. 악몽이지. -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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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시민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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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7






 스포일러 : 1장의 반전만 써놨음. 그런데 이 반전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함.


 저번주에 부산으로 여행갔을 때 작가가 부산 출생이란 이유로 가져간 소설이다. 4년 전에 읽을 때와 크게 느낌이 다르지 않았는데, 이번엔 우발적으로 살인을 범한 은주보다 은주의 범행을 목격한 창수에 집중하며 읽으니 또 새로운 맛이 있었다. 작가가 은주보다 공을 들였을 창수라는 캐릭터의 무시무시한 과거사와 그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뒷처리는 여러모로 흥미롭게 읽혔다. 추리소설 속에서 작가 지망생은 어딘지 굴절된 인격의 소유자로 등장하는 것 같은데, 그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인물이지만 작가는 나름대로 개성 있게 창수라는 캐릭터를 구현해냈다.

 아무리 작가 지망생이라지만 살인의 이유에 관심을 품으며 그토록 은주에게 접근하려는 창수의 모습이 예전엔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이 부분은 창수가 과거에 비슷한 종류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설정을 흘려 읽지 않으면서 많이 해소된 편인데 이처럼 '선량한 시민'이라는 작품의 제목과 완전히 따로 노는 캐릭터 설정들이 제법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실 제목 자체는 평범한 느낌이 없잖은데, 시민들의 모습이 선량하게 보였지만 실상은 개차반이라는 투의 작가의 집요한 설정은 꽤 마음에 들었다. 재밌는 건 일반적으로 이야기 속에서 악독한 인물로 묘사되는 시아버지가 오히려 가장 정상인처럼 비춰진 것에 비해 은주나 창수를 비롯해 은주의 자녀, 남편과 살해당하는 사람들, 심지어 경찰까지도 사리사욕에 눈이 멀거나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주제에 겉으로만 티를 안 내고 있는 등 다들 어딘가 비정상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은주의 살의에 시아버지의 독선적인 태도가 전혀 무관하다고 보긴 어려우나 실질적으론 시아버지의 됨됨이가 예상과는 다르게 그리 나쁘지 않게 묘사된 건 어떤 의미에선 반전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뭐, 그래봤자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인 건 마찬가지지만.


 작가가 후기에서도 인정하듯 후반부의 급전개와 연쇄 살인범의 등장에 패닉에 빠지거나 열광하기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이번에도 아쉽게 읽혔다. 애당초 작중 배경이 서울인지 부산인지 지방의 소도시인지 명확히 그려지질 않아 소동의 규모가 잘 파악이 안 됐고, 그를 차치하더라도 연쇄 살인범이 동네에 살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작중 시민들이 보이는 반응은 다소 과민하고 어색한 데가 있었다. 이 점은 요번에 비교적 덜 작위적으로 읽혔다는 창수의 모습으로도 해소되지 않는데, 살인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처음에 비해 후반부에 힘이 빠졌던 게 크게 작용했던 듯하다. 무엇보다 창수가 그토록 궁금해 했던 살인의 이유가 정말로 별로 대단치 않아 남는 게 없다는 것도 호불호 갈리는 부분이었다. 진짜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이유라서 인상적이긴 했지만... 만약 작가가 허무함을 의도한 거라면 대성공이라 할 수 있겠다.

 살인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한 반응이란 측면에선 꼬마비 작가의 웹툰 <살인자ㅇ난감>이 연상됐는데, 그 작품에 비하면 <선량한 시민>은 깊이 면에서 한참 못 미치는 편이었다. 한 소설가는 이 작품에 대해 추리소설의 관점을 깬 것과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보다 기존 관점을 파격적으로 깬 작품을 많이 읽은 나로선 우선 그 소설가의 추리소설 독서량이 의심스러웠고, 또 예상을 뛰어넘는 결말이란 말도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창수가 그 정도로 허술한 건 물론 예상 밖이었지만 이건 달리 말하면 예정된 결말을 위해 작가가 무리수를 던졌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라 솔직히 실소가 나왔다.


 이러나 저러나 몰입도는 높으니 여행지에서 가볍게 읽기엔 - 분량이 길지 않아 가벼워서 에코백 속에 넣어다니기 편했다. - 좋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무게감 있는 통찰이 담긴 추리소설로 기대하고 읽으면 실망할 확률이 높은 작품이다. 드라마 작가 출신다운 사건이 끊이지 않는 역동적이고 속도감 높은 전개는 기대해도 좋지만 그와 어울리지 않는 허무한 결말은 미리 각오해야 좋지 않을까 싶다. 뭐, 말은 이렇게 해도 허무한 한편으로 깔끔한 맛도 있는 결말이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독자들한테 대놓고 추천을 하지 못하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라.

우리 인생에는 복선도 플롯도 없다. 성격은 충동에 의해 무너지고, 기억은 소망에 의해 왜곡된다. 인생은 무질서한데 왜 소설 속 이야기는 그토록 질서 정연해야만 하는가. - 76p




나는 연쇄 살인범이나 귀신, 악마, 유혈 낭자한 죽음 등이 왜 무서운지 이해를 못 하겠다. 진짜 공포, 진짜 지옥은 따로 있다. 그곳은 뜨겁지 않고 차갑다. 모든 고통은 디지털로 변환되어 나와는 무관한, 그래서 귀찮고 언짢은 이야기 혹은 짜릿한 소일거리로 정보 처리되고, 급기야 고통은 비명도 없이 하나씩 사라지고 숨어버리는 지점. 침묵과 인내를 내면화한 개인들이 오직 생활의 무게만을 유일한 고통으로 안고 살아가는 곳. 뜨거움이 사라진, 조용하고 질서 정연하고,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차가운 지옥. 나는 내가 가진 이 공포를 쓰고 싶었다. - 286~2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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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세트 - 전4권 (무선) ㅣ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수첩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9.3






 스포일러 : 6편은 물론 7편의 스포일러도 있음


 압도적인 분량과 극도의 스트레스를 안겨준 전편과 달리 이번 '혼혈왕자'는 약간 쉬어가는 느낌의 에피소드였다. 물론 결말에선 비교도 할 수 없이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고 그전까지 떡밥만 던진 볼드모트의 과거를 본격적으로 살펴가는 만큼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났지만 그래도 '불사조기사단'에 비하면 훨씬 편하게 읽혔다. 새로운 캐릭터 슬러그혼은 속물적이면서 매력적인 소시민 캐릭터로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했고 이제야 이야기의 주역으로 급부상한 말포이는 연출의 실수인지 별로 긴장감을 주지 못해 해리의 집착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나 역시 공감이 됐다. 왜 저런 놈한테 신경을 쓰지? 그만큼 말포이는 혈통말고 내세울 게 없는 초라한 인물이니까.

 어쩌면 작가는 깐죽거리기만 할 줄 알았던 말포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짜증을 선사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초반에 해리가 말포이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이나 기대 이상으로 호그와트를 위기로 몰아넣은 말포이의 활약은 놀랍다기 보단 그저 짜증이 날 뿐이었는데 지금은 7권의 내용도 알고, 또 덤블도어가 얼마나 치밀한 사람인지 다 알고 있으니까 망정이었지 옛날엔 이런 짜증나는 전개를 어떻게 읽어내려갔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때는 꼭 이랬어야만 했냐고 울부짖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는 성인에 가까운 호그와트 6학년생인 해리와 동급생들의 이야기는 1편에 비해 분명 수위가 높아졌다. 이젠 어엿한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제몫을 다할 수 있게 된 해리가 덤블도어를 비롯한 호그와트 교수들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신력을 선보인다. 기분 울적한 교수(해그리드)를 위로하고 멍청한 교수(트릴로니)를 적당히 무시하고 미워해마지않는 교수(스네이프)는 대놓고 적대하는 등 1편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성장한 모습이 눈에 띈다. 1권부터 차례대로 읽어서 간과하기 쉽지만,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이모부 가족들한테 시달린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은 어른이라고 무조건 고개 숙이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며 때론 어른일지라도 자기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등 이래저래 어른이 다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새로운 마법부 장관인 스크림저에겐 자기 의견을 딱 잘라 말하는 등 이전과 달리 기세등등한 모습은 보는 내가 다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번 6편에선 무리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경향도 있었다. 원래부터 어림짐작으로 독단적인 행동도 하고 주변에서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이번엔 유독 집착이란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주변에 아랑곳 않고 막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해리의 추측이 거의 대부분 맞긴 했지만, 결정적인 부분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터라 7권의 내용을 다 아는 입장에선 해리가 답답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다. 덤블도어가 한 말이 정확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말이 주변 사람의 조언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전편에서처럼 해리가 감정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리를 전개했기에 그를 두고 무모했다느니 막나갔다느니 하는 게 좀 부당한 평가일 순 있다. 스네이프에 관한 선입견을 떨칠 수 없는 것과 그가 이중 스파이로 활동한 내막을 해리로선 알 수가 없는 것 등 해리 입장에선 최선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 솔직히 해리가 답답하다고 느낀 것도 7권까지 다 봤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 예전에 읽었을 땐 해리 못지않게 나도 분노하고 한편으론 실망했던 것 같다. 정말로 덤블도어가 틀렸고 스네이프가 죽음을 먹는 자였다니... 롤링이 이렇게 해리가 결국 옳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리가 없을 텐데 하면서.

 직감이긴 했지만 롤링이 반전을 꾀하는 스타일을 파악했던 예전의 나는 어렴풋이 스네이프의 정체에 대해 눈치를 챘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눈치를 챘다 뿐이지 논리적으로 추리를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7권이 아직 집필되지 않은 6권까지의 시점만 놓고 보면 작가가 마지막 에피소드를 남겨두고 긴장을 한껏 끌어올린 연출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었다. 전편에선 시리우스를, 이번엔 덤블도어까지, 해리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될 수 있는 캐릭터들을 퇴장시켜버려서 7권에서 볼드모트와 치를 싸움의 전망이 상당히 암울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런 만큼 마지막 에피소드가 더욱 궁금해지지 않았나 싶다. 너무나 가혹한 전개지만 작가가 말하기론 다 전개상 필요하니까 취한 조치였고 그만큼 성과도 컸다고 생각한다.


 스네이프의 정체에 대한 반전을 6권이 끝날 때까지 밝히지 않은 작가의 인내심도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권부터 담금질한 반전을 숨긴 채 작가는 6권에서 덤블도어가 스네이프의 손에 죽게 만듦으로써 독자들의 스트레스를 최고조에 찍게 만든 뒤 바로 다음권에선 기어코 그간 참아왔던 반전을 터뜨려버리니까 말이다. 작가로서 정말 쾌감 넘치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은데 굳이 반전이 아니라 이번 6권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설정과 전편의 에피소드를 집대성하고 해리와 볼드모트의 대결 구도를 강조하여 말 그대로 폭풍전야와도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 것도 쾌감이 있었으리라 본다. 7권으로 가는 전초전으로써 이보다 압도적인 연출은 없을 것 같다.

 요번 '혼혈왕자'가 해리와 덤블도어의 유대감, 볼드모트의 과거사, 볼드모트를 쓰러뜨려야 하는 해리의 숙명의 의미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이전 에피소드들에 비해 내용이 지엽적이게 느껴졌다. 전편의 캐릭터들, 가령 해리와 썸을 탔던 초라든가 전편에서 눈부신 성장을 보인 네빌 등 여러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이전만 못했는데 - 루나는 그나마 한몫했지만. - 작가가 창조한 세계관이나 캐릭터의 수가 방대한 만큼 지나가는 정도라도 언급한 게 어딘가 싶어 별로 단점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다음 권에선 호그와트가 배경으로 등장하지 않으므로 안 그래도 등장이 적은 캐릭터들이 막판의 대규모 전투를 제외하곤 거의 등장하지 않다시피 할 텐데 6권에서라도 많이 등장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못내 아쉬움이 들었다.


 7권은 상당히 암울한 내용으로 전개될 것이다. 적어도 위즐리 부부의 닭살 돋는 암구호 장면 같은 개그는 7권에선 더더욱 보기 힘들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빠질 수 없는 재미인 호그와트에서의 학창 생활도 다뤄지지 않을 테니 학생인 해리의 모습은 이번 6권을 끝으로 못 보는 것이다. 해리와 볼드모트 만큼은 아니더라도 시리즈의 팬이라면 호그와트라는 장소 자체에 애착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그 호그와트에서의 마지막 생활이 덤블도어의 죽음으로 비극적으로 마무리돼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완결이 머지않아서 그런지 아쉬운 게 한둘이 아닌데... 이래서야 7권을 다 읽은 다음엔 어떤 기분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왠지 겁나는데.

해리, 심지어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조차 이런 일들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모른단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조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 - 3권 28p




그것은 목숨을 건 싸움을 앞두고 경기장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느냐, 아니면 고개를 높이 쳐들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느냐 하는 것의 차이였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게 그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알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어. 해리는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자부심을 느끼며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들도 알고 계셨어. 그것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전혀 다르다는 것을. - 3권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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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9.4







 김영하 작가를 주로 소설이나 방송으로 접했던 나로서 작가의 산문을 읽는 것은 생각보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책의 출간 시기에 맞춰 작가가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현한 걸 기억하는데, 이 책의 첫 번째 산문의 내용 중 방송에서 언급했던 에피소드도 제법 있던 것처럼 김영하 작가의 산문은 소설을 읽을 때완 달리 방송에서의 박학다식한 모습이 자주 연상됐다. 물론 본업이 작가인 사람답게 말솜씨보다 역시 글솜씨가 압도적이었는데, 작가 지망생 동기 중에 김영하 작가가 요즘 방송에 나와 걱정된다고 말한 동기한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었다. 아직까진 김영하 작가는 작가로서 건재하다고 말하면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 작가는 방송이란 외세에 끄떡없이 자기 길을 잃지 않을 사람인 듯하다.

 작가에 대한 팬심으로 일단 사놨지만 원래 산문을 잘 안 읽어서 사놓고도 방치했던 책인데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김영하가 나오는 방송을 보기도 했고, 또 최근 신인상에 작품을 제출해 일단락을 냈으며 곧바로 연휴 기간을 보내게 된 터라 여행에 대한 욕구가 강렬해진 차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3월에 코로나 때문에 무산된 핀란드 스웨덴 스탑오버 여행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반년 가까이 허덕거렸는데 이 책을 읽으니 이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읽을 걸 그랬다. 내심 이런 시국에 여행을 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한다는 게 너무 철없는 게 아닌가 하고 자책했었는데 그런 마음을 쏙 들어가게 해줬기 때문이다.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이 책이 1년만 더 늦게 출간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이 시국에 대한 글을 써줬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말 그대로 '여행의 이유'에 대해 썼던 작가인 만큼 무슨 이유에서건 해외 여행은 단념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여행은 거의 해외 여행을 가리키는데, 국내를 두고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해외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작가가 워낙에 잘 통찰한 지라 읽는 내내 공감의 끄덕거림이 멈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외에도 외국을 길게 여행하는 것과 아예 몇 년씩 사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여행 가기 전에 품었던 로망이 깨졌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지, 애당초 우리는 왜 낯선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고 굳이 그곳을 직접 발로 밟고 싶어 하는지, 한편으론 직접 여행지에 가봤음에도 일부밖에 모르고 왜 아이러니하게도 방송 같은 매체를 통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떠올라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에게 호의를 배푸는 심리 등 김영하 작가는 방송에서보다 훨씬 박학다식하고 자유롭고 분량에 얽매이지 않으며 사유를 풀어냈다. 때론 인용하는 에피소드가 너무 어렵거나 옛스러워서 - 그래도 작가답게 확실히 읽는 책도 범상치 않더라. - 집중이 잘 안 된 적도 있지만 '이 책을 쓰기 위해 내 모든 여행의 기억이 필요했다'는 말처럼 자신이 겪은 순간순간의 에피소드에서 얻은 통찰을 유기적으로 묶어낸 덕에 곱씹으며 읽는 맛이 있었던 글들이었다. 저번에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의 작가 후기가 소설 못지않게 좋았는데 산문도 그에 뒤지지 않아 이 작가를 더욱 존경하게 됐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내 지난 여행 경험들이 떠올랐다. 난 여행 경험을 블로그에 따로 포스팅까지 하고 몇몇 에피소드를 두고서 '절대 잊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과 달리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잊고 지낸 에피소드가 제법 있었는데 그게 창피했다. 기억이란 게 원래 잘 잊혀지는 법이라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언젠가 나도 여행에 대한 글을 제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김영하 작가처럼 박학다식하게 잘 쓸 자신은 없다. 작가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어쩌고 이전에 애당초 누구보다 잘 써야지 생각하게 되면 아예 시작도 못할 것 같다. 그러니 때가 되면 그냥 써야겠다.

 김영하 작가는 작가답게 글에서 여행을 떠나는 걸 소설을 읽는 것에 비유한 적이 많았는데, 그 비유를 곱씹어보자니 내 독서 취향 못지않게 여행 취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다소 편식을 했던 것 같은 내 여행 취향이 말이다. 김영하 작가는 주변에서 여행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살면서 그렇게 여행을 그렇게 많이 떠났음에도 선뜻 좋아한다고 대답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이 말이 특히 공감됐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행의 낯섦은 좋아하지만 막상 여행지에서 도전을 꺼리고 맨날 했던 거 보던 것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 - 먹는 것도 먹던 것만 먹는 것 같다. - 과연 내가 여행이 선사하는 낯선 경험을 즐기는 사람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여행은 좋아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어딘지 석연찮은 느낌을 받곤 했다.


 이 책은 어떤 여행이 더 의미 있고 보람찬 것인지에 관해 얘기하는 책은 아니다. 나의 배부를 수도 있는 위의 석연찮은 느낌은 <여행의 이유>라는 책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넋두리에 가깝다. 다만 자신의 모든 여행 경험을 녹여내 이만한 산문집을 펴낸 작가의 결과물을 읽으니 어떤 식으로든 내 지난 여행들을 반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블로그의 여행 포스팅은 여행을 다녀왔으니까 의무적으로 쓴 감도 있고 그렇다 보니 대충 사진 올리고 코멘트만 달고 흐지부지하게 끝난 경우가 많았는데... 이거 아무래도 여행에 대한 내 지난 태도를 돌이켜볼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내가 너무 이 책을 공감하며 무겁게 읽은 걸까 싶은데... 뭐 어때. 그렇게 읽을 수도 있는 거지.

 여담으로 꼭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은 아니지만 갑자기 여행 욕구가 차올라 당장 다음주에 3박 4일로 부산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직 불안한 시국이지만  작년 10월에 방콕을 다녀온 뒤로 여행다운 여행을 못 가본 터라 슬슬 어딘가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책에서 부산이 언급돼서 삘이 꽂힌 김에 가보기로 했다. 내 여행 태도가 지난 방콕 여행과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저쨌거나 근 1년 만에 하는 여행이 무척 기대가 된다.



인상 깊은 구절


그러나 우리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22p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 35p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성장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 148p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 205~206p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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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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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추리소설은 항상 반전을 마련해놓는 장르의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의외로 정형화된 스타일 때문에 반전을 추구하기 힘들다는 약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추리소설은 홈즈나 코난, 김전일 시리즈로 인식되는 본격 추리소설을 가리킨다. 요새는 이처럼 명탐정과 범인이 트릭을 사이에 두고 두뇌 대결을 펼치는 소설만이 추리소설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직도 추리소설의 원형을 제시한 대표적인 추리소설들, 고전 작품들이 추리소설 전체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추리소설의 불모지이며 아직 해외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엔 고전 추리소설들의 클리셰에 따른 부정적인 선입견과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추리소설의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추리소설들을 원망하는 것은 조금 부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추리소설의 스타일엔 우열이 있을 수 없으며 고유한 매력의 스타일을 처음 고안한 대가들은 지금보다 훨씬 존경해 마땅하다. 다만 후대의 작가들이 추리소설의 클리셰에 안주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추리소설 애독자가 아닌 문예창작 전공자이자 작가 지망생으로 말하자면 이런 타성에 젖은 태도는 소설을 집필함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하는 태도다.


 사실 현대의 추리소설가들 사이에서 '시적 허용'인 양 작위적이고 도식적인 서사나 트릭을 구사하는 것에 대한 경계는 그렇게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명탐정의 규칙>은 본격 추리소설에 대한 해학과 블랙 유머로 정평이 난 작품이다. 요즘엔 흔히 영화화하기 좋은 대중적인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싯적에 발표한 상당히 패기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작 <방과후> 이후로 생각보다 고전을 면치 못했던 작가의 사실상 두 번째 출세작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제는 익숙해진 추리소설 블랙 유머 메타 소설 중에 선구적인 작품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앞서 언급한 모든 미사여구를 통틀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소설도 쓸 줄 안다.'


 왠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예전만 같지 않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이 소설을 다시 읽는 게 무척이나 반가우면서 씁쓸했다. 꼭 지금의 작가가 타성에 젖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명탐정의 규칙>이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작품인 만큼 이 당시의 작가와 지금의 작가의 모습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요즘 작가의 소설을 통 읽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앞서 말했듯 추리소설의 정체성에 고심했던 작가의 모습이 워낙에 강렬해 10년 전에 읽을 때완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작가가 나중에라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다룬 소설을 다시 한 번 발표하길 기대해본다.

 <명탐정의 규칙>은 흔히 본격 추리소설에서 클리셰로 다루는 트릭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종류별로 까는 블랙 유머 단편집이다. 구태의연한 묘사나 추리 없이 신나게 비웃는 - 누가 오사카 사람 아니랄까봐...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머가 발군이었다. - 에피소드도 있고, 때론 허접하고 작위적이라고 자조하기엔 꽤 괜찮은 수준의 트릭과 반전을 구사하는 에피소드도 있어 전체적으로 풍성한 구성의 작품이었다. 작가처럼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추리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공감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작가의 작품 Best 10위 안에 들지 않나 싶다. 대놓고 심플한 메타 소설이면서 추리소설답게 의외성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러러볼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다.



 'Who done it - 의외의 범인'


 프롤로그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느낀 허무함과 유치함을 '공감'이란 키워드로 희석시킨 에피소드. 범인을 추리하지 않고 직감으로 찍으며 탐정의 동선을 따라가기만 하는 추리소설 독자들을 돌려서 깐 게 인상적이었다. 참으로 공감이 되면서도 뜨끔했는데, 밀실 에피소드에서 똑같은 트릭을 몇 번이고 쓰는 추리소설가를 깐 것과 대비돼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작품을 기획한 의중을 알 것도 같았다. 추리소설이 구태의연해지고 타성에 젖게 된 건 불성실한 독자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던 게 아닐까. 하도 정곡을 찔려 되려 책임 전가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게 좋았다.

 참고로 탐정을 설명할 때 '명탐정'이라고 쓰는 걸 대놓고 비웃는 게 진짜 웃겼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구나.



 '폐쇄된 산장의 비밀 - 무대를 고립시키는 이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클로즈드 써클을 다룬 에피소드. 초반에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무대를 고립시키되 좀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전개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강조했던 대로 꽤 재밌는 트릭이 나왔는데, 직후에 그 트릭의 작위성을 까는 게 재밌었다. 우리가 추리소설적 재미를 위해 얼마나 부자연스런 전개를 용인했는지 뒤돌아보게 됐다.



 '알리바이 선언 - 시간표의 트릭'


 트릭을 밝혀주길 바라는 범인과 그 범인의 바람을 무시하는 탐정의 구도가 신박했던 에피소드. 똑같이 트릭을 쓰더라도 추리소설이 마술과 다른 점은 트릭이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일 텐데, 그 점을 비틀어 아예 트릭을 밝혀주길 바라는 범인을 등장시켜 골때리는 웃음을 선사했다. 작중 인물들 스스로 자신이 추리소설 등장인물임을 알기에 가능한 초월적인 장면이었다. 알리바이 트릭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나를 비롯해 왜 독자들이 알리바이를 선호하지 않는지 짚어줘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이 세상 모든 추리소설 독자들한테 말이다.



 '여사원 온천 살인사건 - 두 시간 드라마의 미학'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해 그 작품들을 원작으로 둔 드라마도 많이 봤기에 이번 에피소드는 유별나게 공감하며 읽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심오한 설정과 전개가 통속적으로 뒤바뀌거나 주 시청자층을 위한답시고 필요도 없는 조연 캐릭터를 넣거나 탐정의 성별도 바꾸거나 종래엔 트릭과 결말까지 바꾸는 부조리를 가감없이 까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속이 다 시원하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저 한숨만 나왔다. 원작에서와 달리 존재감이 훼손당하는 범인의 절규가 내 한숨을 대변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여담이지만 <명탐정의 규칙>도 드라마로 나왔는데, 탐정과 형사가 투덜거리면서 추리소설을 비판하는 특유의 소재가 너무 유치하게 묘사돼 그리 추천하질 않는다. 가급적 원작만 읽거나 못해도 원작을 먼저 읽길 추천한다.



 '사라진 범인 - 트릭의 정체'


 이 작품의 트릭은 내가 고전 추리소설을 읽을 때마다 항상 납득이 가지 않던 부분인데, 그 점을 오가와라가 속시원히 지적해 그것만으로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다. 어지간히 중성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 성별을 위장하는 트릭은 늘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 - 동요 살인'


 무엇보다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 한 번쯤은 떠올릴 만한 아이디어지만 너무 막장이고 무거워서 쓰기 주저됐을 텐데, 이 작품은 워낙 초월적인 메타 소설이라 이런 정신 나간 결말을 그리는 게 용이했던 듯하다. 개인적으로 제목도 마음에 든다.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내가 그를 죽였다 - 불공정 트릭', '흉기 이야기 - 살인의 도구', '명탐정의 최후 - 마지막 선택'


 세 에피소드는 이 작품 후반부의 어두운 분위기를 대표하므로 묶어서 얘기해보겠다. 작가가 반전을 신경쓰다 보니 억지를 부리거나, 논리적이기만 하다면 생사람도 잡을 수 있다는 맹점이나, 명탐정인 주인공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화를 면한다는 절대불변의 법칙은 추리소설을 읽을 때 외면하고픈 요소들이다. 이 비관적이기 짝이 없는 요소들을 작가는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가감없이 까지만 그 느낌이 전에 없이 무거웠다.

 마지막엔 자신이 사랑하는 추리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선 클리셰에 절대 안주할 수 없다는 파격적인 자가진단이 나와 독자로서 숙연해졌는데, 이 부분 때문에라도 이 작품은 정말 읽을 가치가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그저 대중적인 작품만 쓰는 소설가란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그가 이런 의식 있는 소설도 쓸 줄 안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지금부턴 주변에 의식적으로 이 작품의 제목을 자주 언급해야겠다.



인상 깊은 구절


트릭 따위로 독자의 관심을 끌겠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에요. 밀실의 비밀? 흥, 너무 진부해서 웃음도 안 나오네.- 35p


하지만 알리바이 허점 찾기의 경우 탐정이 범인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면 수수께끼 자체가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허구의 세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얘기가 전개되면 범인들이 설 땅이 없어지고 만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해 낸 알리바이 트릭이 풀리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훌륭히 구축된 시간과 공간의 마술이 독자 앞에 공개되는 순간을 내심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것이다. -134~135p


이런 의외성에 푹 빠지는 팬들도 있어.

그건 진정한 팬이 아닙니다. - 270p


목 없는 시체가 나오면 그 시체는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추리 소설의 기본이죠. 범인과 피해자가 뒤바뀌는 소설은 하늘의 별보다 많아요. 그렇게 뻔한 걸 정답이랍시고 소설의 끝에 가서 거드름 피우며 밝히는 짓만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요. - 2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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