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에밀 뒤르켐 지음, 황보종우 옮김, 이시형 감수 / 청아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8.7







 인문학 도서, 특히 사회학이나 심리학, 과학 도서는 늘 읽기 버겁다. 현재의 내 식견으로는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려 애쓰기 보단 저자의 논리, 책을 쓴 저의를 파악하며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마저도 쉽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불가항력에 따른 나름의 독서 방법이다.

 이 책은 내가 쓰려는 어떤 소설을 위해 읽게 됐다. 내 소설의 습작을 읽은 어떤 지인분이 '뒤르켐의 <자살론>이 보이기도 한다' 고 평을 남겼는데 난 그 책을 읽지 못해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고 흉내를 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런 책을 읽지도 않고 창작에 임했다는 게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슬슬 그 소설의 퇴고에 박차를 가할 때가 다가와서 참고 문헌 삼아 읽게 됐다.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움찔하던데, 어떤 사람은 '왜, 자살하려고?' 라며 농담인지 뭔지 모를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못한 대답을 하자면 자살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살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읽는 게 아닐까..?

 무려 1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책인데 당시의 반응은 어땠을지 사뭇 짐작이 간다. 21세기의 나도 <자살론>을 읽으니 이상하게 비춰지는데 하물며 19세기의 저자가 자살을 연구한다니 얼마나 낯설게 보였을까. 책 속에는 그런 시선에 대한 작가의 논리적 주장과 그에 대한 노력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었는데, 그야말로 차가운 열정이 물씬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상한 말로 들릴 텐데, '차가운 열정'이라니 무슨 소리냐면 저자의 이성적 태도가 방대한 분량에 걸쳐 열성적으로 나열됐기에 나오고 만 표현이다. 저자는 사회학에 대한 정의를 비롯해 자살에 대한 거의 모든 편견에 대해 하나 하나 세밀하게 따져본다. 읽으면서 흡사 탐정이 추리소설 말미에 사건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추리를 펼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표와 그래프가 수시로 나열되는데 - 인상 깊었던 건 가끔 저자 수치를 언급할 때 잘못 기술한 부분을 역자가 고치고 그걸 역주로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꼼꼼하기가 저자 못지않은 역자였다. - 저자의 꼼꼼함은 물론이고 연구의 목적에서도 상당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다. 자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질릴 정도로 유익한 책이 아닐 수 없는 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솔직히 저자가 쓰는 용어가 너무 어려워 내 것으로 만들기 힘들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읽었는지조차 의심 -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자살'을 책의 내용에 대입하며 읽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 스럽다. 자살이라... 나는 자살을 사회가 저지르는 살인으로 개인의 부도덕함이나 정신적 미숙함으로만 자살을 규정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는데,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다면 이 부분 때문에 지인이 내 소설에서 뒤르켐을 느꼈다고 말한 것일 터였다. 만약 그렇다면 저자에게서 동의를 얻어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독서가 아니었을까. 누구 마음대로 동의를 얻어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반갑지 않을 리 만무하다.


 애꿎은 아쉬움이지만 이 책이 더 나중에 저술됐다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이만큼 썼을 정도면 더 많은 자료가 갖춰진 지금에 와서는 얼마나 대단한 연구가 이뤄졌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학에 대한 저자의 자세, 그러니까 이성적 관찰을 중시하는 태도는 오늘날은 물론이고 미래에서도 귀감이 되고도 남으니 의미는 없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들었다. 시대를 잘못 났다고 하긴 그렇지만 때론 동시대에 같이 살았으면 하는 인물이 꼭 있다. 참으로 애꿎게도 말이다.

물론 사회학의 미래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가 끝나기를 바란다. 만일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사회학은 다시 과거처럼 불신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성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퇴보를 반기지 않을 것이다. 이성의 발전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인간 정신은 심각하게 퇴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 11p




사회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독단적 주장을 일삼으면서 증명을 하려는 요구를 공공연하게 회피하지 않아야만 사회학이 하나의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 159p




우리는 사회의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이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는 느낌이 없이는 사회 자체의 퇴락을 의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좌절과 실망의 물결은 특정한 개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의 해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 258p




그러므로 자살이 비도덕성을 감소시키는 바람직한 효과가 있고, 그 확산을 막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하는 것은 정확하지 못한 주장이다. 자살은 살인의 파생물이 아니다. 물론 이기적 자살을 일으키는 도덕적 특질과 문명인들 사이에서 살인을 감소시키는 도덕적 특질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기적 자살을 하는 사람은 살인하려다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살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한 사람의 슬프고도 우울한 인간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살인과 같은 종류로 취급할 수 없다. - 463p




필연적인 불완전성은 병이 아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병이라고 한다면, 완벽한 것은 없으므로 모든 것이 다 병이라고 해야 한다. - 4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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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9.9








 네이버 책에 '고백'이라고 치면 이 작품이 최상단에 뜰 정도로 이 작품의 위상은 어마어마하다. 두 번째로 읽음에도 여전히 충격적인 내용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제목의 어감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이 작품이 출간 당시에 불러일으킨 신드롬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가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덕에 더 주목받기도 했다. 영화는 소설과 거의 맞먹는, 어떤 부분에선 능가하기도 하니 못 본 사람은 꼭 보자. 특히 원작은 읽었는데 영화는 아직 못 봤으면 더더욱. 이 작품은 혼자만 알기에 너무 아깝다. 지금은 오히려 혼자만 알기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략히 줄거릴 풀어내자면, 종업식 날 교사인 화자가 학생들에게 '얼마 전에 죽은 내 딸은 우리 반 학생이 죽였습니다.'라고 말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미나토 가나에의 장기인 1인칭 화자 시점에 따른 독백의 묘미가 가장 잘 두드러진 작품인데 - 이 작품이 데뷔작인데 가장 뛰어나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묘사되는 인물의 심리가 일품으로 데뷔작 같지 않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솔직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가 이 작품과 유사하다면 유사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작품이 현실적이었다면 이 작품은 다소 막장일지라도 광기 어리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고백>을 읽으면 이 세상에 광기에 물들지 않은 인간이란 존재할까 의문이 다 든다. 딸을 잃은 엄마, 군중 심리에 물드는 아이들, 자기 자식을 과보호하는 엄마, 그리고 두 명의 살인자... 무엇보다도 우리와 그렇게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소름이 돋는다.


 말은 가벼울 수 있어도 글은 가볍지 않다던가.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확실히 글은 말보다 무게가 있다. 이 작품에서 선보이는 서간 형체나 독백 형식의 글은 음성의 말과는 판이한, 남다른 진지함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글은 입바르거나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를 하고자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소 자극적이고 동의를 얻어낼 수 없을지라도 자기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기 위해 펜을 잡는 것이 아닐까. 난 이런 글이야말로 소설 속 등장인물을 빛나게 해준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 <고백>은 그 부분에서 월등한 영역을 점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법 이전의 인간의 복수심을 다룬 시점에서 이 작품의 시원시원함은 진즉에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들의 윤리 의식이 마치 시시껄렁한 것이라도 되는 양 숱하게 배반하는 인물들의 행동거지가 쾌감과 절망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런 막장이 다 있을까 싶지만 한편으론 동정심도 적잖이 든다. 특히 만악의 근원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소년 A의 파트는 유달리 몰입됐다.

 우리는 악인의 속내를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악인을, 자기 행동이 충분히 악한 줄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악인은 자기가 악하게 보이길 원치 않아서 선한 사람보다 더 선한 척을 한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심정으로 악행을 일삼았는지 듣기란 무척이나 힘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소설가들은 자신의 글로나마 악인의 숨겨진 속내를 그려내기도 한다. 대체로 상상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작가일수록 그 속내를 복잡 미묘하게 그리는 것 같다. 일리는 있지만, 동정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용서할 수 없는 사정들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이번 재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을 하나만 꼽자면 단연 작가의 글의 마력을 들 수 있다. 충격적인 서사는 물론이거니와 그를 지탱하는 심리 묘사도 수위가 세다. 수위 자체로만 보면 우리가 하나도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막상 읽기 시작하면 빠져들 듯이 읽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난 이를 작품 특유의 '가식 따윈 없는 속내 들추기'의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평소 거의 외면하다시피 한 불편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이 작품이 제대로 해소시켜준 덕분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 작품의 성공은 설명이 안 될 것이다. 기분 나쁜 추리소설이란 신조어 '이야미스' 장르를 개척한 작품과 저자를 떠올리면 우리들에게 불편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마냥 없지만은 않은 것 같다.

 소설도 읽었으니 영화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더불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거의 대다수의 작품을 읽었지만 최근 출간작은 안 읽어서... 데뷔작을 능가하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지만 그래도 다시금 기대되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소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착한 일이나 훌륭한 행동을 하기란 힘듭니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질책하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장 먼저 규탄하는 사람, 규탄의 선두에 서는 사람에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아무도 찬동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규탄하는 누군가를 따르기란 무척 쉽습니다. 자기 이념은 필요 없고, ‘나도, 나도‘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게다가 착한 일을 하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니 최고의 쾌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벌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 78p




바보일수록 변명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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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는 풀렸다! - 기막힌 반전에서 절묘한 트릭까지, 깨알같고 비밀스런 추리소설 산책
박광규 지음, 어희경 그림 / 눌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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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추리소설 작법서인 줄 알고 읽었다. 펼쳐 보니 그건 아니고 추리소설의 이모저모를 얘기하는 책이었다.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책 자체는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추리소설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라도 재밌을 내용들이었다.

 내가 추리소설을 접한 지 8년이 지난 것 같다.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독서 자체를 늦게 맛들렸는데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참 열광하며 읽어댔는가 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대체로 이미 알던 것들이고 들어본 것들이라 그렇게 신선하진 않았다. 언급되는 작품 중 읽은 것도 꽤 있고 안 읽어봤다 할지라도 이름조차 처음 듣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 애독자들을 위한 내용이건만 정도에 따라선 그리 신선하지 않을 수 있는 기묘한 아이러니함을 안고 있는 책이었다.


 그런고로 추리소설 입문자가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추리소설의 다양한 요소를 잘 정리했기 때문에 어떤 추리소설을 읽을까 고민되면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이제 갓 추리소설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에게 건네주기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 가득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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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말 ㅣ 엔시 씨와 나 시리즈 1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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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2





 

 나는 일상 미스터리를 정말 좋아한다. 추리소설 중 가장 부담없이 읽는 하위 장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단순히 추리소설로써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일부 추리소설 애독자나 일반 독자들에겐 아리송한 말일 수 있겠다. 추리소설을 추리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선뜻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일상 미스터리라 하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가 원조라고 하는데 난 그 할머니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종종 본 지라 솔직히 별로 안 와 닿는다. 나는 주로 와카타케 나나미나 가노 도모코 같은 일본 일상 미스터리가 떠오른다.


 어쨌든 이 작가들과 관련된 글을 읽으면 '기타무라 가오루'라는 이름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했다. 기타무라 가오루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에서도 크게 언급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당대... 그러니까 80년대 후반 일본 추리소설계를 뒤흔든 작품의 저자라서 그런가 어딘지 낯익은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작품으로 <스킵>이나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을 읽어봤다. 읽을 때마다 '그 전설의 데뷔작이나 출간할 것이지...' 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작품이 드디어 출간됐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이 신본격 미스터리의 효시를 알렸다면 기타무라 가오루의 <하늘을 나는 말>은 정반대의 작풍인 일상 미스터리의 바람을 일으켰다고 한다. 숱하게 명성을 들은 작품이라 사뭇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가 이 작품을 홍보하기를 일상 미스터리의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퍽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일상 미스터리의 전형이자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복면 작가로 활동한 탓에 여성 작가로 오해를 받았다는데 그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는 섬세한 문체나 추리소설답지 않은 따뜻한 드라마와 일상의 작지만 놀라운 수수께끼와 진상들이 알차게 그려져 있었다.

 다만, 일본 문화 중 하나인 라쿠고를 당최 알지 못하니 주인공과 엔시 씨의 대화나 일부 인용이 바로 바로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 점은 참 아쉬웠다. 이건 외국 소설이라 어쩔 수 없는 문제긴 하지만... 그 외에도 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추리소설의 시원한 결말보다는 여운을 주는 쪽으로 결말을 지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는 내내 어리둥절하면서 읽지 않을까 싶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의 영역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좋고 싫음이 정확히 반반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작품인 '설탕 합전' 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알바 경험을 대입해 읽으니 공감 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추리소설다웠고 작중의 미스터리가 적잖이 궁금증을 자아내서 꽤나 만족스럽게 읽었다.

 소설 본편과 무관한 듯 무관하지 않았던 주인공과 엔시 씨의 대화는 이 책의 백미다. 위에서는 바로 바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아쉽다고 했는데 이는 둘 사이를 오가는 내용을 좀처럼 놓치고 싶지 않은 탓에 나오게 된 불만이었다. 인상 깊었던 구절에 옮긴 게 전부 그 대화 중에 나온 구절들인데 어떻게 보면 엔시 씨가 추리를 펼쳐 미스터리를 푸는 것보다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부분이 바로 일상 미스터리의 장점이자 단점이지 않을까. 서두에 밝혔듯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일상 미스터리를 추리소설로써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히 수수께끼 해결에만 주력하지 않으며 인물간의 드라마나 뜻밖의 감동을 전해주는 일상 미스터리 특유의 작풍 때문에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설령 추리소설이라고 불릴 수 없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일상 미스터리는 오래도록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새삼 느끼기도 했다.

 오랜만에 읽은 일상 미스터리 작품이었는데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해도 역시 좋았다. 후속작인 <밤의 매미>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단편 부문)을 수상했다는데 그 작품 또한 기대된다.

하지만 나는 말입니다, 뜸을 뜨려고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안에서만 가능한 옹고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120p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지는 않답니다.

그러면 일부, 이야기의 내용을 아는 사람만을 상대하는 건가요?

아니요. 일부도 아니고 단 한 사람, 자신입니다.

네, 젊은 날의 나를 상대하는 것이지요. 한 무대 한 무대를 순수한 기대를 안고 귀 기울여 들었던 나 자신. 모든 관객을 그 시절의 나라고 생각하고 공연하고 있답니다. 그 상대는 기만할 수 없어요. 그걸 기만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라쿠고를 그만두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 231~232p




하지만 한번 마음에 걸린 이상에는 거기에 이유를 붙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요. 머리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데, 그 반대를 불가능한 것이지요. 이것이 머리로 움직이는 인간의 슬픔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머리는 영원히 감정을 질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 327p




......어떻습니까, 인간이란 존재도 아주 가치가 없지만은 않지요? - 4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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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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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경관이 흘리는 피라고 생각했다. 표지에 적힌 영어 제목을 보니 <The policeman's lineage>였다. lineage, 경관의 '피'는 바로 경관의 '혈통'을 일컫는 말이었다. 다 읽고 보니 꽤 중의적인 표현이구나 싶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best 10'에서 1위를 수상해 언젠간 읽어야지 벼르고 있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분량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먼저 집었는데 확실히 이 작품이 제일 재밌었다. 사사키 조의 작품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의 장기가 집대성된 작품인 게 물씬 풍겨졌다. 작가는 후기에서 <경관의 피>가 우리나라 독자들한테까지 읽힐 만큼 보편적인 작품인가 걱정된다는 말을 했다. 그 걱정... 은 기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드라마적인 측면에서나 일본 경찰이라는 특수한 설정을 폭넓게 감상할 수 있다는 데에서 이번 독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가 주인공으로 그들 모두가 경관인 작품이다. 전후 일본의 민주 경찰이 된 안조 세이지, 쇼와 시대에 접어들어 학생 운동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기에 경찰이 된 안조 다미오, 그리고 현재의 경관 안조 가즈야. 무려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 작품은 경찰 소설이자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3대에 걸쳐 경관직에 몸을 담았던 안조 가家에 닥친 미스터리나 시대에 따라 위상과 업무 내용이 바뀌어가는 경찰의 모습 등 볼거리가 풍부했다.

 읽기 전에, 분량만큼이나 나를 걱정시켰던 부분은 이 작품이 다름아닌 경찰 소설이라는 것이었다. 추리소설 속에서 경찰은 숱하게 등장하지만 이 작품처럼 670페이지가 넘도록 경찰을 얘기하는 작품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너무 전문적이거나 취향을 탈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 걱정은 반은 맞아들었고 반은 빗나갔는데, 작품 속에 내제된 요소가 워낙 다양해서 경찰 소설이라는 한마디로 묘사할 수 없었다.


 작품을 읽는 내내 현실적인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경찰 소설하면 요코야마 히데오와 같이 사사키 조가 언급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경험치가 상당한 작가답게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경찰의 여러 모습을 드라마 속 여러 에피소드에 적절히 녹여냈는데 일부 극적인 장면을 제외하면 현실적이기가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실 추리소설보다는 역사 소설의 느낌이 더 강했고 작중 등장하는 범죄와 미스터리가 전체 분량에 비해 비중있게 드러나는 편은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결말의 임팩트가 두드러지지 못한 감이 있었다. 이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었을 때도 느낀 부분인데 작가의 스타일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넘어갔다. 강렬한 범죄나 해결을 그리기 보단 일상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개입과 해결을 그리는데 임팩트는 약해도 전체 이야기 흐름은 탄탄해지는... 실로 드라마를 중시하는 작풍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신파로 유명한 요코야마 히데오나 여타 사회파 추리소설과도 다른, 사사키 조라는 작가만의 드라마 구축법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읽는 사람에 따라 밋밋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어쨌든 분량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선 굵은 이야기가 확실히 전달되는 작품이었다. 추리소설을 기대했다가는 당연히 실망할 테고 화끈한 경찰소설을 기대해도 역시 실망할 수 있지만 그 나름의 기승전결과 흐름을 갖고 있어서 특유의 읽는 맛이 살아 있었다. 주인공이 2번이나 교체되지만 자연스럽고 질리지 않으며 무엇보다 전대의 유지를 이어나간다는, 이른바 '경관의 혈통'을 분명히 엿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아니, 경관이 하는 일에 회색지대란 없다. 약간의 정의, 약간의 악행, 그런 일은 없어.

우리 경관은 경계에 있다. 흑과 백, 어느 쪽도 아닌 경계 위에 서 있어.

우리가 하는 일을 시민이 지지하는 한, 우리는 그 경계 위에 서 있을 수 있어. 어리석은 짓을 하면 세상은 우리를 검은색 쪽으로 떠밀지. - 6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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