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없는 거리 8 - S코믹스 S코믹스
산베 케이 지음, 강동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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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나와 같은 연령대의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을 접하면 아무래도 더 몰입하게 되는데, 이 작품의 경우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든 미래를 바꾸는 내용인 터라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플롯의 힘과 주인공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나만이 없는 거리>는 긴 무명 생활을 지냈다는 만화가 산베 케이의 출세작으로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최근엔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됐다고 한다. 실사 영화는 5년 전에 접했는데 당시에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도 꼭 결말까지 봐야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다.

 원작 만화를 꼭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한 데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실사 영화가 전반적으로 괜찮았지만 결말이 너무 급작스러워 과연 원작도 이런 걸까 싶었다. 내 예감상 원작은 이와 많이 다르겠다는 직감이 들었는데 그 직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사토루의 어린 시절까지는 전개가 똑같았지만 혼수상태에 빠져서 20대에 눈을 뜬 이후의 전개는 확연히 달랐다. 원작에선 범인의 광기와 그 범인을 잡겠다는 사토루의 의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전개가 묘하게 지겹기도 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시작으로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이어 이 작품까지, 아무래도 광기로 얼룩진 캐릭터를 연달아 접해서 그런지 이 작품의 범인의 치밀한 두뇌나 범죄자로서 천재적인 면모,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똘끼 등이 그렇게 새롭게 다가오지 못한 듯하다. 하필 연달아 비슷비슷한 작품을 접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사토루에게 집착하는 범인의 모습이나 행보가 다소 작위적인 감도 있고 또 작가가 범인의 정체를 밝힌 다음부터 독자에게 그의 광기를 납득시키고자 너무 많은 설명을 부연하려는 것 같아 더욱 거북하게 느껴진 것 같다. 조금은 미스터리한 인물로 남겨뒀더라면 더 공포스럽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봤자 사소한 아쉬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범인의 캐릭터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작품에서 단연 눈에 띄닌 부분은 사토루의 신비로운 능력인 '리바이벌'이다. 이 능력의 기원이나 정체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호한 이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사토루의 마음가짐과 행동력은 강한 몰입도를 선사했다. 사토루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나도 이와 같은 처지에 있다면 과연 이 정도로 노력할 수 있을까 싶어 더 몰입하게 됐다. 사토루는 초등학생의 몸으로 아동 연쇄 유괴 살인범으로부터 동급생을 지키겠다며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들을 과감히 해낸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때론 기껏 어린 시절로 돌아간 보람도 없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통해 결국에 자신의 인생을 반전시키는 것에 성공한다.


 살다보면 만약 과거로 돌아가 그때 그 일을 바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특히 뭘 해도 지지부진한 결과만 낼 때 그런 상상에 많이 매달리곤 한다. 당연히 상상은 상상으로 그치기 마련이고 그래서 후회는 비참한 현실을 강조할 뿐이라 하지 말라고들 주변에서 얘기한다. 하지만 후회도 계속 하다 보면 내가 과거의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했는지 파악하게 되기에 최소한 미래에는 똑같은 실수를 방지라도 할 수 있게 된다. 사토루의 경우 이러한 후회가 리바이벌이란 능력과 만나 극강의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길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하는 만큼 분명 작가도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가 적잖았구나 싶었다.

 사토루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어머니에게 환멸을 느꼈고 친구들을 멀리했는지 등을 깨달으며 과거에선 애당초 그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방지하고자 노력한다. 그 노력은 결실을 맺어 실질적으로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사토루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밝고 희망찬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 대가도 제한도 없다시피 한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졌으니 성공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이 사건의 범인이 실로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만큼 사토루의 노력을 굉장히 높이 쳐주고 싶다. 그렇다 보니 초반엔 나한테도 이런 기회가 한 번쯤 주어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사토루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삶을 변화시킬 때 중요한 것은 초월적인 능력이 아닌 바로 의지라고.


 이 이야기가 단순히 능력이 강하게 강조됐다면 이런 능력을 소유한 사토루가 그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시샘했을 텐데, 능력에 대한 묘사는 최소한으로 하는 대신 사토루 본인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통찰과 미래를 바꾸려는 의지를 강조해 나도 이 사람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내게 리바이벌이란 능력이 주어질 리 없을 것이고, 또 어지간히 비극적인 사건을 겪지 않는 한 내게 리바이벌이 절실한 순간이란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지금 뿌린 씨앗을 미래에 거두는 성실하고도 반전 없는 인생일 확률이 높다. 압도적인 불행도 압도적인 행운도 없다면 성실하게 사는 것이 답이다, 이게 바로 내가 내놓은 결론이다. 압도적인 불행을 의식하며 무력감에 찌들 필요도, 로또 같은 대박을 기대하며 노력을 게을리 할 여유도 없으니까.


 예상 외로 연초에 읽어서 남다른 울림이 전해졌던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도 호평을 받았던데 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우선 애니부터 봐야지. 성우들의 연기와 애니메이션 특유의 연출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선행이나 악행이나 본질은 똑같아. 인간이 자신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 하는 행위일 뿐이야. - 5권 #30 ‘확실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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