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설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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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스포일러 : 있음


 요번에 부산에 여행갔을 때 서면 YES24에서 산 책. 그 여행이 이른바 '소설을 제시간에 완성시켜 출품한 자신한테 보상'해주기 위한 여행이었던 만큼 이 책을 구매했다는 게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자세를 바로잡게 됐달까? 이 얘기는 블로그의 부산 여행기에서 마저 풀어내게 될 것 같다. 기대해주시길.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작가라는 직업을 소재로 한 이 단편집은 암울하고 광기 어린 직업세계와 고충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의 '학생 아리스' 시리즈나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 색다른 매력이 있어 흥미롭게 읽혔다. 생각해보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중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등장하지 않는 책은 이번에 처음 접한 것 같은데 - 슬슬 혀가 쥐가 날 것 같다... - 역시나 '예상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굳이 본격 추리소설만이 아닌 그냥 소설을 잘 쓰는 작가란 걸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항상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왜 굳이 밀실의 이유나 범인의 의외의 정체 등을 다루는 본격 추리소설만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 추리소설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매 작품마다 카뮈의 <이방인>에 필적하는 살인 동기를 다루는 터라 트릭과 반전에 치중하는 작가의 스타일이 내용과 약간 따로 노는 구석이 있다는 의문이 늘 떠나지 않았다. 꼭 살인 동기가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진지한 통찰 또한 일품인데 이러한 작가의 특징은 본격 추리소설이란 장르의 외견을 넓혔다기 보다 오히려 본격 추리소설이 작가의 특징을 모두 담아낼 만한 그릇으론 약간 비좁다는 인상을 줬다. 그래서 내심 작가와 동명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도 한 번 접해보고 싶었는데 <작가 소설>의 수록작들은 그런 점에서 내 궁금증과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줘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사실 소설가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작가 입장에선 작가나 출판계가 가장 익숙할 테니 은근히 많이 다루기도 했던 만큼 새로움을 느끼기 힘들단 생각에 그렇게 흥미가 동하지 않았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소설>은 이런 내 선입견을 깼다. 난 이 작가가 호러 소설을 이렇게 잘 소화할 줄 몰랐다. 더군다나 최근 나름대로 소설을 완성시킨답시고 새벽에 머리 좀 쥐어뜯어봤기 때문일까, 작중 작가들의 다양한 고충이 십분 공감이 갔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추리소설가답게 작가들의 세계에 범죄를 가미해 기묘하고 섬뜩하게 비틀어낸 것도 색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작가가 평소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고민한다는 게 느껴졌는데 이런 걸 보면 누가 뭐라 해도 참 천상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위키에서 보면 덕업일치를 이룬 작가라는 구절이 있던데 그 말이 맞는 말 같다. 작가로서 쓴맛을 이래저래 경험했을 텐데 그래도 노력하며 작품을 끊임없이 써낸다는 건 어렸을 때 자신이 품었던 로망을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졌다. 작가 지망생으로 본받을 만한 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글 쓰는 기계'


 강렬했던 첫 수록작. 잠재력은 있지만 팬이 느린 작가를 위해 출판사가 마련한 특단의 기계가 등장하는데, 그 기계의 정체는 작가를 구속시켜 소설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뒤에 있는 구덩이에 떨어뜨리는 극한의 장치가 설치된 최첨단 고문 기계다. 소설을 쓰는 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과 엄연히 다르지만 이 기계를 이용한 작가들은 효율성이 극대화돼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작품을 써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이 기계에 마약처럼 빠져든 작가의 미래는 상당히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는데, 한 작가가 종국에는 자신의 집에 똑같은 기계를 설치해 기계의 힘을 빌리고도 편집자와의 미팅 시간 안에 분량을 못 채우는 걸 봐서 정말 머지않아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는 담당 편집자의 모습에서 나 역시 형언할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꼭 경험에서 우러나와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소설을 쓰는 것에 효율이란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 제아무리 결과물이 좋아도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작중 작가의 경우 그 기계의 덕을 꽤 봤지만 작작 한다면 모를까, 결국 마약처럼 빠져들어서 스스로를 서서히 좀먹는다는 식의 묘사를 보면 애당초 기계의 힘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욕심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꿈이겠지만... 사실 작가라면 한 번쯤 해볼 생각인데 이런 식으로 구현한 작가한테 소름이 좀 돋았다. 단순하지만 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였다.



 '죽이러 오는 자'


 마지막까지도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범인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독자가 상상해야 하는 것도 오싹하니 괜찮은 연출이었다. 일본만의 아날로그적인 문화인지 모르겠는데, 소설가한테 팬레터를 보낸다는 설정을 본격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인 미싱 링크와 엮어서 풀어낸 게 신박했다. 이쯤 되니 작중 소설가의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별로였으면 사람들이 팬레터로 욕을 써서 보낼 정도인 건지...



 '마감 이틀 전'


 마감에 쫓겨 다급해진 나머지 별 시덥잖은 트릭까지 떠올리는 대책 없는 추리소설가의 좌충우돌 집필기. 처음엔 제법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나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산으로 가는 트릭과 가망이 없는 집필 속도는 극히 공감이 가서 읽는 내내 킥킥거렸지만, 그에 반해 뻔히 예상이 가면서도 뜬금없는 반전은 다소 아쉬웠다.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작가의 모습이 식상하다는 것 이전에 이런 반전이 꼭 필요한 반전이었는지 아리송했기 때문이다. 결말보다 과정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인 작품이었다.



 '기코쓰 선생'


 이 책에서 유일하게 훈훈하게 마무리된 작품. 앞선 세 작품이 너무 암울해서 이 작품도 읽는 내내 불길했는데 - 다른 의미에선 암울하기 짝이 없는 출판계의 미래를 낯낯이 드러내서 제일 암울하게 읽혔다. 작가의 고민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귀여운 내막이 드러나서 나까지도 피식 웃고 말았다. 작가 특유의 캐릭터 설정이 돋보였고 개인적으로 이 캐릭터들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언급이 됐음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유일하게 후일담이 궁금했던 작품이다. 과연 주인공은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을 것인가. 남일 같지 않아서 응원하게 됐다.

 여담이지만 주인공의 아버지가 출판계에서 악명 높은 독설가 편집자라는 설정인데, 비유를 하자면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쳐에 버금갈 만한 위인일까 싶었다. 현직 소설가가 정색하고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독설가의 아들을 겁주는 걸 보면 아버지란 작자가 참 괴팍한 인물일 것 같다. 아, 그래도 플레쳐와 비교하는 건 실례이려나.



 '사인회의 우울'


 작가란 직업은 예체능 계열에 속하지만 분명 연예인들과는 다른 직업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인회 한 번에 쑥스러워 하는 작가의 모습은 내가 다 민망했는데 나중엔 쑥스러워서 사인회를 고사하려 했던 게 아니란 게 밝혀져 그건 그것대로 충격이었다. 약간 뜬금없는 반전이긴 했지만... 아무튼 사인회에 임하는 작가의 고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일본어가, 정확히는 일본 글자가 참 비효율적인 글자란 것도 엿볼 수 있었다. 그 나라는 괜히 한자를 병용해서 쓸데없는 해프닝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사인회라는 설정 때문에 그 부분이 많이 부각됐다.



 '작가 만담'


 가볍게 웃기고 씁쓸한 자학이 녹아든 소설. 특별한 반전은 없고 한 번 더 짚고 넘어갈 만한 내용도 딱히 없었다. 다만 시시껄렁해도 어쨌든 대화만으로 이어가는 전개는 흡입력 있고 재밌었다. 소설이 아니라 진짜 만담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만담이었을지 모르지.



 '쓰지 말아주시겠습니까?'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소설가에게 작품의 소재나 에피소드, 하물며 등장인물 성격이나 이름 같은 것을 어떻게 떠올린 거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거의 다 주변의 것들을 작품 속에 녹여낸 것이란 답이 돌아온다. 작가로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글로 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민감한 사안이 아니면 작가의 집필에 제동을 걸지 않는 편인 것 같다. 애당초 소설이란 게 사회적으로 대단히 파급력이 있는 책이 아니라서 소설 속에 무단으로 에피소드나 어떤 사람의 성격을 차용했던들 당사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으면 작품 속에 당사자들도 자기 얘기인지 모르게끔 변화를 가미하려고 해 '완전 범죄'는 더욱 그리 어렵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예외도 존재하는 법. 자신의 얘기를 쓰지 말아달라고 약속을 받아냈음에도 상대가 어겼을 때 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도 모르게 복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작품에선 과민 반응인 줄 알았던 작가의 걱정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는 결말 때문에 분위기를 급격하게 오싹하게 만들었다. 작중 내용만으로 따지면 아무리 약속이라고 해도 복수하는 사람이 선을 한참 넘겼다고 할 수 있지만 소설의 내용을 떠나서 실제로 비슷한 사례를 접한다면 과연 제3자 입장에서 작가의 편을 들 것인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문학 작품에 있어 현실 세계의 에피소드에 관한 저작권이나 프라이버시는 함부로 접근하기 참 민감한 문제인 것 같다.



 '꿈 이야기'


 개인적으로 꿈을 꿀 때면 내가 접한 만화, 영화, 소설의 등장인물은 물론 내 실제 친구들이나 말로만 듣던 사람들까지도 한 데 모이는 등 <어벤져스>급의 캐스팅이 펼쳐지는데 이 풍경은 장관이라기 보다 개판에 훨씬 가깝다. 각기 다른 이야기와 세계관의 인물들이 모였으니 전개가 개판일 수밖에 없지. 뭐, 그래도 꿈이니까 말 그대로 꿈에 가까운 상상도 풀어낼 수 있는 것일 터다.

 작가가 내 꿈과 비슷한 설정의 소설로 단편집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게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작중에선 모종의 기계의 힘을 빌린다고 나오지만 어쨌든 이야기가 없는 가상의 세계에서 이야기꾼으로 살아간다는 게 한 번쯤 꿈꿔왔으면서 뒤가 구린 일이란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작년에 개봉한 <예스터데이>란 영화에선 모두가 비틀즈를 기억하지 못하자 가수 지망생인 주인공이 비틀즈의 노래를 자신의 노래로 둔갑시켜 가수로 데뷔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꿈 이야기'의 내용이 딱 그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오리지널 작품이 아닌 남의 작품으로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는 것에 대해 굴욕을 느끼고 자괴감에 빠져 번민한다는 전개가 특히 비슷했다.


 그 자괴감을 참다 못해 가까운 사람에게 사실을 고백해도 돌아오는 답이 압권이었다. 하긴 애당초 이야기가 없는 세계라고 본인이 설정했는데 누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겠는가. 그냥 또 하나의 잘 만든 이야기라 생각하겠지.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얼떨결에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점이 <예스터데이>의 주인공과 달랐달까?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달았는지 깨닫지 못했는지 독자들은 알 길이 없다. 작가는 상상의 영역으로 넘겼는데 이런 여운 있는 결말이 아주 좋았다.

 작가가 후기에 이 책의 수록작들을 가급적 순서대로 읽어달라고 말했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작가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마지막에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무척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긴, 이야기를 사랑하면서도 기존 작품들과는 또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를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지조가 담긴 작품이기에 내가 작가라도 애착이 갈 작품이었다.

장편이 못 되는 트릭이라도 단편이라면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구질구질하지. - 91p




소설가가 되기에 걸맞은 적령기는 없어. 그래서 고약한 거야. 야구 선수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년 소녀는 어느 시기가 오면 꿈에 손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하지만 소설가라는 꿈은 늙어 지칠 때까지 계속 가질 수도 있어. 그건 더이상 꿈이 아니야. 악몽이지. - 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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