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상어 -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 01 ㅣ 뫼비우스 서재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8.2







 일본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다는 도쿄 신주쿠를 배경으로 한 하드보일드 경찰물. 주인공 사메지마의 별명 '신주쿠 상어'는 이름에 상어(사메)가 들어가서 붙여진 것이기도 하지만 상어처럼 범죄자를 상대할 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묘하게 유치하고 절묘한 이 별명의 주인공을 내세운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는 지금까지 10권이 넘게 나왔다는데 국내에는 아직 1권밖에 출간되지 않았다. 내가 10년 전에 읽었을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90년대에 출간된 구판으론 4권까지 출간됐던데 그 책들을 찾아 읽기엔 아무래도 번거롭고 번역도 옛스러워 손이 가지 않는다.

 작가의 출세작이자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지만 시리즈 자체가 좀 연식이 됐다 보니 우리나라 독자들이 구태여 주목하거나 관심을 가질 여력은 없어 보인다. 이 책 자체도 이미 절판됐기에 우연히 접할 사람도 요원해 사실상 이대로 후속작을 못 본다고 단념하는 게 나은 실정이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쉽다. 1권이 캐릭터 소개에 분량이 할애된 감이 있고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부풀려 놓았기에 역시 2권부터 순서대로 접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사메지마와 범죄자들의 결투도 궁금하지만 쇼와의 연애 이야기도 궁금하다. 쇼는 대놓고 남성 독자들을 노리고 만든 캐릭터라 나도 어쩔 수 없이 그쪽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니까 이 작품이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best 1위에 선정됐다는 게 약간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조직 생활의 규칙을 쿨하게 무시하고 타협 없이 범인을 쫓는 사메지마의 과거사와 여정은 박진감 넘치고 통쾌했으며 액션과 추리, 골때리는 캐릭터도 많이 등장해 전체적으로 풍성하게 읽혔다. 생각보다 사건이 싱겁게 해결되고 아직 간만 살짝 맛본 정도라 감질났던 점이 좀 걸리지만 말이다. 가볍게 읽을 작품으로 더할 나위 없지만 엄청난 깊이와 철학을 기대해선 곤란한 엔터테인먼트 작품이라는 것 정도가 <신주쿠 상어>에 어울리는 수식어일 듯하다. 수상한 상의 목록을 보고 접근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을 내세워 홍보하는 건 오히려 독일 수도 있다.

 신주쿠에는 딱 한 번 라멘을 먹으러 가봤는데 실제로 이렇게 분위기가 개판일까 싶어 약간 의아한 기분도 들었다. 3년 전에 신주쿠에 갔을 때 기억나는 건 신주쿠역의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출구도 너무 많아 비둘기들이 지하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튼 여행 중에 야쿠자를 볼 일이 없으니 작중에서 묘사되는 풍경이 정말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으로 여겨졌다. 특히 총기 사고가 남발한다거나 90년대에 게이들이 이렇게 버젓이 돌아다닌다는 등의 묘사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이런 묘사를 일본의 서브컬쳐에서 한두 번 접하는 건 아니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장소인 신주쿠를 배경으로 펼쳐지니 어디까지 허구고 진실일지 살짝 구분이 안 갔다. 이 작품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건 어느 정도 고증이 잘 이뤄졌다고 받아들여야 하나? 살아생전 신주쿠는커녕 일본을 다시 밟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만약 도쿄 여행 중에 신주쿠에 갈 일 있으면 이 작품의 내용을 잠시 떠올려봐야 할 듯하다. 무슨 일이 생길까 싶지만 혹시 또 모르니까.


 상술했듯 아마 이 시리즈의 후속작을 접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후속작은 물론이고 나오키상을 받았다는 시리즈 4편도 궁금하지만 10년 동안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사메지마의 이야기는 국내하곤 인연이 없는 것으로 여겨야겠다. 그래도 작가가 제법 유명한 사람이니까 다른 작품은 좀 출간될 법한데... 무려 미야베 미유키와 교고쿠 나츠히코하고 같이 사무실을 열 수 있는 작가라면 적어도 윈 히트 원더는 아니란 뜻이겠지. 다른 작품에서 필력을 어떻게 발휘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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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님과 나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8







 스포일러 : 많다.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스포일러 없이 감상을 풀어내는 게 무의미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 출간된 우타노 쇼고의 작품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릴 작품일 것이다. 비호감의 극치를 넘어 아예 비호감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인공 카즈마의 골때리는 망상을 끝까지 읽으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허무함과 막막함을 마주할 테니까. 정말 한숨이 다 나오는데, 이런 소재와 이야기를 과감히 쓴 작가가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싶다. 서브컬쳐 전반에 조예가 깊기로는 타의 추종을 - 특정 분야에 관한 캐릭터들의 수다는 장관이 따로 없다. - 불허할 작가다. 히키코모리, 오타쿠, 로리콘은 차라리 귀엽게 보일 정도로 천인공노할 소재를 작가가 너무 능수능란하게 다뤄내 읽다가 눈을 질끔 감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선혈이 낭자하지 않지만 상상만으로도 불쾌하고 끔찍한 장면이 한둘이 아니라서 일일이 언급하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어느 정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불쾌하긴 해도 소재의 특성을 100% 살려낸 것과 결말이 허무하긴 해도 망상 부분의 자체적인 완성도가 출중해 분명 몰입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부분은 허무한 결말을 통해 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느껴져 두 번째 읽은 지금에 와선 사뭇 통쾌하게 읽히기도 했다. 부모를 살해했다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하필 너무나도 리얼하면서 답이 없는 내용의 망상으로 도망쳐 카즈마로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나마 소원 카드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킬 여지가 있었으나 너무나 어이없는 타이밍에 카드를 써버려 - 일종의 죄책감이려나? 그래도 혐오스럽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 망상에서도 쫓겨난 카즈마의 모습은 이후에 또 망상으로 도망친다 하더라도 결국 그 망상조차도 지옥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이 정도로 리얼하고 짜임새 있는 망상을 펼칠 줄 아는 카즈마라면 추리소설을 써봐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은 여자아이를 유괴해서 죽이고 자기 부모도 홧김에 죽이고 인형을 여동생 삼아 대화하는 혐오스런 쓰레기지만 이런 재능을 잘만 살렸더라면 꽤나 건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능력은 잘못된 방향으로 발휘됐다. 카즈마가 언제까지고 망상에서도 안주하지 못하게 되리란 암시가 위안이 되면서도 착잡함을 더욱 배가시켰다. 작가가 어째서 이런 답도 없는 쓰레기가 만들어졌는지를 은근히 사회파 추리소설스럽게 접근한 탓에 카즈마가 경멸스러우면서도 동정의 시선을 거두기 힘든 캐릭터로 여겨졌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가상의 여동생을 걱정하는 마지막 장면은 어딘지 씁쓸하기까지 했다. 참 갱생의 여지가 없는 모습이면서도 망상 속에서는 부분부분 괜찮은 인간이고자 하는 욕망도 엿보였기에 그 욕망을 현실에서 구체화시키지 못한 카즈마가 못내 안타까웠다.

 늘 느끼지만 우타노 쇼고의 작품에는 개성적이지만 비호감인 캐릭터들이 정말 많이 등장한다. 카즈마의 망상 속에서 등장한 라이미와 그녀의 엄마는 반전 없는 암 유발자들이었고 탐정으로 등장한 미가사도 카즈마나 라이미 정도는 아니어도 골때리는 양반이었다. 특히 라이미는 망상에만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게 될 정도로 카즈마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쓰레기였는데, 바꿔서 얘기하면 카즈마 같은 쓰레기니까 이런 캐릭터를 망상 속에 등장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상상력이 더욱 감탄스럽게 다가왔다. 이 정도면 추리소설가가 아니더라도 - 아무리 망상이라 하더라도 중간 부분과 끝마무리가 엉성했으니까. - 색깔 있는 소설가로 승승장구했을 것 같은데... 그래봤자 우타노 쇼고가 창작한 캐릭터긴 하지만 실제로 카즈마 같은 작자들이 적기는커녕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난 이 작품에서의 카즈마의 모습이 도무지 소설 속 얘기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카즈마나 라이미나 차라리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면 다행이지, 안 찾아 읽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디테일한 부분에서 다르더라도 카즈마나 라이미는 현실에서도 분명 존재한다. 오히려 더 심할 수도 있고. 현실은 언제나 소설을 능가하기 마련이니까... 다 떠나서 현실의 카즈마들은 자신의 재능을 올바르게 발휘하길 바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비호감 소재로 범벅된 금단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었지만, 한편으론 착잡한 감상을 이끌어내는 사회파 추리소설이기도 해 이래저래 가볍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최고작 반열에 들 순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 최상단을 거뜬히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런 소재로 이만한 두께의 소설을 써내려간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정말 한계가 없는 작가인 것 같다.



 p.s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한강의 <채식주의자>, 산베 케이의 <나만이 없는 거리>, 그리고 이 작품 <여왕님과 나>까지 접하니 나 역시 돌아버릴 것만 같다. 정신병자와 쓰레기들을 너무 연달아 접한 탓에 이제 힐링물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 내성이 있는 편이지만 연달아 다섯 작품은 너무 강행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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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없는 거리 8 - S코믹스 ㅣ S코믹스
산베 케이 지음, 강동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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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나와 같은 연령대의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을 접하면 아무래도 더 몰입하게 되는데, 이 작품의 경우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든 미래를 바꾸는 내용인 터라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플롯의 힘과 주인공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나만이 없는 거리>는 긴 무명 생활을 지냈다는 만화가 산베 케이의 출세작으로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최근엔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됐다고 한다. 실사 영화는 5년 전에 접했는데 당시에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도 꼭 결말까지 봐야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다.

 원작 만화를 꼭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한 데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실사 영화가 전반적으로 괜찮았지만 결말이 너무 급작스러워 과연 원작도 이런 걸까 싶었다. 내 예감상 원작은 이와 많이 다르겠다는 직감이 들었는데 그 직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사토루의 어린 시절까지는 전개가 똑같았지만 혼수상태에 빠져서 20대에 눈을 뜬 이후의 전개는 확연히 달랐다. 원작에선 범인의 광기와 그 범인을 잡겠다는 사토루의 의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전개가 묘하게 지겹기도 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시작으로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이어 이 작품까지, 아무래도 광기로 얼룩진 캐릭터를 연달아 접해서 그런지 이 작품의 범인의 치밀한 두뇌나 범죄자로서 천재적인 면모,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똘끼 등이 그렇게 새롭게 다가오지 못한 듯하다. 하필 연달아 비슷비슷한 작품을 접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사토루에게 집착하는 범인의 모습이나 행보가 다소 작위적인 감도 있고 또 작가가 범인의 정체를 밝힌 다음부터 독자에게 그의 광기를 납득시키고자 너무 많은 설명을 부연하려는 것 같아 더욱 거북하게 느껴진 것 같다. 조금은 미스터리한 인물로 남겨뒀더라면 더 공포스럽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봤자 사소한 아쉬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범인의 캐릭터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작품에서 단연 눈에 띄닌 부분은 사토루의 신비로운 능력인 '리바이벌'이다. 이 능력의 기원이나 정체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호한 이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사토루의 마음가짐과 행동력은 강한 몰입도를 선사했다. 사토루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나도 이와 같은 처지에 있다면 과연 이 정도로 노력할 수 있을까 싶어 더 몰입하게 됐다. 사토루는 초등학생의 몸으로 아동 연쇄 유괴 살인범으로부터 동급생을 지키겠다며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들을 과감히 해낸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때론 기껏 어린 시절로 돌아간 보람도 없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통해 결국에 자신의 인생을 반전시키는 것에 성공한다.


 살다보면 만약 과거로 돌아가 그때 그 일을 바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특히 뭘 해도 지지부진한 결과만 낼 때 그런 상상에 많이 매달리곤 한다. 당연히 상상은 상상으로 그치기 마련이고 그래서 후회는 비참한 현실을 강조할 뿐이라 하지 말라고들 주변에서 얘기한다. 하지만 후회도 계속 하다 보면 내가 과거의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했는지 파악하게 되기에 최소한 미래에는 똑같은 실수를 방지라도 할 수 있게 된다. 사토루의 경우 이러한 후회가 리바이벌이란 능력과 만나 극강의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길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하는 만큼 분명 작가도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가 적잖았구나 싶었다.

 사토루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어머니에게 환멸을 느꼈고 친구들을 멀리했는지 등을 깨달으며 과거에선 애당초 그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방지하고자 노력한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어 실질적으로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사토루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밝고 희망찬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 대가도 제한도 없다시피 한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졌으니 성공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이 사건의 범인이 실로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만큼 사토루의 노력을 굉장히 높이 쳐주고 싶다. 그렇다 보니 초반엔 나한테도 이런 기회가 한 번쯤 주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사토루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삶을 변화시킬 때 중요한 것은 초월적인 능력이 아닌 바로 의지라고.


 이 이야기가 단순히 능력이 강하게 강조됐다면 이런 능력을 소유한 사토루가 그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시샘했을 텐데, 능력에 대한 묘사는 최소한으로 하는 대신 사토루 본인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통찰과 미래를 바꾸려는 의지를 강조해 나도 이 사람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내게 리바이벌이란 능력이 주어질 리 없을 것이고, 또 어지간히 비극적인 사건을 겪지 않는 한 내게 리바이벌이 절실한 순간이란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지금 뿌린 씨앗을 미래에 거두는 성실하고도 반전 없는 인생일 확률이 높다. 압도적인 불행도 압도적인 행운도 없다면 성실하게 사는 것이 답이다, 이게 바로 내가 내놓은 결론이다. 압도적인 불행을 의식하며 무력감에 찌들 필요도, 로또 같은 대박을 기대하며 노력을 게을리 할 여유도 없으니까.


 예상 외로 연초에 읽어서 남다른 울림이 전해졌던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도 호평을 받았던데 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우선 애니부터 봐야지. 성우들의 연기와 애니메이션 특유의 연출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선행이나 악행이나 본질은 똑같아. 인간이 자신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 하는 행위일 뿐이야. - 5권 #30 ‘확실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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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7.6







 11년 전에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이건 내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의 소설이라며 누구와도 이 소설에 대해 얘길 나누지 않았다. 이 소설이 부끄럽다기 보다 읽었다는 걸 그렇게 자랑거리로 삼을 만한 내용이 아니란 생각에 어디에도 이 소설을 완독했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책의 내용은 얼추 이해가 됐지만 정서적으로 퍽 와 닿지 않았기 때문에 구태여 남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6년 뒤에 이 소설이 맨부커상 인터네셔널 부문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꽤나 의아스러웠다. 이토록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얻을 만한 소설이었다는 감상을 처음 읽었을 때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의 문체도 수려한 편이고 특정 이미지를 발전시키는 역량도 출중하기에 감탄스런 장면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인 터라... 서양의 감성도 그와 다르지 않기에 각광을 받은 것인가 싶어 국위 선양의 소식을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들어야만 했다.


 <채식주의자>는 표제작 '채식주의자'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 손목의 통증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을 섭외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집필을 완성시킨 마지막 작품 '나무 불꽃'이 수록된 연작소설집이다. 세 번째 작품의 경우 가장 가독성이 떨어지고 내용도 지리멸렬한 편인데 그 내용을 알바생의 손으로 대신 집필해냈다니... 작가도 작가지만 그 알바생의 집중력도 대단하지 않은가 싶었다. 어쨌든 이 작품은 결과물을 떠나서 호불호가 무척 갈리는 내용인데, 그 말은 즉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만큼 색깔 있게 잘 썼다는 뜻이기도 하니 작가의 노고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 작품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소설의 만듦새보단 순수하게 소설의 감성이 기분이 나빴단 식으로 말이다. 이런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게 어떤 의미에선 작가로서 이 연작을 집필한 보람이 느껴지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도를 무의식적으로라도 갖고 있어야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테지...



 '채식주의자'


 이 책의 표제작이자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정서란 걸 접할 수 있던 작품. 화자가 썩 정감이 가는 인물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식적인 인간의 시선을 대변해준다는 점에서 우리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그런데 누군들 영혜의 기행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녀의 남편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는 건 좀 부당한 일일 수 있겠다. 느닷없이 꿈을 꿨다는 이유로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그녀를 도대체 누가 지지해줄 수 있단 말인가?

 이 작품에서 채식주의는 말 그대로 동물권을 위한 윤리적인 선택이라기보다 훨씬 근본적인, 이를 테면 살면서 두 번 다시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다짐에 더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렸을 때부터 크건 작건 폭력에 노출된 영혜가 꿈을 계기로 채식주의자로 돌변한 것에서 지금까지 폭력을 폭력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지금부터라도 달리 살아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결연한 의지, 좋다. 남들은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그녀가 그걸 원한다면 그 뜻을 존중 못할 것도 없다.


 문제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남들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실천하는 독선적인 태도에 있다. 난 그 태도가 이기적이라 느껴진 나머지 영혜가 타인의 반발을 사는 게 아주 당연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극단적으로 실시하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특성상 분명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뜯어 말릴 거란 생각을 - 그렇다고 해서 영혜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의 입을 억지로 벌려 고길 넣으려 한 게 상식적인 일이라는 건 아니다. - 영혜는 정녕 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런 생각도 못할 만큼 절박했던 걸까. 그랬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남편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거나 설득하려는 최소한의 의지도 없이 단지 '꿈을 꿨어요' 라고 채식주의의 이유를 밝히는 건 너무나 지나치게 사회성이 결여된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기가 지금 꿈 때문에 이러는 거니까 이 이상 묻지도 따지지 말라고 벽을 치는 듯했다. 10년 전엔 영혜 혼자 채식을 하겠다는 데 가족들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거 아니냐며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 와서 읽으니까 오히려 타인의 이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영혜의 모습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몽고반점'


 차라리 첫 번째 수록작은 귀엽다고 느껴질 정도로 2편은 더욱 정신이 아득해질 만한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도한 채식주의와 자해로 정신병원을 드나든 처제(영혜)의 몸에 있는 몽고반점에 강렬한 영감을 받은 비디오 아티스트 화자가 영혜와 금단의 예술 작업을 갖는다는 형이상학적인 전개가 펼쳐지니 원. 읽다 보면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남편이나 가족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건 이 남자가 취한 행동에 비할 바가 못 되는구나 싶었다.

 물론 이 둘이 몸에 식물 그림을 그려 육체관계를 갖는 영상을 촬영한 건 나름 합의를 통해 이뤄진 전개이니 왈가왈부할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결국 이 남자의 예술혼이 어떻게 보면 영혜의 정신병을 더 부추긴 셈이 돼 이 작품 말미에 자신의 아내로부터, 또 이 책의 다음 수록작 '나무 불꽃'에서 두고두고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남자가 영혜한테 영상 촬영을 제안하기까지의 갈등, 촬영하는 영상의 내용, 그 이후의 희열 등 내 정신 세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장면이 너무 많으므로 이 이상의 말은 생략하겠다.



 '나무 불꽃'


 유일하게 영혜를 포기하지 않던 그녀의 언니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영혜를 감당하지 못해 이혼한 남편이나 영혜의 정신병을 부추기고 그녀와 몸을 섞기까지 한 남자와 달리 이 이야기의 화자는 영혜에게 끊임없이 눈물로 호소한다. 영혜가 기행을 일삼고 화자가 호소하는 반복적인 장면도 피곤하지만 그때마다 나오는 영혜의 정신 나간 대답은 매번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먹고 살다가는 죽는다는 말에 도리어 '왜 죽으면 안 돼?'라고 묻는데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정말 바라는 대로 해줘야 하지 않나 싶은데 사람의 마음이나 가족 관계가 또 그렇게 무 자르듯 쉽게 단절되지 않을 테니 영혜는 죽는 그 순간까지 지옥 속에서 살아가리라는 불길한 미래가 예상됐다. 결국 영혜는 그녀의 바람대로 누구에게도 고통을 주지 못할 시체가 되긴 될 텐데 그게 과연 해피엔딩이려나.

 나도 모르게 거친 표현이 많이 나온 것 같은데, 애당초 영혜의 채식주의나 이 소설의 전개에 대해 어떤 상식이나 논리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내 태도가 한참 잘못된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 채식주의자가 됐다가 나중에 채식마저 거부하며 스스로 나무가 되겠다고 벌거벗은 채 물구나무를 서는 여자를 일개 독자인 내가 감당하려는 것부터가 자멸에 이르는 길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처음엔 모든 종류의 폭력에 불응하겠음을 극단적으로 실천하는 여자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폭력에 불응하겠다며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폭력적인 결과를 낳는 전개가 펼쳐져 이 책 전체가 실로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초반에 채식주의는 육식을 하는 인간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나왔는데, 이 말이 가장 핵심적인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육식이 곧 폭력이란 가정 하에 말하자면, 인간은 밖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식으로 생존해온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폭력을 멈추게 되면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꼴이라는 것, 그래서 자가당착에 빠진 채 어쩔 수 없이 죽고 말거나 아니면 죽기 싫어 마지못해 다시 폭력을 저지르는 존재가 바로 인간임을 작가는 강조하고 싶던 게 아니었을까.

 문학에서 인간의 폭력성이란 그리 참신한 주제는 아니지만 작가가 그에 걸맞는 무겁고 정신나간 작품 세계를 선보였으니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비꼬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정신나간 작품 세계를 길게 써야 했을까 하는 의문은 들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재능이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게 자주 접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 작품을 완독했다는 게,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완독한 내 스스로가 실로 장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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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ㅣ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2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9.1







'어둠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지만 정작 법정에서 등장한 적은 정말 드문 변호사 고진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 추리소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인 <어둠의 변호사>는 '붉은집 살인사건'이란 부제처럼 심플하지만 대담한 저택 트릭, 3대에 걸쳐 핏빛 사건이 끊이지 않은 가정사를 다루고 있었던 반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철벽의 알리바이 트릭과 도를 넘은 인간의 애정욕을 다루고 있다. 사건의 규모를 보면 전편이 훨씬 방대하며 고진이 개입하는 개연성도 전편이 자연스러웠는데 - 이 작품의 탐정역은 굳이 고진이 아니어도 됐다고 본다. - 작품의 가독성, 반전의 의외성 자체는 이번 작품이 우세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전개를 뒤엎는 반전이 나와 사람에 따라선 느닷없다고 여길 것도 같지만 그 반전을 유도하는 추리 방식이 논리적이었고 여하튼 그렇게 당도한 결과가 엄청 의외라서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간혹 알리바이 트릭을 다룬 작품을 보면 탐정이 내놓는 추리나 실제 사건의 진상들이 밀실 살인 못지않게 작위적이라 느꼈는데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신선하고 완성도도 상당했다. 고진이 내놓는 추리들의 내용이 모두 제각각임에도 그럴싸했던 것과 그 추리들이 논파당하는 전개도 몰입도가 높았고 긴장감도 제법이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범행이 가능했던 것인가 싶어 마치 내가 겪은 일처럼 몰입하게 됐다.


 내가 알리바이 트릭을 작위적이라 느낀 데에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더라도 이미 결말은 정해졌고 결국 트릭은 사건의 과정을 설명할 뿐이기에 그 과정에서 무리수가 섞이지 않은가 하는 선입견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의 트릭은 그러한 내 선입견을 완전히 깨부수는 신개념 전개를 선보인다. 나는 반전의 내용보다도 오히려 이런 발상의 전환이 더 인상적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다음 깔끔하게 방향을 선회하는 유연한 사고가 신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떻게 보면 탐정이 너무 똥고집을 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 사건 해결하는데 자기 자존심 우선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다 부질없는 짓이지...

 이 작품은 꼭 스포일러 없이 그냥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분량도 짧고 가독성도 좋으니 진입장벽도 높지 않으리라 믿는다. 저번에 포스팅한 <모방범>은 좋은 작품이지만 분량이 1,500페이지가 넘어 추천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을까 내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지만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은 그 걱정이 안 들어서 좋다. 마음 같아선 제목이 왜 저렇게 지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지만 그럼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을 아끼려고 한다. 작가나 출판사가 굳이 제목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은 데엔 다 이유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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