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님과 나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8







 스포일러 : 많다.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스포일러 없이 감상을 풀어내는 게 무의미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 출간된 우타노 쇼고의 작품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릴 작품일 것이다. 비호감의 극치를 넘어 아예 비호감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인공 카즈마의 골때리는 망상을 끝까지 읽으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허무함과 막막함을 마주할 테니까. 정말 한숨이 다 나오는데, 이런 소재와 이야기를 과감히 쓴 작가가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싶다. 서브컬쳐 전반에 조예가 깊기로는 타의 추종을 - 특정 분야에 관한 캐릭터들의 수다는 장관이 따로 없다. - 불허할 작가다. 히키코모리, 오타쿠, 로리콘은 차라리 귀엽게 보일 정도로 천인공노할 소재를 작가가 너무 능수능란하게 다뤄내 읽다가 눈을 질끔 감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선혈이 낭자하지 않지만 상상만으로도 불쾌하고 끔찍한 장면이 한둘이 아니라서 일일이 언급하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어느 정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불쾌하긴 해도 소재의 특성을 100% 살려낸 것과 결말이 허무하긴 해도 망상 부분의 자체적인 완성도가 출중해 분명 몰입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부분은 허무한 결말을 통해 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느껴져 두 번째 읽은 지금에 와선 사뭇 통쾌하게 읽히기도 했다. 부모를 살해했다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하필 너무나도 리얼하면서 답이 없는 내용의 망상으로 도망쳐 카즈마로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나마 소원 카드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킬 여지가 있었으나 너무나 어이없는 타이밍에 카드를 써버려 - 일종의 죄책감이려나? 그래도 혐오스럽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 망상에서도 쫓겨난 카즈마의 모습은 이후에 또 망상으로 도망친다 하더라도 결국 그 망상조차도 지옥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이 정도로 리얼하고 짜임새 있는 망상을 펼칠 줄 아는 카즈마라면 추리소설을 써봐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은 여자아이를 유괴해서 죽이고 자기 부모도 홧김에 죽이고 인형을 여동생 삼아 대화하는 혐오스런 쓰레기지만 이런 재능을 잘만 살렸더라면 꽤나 건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능력은 잘못된 방향으로 발휘됐다. 카즈마가 언제까지고 망상에서도 안주하지 못하게 되리란 암시가 위안이 되면서도 착잡함을 더욱 배가시켰다. 작가가 어째서 이런 답도 없는 쓰레기가 만들어졌는지를 은근히 사회파 추리소설스럽게 접근한 탓에 카즈마가 경멸스러우면서도 동정의 시선을 거두기 힘든 캐릭터로 여겨졌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가상의 여동생을 걱정하는 마지막 장면은 어딘지 씁쓸하기까지 했다. 참 갱생의 여지가 없는 모습이면서도 망상 속에서는 부분부분 괜찮은 인간이고자 하는 욕망도 엿보였기에 그 욕망을 현실에서 구체화시키지 못한 카즈마가 못내 안타까웠다.

 늘 느끼지만 우타노 쇼고의 작품에는 개성적이지만 비호감인 캐릭터들이 정말 많이 등장한다. 카즈마의 망상 속에서 등장한 라이미와 그녀의 엄마는 반전 없는 암 유발자들이었고 탐정으로 등장한 미가사도 카즈마나 라이미 정도는 아니어도 골때리는 양반이었다. 특히 라이미는 망상에만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게 될 정도로 카즈마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쓰레기였는데, 바꿔서 얘기하면 카즈마 같은 쓰레기니까 이런 캐릭터를 망상 속에 등장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상상력이 더욱 감탄스럽게 다가왔다. 이 정도면 추리소설가가 아니더라도 - 아무리 망상이라 하더라도 중간 부분과 끝마무리가 엉성했으니까. - 색깔 있는 소설가로 승승장구했을 것 같은데... 그래봤자 우타노 쇼고가 창작한 캐릭터긴 하지만 실제로 카즈마 같은 작자들이 적기는커녕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난 이 작품에서의 카즈마의 모습이 도무지 소설 속 얘기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카즈마나 라이미나 차라리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면 다행이지, 안 찾아 읽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디테일한 부분에서 다르더라도 카즈마나 라이미는 현실에서도 분명 존재한다. 오히려 더 심할 수도 있고. 현실은 언제나 소설을 능가하기 마련이니까... 다 떠나서 현실의 카즈마들은 자신의 재능을 올바르게 발휘하길 바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비호감 소재로 범벅된 금단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었지만, 한편으론 착잡한 감상을 이끌어내는 사회파 추리소설이기도 해 이래저래 가볍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최고작 반열에 들 순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 최상단을 거뜬히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런 소재로 이만한 두께의 소설을 써내려간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정말 한계가 없는 작가인 것 같다.



 p.s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한강의 <채식주의자>, 산베 케이의 <나만이 없는 거리>, 그리고 이 작품 <여왕님과 나>까지 접하니 나 역시 돌아버릴 것만 같다. 정신병자와 쓰레기들을 너무 연달아 접한 탓에 이제 힐링물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 내성이 있는 편이지만 연달아 다섯 작품은 너무 강행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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